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 질환은 민간병원, 중증질환은 공공병원에
부족한 재원과 공공 안전을 우선시하는 접근법
정신질환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정신질환자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학파와 정신분석학적 접근 방식을 지양하고 증상 치료에 전념하는 프로토콜을 지향해야 한다는 학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편, 프랑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런 설전을 뛰어넘는 냉혹한 논리가 펼쳐진다. 민간 병원이 ‘돈벌이가 되는’ 질환을 담당하는 동안 갈수록 재원 부족에 시달리는 공공 병원은 중증 질환을 떠맡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838년 각 도(département)마다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는 전담 시설을 개설하도록 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근대 정신의학이 탄생했다. 그전까지 프랑스는 정신질환자를 온갖 범죄자, 부랑자, 빈민 혹은 장애인과 함께 수용했다. 하지만 필리프 피넬, 장에티엔 에스퀴롤을 필두로 한 정신의학 선구자들의 희망은 이내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이런 형태의 정신병원은 무엇보다 정신질환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강제입원 명령이 내려진 환자만 입원할 수 있었으며 일단 입원한 환자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대부분 병이 악화됐다.
‘가두는 곳’에서 ‘치료하는 곳’으로
1925년, 언론인 알베르 롱드르는 『광인들의 병원(Chez les fous)』(Arléa, Paris, 2009)에서 “1838년 법은 정신질환을 치료해 환자를 낫게 할 목적이 아니라 사회가 정신질환자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에 근거해 제정됐다”라고 서술했다. 치료 수단도 열악했으며 최악의 경우 냉수 샤워, 구속복, 인슐린 혼수 요법, 말라리아 요법, 뇌엽절리술, 간질 유발 등 가학적인 치료법도 동원됐다. 2차 세계 대전 중 이런 수용소 형태의 정신병원에서 약 5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자, (1) 프랑스는 이런 정신병원 모델을 포기했다.
1960년, 프랑수아 토스켈, 뤼시앵 보나페를 비롯한 ‘비격리주의(Désaliéniste)’ 정신의학자들의 주도로 프랑스 전역을 인구 7만 명 단위로 나눠 입원 병상과 통원 치료 시설을 갖추는 정신병원 세분화가 추진됐다. 이 제도의 목표는 더 쉬운 접근과 통원치료, 그리고 ‘정신병자’라는 낙인을 없애는 것이었다. 즉, 환자의 사회·직업적 재활을 중시하는 정신의학의 발전이었다. 또한 정신병(정신분열증, 편집증) 혹은 중증 기분 장애(과거 조울정신병으로 불리던 양극성 장애)와 같은 만성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일지라도 장기 입원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런 정신의학의 진화는 두 가지 결정적인 변화 덕분에 가능했다.
우선, 1946년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입원비 부담 감소다. (공공질서 유지 명목으로 도지사가 직권으로 결정하는) 강제 입원이 아닌 자발적 입원의 경우에도 말이다. 다음으로, 1950년대 이후 효과적인 향정신성 약물의 발견이다. 그전까지는 정신질환의 세계에 갇혀 있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이다. 언어치료, 통원치료, 환자 전용 숙소 및 고용 보호 조치를 통해 심리적·사회적 재활이 가능해졌다. 이런 ‘비격리주의’ 운동은 또한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적용했으며 1960년대 이후 제도적 심리치료라는 이름으로 불린 치료 관행을 도입했다.
치료 관행의 변화로 공공 안전에 중점을 둔 정신의학이 크게 후퇴하고 마침내 치료에 중점을 둔 정신의학이 자리를 잡았다. 1952~1988년, 강제 입원율은 63.4%에서 3%로 급감한 반면, 자발적 입원율은 7.8%에서 74%로 급증했다. 입원 병동 형태도 변했다. 1986년, 환자 10명 중 9명이 개방 병동에 입원했다.(2) 수용시설 형태의 정신병원 모델에서 탈피한 후 병상 수도 1975년 12만 2,432개에서 2016년 4만 1,177개로 감소했다.(3)
변화의 바람, 재정 악화를 부르다
1980~1990년대 들어서 공공 서비스에도 민간 기업의 규칙을 적용하는 ‘신 공공관리론’이 등장하며 공공 정신병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치료도 마치 공산품처럼 ‘생산’하는 기업화된 병원 모델이 대세로 떠올랐고 ‘저비용 고효율’, ‘무결점 운동’ 등의 목표가 수립됐다. 이런 병원들은 1960년대 지역별로 세분화된 공공 정신병원이 담당하지 않는 수면 장애, 중독, 자살 충동 등의 증상을 다루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위 다영역 서비스는 병원의 이미지를 개선했으며, 공공 서비스의 제약에서 자유로웠다. 그런 한편, 갈수록 기본 임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공공 정신병원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 결과 악순환이 발생했다. 만성 정신질환자는 제대로 모니터링되지 않고 심지어 방치됐다. 치료가 중단된 만성 질환자는 더 심각한 보상기능상실(decompensation) 상태에 이르렀다. 공공 정신병원이 더 이상 만성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제어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을 돌보기 위해 또 다른 다영역 서비스(집중 치료 시설, 고 위험성 환자 치료 시설)가 도입됐다. 그 결과 공공 정신병원의 재정은 더욱 악화됐다.
이와 동시에 기본권 보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정신질환자들은 강제 입원에 관한 법률 강화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90년 6월 27일 법, 그리고 특히 강제 입원 시 자동적으로 판사의 심사를 거치도록 한 2011년 7월 5월 법 적용 이후, 강제 입원율은 1986년 12.7%에서 2015년 24%로 증가했다.(4) 2011년 법은 또한 강제 통원 치료를 도입해 정해진 진료 일정을 준수하지 환자는 강제로 재입원시키도록 했다. 그 결과 정신 치료보다 행동 감시에 더 가까운 관행이 확립됐다. 의사는 환자가 치료 계획에 동참하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강제 재입원 위협만 무한반복하게 됐다. 또다시, 치료의 논리는 공공 안전의 논리에 밀려 후퇴했다.
프로이트를 둘러싼 ‘정신의학 전쟁’
영미권 국가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미 정신분석학을 계승한 정신 역학적 접근법과 인지주의 혹은 신경과학에 기반한 모델이 팽팽히 대립하는 “정신의학 전쟁”이 벌어졌다. 이 어처구니없는 다툼은 이후 프랑스에서도 벌어졌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절정에 달했다. 후자를 지지한 이들은 프로이트주의를 전적으로 배척하고 자칭 과학적인 정신의학 확립을 추구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프로이트에 대한 개인적인 적개심을 쏟아낸 글들을 모은 졸작 『정신분석 흑서(Livre noir de la psychanalyse)』는 이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미셸 옹프레는 『우상의 추락(Crépuscule d’une idole)』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부르주아였으며 쾌락주의자, 염세주의자 그리고 철학자였다고 비판했다(정작 옹프레 본인도 철학자였다). 소피 로베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벽(Le Mur)>은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애석하게도 부인할 수 없는) 무지를 신랄하게 조명했다.(5)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과학적인 정신의학의 정확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데이터 메타분석(meta-analysis)을 통해 얻은 상관관계에 기초한 ‘근거중심의학(EBM)’은 직관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표준화된 관행을 낳았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1980년대 수립한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최신 개정판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정신의학적으로 접근한다.(6)
‘행복 경제학’과 통상적인 경제학의 영향을 받은 정신의학 정책에 힘입어 인지행동치료(CTB)가 유럽 전역에 확산됐다. 증상에 초점을 맞춰 프로토콜화된 인지행동치료는 강박장애 등 부적합한 행동 및 이를 강화하는 학습 교정을 목표로 했다. 인지행동 치료는 정신분석학적 치료보다 빠르고 능률적이며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엄격한 메타분석에 따르면 “다른 치료법에 비해 특별히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밝혀졌다.(7) 또한 정작 인지 및 행동적 차원보다 “치료사와 환자 사이에 형성된 관계의 정서적 차원”(8)이 인지행동 치료의 효율성을 좌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성 정신질환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니라 보완해야 하는 장애로 취급하는 경향도 문제였다. 이로 인해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임무는 일반적으로 정신병원보다 전문성이 낮은 인력(교육 보조원, 교육 모니터요원, 간병인)과 열악한 재원을 보유한 사회보장 의료 분야에 위탁됐다.
‘체계적 학살’의 희생자, 공공 병원
퐁다망탈(FondaMental) 재단은 이런 정신의학 치료 개편의 선봉에 섰다. 2007년 연구부가 설립한 이 재단은 신속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센터’ 개설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표지를 발견하기 위한 연구도 장려한다. 정신의학계 제일인자들이 모인 이 재단의 후원사 및 협력사로는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존슨의 제약 부문 계열사인 얀센 프랑스, 사노피, 세르비에, 로슈를 비롯한 제약회사 등이 있다. 또한 클리네아, 독티시모 등의 정신의학 클리닉, 부이그, 피노가의 지주사인 아르테미스, 다소 등의 기업 그리고 몽테뉴 연구소 등이 있다.
과학계의 공식적인 담화는 공공 정신의학에 할당된 예산 삭감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 그 사이 근무조건이 심각하게 악화된 정신병원은 인력 이탈 현상을 겪고 있다. 정신의학자 다니엘 자귀리는 “체계적인 학살”(9)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수익성이 있는 치료는 민간 시설에 일임하고 정작 고사 중인 공공 병원은 중증 환자 혹은 치료비를 낼 능력이 없는 환자만 수용하거나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고 토로했다.
입원 환자들이 증언한 정신병원의 실태는 밀로스 포만 감독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1975)를 연상시킨다.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한 마리우스 조프레는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알코올 중독 합병증을 예방한다는 터무니없는 구실로 25년간 강제 입원됐었다. 포이트리 슬램(Poetry slam, 행동과 몸짓으로 하는 현대시)의 공연자인 트레즈는 오랫동안 향정신성 약물에 취해 살았는데, 운 좋게 ‘일시적 치료 중단’을 겪은 후 오히려 상태가 개선되는 것을 느꼈다.(10) 이런 증언들은 관계 치료, 간호 인력, 그리고 협업을 보장하고 공공 안전에 치우친 접근법에 저항하는 제도적 사고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방증이다.
또 다른 우려도 존재한다. 앞으로는 일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정신병, 양극성 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의 정신병리 진단을 알고리즘이 담당할 것이다. 또한 ‘빠른 치료가 최선의 치료’라는 교리에 따라, 사회가 시인이나 거리 예술가, 반항적인 청소년의 신경을 마비시킬 것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있음에도 말이다.
글·에마뉘엘 베네 Emmanuel Venet
작가, 정신의학자. 최신 저서로 『La Lumière, l’encre et l’usure du mobilier 빛, 잉크 그리고 마모된 가구』(Gallimard, Paris, 2023), 『La Sainte-Recommence 신성한 일과』(AEthalidès, Lyon, 2023)가 있다.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Isabelle Von Bueltzingsloewen, 『L’Hécatombe des fous 광인 대학살』, Aubier, Paris, 2007.
(2) Marcel Jaeger, 『La Psychiatrie en France 프랑스의 정신의학』, Syros, Paris, 1989.
(3) ‘Organisation et fonctionnement du dispositif de soins psychiatriques 정신의학 치료 시스템의 구조 및 운영’, 제2부, 사회보장감찰총국(IGAS), Paris, 2017년 11월, https://www.igas.gouv.fr
(4) Marcel Jaeger, op. cit. Cf., Magali Coldefi, 『La Prise en charge de la santé mentale, recueil d’études statistiques 정신건강 관리 책임, 통계 연구 모음집』,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2007, Magali Coldefi, Sarah Fernandes & David Lapalus, ‘Les soins sans consentement en psychiatrie : bilan après quatre années de mise en œuvre de la loi du 5 juillet 2011 정신의학에서의 환자 비동의 치료: 2011년 7월 5일 법 시행 4년 후 종합 평가’, <Questions d’économie de la santé>, Paris, n° 222, 2017년 2월호.
(5) Caroline Meyer 외 공저, 『Le Livre noir de la psychanalyse. Vivre, penser et aller mieux sans Freud 정신의학 흑서. 프로이트 없이 생활하고, 생각하고, 호전되기』, Les Arènes, Paris, 2005 ; Michel Onfray, 『Le Crépuscule d’une idole. L’affabulation freudienne 우상의 추락. 프로이트 학파의 억측』, Grasset, Paris, 2010 ; Sophie Robert, <Le Mur. La psychanalyse à l’épreuve de l’autisme 벽. 자폐증이라는 시험대에 오른 정신분석학>, Océan Invisible Productions, 2011.
(6) Gérard Pommier, ‘Le DSM, bible de la santé mentale 병명을 제조하는 자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1년 12월호.
(7) Thomas Rabeyron, ‘Du néolibéralisme au Tsunami Cognitivo-Comportemental en Grande-Bretagne. Est-il encore temps pour la France d’éviter la catastrophe britannique? 신자유주의를 지나 인지 행동 쓰나미가 강타한 영국. 프랑스가 영국의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는가?’, <Recherches en psychanalyse>, Paris, vol. 28, n°2, 2019.
(8) Pierre Prades, ‘L’efficacité des thérapies ‘‘psychodynamiques’’: une validation empirique de la psychanalyse “정신역동적” 치료의 효과: 정신분석학의 경험에 의존한 검증?’, <Revue du Mauss>, Paris, vol. 38, n°2, 2011.
(9) Daniel Zagury, 『Comment on massacre la psychiatrie française 프랑스 정신의학은 어떻게 학살당하고 있는가』, L’Observatoire, Paris, 2021.
(10) Marius Jauffret, 『Le Fumoir 흡연실』, Anne Carrière, Paris, 2020 ; Treize, 『Charge 책임』, La Découverte, Paris,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