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의 배후, 상업주의

Corée

2012-03-13     이정우

요즘 한국 프로스포츠계가 시끄럽다. 지난해 봄,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 의혹이 불거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가담한 선수들이 영구제명 처벌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특정 선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승부조작 문제는 곧 배구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야구까지 조사를 받은 결과 이 종목들 모두에서 경기 결과를 둘러싼 금전적 거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스포츠를 두고 벌어지는 사행성 산업, 특히 불법 스포츠 도박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거 "프로레슬링은 쇼이다"라고 외친 한 레슬러의 폭로가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순식간에 잠재운 것처럼, 프로스포츠를 둘러싼 작금의 승부조작 문제는, 한국 스포츠의 전반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산업을 총체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페어플레이의 불확실성

스포츠의 큰 매력은 공정한 경기 진행, 즉 페어플레이에 기반한 불확실성이다. '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제대로 된 경기에서는 누구도 결과를 100% 예측하기 어렵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을 관람할 때 느끼는 흥분과 감동은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스포츠의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절대강자와 경기할 때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고, 또 정말로 강팀에 승리를 거두었을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스포츠의 공정성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전달해주는 흥미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고, 이로 인해 스포츠 관람은 현대사회의 중요한 문화 활동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어찌 보면 스포츠가 갖는 공정성, 그리고 예측불허의 특성이 스포츠 베팅 산업을 야기한 주원인일 수 있다. 경기가 편향적이고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를 둘러싼 내기 행위가 벌어지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아울러 몇몇 종목은 이미 다수의 팬, 특히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구매력을 보유한 수많은 남성 팬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복권 판매 등 스포츠 도박 사업의 성공은 예견되었다. 프로축구 리그가 활성화된 유럽 국가에서 스포츠 베팅이 스포츠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영국은 2003년 기준으로 스포츠 도박 사업의 총수익이 약 25억 파운드에 달했는데, 이는 영국 내 스포츠 관람과 참여스포츠 산업 규모를 웃도는 수치다. 한국도 스포츠토토의 2010년 총매출이 2조 원에 육박한다. 아울러 내기사업의 특성상 중독 증세와 편법 및 변칙적 운용을 통한 사행성 도박 행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에 각국의 스포츠 관리기구는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체육기자연맹 등 주요 국제기관에서는 불법 스포츠 도박의 근절과 부작용 방지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스포츠 도박 산업의 성장은 스포츠의 상업화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비사회로 진입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물질적 가치가 대두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다수 기업이 스포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즉,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는 주요 종목과 각종 경기대회에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스포츠 마케팅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기업과 스포츠 팀 또는 스포츠 기구 사이의 절묘한 이해관계 속에서 급속히 확대되었다. 기업은 자사 제품을 효과적으로 광고하는 수단이 필요한데, 다수의 고정 팬을 보유한 스포츠는 이들에 대한 제품 선전 활동을 수행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된다. 경제활동 범위가 점차 글로벌화하면서 다른 문화권에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는 것 역시 기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데, 스포츠는 국경을 초월한 문화적 코드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이질감을 최소화한 홍보 전략을 짤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아울러 스포츠가 내포하는 건강·역동성·승리 등 긍정적 가치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84년 LA 올림픽, 상업화의 물꼬 트다

스포츠 조직은 관리와 운영에 많은 재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특정 인물의 기부금 말고 뚜렷한 수입원이 없던 탓에 적자 운영을 면할 수 없었다. 예컨대 IOC는 올림픽 경기대회의 지속 여부를 고민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1984년 올림픽은, 개최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지방정부가 공적자금 지출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회가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대회 조직위원장인 피터 위베로스는 상업주의에 기반한 올림픽을 IOC에 제시했고, IOC가 이를 수용해 최초로 기업 후원과 마케팅 활동에 의존한 올림픽이 등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LA 올림픽은 2억2천만 달러의 수익을 남겼는데, 이는 이전까지 적자에 시달리던 대회와 비교했을 때 혁신적으로 인식됐다. 결국 상업주의는 IOC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으며, 유사한 난관에 봉착한 다른 스포츠 단체 역시 이를 모델로 삼아 기업 후원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게 된다. 즉 기업은 마케팅 수단으로 스포츠를 필요로 했으며, 스포츠는 재정 충당을 위해 기업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양자 간의 공생관계가 형성됨에 따라 스포츠는 본격적인 상업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런 변화는 스포츠를 바라보는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스포츠의 상업화가 진척됨에 따라 스포츠 경기와 더불어 올림픽 같은 주요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의 상업적 가치도 증대되었다. 우승한 선수나 팀이 대중에게 호소력이 큰 유명인사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서, 기업은 이들에게 직접적 후원을 통해 홍보활동을 하며, 더불어 선수들 역시 경기 이외의 각종 광고에 출연함으로써 적지 않은 물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자연스레 선수들은 주요 경기대회에서 우승하려는 열망이 강해졌으며, 경기 참가보다는 결과와 이에 따른 보상에 더 의미를 두는 개인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승리제일주의가 그들 사이에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즉, 상업주의의 도입은 단순히 금전적 수익이라는 경기 운영의 물질적 토대를 스포츠에 제공한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스포츠에 뿌리내리게 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얻는 분위기 속에서 스포츠의 공정성 원칙은 심각한 도전을 맞게 된다. 공정한 방법보다는 효율적 수단이 더 강조되는 사고가 점차 입지를 넓혀가는 가운데, 전문적으로 운동선수를 양산하는 각종 정책과 프로그램이 도입되었고, 생리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아울러 운동선수들도 개인의 건강이나 복지보다는 우승, 이에 따른 물질적 보상에 주목적을 두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어 성적을 위해서라면 신체 훼손이나 약물 복용도 서슴지 않게 된다. 실례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캐나다의 벤 존슨 선수가 육상 100m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지만 이후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져 금메달을 박탈당한 것은 올림픽의 상업화와 승리제일주의가 야기한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었다. IOC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기구가 엄격히 규제함에도 선수들의 약물 복용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서슴지 않은 후기 자본주의의 타락한 윤리적 문제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듯하다.

지배 이데올로기 된 적자생존 논리

이런 변화는 국가 간 경쟁에서 스포츠 과학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국가적 배경이 있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국가 출신 선수 사이의 불평등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세계화의 불균형 발전 문제가 스포츠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등장했으며, 스포츠 연구 분야의 제반 시설과 투자 환경을 갖춘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구조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또한 현대 스포츠에서 장비 및 의류 기술의 발달은 경기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데, 국가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개발된 기구를 사용하는 선수와 상대적으로 낙후된 장비를 이용하는 선수의 경기력은 일초일각을 다투는 오늘날의 스포츠 환경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올림픽의 몇몇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개발도상국 출신 선수들을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특히 전체 메달 성적으로 보면 국가의 경제력과 스포츠 성적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아가 공정성에 대한 도전은 곧 스포츠가 갖는 예측불허의 특성에도 침해를 일으킨다. 선수 간 역량이 현저하게 차이가 남에 따라 우수한 선수를 다수 보유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의 뚜렷한 수준 차가 발생하며, 이 격차는 곧 스포츠 경기의 흥미 감소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특히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스포츠 환경에서는 자본력을 갖춘 국가나 팀이 역량이 뛰어난 선수를 다수 보유할 수 있으며, 부유한 국가나 팀이 각종 국제대회와 프로리그에서 우수한 성적을 독점하게 한다. 프로스포츠를 살펴보면 구매력을 갖춘 구단은 스타 선수와 계약이 가능하고, 이런 선수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며, 우수한 성적은 다시 팀의 브랜드와 선수의 가치 향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지나친 상업주의나 시장 논리의 적용은 공정성 침해, 뻔한 경기 결과 예측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스포츠의 균형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최근 불거진 스포츠 승부조작 문제로 돌아가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충족되어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계속 이익의 창출이다. 따라서 스포츠를 활용해 수익을 내기 위해 계속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적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팀을 운영하는 구단이나 스포츠에 기생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다른 서비스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런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사행성 스포츠 도박이다. 국내에서 합법적인 스포츠 베팅 산업은 스포츠 복권 사업과 경마, 경륜, 경정 등에 국한됐지만, 승부조작 사건과 연계해 밝혀진 바로는 다수의 불법 스포츠 도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스포츠 도박을 통해 적지 않은 수입을 거둬들였다. 승부조작에 관여한 선수들 역시 불법 도박사업과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스포츠맨, 도구화된 개인으로 전락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장 논리가 철저히 지배하는 스포츠 환경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용인될 수 있다는 윤리의식의 저하로 이어진다. 약물 복용 사례가 시사하는 것처럼 불법이지만 적발만 안 되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으며,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이에 합당한 물질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스포츠의 모습이다. 선수들 역시 퍼포먼스를 통한 자아실현보다는 금전적 보상물의 축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나아가 사회구조의 속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소외되고 도구화된 개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승부조작에 관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물질적 보상 앞에서 경기 결과 조작이라는 유혹에 빠져드는 선수들의 모습, 그리고 적발되었을 때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는 가담한 '도구'들의 '폐기'로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고도로 상업화된 스포츠 구조의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최근 거론되는 한국 스포츠 산업의 위기는 승부조작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휩쓸린 지나친 상업주의가 주원인이다.


글•이정우
영국 에든버러대학 스포츠레저정책학 교수. 영국 러프버러대학 스포츠사회학 박사.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운영위원, 한국스포츠외교포럼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