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하는 종의 종말

귀도 모르셀리 『디시파티오 H.G.』

2023-04-28     그자비에 라페루 l 작가, 시인, 서평가

‘돌이킬 수 없는 종말’, ‘불가사의한 소멸’.

인류는 소멸됐다. 모든 다른 동물, 식물들과 함께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인류 중 오직 화자만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 상황은 정말 비극적이었을까? 그는 생을 마감하고자 동굴에 왔다. 예전에는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다. 『디시파티오 H.G.』라는 제목은 잠블리쿠스(1)의 글을 참조한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디시파티오 휴마니 제네리스 (...) 뜻밖의 비범한 한 인간이 인류 전체를 스프레이 또는 미세한 가스로 만들어 버렸다...’

공포와 불신을 겪은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연대순으로 적어 질문하기로 한다. 게다가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알 수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아니면 적어도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행동으로 인해 처음에는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 6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밤은 특별했다. 그날 밤, 나는 죽기로 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어리석은 고속도로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추한 세상 때문에 그리고 계속되는 질병, 전쟁, 야만적 행동 등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었다.

‘나의 개인사는 인류의 역사가 됐다. 지금부터 내가 인류이며 사회다.’

저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D폭탄(급격하게 감소한 인구)과 R폭탄(품귀현상)’은 자기 일을 했으며, 저자에게 결국은 희망적인 고독을 품게 했다. ‘나는 이따금 인간혐오자가 된다. 인간은 쥐나 모기처럼 피해와 불쾌감을 주는, 두려운 존재다.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나를 고독으로 내몬 주된 이유 중 하나다.’ 

긴 독백으로 지식 분야를 총동원해 죽은 인간을 낱낱이 분석할 것이다.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샤를 보들레르, 인류학자인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사회학자인 에밀리 뒤르크하임, 르네 데카르트, 지그문트 프로이트 또는 롤랑 바르트 등을 차례차례로 소환하며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도덕, 실용주의, 우연, 인간과 자연의 관계, 아니면 자본주의의 개발, 노예화, 악 등을 살핀다. 여기서 도출한 결론들은 되돌릴 수 없다. 인간의 영속성은 사물의 영속성에 비하면 본질적이지 않다. ‘알게 모르게 인간은 죽고자 했다. (중략) 집단 현상으로서 죽음의 레이스는 조용히 끝났고, 강압적이면서도 무의식적인 욕구가 생겼다.’ 인간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세상에 자주 드나들던 두 발 달린 몇몇 종이 사라진 후, 오늘날만큼 세상이 활기찬 적은 없었다. 이렇게 깨끗했던 적도, 눈부셨던 적도, 즐거웠던 적도 없었다.’

필리포 단젤로는 출판사 후기를 통해 귀도 모르셀리가 ‘독자 없는 작가’로 살았다고 회고한다.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73년, 이 책의 원고는 단젤로에게조차도 거절당했다. 당시 모르셀리는 61세였다. 그는 책 속 등장인물에 대한 마지막 오마주로 ‘검은 눈의 피앙세’인 브라우닝 7.65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듬해, 유명 이탈리아 출판사가 고인의 로마네스크풍 작품 출판에 착수했다.(2) 

 

 

글·그자비에 라페루 Xavier Lapeyroux
작가, 시인, 서평가

번역·송아리
번역위원


(1) Iamblichus, 250~330년경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2) 두 편의 작품이 번역됐다. 『Rome sans Pape. Chroniques romaines de la fin du XXe siècle 교황 없는 로마. 20세기 말 로마의 시평들』, Gallimard, Paris, 1979. 『Le Passé à venir 다가올 과거』, L’Âge d’homme, Lausanne,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