다국어로 제정해야 하는 국제법

2023-04-28     카트린 케세지앙 외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국제적인 법과 규범은, 실상 국가들 간 세력관계의 결과물이다. 현실은 항상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강한 국가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해야 할 국제기구들 역시, 결정권을 쥔 불투명한 비공식적 조직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실정이다.

 

“오늘날의 국제금융시스템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부유한 자들에 의해 형성됐다. (...) 그 결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돼 지속되고 있다.”

2022년 9월 20일, 안토니오 구테후스 국제연합(UN, 이하 ‘유엔’) 사무총장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북반구와 남반구, 특권층과 비특권층 간 대립은 날로 심화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분열을 완화하려면 대화와 중재의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이며 국제법의 기반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역사적으로 국제법은 주권국가를 바탕으로 세워진 것으로, 16세기 장 보댕에 의해 이론화돼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거치며 정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현재의 국제법은 19세기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란, 두 가지 이념을 기반으로 한다. ‘온화한 상업’에 대한 이상향과 19세기말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층 사이에서 떠오르던 ‘평화는 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강한 신념이 그것이다. 실제로 초기 정부 간 국제기구들은 국제무역의 발전에 필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의 전신인 만국전신연합(ITU, 1865년 결성)이나 만국우편연합(UPU, 1874년 결성) 등이 그 예다.

 

국가, 기업, 민간단체 간의 산물

규범은, 원칙적으로 당사자들의 이해와 수용을 위해 그것이 적용될 사회에 맞춰 만들어야 한다. 국제 규범도 마찬가지다. 국제법은 ‘국제 공동체’가 아닌 ‘국제 사회’의 관행을 담고 있다. 19세기의 지정학 역시도 동질적인 공간을 그리고 있지는 않았다. ‘공동체’는 소속 구성원들이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고, 유사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공공의 선을 위해 서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곳이다. 하지만 국제법은 국가, 기업, 민간단체라는 주요 개체들 간의 세력관계 및 교섭을 통해 빚어지는 산물이다.

첫 번째 주체인 국가는 모두 동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법적 간주에 의해 투표권에서는 평등하다. 일례로 유엔 총회도 ‘각 회원국은 한 표의 투표권을 가진다’는 원칙이 있다. 강국들 중에서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최상위 선진국들과, 일개 다국적 기업의 매출액보다도 낮은 국내총생산을 기록하는 국가들 사이에는 분명한 균열이 존재한다.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외교 사절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자국 국민이 정부 간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지,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나 중국의 공자아카데미와 같은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살펴봐도 차이는 명확하다.

국가들은 국제법 창설을 위해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양국 간의 법이든 다수의 국가를 아우르는 법이든, 조직체를 둔 법이든 그렇지 않든, 지역국제법이든 일반국제법이든 항상 마찬가지다. 특히 국제기구를 통해 협력할 때는 최소한의 형식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요구로 인해 국가 간 협상 시 참관국을 둬야 한다. 강국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규범을 제외하고는 최소한의 정책으로만 만들어두었다가 이후 실행의 편의성에 중점을 둔 논의를 거쳐 규범으로 탈바꿈하는 비공식적인 방식을 자행해왔기 때문이다. G7, G8, G15, G20, 심지어는 G44(유럽정치공동체(EPC))에 이르는 수많은 ‘G-정상회담’이 계속 생겨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비공식적 조직들에 속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이 조직들의 대표성과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기 마련이며, 회의가 비공개로 열리는 탓에 민간단체들은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두 번째로는 기업, 특히 다국적 혹은 초국적인 기업(이들이 다수의 영토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나아가 국가들의 감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이다. 일부 기업들은 여러 국가에 비해 경제적, 심지어는 정치적으로도 더욱 발전해 있다. 실제로 화웨이, 마이크로소프트, 워너브라더스 등의 기업들은 ‘공무’를 다루는 부서를 별도로 둬 규범과 관련된 감시를 맡고, 기업의 이익이 국가기관 또는 국제기구들에 연계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개입은 공공의 이익과는 반대 방향으로 갈 위험이 있다. 정보왜곡과의 전쟁에서도 국가들은 규범 적용을 위해 과학기술기업들에 일부 의존하고 있다. 

기업들은 소셜 네트워크의 이용정책을 바꿔가며 국가를 앞설 수 있고, 심지어는 규범적 절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2018년에는 프랑스 정부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신뢰와 보안을 위한 협약인 ‘파리 콜’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협약은 민간기업 706개를 포함한 약 1,200개의 주체와 6개의 실무단의 참여로 연합화의 목표는 이미 달성했으며, 현재까지 네 개의 보고서를 통해 여러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을 제시해 왔지만 아직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세 번째 주체는 국제적 민간단체들이다. 대부분이 비정부기구(NGO)인 이들은 세계청소년기후행동의 경우처럼 파악하기 어려운 모호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정 조달 방식도 대규모 재단, 연구 센터, 국가지원, 크라우드 펀딩 등 극과 극을 달린다. 국제민간단체의 가장 큰 과제는 경쟁력이 부족한 수준의 급여로 학문가들을 유인하는 것, 그리고 대부분 아주 먼 지역(교통비와 숙식비가 발생하는)에서의 회의에 참석해 그곳에서 이뤄지는 국제협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재정적 수단을 갖추는 것이다. 

특히 논의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결정사항의 실천을 다루는 회의가 반복 개최될 경우 민간단체의 업무는 더욱 과중된다. 일례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당사국총회(COP)를 들 수 있다. 결국 민간단체가 국제무대에 실질적으로 가담해 효율적이고 명백한 영향력을 가지려면, 완수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중립성’이라는 허구, ‘세력관계’라는 현실

이 같은 세력관계들을 고려한다면 국제법의 ‘중립성’이란 실상 허구에 불과하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초기의 양국 간 통상조약들은 과거 식민제국들이었던 선진국들이 특히 현지국의 독립 시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구상 및 이행됐었다. 물론 이런 성격은 최근 협약들에선 희미해졌다.

국가 간 세력관계는 한 국가 혹은 한 무리의 국가가 국제적인 규범 제정을 제안하는 그 순간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실무단은 누가 주도할 것인가? 실무단은 어떤 식으로 구성할 것인가? 논의 과정을 공개할 것인가? 논의 내용을 보고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표결 과정은 필수적인가? 법문은 만장일치로만 채택할 것인가? 공용어는 무엇인가? 국제법 제정 절차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협상의 내용은 물론 최종적으로 채택될 규범 내용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2016년 유럽연합과 캐나다, 일부 남미국가의 주도로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RL)가 국제투자 관련 중재안 개정을 시작했을 때에도, 실무단 대표직이 캐나다 출신 인물에게 돌아가는 순간 첫 번째 전투가 어느 진영의 승리로 돌아갔는지가 명백히 드러났다. 게다가 이렇게 선출된 인물은 해당 국가의 대표자가 된다. 민감한 사안에는 손을 빼는 정부라면, 이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여길 것이다. 실제로 실무단의 대표는 어느 정도의 행동반경을 두고 논의의 방향을 이끌어갈 수 있으므로 어느 한쪽이 추진하는 협상 방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논의의 결과 자체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렇게 정해진 규범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단계에서는 세력관계가 더욱 명백하게 드러나곤 한다. 일례로 사이버 공간에 대한 국제법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국가들 사이의 합의가 존재하지만, 실제 적용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합의된 바가 없다. 사이버공격을 국가의 주권을 위반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일종의 무력침략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정당방위 차원의 대응이 가능한지 등 많은 질문이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각국이 하나의 기관, 특히 재판권을 지닌 기관을 정해 해당 규범을 해석할 권리를 부여하고 그렇게 내려진 정의를 모두가 지켜야 할 의무로 받아들이기로 합의하지 않는 한, 규범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이 계속해서 공존할 것이며 결국 세력관계에 따라 하나의 해석이 다른 해석들을 억누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인권 보호를 위한 원조 대상을 선택할 때에도 수혜국의 조건 충족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공여국들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서구 국가들은 약소국의 정부를 대신해 해당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과 ‘간섭할 의무’ 등의 개념을 만들고 나아가 ‘보호책임원칙(R2P)’을 국제규범으로 삼았으나, 서구 국가들이 시민 보호가 아닌 당시 정권의 전복을 목적으로 2011년 리비아에 개입한 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개념들을 끌어다 쓰면서 오히려 스스로 그 의미를 왜곡하고 퇴색시키고 말았다.

 

협상 언어는 왜, 얼마나 중요한가?

세력관계는 국가 간 분열로 강제성 있는 규제에 대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국가 간 합의가 이른바 ‘소프트 로(Soft Law)’라고 불리는 구속력이 낮은 규범들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다. 사이버 보안과 관련해서도 국가 간 합의가 부재한 탓에 국제기구, 민관협의체, 민간단체 등이 만든 약 600개 이상의 강제성 없는 규범적 도구들 역시 비슷한 실정이다. ‘하드 로’와 ‘소프트 로’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이 아닌 연속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행위 당사자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규범들은 법적 안정성을 무너뜨리고 시민들에게 실망만 줄 것이다.

한편 국가 간 세력관계에서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협상 시 사용되는 언어다.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병용(번역이 아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수많은 국제기구의 전통은 잊힌 지 오래다. 이제는 흔히 단 하나의 언어, 즉 영어가 공용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나 벨기에조차도 유엔을 비롯한 다수의 국제기구에서 영어를 사용해온 지 오래다. 오로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만이 영어의 공용어화에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결코 무시할 것이 아니다. 언어는 법문의 내용과 구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먼저 국제법을 단 하나의 언어로만 표현할 경우 그로 인한 사유가 빈약해진다. 게다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발화자는 대부분 ‘글로비시’, ‘에스페란토’, ‘국제비즈니스영어’와 같은 기초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는데, 이는 사고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한 도구다. 

반면 국제법 제정에 다수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사유를 풍부하게 확대하고 전 세계의 사법체계가 보다 잘 실현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각각의 문화로 하여금 단 하나의 주된 문화의 강압 없이도 스스로의 원칙과 관점을 찾아내고 알아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글·카트린 케세지앙 Catherine Kessedjian
파리팡테옹아사스대학 교수
안티다 노로돔 Anne-Thida Norodom
파리시테대학 교수

번역·김보희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