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을 오독하는 헌법재판소

2023-04-28     로렐린 퐁텐 l 소르본누벨대학교(파리3대학) 공법 및 헌법과 교수

프랑스 헌법재판소를 빗댄 ‘몽팡시에 거리의 현자들’은 연금개혁안을 어떻게 할까? 그들이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반대하리라는 기대는 합리적일까?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정권과 대립할 의지가 거의 없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기관이다.

 

프랑스 헌법 제49조 제3항과 제47-1조(법안 검토를 촉진하기 위한 조항) 그리고 제44조 제3항(상원이 법안 전문에 대해 단일 투표를 하도록 강제하는 조항). 프랑스 정부가 지난 1월 연금 개혁안을 발표하자, 이 세 조항에 대해 무수한 논평이 쏟아졌다. 지난 3월 20일, 국회에서 두 건의 불신임안이 부결되자, 헌법재판소 제소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재판관들은 두 가지 주장을 검토해야 한다. 

첫째, ‘시니어’라는 노동자 지수의 도입 등 다수의 조치는 ‘부적합한 조항’으로 간주되므로, 사회보장기금 수정법안(PLRFSS)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개정안 본질에 비하면 미미한 문제다. 둘째, 헌법재판소가 1996년 헌법 제47-1조에 명시된 절차의 남용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절차의 목적은 법정 은퇴연령처럼 근본적인 사회문제를 단칼에 종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조항에 따르면, 투표가 50일 이내에 진행되지 않으면 의원들의 투표권은 박탈된다. 

제소에 대한 희망은 대중이 가진 헌법의 긍정적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효율성을 보장하는 수호자라는 헌법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무의식적으로 심어졌다. 무비판적인 대학생들과 무지한 언론에 힘입은 ‘몽팡시에 거리의 현자들’은 이런 긍정적 이미지를 톡톡히 누린다.(1) 실상 이들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갉아먹고, 경제적 이해관계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헌법재판소는 삶의 법적 틀을 바꾸는 신자유주의적 변화들을 계속 승인해왔다. 연이은 정부들이 수년간 원했던 신자유주의적 변화들을, 심지어 헌법적 근거까지 들이대며 승인했던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헌법재판소는 정권과 매우 가까우며, 반대세력 말고 정권의 철학을 거의 습관처럼 지지한다. 이런 정치체제가 좋든 말든, 이 체제의 구성, 수단, 기능이 대의민주주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실상 ‘심판자’가 아니며, 독립적이고 공정하지도, 외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착각에 불과하다. 이런 몽매함이 쌓이면,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변질된 논란성 버전으로 치우치게 된다. 

 

총애 받았던 이들을 위한 양로원

헌법재판소가 지닌 수많은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공정성이다. 헌법재판소의 모든 구성원은 전 동료들을 끊임없이 심판하고, 그들이 만들고 승인한 법들에 대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즉, 헌법재판소는 심판인 동시에 이해당사자인 셈이다. 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법과 선거(총선, 대선)의 합법성에 대해서도 말이다. 1959년에 최초로 선출된 이래 국가의 3대 최고 권위자(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는 헌법재판소의 9인 재판관을 각각 3명씩 임명한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권력자들은 헌법재판소를 자기 권력의 부속실로 여긴다. 알랭 수피오의 표현에 따르면, ‘총애를 받았던 인물들을 위한 양로원’이다. 현 재판관을 살펴보면, 전 총리 2명(로랑 파비우스, 알랭 쥐페), 전 장관 2명(자클린 구로, 자크 메자르), 전 국회의원 1명(프랑수아 피에), 전 차관 2명(베로니크 말베크, 프랑수아 세네), 전 국회사무총장 1명(코린 뤼키앙) 등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역대 헌법재판소장은 모두 국회의원, 장관, 국회의장, 장관이었다. 로랑 파비우스도 모두 거쳐 간 자리다. 2016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로랑 파비우스를 헌법재판소에 임명했을 때, 그는 외무부 장관이었다. 

덕분에 파비우스는 일명 ‘엘 콤리(El Khomri) 법’ 즉 ‘노동, 노사협상 현대화, 직업 경력 안정화 관련법’을 심사하는 자리에 참여했다. 그리고 해당법안은 그가 정부의 2인자였던 때 내각회의에서 채택됐다(2016년 8월 4일 제2016-736호 DC 판결). 최근에는 자클린 고로가 부동산개발자들의 요청에 따라 건축허가 항소권을 제한하는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검토하는 자리에 참여했다. 그녀는 장관일 때도 이 법을 옹호했고, 심지어 법률 적용 지침서까지 채택했었다(2022년 4월 1일 2022-986호 QPC 판결). 이런 편파성은 비열함으로 이어진다. 제라르 뒤크레 전 국무장관의 성희롱 유죄판결을 무효화시킨 결정(2012년 5월 4일 2012-440호 QPC 판결)도 그와 관련 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4명이 내린 결정이었다. 

정치인 출신으로 헌법재판소에 임명된 인사들은 권력의 맛을 잘 알기에, 절대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적합한 능력은 없다. 충분한 법조인 자격과 탄탄한 법률 경험을 갖춘 인물은 단 한 명, 그 여성 고문은 법무장관 비서실장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프랑스 재판관들은 헌법재판소 업무를 도와줄 조력자도, 신뢰할 만한 협업 팀도 없다. 그러니 그들은 무엇을 지침으로 삼을까? 다름 아닌 정치적 판단이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법률, 특히 프랑스 헌법을 오용 및 남용하게 된다. 일례로 ‘공익은 헌법적 가치의 목표’라고 주장한다면, 보통 입법자(분쟁 발생 시에는 법의 공식적인 ‘수호자’인 정부)가 공익이라고 선언한 것을 기반으로 삼는다. 입법자가 헌법 내용을 결정짓는 권한을 가지는 셈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라면, 헌법의 의미를 철저하게 분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국가들도 있다. 그러나, 프랑스 헌법재판소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철저하고 신중하게 뜯어보지 않은 채, 제대로 된 논증도 없이 판결을 내린다. 어떤 법이 최고 규범에 위배되거나 위배되지 않는다면, 그건 헌법재판소가 그렇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왜 합헌 또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지 이유도 알 수 없다.

일례로 2014년 11월 21일 판결(2014년 11월 21일 2014-440호 QPC)의 경우, 법률 구조제도의 몇몇 규정만 그대로 복사해서 내놓았다. ‘전술한 바에 따르면, 법률 구조에 대한 승인 절차는 헌법 제61-1조에 의거해서 위헌성을 우선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진행 중인 소송이 아니다. 00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 문구는 꽤 친숙하지만, 왜 이런 판결이 났는지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헌법재판소장의 고백, 어떤 식사 자리에 대해

전 내부인사 중 한 명이 폭로했듯, 헌법재판소는 ‘지적 빈곤’에 빠져있으며, 구조상 수많은 영향력에 노출되기 쉽다. 특히 경제적 이해관계는 수년 전부터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서 번성해왔다. 전 내부인사들은 법적 전문가들이 작성하고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보내준 글들이 법과 헌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인정했다. 무능함을 고백한 셈인데, 고백에서도 경솔함이 묻어난다. 장루이 드브레 전 헌법재판소장도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회장 및 기업 총수들과의 정기적인 식사 자리를 마련해 헌법의 법리를 논했다고 한다. “2012년 재정법 판결 준비를 위해 10여 명의 기업 총수들과 식사를 했다. (...)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2) 최고법원장이 소송 당사자와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헌법재판소와 정권이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면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개인과 집단의 자유가 쉽게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위헌임에도,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리는 일도 발생한다.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 헌법재판소는 우선적 위헌성 검토 의무를 임시중단하기로 결정했다(2020년 3월 26일 2020-799호 DC). 즉, 법률의 위헌성을 판단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더 나아가, 지난해 11월 25일 과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법안을 허용했다. 마요트 섬이 아무런 제한도 없이 일반적인 신원확인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2022년 11월 25일 2022-1025호 QPC 판결). 마요트 섬을 비헌법적 영토로 둔갑시킨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행정부와 경제부의 기대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시장 성장을 저해하거나(부정행위나 탈세 방지) 시장의 지배력을 위협한다고(농촌 종자 판매 허용, 2018년 10월 25일 2018-771호 DC) 판단되는 행위를 검열했다. 헌법재판소는 기업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이런 문구는 헌법에 명시돼있지는 않지만 헌법재판소는 그 헌법적 가치를 보증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재판관들은 사회 연대 경제 관련 법률도 검열했다. 이는 직원들에게 고지하지 않고 기업이 매각된 경우, 직원의 인수 권리를 박탈한 것임으로 매각을 무효화할 가능성을 제시하는 법률이다(2015년 7월 17일 2015-476호 판결). 

그러나 재판관들은 헌법의 어떤 부분이 그들의 사회적 비전과 상충하는지 알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1946년 헌법 전문의 ‘모든 노동자는 대표자를 통해 노동조건과 기업경영에 관한 집단적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라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1조에 명시된 사회적 공화국 이념을 무시한 채, 프랑스 공공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승인했다.(3) 

전 재판관인 조지 베델은 헌법은 ‘중립적’이므로, 헌법재판소는 특정한 경제원칙을 지지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했다. 헌법의 경제적 중립성이란 독일에서 유래한 허구로 수년간 지속됐지만,(4) 이는 법률의 단순한 해석과 헌법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자발적 맹목이다. 이제는 헌법의 사회적 규정의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헌법상 계약 및 경제활동의 자유를 우선시할 이유가 없어졌다. 

 

 

글·로렐린 퐁텐 Lauréline Fontaine
소르본누벨대학교(파리3대학) 공법 및 헌법과 교수.『La Constitution maltraitée. Anatomie du Conseil constitutionnel 헌법 오용과 헌법재판소에 대학 분석』의 저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Anne-Cécile Robert, ‘Vous avez dit ‘‘sages’’?(한국어판 제목: 헌법재판소의 불편한 위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4월호, 한국어판 2013년 4월호.
(2) Jean-Louis Debré, 『Ce que ne pouvais pas dire 말하지 못한 것』(Paris, Robert Laffont), 2017년.
(3) Cf. Lauréline Fontaine, Alain Supiot, ‘Le Conseil constitutionnel est-il une juridiction sociale?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재판소인가?’, <Droit social> n° 9, 2017년 9월.
(4) François Denord, Rachel Knaebel, Pierre Rimbert, ‘L’ordolibéralisme allemand, cage de fer pour le Vieux Continent(한국어판 제목: 질서 자유주의, 독일식 사민주의와 자유주의의 화학적 결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5년 8월호, 한국어판 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