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귀한 물을 독점하는 칩공장

2023-05-31     라울 길랑 외

“반도체칩 말고 물을 달라!”

2023년 4월 1일 토요일, 프랑스 남동부 크롤에 있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이하 ST)가 신규확장한 공장 입구에서 1,000여 명이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르노블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그레시보당 계곡에 프랑스 이탈리아 합작 반도체 공장이 설립된 1992년 이후, 이제르 주에 있는 인구 8,000명의 이 소도시 시의원들은 시위대보다는 장관과 국가원수를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자크 시라크 이후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들은 모두 이곳을 찾아 수익성 높은 공장 용지의 잇따른 확장을 축하하고 수억 유로에 달하는 공적 지원 계획을 발표하곤 했다.

2022년 7월 12일에 마크롱 대통령은 “이곳이 바로 프랑스의 재산업화 현장”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4명의 장관과 함께 이 지역을 방문해, 최근 ST공장 확장에 투입된 약 50억~70억 유로 중에서 23억 유로를 국가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이 다국적 기업은 프랑스 공공 투자 은행인 베피프랑스(Bpifrance)와 이탈리아 경제부가 소유권을 일부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반도체 대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와 협력한다.(1) 

 

가뭄 위기 속 위기, ‘물먹는 공장’ 확장계획

케이먼 제도에 세워진 글로벌파운드리의 대주주는 아랍에미리트의 국부 펀드인 무바달라 그룹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재정부 장관은 “지난 수십 년간의 비핵 분야 산업 투자 중 가장 큰 규모로, 산업 주권을 이루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라고 발표했다. 예고된 일자리 창출 규모를 고려하면 대단히 큰 액수다. 일자리 1,000개가 창출될 경우 일자리 1개당 약 230만 유로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제 잡지 <챌린지스(Challenges)>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ST는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다국적 기업이 세금을 줄이기 좋은 나라” 네덜란드에 지주회사를 설립했다.(2) 

이와 같은 내용은 지난해 8월 중순 가뭄 ‘경보(4단계 중 3단계)’가 ‘가뭄 위기(4단계)’로 격상된 가운데 발표됐다. 반도체 마이크로칩 제조는 물 집약적인 산업이다. ST 공장과 인근의 반도체 전문 기업 소이테크 그룹이 2024년까지 생산량을 대폭 늘리면 하루에 물을 2만 9,000m³씩 소비하게 될 것이다. 그르노블시의 16만 명 인구, 산업체, 연구소, 도시와 상업 활동으로 소비되는 물 소비량에 버금가는 양이다. 공장 확장 계획을 발표한 ST는 매일 물 3만 3,000m³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과 농민에게는 물 사용 제한조치가 적용된 반면, 제조업계의 물 소비량은 나날이 증가한다. 이런 모순에 대항해, 지난해 여름 반도체산업의 자원독점에 반대하는 ‘반도체 칩 중단(STopMicro)’ 운동단체가 생겼다.(3) 크롤 시위는 앞서 있었던 생트솔린 거대 저수지 건설 반대 시위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됐지만, 좌파 정치 진영으로부터 같은 수준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예를 들어 유럽생태주의녹색당(EÉLV)의 이 지역 대표들은 대중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했다. 이 지역 유럽생태주의녹색당 의원은 상원의원과 그르노블 시장 에릭 피올 두 명이다.

피올 그르노블 시장은 ST의 공장 확장을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반도체 분야는 유럽의 산업 전략의 전초지”라면서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피올 시장은 “그르노블에 있는 ST는 유럽 대륙의 차원에서 다른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지정학적 기능을 하며 아시아에서만 물자를 조달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제르 주 의원이자 의회 환경 위원회장을 맡은 시릴 샤틀랭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재산업화와 관련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근거리 공급망’과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자국 내 생산을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국내 생산은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공장을 가동하느냐입니다.” 두 정치 지도자는 농업 산업의 거대 저수지는 ‘소수로 국한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와는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피올 시장에 따르면, “(ST의) 생산 제품은 수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피올 시장과 샤틀랭 의원은 ST의 공장 확장을 옹호하는 한편, ‘공장 이전’, ‘녹색 산업’을 비롯해 사용을 통제할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되도록 로우테크(Low tech, 단순기술)를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서 하이테크(High tech, 첨단기술)를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피올 시장은 설명한다.

과연 이런 목표가 크롤 내 산업과도 부합할까? ST와 소이테크에서는 반도체 ‘칩’의 크기를 나노미터 규모, 즉 살아있는 세포보다 훨씬 작게 회로를 축소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두 기업이 생산하는 주요 제품은 이미지 센서, 그리고 컴퓨터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다. ST에 따르면, “이런 모든 제품은 자동차, 사물인터넷, 인공 지능, 자동화 부문에서 수요가 매우 높다.”(4) 

이처럼 ‘재산업화’는 정밀기술 응용과 유망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크롤에서 생산된 반도체 칩은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 자율 주행 자동차, 최신 세대 스마트폰,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러시아 드론과 같은 여러 정교한 무기에 적용된다. 러시아 드론과 관련해 ST는 러시아 내 사업을 중단했다고만 밝혔다.(5) 부가가치가 낮은 기본적인 기기(단순한 컴퓨터, 3G 전화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은 유럽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맑은 물과 산에 둘러싸인 마을, 그르노블의 재앙

하루에 물 2만 9,000m³를 소비하는 ST와 소이테크 공장을 22일만 가동해도 생트솔린 저수지는 바닥나고 말 것이다. 플레이트 세척에 필요한 물(반도체 제조 산업 현장에서 소비되는 물의 75%에 해당하며, 나머지 25%는 주로 공조에 사용됨)은 미세 물질이나 미립자가 제거된 고도로 정제된 물, 즉 초순수여야 한다. 이런 생산 과정에는 필터와 펌프를 기반으로 매우 에너지 집약적인 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양질의 물을 쓰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2021년에 ST 공장에서는 516GW•h(기가와트시), 즉 23만 명의 프랑스인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을 소비했다.(6)

그르노블은 수질이 우수해, 별도의 처리 과정이 필요 없는 드문 지역이다. 기업들은 이런 이점을 노리고 이제르 계곡에 공장을 지어댔다. 그런데, 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로망슈와 드라크 유역이 크롤에서 약 30km 떨어진 도시 남쪽에 있다. 30년 전 발전소가 들어섰을 때 지역 당국은 특수 도관을 설치했다. 최근 몇 년간, 지역 당국은 유량을 늘리고자 가속 펌프를 설치하고 도관 길이를 2배로 늘리는 데도 추가 투자를 했다.

이런 노력들에도 시설의 수용 능력은 포화상태다. 의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물을 동원할지 고심한다. 크롤 시장 필립 로리미에는 전체 도관을 2배로 늘리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수자원 순환과 집수(集水)구역을 관리하는 광역지자체기구 그르노블알프메트로폴의 안소피 올모 부의장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2만 9,000m³가 최대치입니다. 1967년의 ‘사업의 공익성 선언(La déclaration d’utilité publique)’에 따라 1일 펌핑 한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미 한계의 절반에 도달했습니다. 집수구역에 대형 파괴나 오염이 발생하면 한쪽 집수구역이 다른 구역의 사용량을 충당해야 해서 더 이상 도관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덕에 수자원 문제에서 예외일 것이라고 여겼던 그르노블 주민들은 산업 발전이 야기하는 폐단을 절감하게 됐다. 지난 1월, 그르노블 주민들은 도시의 지하수층이 심하게 오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십 년 동안 도시 남부의 두 화학 공장에서는 염소, 포스겐, 표백제, 수산화나트륨, 과산화수소, 폴리우레탄이 생산됐다. 시에서 의뢰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용가능한 그르노블 지하수의 많은 부분이 반도체 분야의 산업 때문에 수면과 수중까지 화학물질로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7) 염산염, 과염소산염, 헥사클로로부타디엔, PCE, COHV, 살충제, 탄화수소, PFAS 등 수많은 화학 성분 때문에 이곳 지하수는 농업용수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기업들의 환경파괴, 놀랄 만큼 관대한 정부

수질오염의 책임은 아케마, 벤코렉스, 프라마톰 등 다국적 기업들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 정부에게 있다. 이 기업들의 오염물질 배출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해당 지하수층은 식수 집중 구역 하류에 있지만, 지역 당국에서 폐수 배출을 허가한 한 지점에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몰로(Mollots) 수원에서도 오염물질이 미량 검출됐다. 올모 부의장은 식수 오염 위험상황을 검찰에 통보했다. 수질보호를 위한 1967년 공익성 선언을 통해 오염물질 배출이 금지됐지만, (1986년부터 2007년과 2013년까지) 다수의 법령에 따라 폐수 배출이 승인됐다. 주 정부나 지역 환경·개발 및 주택청은 하나같이 우리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상류에 있는 반도체 공장들도 폐수를 배출한다. 2021년에 ST는 연간 21톤의 화학물질을 사용했고, 그 대부분이 이제르강으로 배출됐다. 이제르강이 흡수·분산 능력이 아무리 높아도 유입되는 폐수를 전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매일같이 인 15kg, 암모니아성 질소 120kg, 불소 70kg, 질소 150kg이 배출되기 때문이다.(8) 공장 가동률이 높아질수록 오염도도 높아진다.(9) 

하지만 폐수 배출에는 별다른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2001년부터 제시된 유럽연합 환경선언을 포괄하는 유럽공동체 환경관리 및 감사제도(EMAS)의 ‘환경 책임’ 원칙에 따라 ST는 가장 대표적인 ‘기본 지표’만 신고하면 된다. 그래서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타 물질(텅스텐, 코발트, 티타늄, 탄탈럼)이 얼마나 이제르강으로 배출되는지는 알 수 없다. ST는 “시행 규정에 따라 폐수가 처리된다”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과거에 폐수로 그르노블 지하수층을 완전히 오염시킨 화학기업도 같은 주장을 폈었다.

ST는 “물 재사용 비율의 증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지역 의원들 역시 이 다국적 기업의 선의를 확신하며 이런 대응에 동조한다. 40~50%, 혹은 60%에도 이르는 다소 비현실적인 폐수 재활용 비율은 제조 공정에 내재된 한계를 드러낸다. 그르노블의 우수한 수질 덕분에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크롤레는 웨이퍼(집적회로를 만들 때 쓰는 직경 5~10cm의 얇은 판)당 물 소비량(1.7m³)이 세계에서 가장 적은 곳으로 꼽힌다. ST는 물 재사용을 약속했지만, 2021년 대비 물 소비량을 190% 늘리기를 원한다. 

2023년 2월 17일 오베르뉴론알프 지역 환경 대표단은 공장용지 확장에 관해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발표했다. 아울러 “초기 물 소비 상황, 수자원 상태, 폐수와 대기 배출 등 사업 자체에 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 제출된 서류만으로는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라며 ST에서 제출 서류에 미비한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10)

기업들의 요구와 폐해에 유독 관대한 국가의 관행은,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역사학자 장밥티스트 프레소는 『l’Apocalypse joyeuse 즐거운 종말』(Seuil, 2012, 2020년 포켓판으로 재출간)에서 현행 산업 시설에 관한 규정의 근간이 된 1810년 칙령이 어떻게 기업에 유리한 환경 기준을 확립하게 됐는지 설명한다. 그는 산업 폐해 관리가 지역 경찰이 관할하던 체제(형사 처벌이 가능한 제재)에서 중앙집권적인 행정과 전문가 기반 체제로 전환됐다고 말한다. 해당 규정의 발기인이자 전 화학산업 기업가 출신인 장앙투안 샤탈은 이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과거에는 공장의 유지 여부는 환경을 우려하는 주민의 이해에 달려있었습니다. 하지만 규정이 도입된 이상, 지역에 산업이 일단 들어서면 정부는 산업을 보호해야 합니다.”

오늘날, 환경 규제는 모두 기술 관료와 산업계 대표들로 이뤄진 기술 위험 방지 고등위원회를 거친다. 이러한 형태의 재산업화에 이점이 있다면, 서구 소비자들에게 ‘비물질화’와 디지털 경제가 가져오는 다분히 물질적인 폐해를 상기시킨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도 희귀 금속 추출부터 전자 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이 부문에서 발생하는 환경과 보건 폐해는 그 어느 곳보다도 가난한 국가에 집중돼 많은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글·라울 길랑 Raúl Guillen
언론인 
뱅상 페레 Vincent Peyret
언론인, 간행물 <르 포스티용(Le Postillon)> 편집국장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전문 사이트 <Infoclipper>, www.info-clipper.com; <Forbes>, New York, 2022년 4월 21일 참조.
(2) ‘Les Pays-Bas, le pays de l'optimisation fiscale 세금 최적화 des multinationales 다국적 기업의 세금 최적화가 용이한 국가 네덜란드’, <Challenges>, Paris, 2019년 11월 30일.
(3) www.stopmicro38.noblogs.org
(4) ‘환경선언2021, 크롤공장용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2022년 3월.
(5) ‘대(對)러시아 금수 조치 위반한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답변을 거부’, <Arms Observatory>, 2023년 4월 6일 보도자료.
(6) ‘프랑스의 1인당, 도시당 전기 소비량’, 2023년 4월 27일 업데이트, www.data.gouv.fr
(7) ‘그르노블 지역의 충적층 수역 FRDG372 및 FRDG371 지하수 수질 점검(38)’, Antea Group, 2022.
(8) 크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웹페이지의 2021년 환경선언을 기반으로 계산한 결과에 대해, 2022년 3월.
(9)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로 인한 수질오염 폐해’, <Le Postillon>, 제68호, 그르노블, 2023년 봄호.
(10) 심의평가 제2022-ARA-AP-1475호, 지역 환경당국(MRAE), 2023년 2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