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 보뇌르와 프랑스 메무아르
꽤 오랫동안, 파리 지하철에서 사슴을 피하기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우아한 숲 한가운데, 살짝 눈이 튀어나온 사슴 그림과 마주치지 않는 일이 드물었던 것이다. 휴대전화 광고 사이에 있는 사슴 그림이라니. 그렇게 사람들은 로사 보뇌르를 알게 됐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로사 보뇌르 전시회가 열렸던 때였다. 프랑스 메무아르는 2022년 로사 보뇌르 탄생 200주년을 기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과거 존재했던 ‘국가 기념일 심의회’ 대신 프랑스 학사원이 주관해 ‘프랑스 기억’이라는 의미의 ‘프랑스 메무아르’ 달력을 만들기로 했다.(1)
프랑스 학사원은 매년 “프랑스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인물, 작품 혹은 주요 사건을 기반으로 50개 기념일을 정한 달력”을 만들어 배포한다. 이것이 프랑스 메무아르다. 전 교육부 장관이자 프랑스 학사원 원장인 자비에 다르코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공공 이익을 위한 의무”이자 프랑스인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다.(2) 그만큼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물론 프랑스 메무아르는 정치 기관과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달력이다. 그러나 이 달력이 택한 기념일은 국가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공식 발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22년 내내 로사 보뇌르와 그녀가 그린 <숲의 제왕>은 끊임없이 회자됐다. 오르세 미술관은 망설임 없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혁신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 “동물에 대한 존중을 담아 그 영혼까지 그려낸 화가”, “여성 해방의 아이콘”이라며 로사 보뇌르를 치켜세웠다. 보르도 미술관도 파리와 동일한 전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언론에 “자유로웠던 그녀의 삶은 신화가 됐다”라며,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화가를 프랑스 메무아르가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프랑스 메무아르가 썼던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자 “순결한 예술적 여성”이라는 구시대적이지만 매력적인 표현을 그대로 가져왔다. 로사 보뇌르가 “예술작품 시장을 주도했던 가장 탁월한 미술상과 수집가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았기에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언론에서 반복하는 교묘한 화법
여기서 “탁월한”은 “부유한”과, “어울리는 법”은 “그림을 파는 법”과 동의어다. 이런 ‘화법’이 언론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은 제공된 사용설명서를 베끼는 데 점점 익숙해지는 듯하다. 로사 보뇌르는 단 한 번도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언론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로사 보뇌르 이전에도 동물에 대한 존중을 그림에 담는 화가들이 있었다. 이 사실 역시 중요하지 않다. 루이 14세 시대의 여류 성악가였던 라 모팽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에밀리 도비니, 19세기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처럼 바지 차림의 여성들이 많았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로사 보뇌르의 작품과 성격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다양한 사회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대중의 관심사로 대두시킨다”라는 점이다. 예술계와 사회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 동물의 권리 대변, 농촌과 자연 보전 같은 이슈가 그렇다. 로사 보뇌르는 성공적인 모델이다. 이 정도면, 자금을 조달해 전기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처럼 별생각 없이 표현을 반복하다 보면 골치 아픈 효과가 발생한다. 폴 세잔의 표현을 빌리면, “끔찍하게 비슷한” 장점을 가진 작품의 공적만 기리게 된다는 점이다.(3) 깔끔한 사실주의의 정수,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감정을 움직이는 주요 코드의 재생산, 적당한 공간이라면 으레 장식돼 있던 ‘숲의 암사슴들’ 속에서 피어나는 키치 문화 등이 그렇다. 로사 보뇌르의 예술은 오히려 보수적이고 순응적인 쪽에 가까운데, 프랑스 메무아르는 그녀가 남자 옷을 입고 여성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들어서 저항과 자유의 아이콘으로 삼아버렸다.
기념일 달력은 일종의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선택해 창작하는 드라마나 다름없다. 그것을 감상할 때 한 사건에만 집착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미 있는 사건” 각각이 지닌 의미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다. 그리고 전체의 흐름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다. 2023년에도 대세인 사회적 가치를 찬양하면서 세 명의 여성이 거론되고 있다. 소설가 콜레트, 연극배우 사라 베르나르, 감독 알리스 기다. 이 세 명의 ‘수상자’는 그녀들이 보여준 예술보다는 ‘여성 해방’, 그리고 동물을 사랑한 감수성으로 대표된다. 콜레트는 고양이를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고, 사라는 호랑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여기에 페미니즘에 대한 찬사를 구겨 넣지만 말기를 바란다. 이에 비해 프랑스 우파 정치인 에릭 제무르가 아끼는 작가이자 정치가였던 모리스 바레스를 기념하는 일은 별다른 기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 반대론자,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과격한 애국주의, “의회 부패”를 고발한 사람... 그러나 대중은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역사 그리고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는 시대적 맥락 안에서 그의 영향력을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역사는 빛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어두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4)
역사가이자 프랑스 메무아르 대표인 이브 브륄리는 이런 편견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것을 포용하면서 “인물과 그의 사상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렇다. 변화는 아름답다. 모든 것은 변한다. 2018년 ‘국가 기념일 심의회’가 기념일 달력에 샤를 모라스를 넣으려고 했을 때, 12명의 위원 중 10명이 사직했고 모라스는 결국 달력에서 빠지게 됐다. 2021년 ‘국가 기념일 심의회’를 대신하는 ‘프랑스 메무아르’가 출범했다. 오늘날 어떤 의미에서 모라스와 비슷한 바레스가 기념일 달력에 포함됐는데 그나마 이전보다 논란이 줄어들었다. 왜 역사학자 이브 브륄리가 내세우는 (메무아르)의 “교수법”의 의지를 믿지 않는 것일까. 이런 교육은 풍부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우리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깨닫게 하고 역사 속에서 그들의 활동과 사상에 걸맞은 자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문제는 여기에서조차 열 전도관처럼 강박관념의 떨림 같은 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선택적이며, 어쩌면 숭고할 수도 있는 이런 분류는 가벼운 고정관념을 미세하게 드러낸다. 권력의 소유자와 지지자, 그리고 다른 질서 위반자에 대해서 말이다. 현대 미덕으로 장식된 상징들이 그러하듯.
새로운 면을 보여준 독재자 만세?
프랑스 메무아르 달력을 통해, 많은 이들은 어느덧 희미해진 일들을 다시 기억해내곤 한다. 프랑수아 1세의 딸, 마르그리트가 탄생한 날. 사부아 공작부인으로 더 잘 알려진 그녀는 16세기 프랑스에서 혁신적인 시적 경향을 주장한 시파인 “플레이아드의 후원자”였다. 앙리 드 발루아가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된 날. 그가 통치한 기간은 1573~1574년, 기간이 짧다고 그 사건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럽 왕조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라자르 카르노가 사망한 날. 그는 위대한 장관으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통치 시절 복잡한 정세 속에서 충성을 보인 인물이다. 1796년 그라쿠스 바뵈프가 주도한 음모를 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극단주의자에 맞서 싸운 것을 찬양하는 것일까).
그러나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인물도 있다. 프랑스 메무아르는 1873년 사망한 나폴레옹 3세도 주목했다. 프랑스 메무아르 홈페이지에 올라온 소개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역사의 핵심적 인물”로 프랑스 제3공화정이 만들어 낸 “검은 전설”의 피해자다. 기고자 중 한 명이 역사학자인 프랑수아 퓌레가 말한 내용을 인용했는데 요컨대 “독재자의 의도와 의향으로 자유화된 독재 체제”를 수립한 인물이다. (새로운 면을 보여준 독재자 만세라는 것인가.)
프랑스 학사원 원장인 다르코스는 “우리 시대에 기념일을 기억하게 하는 작업은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게 한다”고 강조하면서 기묘하게 유행 중인 ‘수용’이라는 표현을 썼다. 프랑스 메무아르 달력을 보면 1573년은 미셸 드 로피탈이 사망한 해다. 그는 프랑스 재상으로 종교 전쟁 당시 화합을 위해 노력했으나 그 노력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같은 해인 1573년, 외과 의사 앙브로와즈 파레가 『외과학 2권』을 출판했다.
프랑스 메무아르는 후자 대신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 메무아르 달력을 보면 1673년, 왕립 해군 상이군인 기금이 설립됐다. 그러나 같은 해, 프랑수아 풀랭 드 라 바르가 『양성평등, 고정 관념을 없애는 데 중요한 육체적 정신적 담론(1984년, 파야르드 출판사)』을 발표했다. 이것 역시 선택의 문제다. 프랑스 메무아르 달력을 보면 1873년은 쥘 리메가 태어난 해다. 쥘 리메는 “축구의 선구자”로 기독교적 민주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월드컵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국제 축구 연맹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던 1934년, 제2회 월드컵이 파시스트가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에서 개최됐다.
그리고 그는 1931년부터 1947년까지 비시 정부 하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가 스포츠 위원회에서 회장직을 역임했다. 쥘 리메 출생을 기념하는 것보다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출판이나 알프레드 자리나 앙리 바르뷔스 출생을 기념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메무아르에 따르면, 1923년은 모리스 바레스가 사망한 해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문학잡지 <유로프(Europe)>가 창간된 해도 1923년이다. 로맹 롤랑의 후원 아래 파시즘에 맞서 열정적으로 싸웠고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와 같은 시인 운동가들이 작품을 게재했다. 하나의 기준이 된 이 잡지는 오늘날도 여전히 출판되고 있다.
프랑스 메무아르는 1973년을 종교적 정치 운동인 ‘악시옹 프랑세즈’ 시절에 활약했던 가톨릭 철학자 자크 마르탱이 사망한 해로 기념하고 있다. 1973년은 프랑스 시계회사 립(Lip) 노조가 브장송에서 파업한 해로 이는 노사 갈등을 대표하는 사건이지만 자크 마르탱을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 메무아르는 자신이 독립적이라며 자부심을 느낀다. 어떻게 독립적인지 설명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국가는 국가 나름대로 정당하게 기념일을 챙기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정책은 프랑스 메무아르와 동시에 시행된다. 정책의 역할과 프랑스 메무아르의 역할은 다르다.”
맞는 말이다. 프랑스 메무아르는 상당히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교묘하게 말이다.
(1) Evelyne Pieiller, ‘Albert Camus et le zouave du pont de l’Alma 알베르 카뮈와 알마 다리의 알제리 보병’,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