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두 얼굴

컨테이너와 자본은 ‘예스’, 이주자는 ‘노’

2023-05-31     모르방 뷔렐 l 노동운동가

각종 재정, 경제, 보건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현실은 늘 그대로다. 유럽은 여전히 자유무역 기조를 고집하며 지속적으로 프랑스의 일자리를 파괴할 뿐이다. 오늘날 각국은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1980년대 말 이후 대대적으로 축소된 관세를 재도입해 소셜 덤핑을 해소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냉전의 ‘승자’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가 모든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지리적 경계를 구분 짓는 장벽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요컨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한 ‘역사의 종언’은 국경의 종말을 알리는 예고편에 해당했다.(1) 동일한 이념,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전 세계로 전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경계를 구분 짓는 도구란 시대착오적이었다. 어느새 세계는 상업적인 성격을 갖춘 하나의 마을로 변모했다. 덕분에 걸림돌 없는 자유로운 상거래가 가능해졌다. 바야흐로 글로벌 자유무역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30년 뒤 재화와 자본의 이동을 가로막던 규제들이 대거 철폐되자, 모든 교류의 자유화가 완성 단계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국경, 난민행렬에 맞춰 부활하다

2010년대 중반, 미디어들은 유럽 국경의 부활 소식을 알렸다. 자유무역의 교리는 지키는 한도 내에서 국경은 부활했다. 2016년 8월 6~7일, <리베라시옹>은 ‘다시 국경과 함께 살아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시리아와 리비아 사태로 인해, 그리스 등 유럽연합(EU)의 국경에 대대적인 난민 행렬이 몰려오던 시기였다. 초국적 통상 흐름을 규제하던 국경은 점차 느슨해진 반면, 난민 등 인간의 이동을 막는 국경은 점차 강화됐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신 글로벌 경제질서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야만 했다. 

결국 난민 통제에 역점을 둔 국경 강화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각국은 세계화의 프로세스를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으려 했다. 대표적인 난민 유입 경로마다 높은 장벽이 쳐졌다. 대표적인 예가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헝가리의 발칸 루트, 그리고 모로코에 위치한 스페인의 고립영토 세우타와 멜리야였다. 그리스 레로스 섬의 난민캠프도 역시 울타리를 두른 폐쇄시설로 전환됐다. 일부 솅겐조약 가입 국가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통행을 중단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가령 2016년, 슬로베니아나 이탈리아와의 접경지대에 담장을 설치한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었다.

이런 강압적인 정책은 자유주의 경제를 완벽하게 보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주의 경제를 먹여 살리는 역할까지 했다. 국경 지대를 군사시설로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글로벌 대기업의 첨단 감시기술(열 감지 카메라, 동작 감지 센서, 드론 등)이기 때문이다. 가령 탈레스 그룹은 솅겐 지역의 생체 인식 감시 시스템을 설치할 사업자로 선정됐다.(2) 현재 총 1만 4,000km에 달하는 유럽연합 역외 국경 중 무려 60%에 감시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3) 프랑스와 영국 간 국경에만 1998년 이후로 12억 8,000만 유로 규모의 국경 감시 기술 및 설비 투자가 이뤄졌다. 그 가운데 4억 2,500만 유로가 2017~2021년에 투입됐다.(4)

 

장벽,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로막다

정부 당국은 관문 하나를 폐쇄해도 결국 또 다른 유입 경로를 통해 난민들이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감시망을 국경 너머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가령 출발국이나 경유국으로까지 통제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16년 3월 18일 유럽은 튀르키예를 경유해 유럽에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를 다시 튀르키예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튀르키예 정부와 협정을 맺었다. 대신 에르도안 튀르키예 정부에 60억 유로의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은 아프리카 사헬 지역, 리비아를 상대로도 시행되고 있다. 심지어 유럽연합은 리비아 정부가 자국민의 민주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위협하는데도, 협상을 위해 리비아 민병대들과 접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5)

미국은 멕시코 접경지대에 과시하듯 거대한 장벽을 세웠다. 또한 영국은 불편한 난민 관리 업무를 르완다에 외주로 넘겼다. 유럽연합이라고 별로 나을 건 없다. 유럽 국경·해안경비청(프론텍스(Frontex)란 이름으로 더 유명)은 유럽의 역외국경에 대한 출입 통제 관리 및 조율을 담당하는 진정한 유럽의 통합 관할 기구다. 하지만 최근 이 기구는 유럽부패방지청(OLAF)의 조사 결과 그리스-튀르키예 간 국경지대의 난민을 추방하는 과정에서 기본권을 유린한 혐의가 드러났다. 그 바람에 파브리스 레제리 국장이 사임하기도 했다.(6)

오늘날 유럽연합은 이주민 정책은 강화하면서도, 정작 초국적 통상 규제는 대거 철폐하고 있다. 사실상 재화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은 유럽연합의 기본 토대를 이루기도 한다. 가령 유럽의 단일시장은 각종 관세 조치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수입품 관련 업무를 관할하는 기관은 통상 규제 완화를 표방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다. 더욱이 통상 규제 완화는 유럽연합 조약으로도 명문화돼 있는데, 이는 개별국의 법률에 우선시된다. 요컨대 유럽법이 자유무역을 ‘헌법화’하고 있는 셈이다.

2022년, 유럽연합 수입품에 적용된 평균 관세율은 1.48%에 불과했다. 1957년 로마 조약이 체결되기 전, 프랑스는 18%, 독일은 26%였다. 점진적인 관세 완화 조치는 여러 다국적 기업이 이른바 ‘노동비용’(자유주의 세력이 임금과 사회보장분담금의 수준을 거론할 때 쓰는 용어) 측면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에 생산 및 자본 기지를 자유롭게 설치하거나 이전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런 현상은 임금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분야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생산업 부문이다. 프랑스에서는 1980~2007년 340만~530만 개로, 총 190만 개의 생산업 부문 일자리가 사라졌다. 의류-피복 분야의 일자리도 1989~2007년 13만 2,288명으로 무려 3/4이나 감소했다.(7) 해외이전으로 인한 탈산업화 현상은 특정 산업 분야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 특히 타격을 입혔다. 섬유산업이 발달한 보주, 금속산업이 주를 이루는 티에르(퓌 드 돔) 지역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에는 프랑스 전체 인구의 20%가 거주하는 만큼, 구조적인 지역 격차는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초래했다.(8)

 

영불해협 화물, 2분 12초면 국경 넘어

무역 규제 완화는 기업들이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며 짐을 싸거나,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정부를 협박하는 명분이 됐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미명으로 내세워 자신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해줘야만 자국 땅에 생산시설과 일자리를 남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각국은 무역자유화 협정으로 인해, 결국 스스로 무능함을 창출하는 ‘장인’으로 전락했다. 

2004년 이후 구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속속 가입함에 따라, 유럽연합 내에는 관세 철폐로 인한 덤핑 현상이 더욱 극대화됐다. 구소련 국가들은 특히 임금 등의 다양한 기준을 다른 회원국 수준으로 사전에 조정하지 않은 채 역내 시장에 진출했다. 10년이 지난 뒤에도 유럽에서는 월 최저임금 격차가 여전히 1~12배 수준까지 벌어져 있다. 가령 불가리아의 월 최저임금은 159유로인 반면, 프랑스는 1,430유로에 육박한다. 2017년 프랑스를 떠난 기업들의 대부분(62%)은 유럽의 역외 국가로 향했다.(9)

자유무역 기조를 중시하는 현상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영국의 보수당 지도자들과 뜻을 함께 했다. 양측은 모두 양자 간 무역에 관세 장벽이 부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2020년 12월 24일 체결된 조약의 결론도 그와 같았다. 양측은 ‘통관 절차’를 재도입하기로 하면서도, 기본 원칙으로 ‘스마트(지능형) 세관’을 내세웠다.

2019년 세계관세기구(WCO)가 개발한 개념인 ‘스마트 세관’은 ‘원활한 무역, 걸림돌 없는 인간과 상품의 이동’(10)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말하자면, 상품이 수입국에 도달하기 이전에 통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영국-EU 관세협정에 따라, 브렉시트 이후 모든 재화의 거래는 ‘국경지대에 차량 대기’(11) 없이 논스톱으로 진행됐다. 영불해협을 건너기도 전에, 화물차등록협회의 사전 바코드 신고로 모든 통관 절차가 사전에 처리되는 것이다. 대신 하역 전 검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차량만 잠시 국경에 멈춰 조사를 받게 했다. 2022년 관세 당국은 ‘스마트 시스템의 성공적 운영’을 자찬했다. 매년 영국을 방문하는 360만 대 차량 중 80%가 중도 대기 없이 논스톱으로 국경을 건넜다. 

이런 방식은 관세 당국이 세운 정책 목표에도 부합한다. 화물 운송이 지연되거나 다른 차량에 화물을 옮기는 일이 줄어들면 그만큼 관세 당국이 정한 연간 평균 화물 대기 시간(국경을 통과하는 총 화물량 대비 세관 검색에 소요되는 시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유리해진다. 가령 오늘날 평균 화물 대기 시간은 2021년 2분 12초(12)에 그칠 정도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10년 전만 해도 평균 통관 시간은 5분 50초에 달했고, 2004년에는 자그마치 13분이나 걸렸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세관 검문 건수가 현저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는 없지만, 가령 프랑스의 최대 항구인 르아브르항에 입항한 컨테이너선 가운데 물리적인 세관 검색을 거친 선박은 1%도 채 되지 않았다. 

 

자유무역의 폐해 드러낸 팬데믹 사태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자유무역의 해로운 여파를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020년 3월 31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프랑스에서, 우리 땅에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우리는 현 위기를 통해 어떤 재화나 상품, 자재는 전략적인 성격상 유럽이 지배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땅에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야 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생산 설비를 갖춰나가야 한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뒤 프랑스의 마스크 공장들은 동아시아산 상품들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뒤쳐져 결국 문을 닫았다. 2022~2023년 프랑스는 파라세타몰, 아목시실린 등 각종 의약품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럽연합은 자유무역을 나침반으로 삼으며, 남미공동시장(MERCOSUR), 멕시코, 칠레 등과도 새로운 협정을 맺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은 국경에 대한 원칙을 완전히 전복시켜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이제 덤핑을 막는 제도를 강화하고, 인간의 통행을 막는 장벽을 낮춰야만 한다. 반(反)덤핑 제도는 관세, 쿼터제, 금수조치 등을 통해 노동조건, 조세정의, 자연환경을 침해하면서 생산된 제품들이 결코 역내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국경은 주권국의 국민과 그 대표자들이 선택한 정책을 적용할 영토를 만들 것이다. 이 ‘민주적 선택’은 새로운 상품과 자본의 흐름에 기여할 것이다(혹은 기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럽인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코 유럽이라는 성채를 난공불락으로 만들겠다며(더욱이 이런 시도는 무용하다) 첨단 기술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적, 인적 수단을 갖춘 제대로 된 관세 행정을 확립하는 것이다. 만일 각국의 영토 내에서 통관 검색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국경 지대에 그토록 비대한 감시 시스템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새로운 국경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저해하지 않을 것이고, 솅겐조약 체결로 발효된 자유 통행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유일한 난관이 있다면 이런 종류의 국경이 유럽연합 조약에는 위배된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조약은 사실상 단일 시장 내 모든 통상 규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 있어서도, 결국 유럽이 기존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벗어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일관성 있는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글·모르방 뷔렐 Morvan Burel
노동운동가. 세관노조 ‘단결 세관’(Solidaires douanes) 전 사무총장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Francis Fukuyama, 『La Fin de l’histoire et le dernier homme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Flammarion, Paris, 1992년.
(2) ‘Thalès séléctionné pour préparer la France au nouveau système d’entrée/sortie de l’espace Schengen 프랑스의 새로운 솅겐지역 출입 시스템 사업자로 선정된 탈레스’, 탈레스 그룹의 발표문, 2021년 3월 22일.
(3) Anne-Laure Amilhat Szary, 『Qu’est-ce qu’une frontière aujourd’hui? 오늘날 국경이란 무엇인가?』, PUF, Paris, 2015년.
(4) Pierre Bonnevalle, ‘Rapport d’enquête sur 30 ans de fabrique politique de la dissuasion 30년간의 억제 정책 조성에 관한 조사 보고서’, 난민지지플랫폼(PSM), 2022년.
(5) Ian Urbina, ‘La Libye, garde-chiourme de l’Europe face aux migrants 유럽의 난민 감시자, 리비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월호.
(6) Cédric Vallet, ‘Refoulement des migrants aux frontières : Fabrice Leggeri, directeur de Frontex, démisionne 국경지대 난민 추방 : 파브리스 레제리 프론텍스 국장 사퇴하다’, <Mediapart>, 2022년 4월 29일.
(7) ‘Contre le dumping, le protectionnisme : bâtir un « gouvernement des échanges » régulateur 덤핑, 보호주의 근절: “무역 규제 거버넌스” 구축’, <Intérêt général>, 제12호, www.intertgeneral.net.
(8) Laurent Davezies, 『La crise qui vient : la nouvelle fracture territoriale 다가오는 위기: 새로운 지역 격차』, Seuil, Paris, 2012년.
(9) ‘Les entreprises en France 프랑스의 기업들’, <Insee Références>, 2022년판.
(10) 쿠니오 미쿠리야 세계관세기구 사무총장의 선언문, 2018년 11월 8일, www.wcoomd.org.
(11) ‘Le rétablissement d’une frontière : anticipation, identification, automatisation 국경의 회복 : 예견, 식별, 자동화’, <Douane Magazine>,제16호, Montreuil, 2020년 12월호.
(12) ‘Présentation des résultats 2021 de la Douane 2021년 관세청 실적 발표’, 2022년 2월 14일, www.douane.gouv.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