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이 느끼는 쓰디쓴 환멸

튀르키예 위협속에 커지는 내부 분열

2023-04-28     비켄 슈테리앙 l 제네바대학교 역사・국제관계 강사

근동지역에서 30년도 넘게 지속돼 온 대격변으로 인해 이라크와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분리독립 대신 자치지역을 얻어냈다. 하지만 쿠르드족 내부 불화로 인한 위협이 나날이 가중되고 있다. 시리아의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로자바의 지도자들은 특히 점점 더 위협적이 돼가는 튀르키예의 침공을 우려하고 있다. 

 

2017년 9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KRG)는 분리독립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91.8%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독립의 꿈은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이라크 중앙정부가 국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도 컸지만, 강대국(미국과 러시아) 및 주변국(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튀르키예)들이 이라크의 분할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1) 분리독립의 꿈이 좌절되면서 힘을 잃은 쿠르드자치정부는 이후 전략적으로 중요한 키르쿠크 유전지대를 비롯해 상당한 영토를 이라크 중앙정부군에게 양도해야 했다. 

이라크에서 서쪽 방면,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 설립된 쿠르드족 자치지역 즉 북시리아 민주연방체제 또는 로자바(쿠르드어로 ‘서쪽’)의 전망도 밝지 않았다. 로자바는 시리아 정권의 위협 속에서 튀르키예군의 공격까지 받았다.(2) 쿠르드족의 영토 인정이 번번이 무산된 데는 강대국의 영향도 있지만, 쿠르드족을 대변하는 정치단체들 간 경쟁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진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쿠르드족의 특수한 상황을 제쳐놓고 근동지역의 안전성 문제를 거론하기란 불가능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근동지역은 왕조가 아닌 민족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국가 체제(튀르키예나 이라크, 레바논 등의 아랍국가)로 탈바꿈했다. 지도상에서 쿠르드족은 ‘국가 없는 민족’ 신세가 돼 튀르키예와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지에 흩어졌고, 이 국가들은 쿠르드족의 기본권을 부정했다. 

핍박을 견디다 못한 쿠르드족은 수차례 반란을 일으켰다. 지난 몇 년간 이라크와 시리아 정권이 약해지고 붕괴되면서 쿠르드족은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이라크와 시리아 내 쿠르드족 군사조직들은 2003년에는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바스(Bass)당 정권에, 2014년부터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에 맞서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주요 동맹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IS 격퇴에 앞장선 쿠르드족 전투원과 그들의 대의는 국제사회로부터 전례 없는 지지를 얻었다. 결국,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 힘을 모아서 쿠르드 자치정부의 자치권이 2005년 이라크의 새로운 헌법에 명시됐고, 시리아에서도 자치 기구가 탄생했다.(3)

 

갈등이 여전한 쿠르디스탄 애국연합과 쿠르드 민주당

 

그렇다고 해서 내부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쿠르디스탄 애국연합(PUK)과 쿠르드 민주당(KDP)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두 정당 간 대립으로 이라크에서는 대통령과 정부가 몇 달간 부재했다. 이라크 통일에서 의례적이지만 상징적인 대통령이라는 직위는 2005년부터 두 정당 간 합의와 의회 표결을 거쳐 쿠르드족이 맡았다.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이 대통령직을, 쿠르드 민주당이 쿠르드 자치정부 통치를 맡기로 했다. 

하지만 2021년 10월 총선 이후 두 정당은 각각 이라크 대선 후보를 냄으로써 제도적 공백 사태를 초래했다. 2022년 10월이 돼서야 두 정당과 기타 이라크 단체들은 합의를 이뤘고,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의 압둘 라티프 라시드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혼란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쿠르드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를 두고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의 요구사항이 지나치다고 평가했다.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은 쿠르드족의 절반만을 대표할 뿐이다”며 쿠르드 민주당 정치국 소속인 마무드 모하마드는 단언했다.

반면, 선거 기반이 쿠르디스탄(이라크의 쿠르드족 자치지역, 즉 쿠르드 자치정부-역주) 동부에 집중돼 있는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은 쿠르드민주당이 아르빌을 거점으로 한 쿠르드 자치정부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재정 자원 배분도 불공평하게 이뤄졌다. 쿠르드 자치정부에는 이라크 세입의 17%가 돌아갔지만,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의 입지가 탄탄한 술레마냐 주의 예산은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교사, 지방 공무원 등 술레마냐 주 공공분야 노동자들은 임금체불에 맞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450억 배럴 상당의 원유(이라크 총 매장량의 30%)와 8~10조㎥에 달하는 천연가스 매장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데, 두 정당은 원유생산 통제권 및 수익배분을 놓고도 갈등 중이다.

쿠르드족 내부 분쟁의 근본적인 부분은 쿠르드 민병대(페쉬메르가)들을 단일 지휘 체계 아래로 통합한 데 있다. 1992년 미국의 보호 아래 쿠르드족은 자치권을 얻은 뒤 양대 군사 세력이 각각 정해진 영토를 통제해왔다. 쿠르디스탄 애국연합 휘하 부대 ‘야크레이 70’과 쿠르드 민주당 휘하 부대 ‘야크레이 80’이 그들이다. 두 세력은 이미 여러 번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2014년 IS가 이라크 북서부 신자르 지역의 소수민족 예지디스인들을 공격했을 때 야크레이 80은 해당 지역에서 후퇴했고, 그로 인해 수천 명이 넘는 예지디스인들이 학살당했다. 

2017년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후 이라크군이 이라크 북쪽에 있는 키르쿠크로 진격했을 때 야크레이 70이 그곳에서 후퇴하면서 키르쿠크 유전지대가 함락됐다.(4) 키르쿠크와 함께 다른 ‘분쟁 지역들’도 이라크군의 손에 넘어갔다. 쿠르드 자치정부의 외교국 수장인 니아즈 바르자니는 “페쉬메르가가 단결되고 개선된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분열된다면 우리는 패배할 위험이 크다”라고 말했다. 

각 정당이 무장세력을 휘하에 둔 상황은 1990년대 경우처럼 정치적 의견 불일치로 인해 무장 대립의 위험이 초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효율적이고 초당파적인 행정부의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 두 정당 중 어느 하나가 선거에서 진다면 해당 정당이 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5) 쿠르드 민주당과 쿠르디스탄 애국연합 지도부는 일부 쇄신 활동을 통해 몇 번 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긴장상태를 야기하기도 했다. 

쿠르드 민주당은 1946년 무스타파 바르자니가 이란 마하바드에서 창당한 역사적인 쿠르드족 정당이다. 창당 초기만 하더라도 범쿠르드족 정당이었지만 이후 바르자니 가문 영향 아래 있는 전통을 고수하는 정당으로 간주되고 있다. 1979년 당 대표인 바르자니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인 마수드 바르자니가 쿠르드 민주당과 그 휘하 군사 세력을 이끌게 됐다. 그는 2005년부터 쿠르드 자치정부 수반을 맡았고 2017년 분리독립 투표가 실패로 돌아가자 같은 해 11월에 사임했다. 같은 집안에서 새로운 세대의 지도부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수드 바르자니는 여전히 쿠르드 민주당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전투복보다는 서양식 의복을 선호하는 신세대 지도부는 쿠르드족 내분에 가담하지 않았다. 신세대 지도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군대에 맞섰던 노병인 윗세대와 같은 정당성이 부족했다. 따라서 정치적 위계질서의 정점에 선 것에 대해 자신들이 바르자니 왕조에 속해 있다는 것 외에는 명분이 없었다. 쿠르드 사회는 신세대 지도부의 특권을 문제 삼지 않았으나 권력 내부에서 새로운 알력 관계가 출현하는 것을 우려했다. 마수드 바르자니가 쿠르드자치정부 수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로 그 자리는 조카 네치르반 바르자니에게, 총리직은 그의 아들 마스루 바르자니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런 권한 부여는 쿠르드 자치정부의 법률에 명시된 바가 없기에, 대립은 고조되고 정치적 긴장상태는 악화됐다.

쿠르디스탄 애국연합 내부에서도 권력을 둘러싼 대립이 심각했다. 쿠르디스탄 애국연합은 역사적인 지도자인 잘랄 탈라바니가 창당했는데, 2017년 탈라바니가 별세한 후 그의 아들 바펠과 조카 라후르가 맞섰다. 그럼에도 그 둘은 서로 힘을 합쳐 잘랄 탈라바니의 충실한 측근들이 모인 정당의 쇄신을 꾀했으나, 이후 일어난 대립에서 바펠이 승리하면서 라후르는 쿠르디스탄 애국연합 지도부에서 축출됐다.(6) 이렇듯 이라크 내 쿠르드 자치정부의 안정은 신세대 지도부가 각 정당 내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만큼이나 분쟁을 해결하는 두 정당의 역량에 달려있다. 

 

쿠르드족, 전쟁보다는 안정 방식을 고민

그러면 쿠르드 자치정부와 로자바의 관계는 어떤가? 아르빌(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 수도)에서 카미실리(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자치지역(로자바)의 중심 도시)까지 여행을 해보면 쿠르드족 단체들 사이의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차로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이 소요된다. 세말카의 국경 초소(티그리스 강에 있는 부교)는 일주일에 3일, 특별 허가를 받은 이들에게만 열린다. 위 상황은 쿠르드 민주당과 쿠르드 노동자당(PKK, 튀르키예 쿠르디스탄에서 설립됐지만 시리아 지부를 통해 시리아에서 활동하고 있음), 민주동맹당(PYD)과 별도의 무장세력인 쿠르드 인민방위대(YPG) 간 긴장 관계 때문이다. 

지난 20년 간 쿠르드 노동자당과 쿠르드 민주당 간 무장충돌은 쿠르드족 내전 재발이 우려될 정도였다. 두 정당 간 충돌은 튀르키예 내륙에서 쿠르드족 게릴라에 대한 튀르키예군의 대규모 공격 때문이었다. 2015년부터 튀르키예는 디야르바키르 주의 오래된 수르 역사지구를 파괴하는 등 큰 대가를 치르고 쿠르드 노동자당의 군사활동을 축소시키는 데 성공했다.(7) 이런 상황에서 쿠르드족 게릴라들은 이라크 내륙의 새로운 지역과 시리아로 흩어졌다. 오랜 기간 튀르키예와 우호적인 관계 유지에 힘써온 쿠르드 민주당은 그들의 존재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자바 지도부는 쿠르드 민주당과의 적대적인 관계보다 튀르키예를 더 우려했다. 튀르키예는 계속해서 시리아 북부 전역을 침공하고, 폭이 30킬로미터에 달하는 ‘보안 지대’를 만들어서 튀르키예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을 그곳으로 이주시키고 자국의 남부 국경지대에 ‘아랍 벨트’를 건설하려는 위협을 가했다.(8)  아직 튀르키예가 침공하지 않은 것은, 10여 개 부대에 흩어져 주둔한 약 900명의 미군 병력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우리는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었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한 적이 없다”라고 사실상 로자바의 외교부 장관을 맡고 있는 압둘카림 오마르는 지적했다. 

시리아 하사카 근처 시설에서 만난 살레 무슬림 민주동맹당 공동의장은 우리에게 튀르키예의 공격에 대항하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이 어떤 역량을 가졌는지 설명했다. 미군 기지에 가까운 곳에 있어서 헬리콥터가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대화가 계속 끊겼다. 오마르 공동의장은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자주 벌어지는 전투 상황을 언급하며 “튀르키예군은 산악지역에서 (쿠르드노동자당) 게릴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만한 힘이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튀르키예군이 로자바 지역의 평지를 통해 공격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묻자, 그는 간명하게 대답했다.

“여기에는 산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터널을 팔 수 있죠.”

하지만 시리아 내 쿠르드족 사이에서 튀르키예와의 대화를 촉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쿠르드족은 현재 시리아에서 독립 국가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쿠르드족은 계속 전쟁을 하는 것보다 안정을 이룰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시리아연구·협상연구소 소장이자 쿠르드족 출신인 나세르 하즈 만수르는 평가했다. 그는 튀르키예가 타협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봤다. 여하튼 로자바와 쿠르드자치정부는 레바논이나 시리아처럼 붕괴 위기에 처한 해당 지역 내 여러 국가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번영된 상태다. 하지만 쿠르드족 간 협력 못지않게 격변하는 근동지역의 상황에 두 단체의 생존이 달려 있다. 

 

 

글·비켄 슈테리앙 Vicken Cheterian
제네바대학교 역사・국제관계 강사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1) Laurent Perpigna Iban, ‘Un référendum pour rien ? 국민투표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얻어낸 것이 없다?’, ‘1920-2020, le combat kurde 1920~2020 쿠르드족의 투쟁’ 관련기사,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n°169, 2020년 2~3월호.
(2) Mireille Court et Chris Den Hond, ‘L’avenir suspendu du Rojava(한국어판 제목: 로자바의 불투명한 미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0년 2월호·한국어판 2020년 4월호.
(3) Vicken Cheterian, ‘Chance historique pour les Kurdes(한국어판 제목: 쿠르드민족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5월호.
(4) Shahinez Dawood, ‘Kirkouk la disputée 분쟁지역이 된 키르쿠크’, ‘1920-2020, le combat kurde 쿠르드족의 투쟁’ 관련기사,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n°169, 2020년 2~3월호.
(5) Cf. Hawre Hasan Hama, ‘The consequences of the fragmented military in Iraqi Kurdistan’, <British Journal of Middle Eastern Studies>, volume 48-2, Glasgow. 
(6) Cf. Amberin Zaman, ‘Talabani family feud at center of power struggle in Iraqi Kurdistan party’, Al-Monitor, 2021년 7월 14일, al-monitor.com.
(7) Laura-Maï Gaveriaux, ‘La sale guerre du président Erdoğan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추악한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7월호.
(8) Jean Michel Morel, ‘La Syrie, une nouvelle Atlantide ? 시리아, 새로운 아틀란티스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