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2012-04-13     피에르 랭베르

정보통신 권위자와 녹색 자본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밝은 미래를 책임지겠다며 선거에 나서고 있지만, 좌파는 미래에 대한 큰 그림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변혁을 꿈꾸기보다 '영광의 30년'이라 일컫는 전후 부흥기(1945~75)의 향수에 기대 미래의 희망을 말하고 있다. 과연 진보주의와 노스탤지어가 양립할 수 있을까?

"영광이여 다시 한번!" 이런 구호를 강령으로 삼은 프랑스 정당은 아직 없지만, 많은 이들이 전후 사회를 마치 꿈꾸듯 부러워하며 바라본다. "우리가 위기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는다면,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지난 30년보다는 전후 '영광의 30년'과 유사한 모습이 될 겁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자문역인 앙리 가이노의 말이다(시사주간지 <마리안>, 2011년 7월 2일). 해방 이후의 사회조직에서 영감을 얻는 정당은 '좌파전선', '사회당', '민주운동'뿐만이 아니다. 극우파 '국민전선'의 대선후보도 이를 기회주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한 자유주의적 '현대성'을 되살리려는 이들은 별로 없다. 대안세계화운동이 태동한 이래 약 15년 동안 두 차례의 세계경제 위기를 겪고 난 지금, 금융 규제 완화의 폐해와 불평등 심화에 대한 비판은 반(反)월가 시위대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나 모두 공감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금융거래에 과세하는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고, 보수 성향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민간 은행에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심지어 자유주의자들의 대변지인 <이코노미스트>가 국가자본주의의 성공을 인정하기까지 했다(2012년 1월 21일). 1970년대 말 시작되어 오랜 기간 집권세력들이 추진해온 규제 완화는 도리어 갈수록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런 정치적 굴절은 최근 문화계에 불고 있는 복고 열풍과 맥을 같이한다. 1960년대 광고업계를 다룬 미국 드라마 <매드맨>이 인기를 끌고, '미니 쿠퍼'나 '피아트 500' 등 과거 인기 차종이 재출시됐다. 또한 키치한 감성의 가구가 호응을 얻고 있고, 밥 딜런의 초기 음반이 일종의 숭배 대상이 되고 있다.(1) <마리안>(2011년 7월 16일)가 '과거에 더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선술집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마을 초등학교의 상장 수여식', '자전거 탄 집배원의 유쾌함' 등을 들었다. 이처럼 금융시장의 혼란기 속에서 노스탤지어를 파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세계화와 탈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 실업이 증가하고 학교·정당·교회 등 사회 규율 조직이 쇠퇴하기 전의 그때가 좋았고,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장점이 우리 과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수(憂愁)의 바람은 많은 좌파 성향 작가들을 사로잡았다. 소설가 모르강 스포르테스는 <마오>(2006), <그들이 피에르 오베르네를 죽였다>(2008) 등 마오이즘 관련 저서를 통해 드골파가 정권을 잡고 공산주의자들이 지성계를 장악한 시절을 그리워한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위원회의 주요 프로그램과 해방 후 사회적 성과를 현 시대에 맞춰 조명한 소책자로, 2010년 10월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철학자 장클로드 미셰아(고교 철학교사 출신으로 사회주의 교양도서를 다수 출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2011)에서 보수주의적 감수성이 곧 보통 사람들의 감수성이라면서 자본주의 비판자들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권력 관계가 노동자들에게 좀더 우호적이던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표다. 하지만 이는 좌파의 전략과 강령이 얼마나 무능한지 동시에 보여준다. 물론 주요 변혁 운동과 여성인권 쟁취 활동, 노조 투쟁, 반(反)식민지 운동의 주축들도 현재를 부정했다. 하지만 이는 이상화된 낙원을 복원하는 것보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함이었다. 환상이 깨진 과거의 경험과 새롭게 등장한 소외현상에 대한 인식이 당시에는 급진적 상상 세계를 이끄는 원동력이 됐으나 오늘날에는 그런 세계의 후퇴를 부추긴다.

전후시대의 패권을 그리워하는 좌파들

시장법칙에 저항하는 이들은 방어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역사를 이용하는데, 이는 두 가지 상반된 효과를 낳는다. 하나는 의도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발적이다. 전후에 이룩한 사회적 성취나 노동자 파업의 압박으로 정부가 한발짝 물러서며 내놓은 조치들을 환기시키는 것은 '단 하나의 정책만이 가능하다'는 이데올로기에 강력한 반증을 제시하는 것이다(여기서 '단 하나의 정책'이란 이를테면 긴축정책이다). 즉, 지금보다 훨씬 힘든 여건에서도 민중이 힘을 모았음을 상기시킨다. '구시대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계급의 문을 서둘러 봉인하려는 사회자유주의적(자유주의 성향을 띤 좌파 학자를 일컬음) 전략가들(앤서니 기든스, 알랭 투렌,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에게 보란 듯이, 참된 현대성, 즉 임금 투쟁 성공이라는 현대성을 방어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가 동원된다. 소련의 위협에서 벗어난 서구 지도자들은 1990년대부터 시장민주주의를 인간 사회 조직의 최종적 형태로 지목해왔지만, 역사는 현재도 영원하지 않고 자연적 시장도 영원하지 않다며 이들에게 반론을 제시한다. 금융의 모래성이 붕괴되고 아랍 세계의 봉기가 잇따르면서 이런 주장에 합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1944~75년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후의 퇴보를 가늠하는 가운데 암묵적으로 전후 경제모델을 사회정의의 표준, 즉 '진보주의의 상한선'으로 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970년대 말부터', '좌파의 자유주의화 이래', '1차 석유 파동 이후'…. 이런 친숙한 표현들은 이후 일어난 사회·경제적 후퇴 분석에 전주곡처럼 등장하면서 시장 중심 사고의 타파가 마치 과거의 경제 규제 형태로 회귀하는 것과 동격인 양 기계적으로 간주해버린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가 많은 이로움을 가져왔다고 해도 금융 때문에 변질됐고, 전후 사회적 합의가 균형적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신자유주의로 훼손됐다. 집단적 규율·통제 형태 또한 마을 주민 간 연대의식이 와해되고, 대대적인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68혁명 정신이 확산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프랑스 기업경영인이자 경제학자인 드니 케슬러는 "1945년 상황에서 벗어나고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위원회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는 임무"(경제주간지 <챌린지>, 2007년 10월 4일)를 사르코지 대통령이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수많은 운동가의 반발을 초래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케슬러는 좌파를 보호해야 할 성채이자 소중히 지켜야 할 신화처럼 지목한 것이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사회개혁이 추진된 1940년대 후반, 프랑스도 복지국가 형태를 갖춰나갔다. 노인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고 공공직 개념이 도입됐으며, 근로자 대표제가 부활했고, 대출과 에너지 부문이 국유화됐다. 그러나 당시를 사회적 낙원으로 회고하는 비전은 신기루일 뿐이다. 냉전체제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의 격정은 사회주의 패배와 함께 사그라졌다. 생산수단의 대부분은 여전히 민간 부문이 장악했고,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퀴젤이 지적했듯 "프랑스의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적 또는 조합주의적 성격보다는 신자유주의 성격을 띠게 됐다".(2)

회고는 낙원의 신기루일 뿐

오늘날처럼 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 사이가 아닌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에서 미래가 흔들리던 당시로서는 이런 귀결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퀴젤은 "좌파의 개혁은 프랑스 경제의 통제를 전보다 심화시키고 역동성을 더했지만 그렇다고 더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았다"고 분석한다. 뉴딜정책이 추진되던 시기처럼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 현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1948년 프랑스 정부는 북부와 동부의 광부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탱크를 출동시키기도 했다. 1947년 6월, 뱅상 오리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이렇게 지적했다. "레지스탕스의 최전선에 섰던 노동자 계층은 심도 있는 사회구조 개혁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똑같은 경제 시스템에 사회적 이기주의만 가미됐을 뿐, 자본 및 노동과의 관계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3)

이런 상황은 1968년까지 계속됐다. 1950년대를 이야기할 때면 식민지 전쟁보다도 생활수준 향상이 먼저 생각나며, 화학공장, 항만, 여성이 대거 진출한 식품업의 고된 노동조건보다도 눈부신 경제성장이 더 쉽게 떠오른다. 1962년 프랑스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2100명에 달한다. 이는 2011년의 3배에 달하는 수치로, 물론 경제활동인구는 당시 더 적었다. 1960년대 초 로렌 지방 선재압연공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20세기 초와 다를 바 없었다. 노동자들은 나막신을 신고 있었고, 바닥에 구불구불 무성한 열연코일은 면도날처럼 살을 베기도 했다.

'영광의 30년'은 포클레인과 굴착기, 폐로 흡입되는 석면, 저임금노동자의 시대였다. 또한 인종차별적 노동분업이 지정해준 고된 일에 종사하며 빈민촌에 거주하는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시대였다. 아울러 도덕적 속박과 성적 금기도 이 시대를 대표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노동자들은 '포드주의(Fordism)적 합의'의 혜택을 1968년 이후에나 누릴 수 있었고, 그나마 1975년 이후로는 실업자 증가와 세계적 위기의 영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정작 전후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는 사람들의 애착이 없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경제·도덕·정치 질서는 극단적 비판을 받았고, 상당수 국민은 그런 질서의 밑바탕을 거부하고 그것의 전복을 희망했다.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 즉 자신의 아이들은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영위하리라는 노동자들의 기대는 TV와 현대식 주방이 보급되던 당시 상황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뒤바뀔 수 있다는 신념에 기인했다. 노스탤지어에 빠진 좌파의 모순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그토록 타도하기 원하던 질서를 지금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들 좌파는 금융 무질서를 통제하고 동일 경제체제의 이전 단계로 돌아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에마뉘엘 토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사회당처럼 거대한 정당에서 할 수 있죠."(라디오 <프랑스 앵테르>, 2012년 3월 8일).

탈세계화, 그리고 해외 이전 공장의 복귀라는 제안은 수년 전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4) 그 지지자들은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좌파 진영에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전략을 솔직히 드러낸다.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해체된 무역·금융 규제를 복원하면 숨통을 옥죈 국제경쟁은 완화될 것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진보주의적 결집 여건이 마련되어 장기적으로 새로운 사회관계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사회관계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방식이나 평등한 민주주의의 기틀은 수세대에 걸친 저항세력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모색해온 주제이지만 지금의 복고 열풍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미래는 담대한 진보를 요구한다

탈세계화는 '사회해방'이라는 궁극적 목표와 자동적으로 연계되는 것은 고사하고, 상반된 목적의 정당들이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연장통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서구 노동자는 신흥국가들의 사회적 덤핑으로부터 보호를 받겠지만 고용주에게 종속되어 자신의 노동으로 그들의 배를 불리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국내 계급관계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국제경쟁만 반대한다는 것은 세계화에 적대적 고용자 집단과 광범위하게 결탁하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안방에서 편하게 착취하던 시절, 즉 '영광의 30년'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건설이나 요식업처럼 산업설비 이전이 불가능한 업종에 주력하는 것이다.

확실한 진보주의적 보호주의를 구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주창자들이 노동자들에 의한 기업감독의 필요성을 항상 연관짓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는 노동 여건 악화로 노동자들이 자살함에도 주요 정당들이 망각해온 좌파의 근본적 주장인 것이다. 반면, 사회적 분담금 제도를 확대해 상호부조로 부를 공유하는 방식의 탈세계화가 '신데렐라의 구두'처럼 발에 딱 맞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금융위기로 이념 구도가 재편되고 자유주의 정부들이 자가당착에 빠진 가운데, 좌파는 그 겸양 때문에 쇠약해지고 있다. 좌파는 전후 세계를 개혁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소박한 행복과 화사한 식탁보의 색채로 덧칠했다. 그리고 지금은 우수에 젖은 눈길로 그 화폭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방향, 다른 하늘로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1985년 부르키나파소 혁명의 주역인 토마스 상카라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이렇게 간단히 요약했다. "미래를 창조하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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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1) Simon Reynolds, <복고 마니아: 팝문화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어떻게 재활용하고 있는가?>(르 모 에 르 레스트·파리·2012), 모나 숄레, <치명적 아름다움: 여성 소외의 새로운 얼굴>(라 데 쿠베르트·파리·2012) 제1장 참조.
(2) Richard F. Kuisel, <프랑스의 자본주의와 국가: 20세기의 현대화와 통제주의>, 갈리마르, 파리, p.406, 1984.
(3) Serge Halimi, <좌파가 시도할 때>, 아를레아, pp.431~432, 파리, 2000 재인용.
(4) Frédéric Lordon, ‘탈세계화와 그 적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8월.
(5) Bernard Friot, ‘사회적 분담금, 해방의 지렛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