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없는 외교를 하려 하는가?
프랑스가 ‘잔소리꾼’ 국가로 남기 위하여
“두 번 심사숙고한 후 침묵하라.” 외교관을 위한 격언이다. 이 짧은 말은 국제관계에서 필수적인 이 직업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는 현재 외교관 채용의 문을 넓혀, 외교관을 평범한 직업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 외교는 전 세계에서 그 영향력을 잃을 수도 있다.
외교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긴 직업이다. 그러나 이 직업은 프랑스, 나아가 서방 세계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다. 보통 외교관이라고 하면 우리는 사교계, 호사스러운 생활, 여가 활동을 떠올린다. 초콜릿, 식전주, 자동차, 레스토랑 등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사’라는 이름을 붙여서 광고문구에 사용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이런 경박한 마케팅이 외교관의 이미지를 깎는다. 그래서 우리는 외교관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필요하며 큰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직업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외교부는 시대에 뒤처진 관습을 고수하는 ‘낡은 체제의 요새’일까? 아프리카를 원조하느니 프랑스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의 “잠베지강(아프리카 남부 최대 규모의 강-역주)보다는 코레즈강(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강-역주)”은 더 이상 논의 대상도 아니다. 그런 지금, 대중들은 프랑스 외무부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경찰관, 세무 감사관, 역장이 하는 일은 쉽게 설명할 수 있지만 부영사나 특명전권대사가 하는 일은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외교활동에 세금을 쓴다고? 오늘날 외무부가 명성을 잃어버린 이유는 프랑스와 서구 국가에서 외교활동에 할당된 인원과 예산이 계속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 소속 국가 수는 엄청나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시대 마지막이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유고슬라비아 해체로 끝이 나면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외무부는 해당 부서의 크기를 줄였다. 지난 30년간, 프랑스 외무부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다.(1) 중국이 세계 패권을 쥐고자 하는 야망으로 새로운 대사관의 수를 계속 늘리고 있는 사이, 프랑스 외교 네트워크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예산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지금 시대는 가시성이 아니라 투명성을 요구하며, 공공활동의 비용과 이익을 알기 원한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세계에서 프랑스 같은 국가는 광범위하고 경쟁력 있는 외교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지정학에서는 작은 국가도, 사각지대도 없기 때문이다. 세르비아, 쿠바, 이스라엘, 바티칸이 이를 증명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들 국가들은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더 큰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이 국제관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외교관이 특히 절실한 시대다. 국제관계를 이끌기 위해, 잘 살펴보고 예측하는 인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이다.
앨덴 파일의 실패가 준 교훈
기준과 규범이 과거의 전유물로 보이는, ‘요동치는’ 지금 세상에서 협상은 영원하다. 분쟁을 피하고 종식하기 위해, 법을 재창조하기 위해, 기후, 건강, 에너지와 같은 공공재 사용에 있어 강자의 법칙을 막기 위해 협상은 계속 이뤄진다. 그런데 이런 목적을 위해서는 명확한 지침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대편, 교섭 대상이 누구이며, 그들의 문화와 한계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협상하려는 상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모르는 사람과는 제대로 논의할 수 없다. 관련 국가의 고유한 가치, 신화, 문화를 담고 있는 ‘블랙박스’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렇기에 다국 간 협상도 양자외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상황이 심각할수록, 국가가 취약할수록 ‘파일 시스템’, 즉 기본역량이 없는 외교는 지양해야 한다. 여기서 ‘파일(Pyle)’은 그레이엄 그린의 정치소설 『조용한 미국인(The Quiet American)』의 등장인물 앨덴 파일(Alden Pyle)을 의미한다. 앨덴 파일은 1950년대 전쟁 중 인도차이나로 파견된 젊은 미국 첩보원이다. 그는 베트남어도 프랑스어도 할 줄 모르며, 자신이 마주한 인물들의 정체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전에 구상한 해결책으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고결한 “제3세력”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비극적이었다. 앨덴 파일은 ‘기본 역량도 없이’ 순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부를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다.(2)
그런데, 때로는 소설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다. 『조용한 미국인』이 출판되고 50년이 지난 2003년, 폴 브레머는 이라크에서 미국 행정 당국을 지휘하는 최고 행정관으로 파견됐다. 그가 바그다드에 배치한 요원 중 아랍어를 아는 인원은 고작 3%에 불과했다. 사담 후세인 사망 이후 이라크를 민주화하기 위해 폴 브레머가 택한 가이드북은 1945년 독일과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공무원 개혁, 과연 효율적일까
2022년 1월 1일부로 국립행정학교(ENA)가 폐쇄됐고 공공서비스 국립 연구소(INSP)의 문이 열렸다. 현재 진행 중인 고위 공무원 개혁은, 과연 오늘날 세계에 적합할까? 프랑스 사회가 더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공무원 채용을 민주화하려는 의지는 이런 포괄적인 개혁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국립행정학교 역시 본래 같은 목적을 추구했다. 경쟁시험과 다양한 입학 경로로 문을 열어뒀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채용의 사회적 다양성을 실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양성은 감소했다. 공공서비스 국립 연구소는 더 잘할 수 있을까? 교육기관 15개를 통합하면서 탄생한 이 새로운 기관의 주된 목표는 공직 진출의 “장벽을 부수고” 이를 통해 각각의 부처나 기관 간의 이동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람직한 목표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개혁을 정당화하는 요소 중 하나인 졸업 순위 폐지는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어떤 이들은 이 졸업 순위 시스템 때문에 공무원 경력이 너무 일찍 정해져서 평생 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 삼는 건 독립적인 채용 방식이다. 학생들은 졸업 순위에 따라 자신의 향후 경력을 결정하고 들어가고 싶은 기관을 선택했다. 이렇게 학생들이 자주적으로 자기 경력을 관리하는 방식 때문에 여러 분야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당연히 정치결정권자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과거 정부 부처 공개경쟁제도에서 그랬듯, 행정기관과 고용주들이 나서서 직접 직원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단, 이번에는 전문기관의 보호가 없다. 결국 ‘민주화’라는 명분 하에 현직자들이 신입을 뽑는 시스템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과거에 그랬듯, 사회적 기준이나 추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학연으로 인한 채용과 특권계급의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1946년 이래로 국립행정학교가 추구해온 공무원 지위와 보상을 없애버리고 구시대 프랑스식 체제를 도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이 개혁은 ‘국립행정학교 졸업생’ 인기가 떨어지는 현상, 다시 말해서 공기업과 사기업으로 국립행정학교 학생들이 유출되는 현상을 막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학생들이 공직에서 떠나 사기업으로 가는 현상을 촉진할 위험이 있다.
권력분립 요건 때문에 침범할 수 없는 최고행정법원인 국참사원과 회계법원을 제외하고, 부서별로 이동이 가능한 하나의 국가 행정기관으로 통합될 것이다. 외교 고문과 같은 특명전권공사 직위는 사라질 것이고, 외교관 경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어질 것이다. 1969년 3월 6일 발표된 명령은 “외교 및 영사 직원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했으나 이것도 과거 이야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외교관은 국가 행정관 중에서 채용될 예정이다. 이들은 외교 분야에서 거의 일해본 적이 없거나 외교 분야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다. 물론 도지사, 재무 감사관, 보건부 임원도 훌륭하게 외교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교활동은 그들의 사명이 아니며, 그들이 쌓아온 교양과 문화 양식도 외교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국가와 협상하는 것은 파업자나 시위대와 협상하는 것과 다르다. 영사관 혹은 대사관을 병원처럼 운영할 수는 없다. 외교관이라는 직무는 다방면으로 다양한 활동을 다른 국가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외교관을 한다는 것은 때로는 추방을 각오하고 유목생활을 선택하겠다는 의미다. 외교관은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직접 관찰하기 위해 외국에서 거주하게 된다. 외교관으로서 경력을 쌓는 동안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타국의 언어를 구사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중앙 행정부에서는 외교관이 일할 곳도 거의 없기에, 단기간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위대한 프랑스’는 없다
물론 프랑스는 더 이상 제국 시대의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 프랑스 지위 하락은 현실이다. 그러나 결코 붕괴 수준은 아니다. 이는 ‘다른 국가의 부상’ 특히 오늘날 신흥 국가 발전 때문인데 그동안 프랑스가 원하고 지지해 왔던 일이다. 그러면 1970년대 이후로 여러 차례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프랑스는 중위국이 된 것일까? 프랑스는 현재 190개국 중 6~7위의 경제대국으로 여전히 선진국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프랑스의 이미지가 격하된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위베르 베드린 전 외무부 장관이 했던 다음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프랑스의 영향력은 오늘날 1940년 혹은 디엔 비엔 푸 시대보다 더 적은가?”(3)
산업제품 수출이 경제를 발전시키고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는 독일과는 달리, 프랑스는 소비와 서비스가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킨다. 기업의 해외 이전과 매각은 실업, 국토의 사막화, 거대한 무역 적자를 야기했다. 프랑스 대기업들은 심지어 한동안 공장 없는 산업을 꿈꾸기도 했다. 1989년 나는 멕시코로 떠나기 전, 한 식품생산기업 회장을 만났다. 그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꽤 길게 공장 없는 회사, “건강을 판매할” 회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도 프랑스에는 여전히 탁월한 산업 분야가 존재한다. 명품, 패션, 철도, 원자력, 항공우주, 에너지, 도시교통, 고급식품, 관광 등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유럽연합 국가 중 유일하게 높은 출산율로 역동적인 인구 구성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이며 유럽연합(EU) 창립국이자 핵보유국이다. 그래서 “2등급 티켓으로 1등급 여행을 원하는 국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영향력이 중위국이나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볼 순 없다. 프랑스는 프랑스어권을 넘어, 지중해 국가들 및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잘 보호해온 역사유산을 통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왔다. 소설가 장 지로두의 말을 빌리자면, “프랑스는 전 세계의 잔소리꾼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4)
이런 운명은 ‘참견쟁이’ 집단을 통해 확실하게 실현된다. 참견쟁이란, 끊임없이 반응하고 혁신하는 외교관이다. 잔인한 현시대에 적합한 대안을 제안하고 이런 대안을 동맹국에 알려주며, 적대적인 국가에도 공유하는 외교관이 필요하다.
글·알랭 루키에 Alain Rouquié
전 프랑스 외교관. 저서로 『외교관의 종말(La Fin des diplomates)』(뤼 드 센 출판, 2023년)이 있다.
번역·이정민
번역위원
(1) Jean-Pierre Grand, André Vallini, <외교, 국방 및 군사위원회가 작성한 외교관 직원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 국회, 파리, 2022년 7월 13일.
(2) Graham Greene, 『The Quiet American』, Penguin books, 런던, 1955.
(3) Hubert Védrine, 『Les cartes de la France à l’heure de la mondialisation. Dialogue avec Dominique Moïsi 세계화 시대의 프랑스 지도. 도미니크 모이시와의 대화』, Fayard, 파리, 2000.
(4) Jean Giraudoux, 『L’impromptu de Paris 파리의 즉흥극』, Grasset,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