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 그러나 희망의 전환
Corée 특집 탈핵 시대의 도래
“원자로 녹는 사고가 도카이무라 혹은 후쿠시마에서 일어난다면 일본 사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일본 소설가 이케자와 나쓰키가 1993년 <신나는 종말>에서 쓴 글이다. 미간행작인 이 작품은 재앙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파리도서박람회에서 3월 16~19일 열리는 일본 문학과 만나보자.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부를 뒤흔든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흔들리는 집에서 넘어지는 가구, 바닥에 흩어지는 가게의 물건, 구부러지는 도로, 무너지는 건물, 휘어버리는 철도, 붕괴하는 다리 등.
프랑스 땅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그 탄탄한 땅 위에서 생명들이 살아간다. 프랑스에서 말하는 땅은 원래 의미대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존재다. 하지만 세상에는 움직이는 땅을 가진 나라들도 있다. 일본이 이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일상에서 지진을 경험하는 일이 많다. 갑자기 진동이 느껴지면 모두 하던 일과 대화를 멈춘 채 바짝 긴장하고 어느 정도 규모의 지진인지 파악한다. 이 순간 '천사가 지나간다'라는 프랑스 표현이 생각난다. 프랑스에서는 갑자기 이야기가 그치고 조용해지면 천사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일본이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지진은 어느 정도 진동이 있다가 이내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진동이 여느 때와 달리 심상치 않게 커서 위험이 느껴질 때도 있다. 진동이 너무 심하면 가구들이 쓰러져 여기에 몸이 깔리거나, 주방에 불이 붙어 화재에 휩싸이거나, 자동차를 타고 다리 아래를 지나다 변을 당하거나, 흙더미에 파묻힐 수도 있다.
흔들리는 땅 위에 세운 원전
3월 11일 일어난 대지진은 엄청나게 큰 해일을 동반했다. 바닷가에서 10m 넘는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모습과 마주한다고 상상해보라. 강화유리로 된 제방을 넘는 어마어마한 물벽이 마치 커다란 수족관처럼 보인다. 갑자기 제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물이 빠르게 전진해온다. 밀려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해일이 밀려오면서 건축물이란 건축물은 모두 삼켜버리고, 언덕을 타고 넘어와 강의 수면을 높이고 내륙 수십km까지 들어온다.
일본은 몇 해 간격으로 이런 끔찍한 재해를 겪는다. 여기에 태풍, 화산 폭발이라는 다른 재해도 있다. 그래도 우리 일본인들은 이 땅을 다른 땅과 바꿀 마음이 조금도 없다. 자연재해만 없다면 일본은 여러 가지로 혜택받은 곳이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하고 일조량과 강우량이 충분하다. 지정학적으로 일본 열도는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다. 중국의 풍요로운 문화는 일본까지 전해질 수 있지만, 대규모 중국 군사들이 일본까지 오기는 힘들다. 1945년까지 일본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또한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 같은 전염병도 일본까지 오지 못했다.
자연재해는 전쟁과 같다.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현장과 전쟁이 끝난 이후의 현장이 닮았기 때문이다. 죽 늘어서 있는 주검, 잔해더미, 식량 부족, 대피소 생활, 깊은 절망감이 그러하다. 문득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의 시 '끝과 시작'이 떠오른다.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가 다시 정리를 해야 한다
사물들은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지는 않기에
누군가가 잔해들을 길 가장자리에 밀어두어
주검들이 가득한 수레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바로 지진과 해일이 휩쓸고 간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하는 듯한 시구다. 일본은 구호작업을 제때 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무능력한 대응을 보여주며 피해자들을 추위와 배고픔에 떨게 했다. 정부는 재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 움직임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행정기관은 우왕좌왕했고, 교통과 통신망은 차단되었다. 일본 정부의 재해 대응력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개인적으로 일본 국민은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집집마다 잔해더미는 장비를 갖춘 전문가들이 치워야 하는 일이었지만, 해일에 떠밀려온 진흙더미를 치우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은 많은 자원봉사자이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은 대피소마다 돌며 부족한 것은 없는지, 필요한 물품이 제대로 보급되는지 살폈다. 자원봉사자들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피해자들이 결코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학교가 사라진 곳에서 수업하고, 무너진 집 밖으로 흩어진 가족사진들을 주워 깨끗하게 닦은 뒤 주인들이 찾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1주년, 동북부 주민들은 위대했다
오래전부터 일본 동북부 지역은 가난한 지역, 다른 지역보다 유독 추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경제는 쌀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해마다 농작물 수확량이 변동하는 지역은 불리한 처지였다.(2) 동북부 역시 이런 이유로 가난한 지역이 되었다. 동북부 지역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차별받았고 이들이 사용하는 방언은 놀림감이 되었다. 일본에서 동북부 지역은 뒤처진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3월 11일 대지진 피해를 당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 전국이 힘을 모아 처음으로 동북부 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고 한다.
동북부 사람들은 인내심이 남다르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어서일까. 왠지 동북부 사람들은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고, 자신보다 사정이 나은 사람들을 향해 질투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묵묵히 참고 견디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갈 것 같다. 실제로 이번 동북부 사람들의 행동을 보니 내가 상상한 대로 인내심 있고, 마음이 넓은 것 같다. 훗날 이번 대지진은 동북부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마음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면서 수많은 도시와 마을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와 마을로 변했다. 특히 사람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아니 몇 세대 동안 방사성 오염으로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살게 되었다.
대기와 바다에 방사성 물질을 배출하는 것은 전세계에 폐를 끼치는 범죄행위다. 원자력발전소를 관리하는 도쿄전력, 도쿄전력에 원자력발전소 개발권을 넘긴 일본 정부, 원자력에너지를 사용하는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갑자기 일어난 자연재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일본은 지진, 해일, 화산 폭발이 빈번한 나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안정적인 유량을 가진 거대 강이 드물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는 바다 가까이 설치해야 냉각에 필요한 많은 양의 물을 얻을 수 있다. 처음부터 해일의 위험을 알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은 셈이다. 도쿄전력이 내세우는 유일한 변명은 예상치 못한 해일의 규모다. 그러나 이미 8세기 전 동북부 지역은 3월 11일 때와 같은 규모의 해일을 한 번 겪은 적이 있다. 800년 전의 재해라 해도 그저 오래된 일이라 치부할 수 없고 지금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건이다. 어떤 이들은 해일보다 지진이 먼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강타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는 애초부터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변명을 일삼는 책임자들의 무능력한 행동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46년 전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지었을 때, 책임자들은 원자력발전소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3월 11일 이후 이들의 주장은 오랫동안 이루어진 날조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후쿠시마 원전 건설과 관련해 안전을 우려하던 연구원들은 쫓겨났고, 사고 대비 시뮬레이션 실험도 원자력 안전 신화를 더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았다.
쉬쉬한 이유? 원자력은 특권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개발 회사, 정부, 관료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에 대대로 은밀하게 보호해야 하는 존재였다. 전기료 측정도 엉터리로 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나 원자로 방사성 제거에 드는 비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이익을 얻은 모든 이들이 언젠가 원자력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기 위해 계속 음모를 꾸미고 있다. 현재는 여론 때문에 일시적으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할 뿐이다.
원자력발전소를 책임지는 이들은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양심도 없다. 집 잃은 가족, 몇 세대에 걸쳐 경작해온 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농부 등 많은 사람들에게 눈가림 식으로 쥐꼬리만 한 보상금만 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얼마나 파렴치한 행동인가.
커다란 변화가 밀려올 것
이번 지진과 해일로 우리는 네 가지 사실을 다시 알게 되었다.
첫째,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도, 인간에게 악의적이지도 않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관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비극적 자연재해라 해도 인간은 그 앞에서 체념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인간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 역시 언젠가는 상처를 딛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내면의 힘과 다른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할 것이다.
셋째, 정부도 기업도 전문가도 믿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거짓말일 수 있고, 그냥 모르고 하는 거짓말일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윗선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는 태도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또한 기술을 지나치게 신봉해도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술에 너무 의존해 걱정이다. 현대 사람들은 기술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을 무조건 불신하자는 말이 아니다. 과학도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넷째, 재앙은 변화를 가져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커다란 충격으로 뒤흔들린 사회는 다시 일어날 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무리 큰 충격적인 일이라도 20년 뒤에는 변화를 몰고 온 하나의 사건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2011년 12월 삿포로에서
글•이케자와 나쓰키 Ikezawa Natsuki
<스틸 라이프>로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최근 작품은 <잠자는 여성>(La Femme qui dort)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폴란드의 시인(1923~2012),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2) 다품종 개량에 성공한 덕에 동북부 지역은 이제 최고의 일본 쌀을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