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vs 아제르바이잔 영토분쟁

이권 노리는 러시아와 EU 대리전

2023-05-31     콩스탕 레옹 l 기자

터키와 이스라엘의 지지를 등에 업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수복을 위해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군사공격과 실력행사에 나섰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고립된 아르메니아 영토로 아제르바이잔은 2020년 이 지역을 부분적으로 탈환했다. 아르메니아는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앞으로 아르메니아 남부까지 눈독을 들일까 봐 우려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 고리스는 평소와 달리 부산했다. 지난 1월 초, 수백 명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민이 아르메니아 남부 슈니크 지방의 관문인 고리스에 머물렀다. 아제르바이잔 내부에 고립된 아르메니아인 거주지역 나고르고-카라바흐는 약 3개월 전부터 외부와 단절된 상태였다. 2022년 12월 12일, 자칭 아제르바이잔 환경운동가들이 아르메니아 본토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라친 회랑(Lachin corridor)을 가로질러 진을 쳤다. 시위의 명분은 불법 금광개발 반대였지만,  아제르바이잔 군대의 지원을 받은 그들의 진짜 목적은 라친 회랑 봉쇄였다.

마을 언덕에 위치한 고리스 호텔 프런트 주변에는 가방이 수북하다. 다른 호텔로 배정되기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짐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발이 묶인 부모들이 전한 소식은 인도주의적 위기를 경고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당국은 식량 배급제를 도입했으며 아제르바이잔 당국이 전기, 가스, 인터넷 공급을 정기적으로 중단하기 때문에 사용시간 분배 및 제한에 들어갔다고 한다.(1) 

대부분의 학교는 문을 닫았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호텔 입구 가죽 소파에 앉아 있던 마리아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주도 스테파나케르트 주민이다. 한 노부부는 곧 길이 다시 열릴 것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이들을 달래기 위함인지 아르메니아 전통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라친 회랑 vs 잔게주르 회랑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자국 영토로 재통합하고자 올가미를 죄고 있다.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공화국 내 자치주였던 이 지역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독립을 선언했다. 그 결과 제1차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1991~1994)이 발발했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인근 7개 지역을 점령한 아르메니아는 이 분리주의 지역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며 사실상 지방 정부를 감독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신규 독립국의 국경은 소련 시절 수립된 국경에 근거해 획정한다”라고 명시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탄했다. 수년간 이어진 평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2020년 9월, 튀르키예의 군사 지원에 힘입은 아제르바이잔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출병을 결정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압력으로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스테파나케르트 점령을 포기했다. 2020년 9월 9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는 3자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1/3을 되찾았고, 3국은 이 지역 주변에 러시아 중재군이 주둔하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에 거주하는 5만 5,000~12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보호하고(2) 라친 회랑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러시아군 2,000명을 파견했다. 러시아는 캅카스 지역의 경찰이라는 입지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영토 분쟁 해결을 담당했던 민스크그룹(OSCE Minsk Group, 러시아, 미국, 프랑스 공동 의장국)을 배제시키는 절묘한 수완을 발휘했다.

이제 이 휴전협정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아제르바이잔 시민권을 거부한다면, 언제든 가능하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아제르바이잔의 이런 정책을 “인종 청소 시도”라고 규탄했다. 현재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드나드는 것은 적십자 차량뿐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영구적으로 떠나는 아르메니아 주민에게만 라친 회랑 통행을 허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구호단체 메드생 뒤 몽드(Médecins du Monde)의 캅사스 남부 지역 조정관인 발랑탱 마우에키미앙은 “아제르바이잔은 우선 가장 취약한 주민들을 겨냥한 뒤 점차 다른 주민들도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떠나도록 계속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라친 회랑 봉쇄는 포괄적인 평화 협상을 위한 포석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이 협상을 핑계 삼아 아르메니아가 잔게주르 회랑(Zangezur Corridor) 건설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도다. 잔게주르는 슈니크 지방의 아제르바이잔식 명칭으로 아르메니아 남부를 통과해 아르메니아 내 아제르바이잔 고립 영토인 나흐치반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본토 그리고 더 나아가 아제르바이잔의 최대 동맹국 튀르키예와 연결하는 통로다.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2021년부터 “우리는 아르메니아의 의사와 상관없이 잔게주르 회랑을 건설할 것”이라고 예고했다.(3) 탈린 파파지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연구원은 “아제르바이잔의 목표는 나흐치반 지역에 아르차흐(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르메니아식 지명)와 동등한 인위적 회랑을 개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친 회랑을 봉쇄하면 아르메니아는 결국 잔게주르 회랑을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아제르바이잔은 먼저 잔게주르 회랑 건설 예정지에서 아르메니아 국경 수비대가 철수하고 러시아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아제르바이잔이 한층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아르메니아의 주권이 침해당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이 문제는 양국 고립 영토의 본토 연결을 넘어서는 쟁점이다.

역사학 박사인 타테비크 하이라페티안 전 아르메니아 국회의원은 “잔게주르 회랑은 슈니크 지방에 대한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의 영유권 주장과 결부돼 있다. 양국은 이 지방을 서부 아제르바이잔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2월,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검문소 설치를 수락하며 입장을 완화했지만 라친 회랑 봉쇄는 유지하며 여전히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재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다모클레스의 검

잔게주르 회랑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의 입장 완화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2021년 5월 아르메니아 공격을 개시한 후, 2020년 전쟁 당시의 제한된 목표, 즉 1994년에 잃어버린 지역들에 대한 주권 회복이라는 목표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13일,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중부 도시 제르무크를 공격했고 2일 동안 2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아제르바이잔 군대는 200km에 달하는 국경 지역에 대포, 박격포, 드론을 배치했다. 아르메니아 남부 게가르쿠니크, 바요츠조르, 슈니크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주민 20만 명이 아제르바이잔군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해당 지역들은 언제든지 고립될 수 있는 상태다. 

아제르바이잔은 자국이 제시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평화협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모클레스의 검(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역주)’을 휘둘렀다.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의 정치·문화적 권리와 안전 보장, 이 지역의 비무장화, 국제 조정군 주둔을 요구했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국내 문제이므로 협상에서 제외된다고 대응한 아제르바이잔은 점차 이 지역 대표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요구했다.(4) 

지난해 12월,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는 이란 국경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하이라페티안 전 의원은 “양국은 아르메니아, 특히 슈니크 지방을 공격할 경우 이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 1,70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이란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남부 아제르바이잔” 영토 회복을 촉구하는 호전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2022년 1월, 주 아르메니아 이란 대사는 “아르메니아의 안보는 곧 이란의 안보”라고 경고했다. 이란 역시 2022년 말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했다.

올 1월 발생한 주 이란 아제르바이잔 대사관 테러 사건 이후 아제르바이잔이 이란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나서자 양국 간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이란이 이처럼 아제르바이잔 견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아제르바이잔이 이란의 숙적 이스라엘과 군사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Haaretz)>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지난 몇 달간 충돌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아제르바이잔에 무기를 공급한 사실을 보도하고 이스라엘과 아제르바이잔의 군사협력 규모를 조명했다.(5)

 

러시아의 배신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이 아르메니아의 안보를 전혀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깨달았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필적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는 1992년 전쟁 때 아르메니아를 지지하지 않았다. CSTO는 구소련 국가들의 정치·군사 동맹으로 아르메니아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와 함께 이 기구를 출범시킨 국가다. 2020년, 러시아는 국제법상 아르메니아와의 동맹 조항은 아제르바이잔 국내 영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르메니아는 2022년 아제르바이잔이 감행한 모든 공격을 전쟁 행위로 규정했지만 러시아는 양국 간 국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또 다른 명분을 내세우며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 사이 러시아는 모든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투입했다. 일부 아르메니아 국민은 러시아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2022년 11월,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푸틴의 아르메니아 방문에 맞춰 수백 명의 시민이 반(反)러시아 정부 시위를 벌였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아르메니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마르가리타 시모냔을 금지했듯이 CSTO를 추방하자”라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아르메니아계 언론인 시모냔은 러시아 국영 매체 <러시아 투데이>의 보도국장이다. 시모냔은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를 향해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러시아에 비판적인 아르메니아인에게 “혀를 잘라버려라”라는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시모냔에게는 아르메니아 입국이 금지됐다.

오페라하우스 앞 중앙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었다. 아르메니아 시민들의 우크라이나 지지 표명에 우크라이나는 화답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한다. 소련 시절 획정된 국경선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방에 대한 아르메니아의 주권 주장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2022년 11월, CSTO 정상회의가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열렸다. 카메라 앞에 선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최종 선언문 서명을 거부하며 “현 상황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CSTO가 동맹의 의무를 저버린 것을 의미하며 CSTO가 아제르바이잔의 아르메니아 재침공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는 CSTO 창설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정신과 의미에도 위배된다”라고 반발했다.

 

EU, 아제르바이잔 가스에 눈독

아르메니아는 궁여지책으로 서구를 향해 눈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인 지금, 서구는 러시아에 대한 간접적인 공격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2022년 10월, 유럽연합(EU)은 아르메니아 정부의 요청으로 EU 감시단을 2개월간 파견했다. 올 2월 20일 파견된 2차 감시단은 이미 아르메니아 북부, 서부,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총 100여 명으로 구성된 감시단 중 50명은 독일과 프랑스 헌병대 소속이다.

EU의 감시단 파견 발표 며칠 뒤, 주 아르메니아 러시아 대사관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EU는 아르메니아에 발판을 마련해 러시아의 중재 노력을 무산시키려 한다”라고 항의했다. 이어 “이런 EU의 시도는 평화로운 역내 발전을 추구하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노력 중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당시 미연방 하원의장을 맡고 있던 낸시 펠로시는 각각 2022년 7월, 9월 아르메니아를 찾았다.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두 사람의 아르메니아 방문을 강한 도발로 받아들였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 분쟁 관리를 놓고 러시아와 서구의 경쟁이 다시 고조되고 있지만 러시아와 EU 모두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동요하지 않는다. 2022년 2월,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간 협력 및 불가침 조약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의 내정 불간섭을 약속했으며 아제르바이잔은 그 대가로 구소련 영토 내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중립성을 보장했다. 

유럽 역시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에 소홀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는 다름 아닌 에너지 문제 때문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이 금지된 상황 속에서, EU는 아제르바이잔의 가스 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7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의 대(對)유럽 가스 공급량은 30%p 증가했고, 2027년까지 2배로 확대될 예정이다.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자국산 가스를 다시 수출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지만, 여하튼 유럽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거래다. 

 

 

글·콩스탕 레옹 Constant Léon 
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Bashir Kitachayev, ‘What’s next for the Azerbaijani blockade of Nagorno-Karabakh?’, OpenDemocracy, 2023년 1월 25일. 
(2) 소련 붕괴 후 한 번도 인구 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구 추정 수치 간 격차가 크다.
(3) ‘What will become of the Zangezur corridor? Comments from Azerbaijan and Armenia’, <Jam News>, 2021년 4월 21일.
(4) ‘Azerbaijan-Karabakh dialogue is happening’ <Eurasianet>, 2023년 3월 2일.
(5) Avi Scharf & Oded Yaron, ‘92 Flights From Israeli Base Reveal Arms Exports to Azerbaijan’, <Haaretz>, 2023년 3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