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의 딜레마, 친서방 노선에 국민들은 중립 요구

2023-06-30     글렌 존슨 l 기자

몰도바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큰 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다. 몰도바 정부는 러시아가 몰도바의 안정을 위협한다고 비난하며 유럽-대서양 진영과의 군사협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몰도바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이런 정책은 러시아군이 주둔 중인 분리주의 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 공화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이 있다.

 

“금일 주요 뉴스입니다. 몰도바산 가금류와 알류의 유럽 수출로가 열렸습니다.”

<몰도바 제1 공영 방송> 스튜디오. 엘레나 반실라 앵커가 저녁 뉴스 헤드라인 스크립트를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이날 뉴스는 몰도바 동쪽, 드니스트르 강과 우크라이나 국경 사이에 위치한 친러 분리주의 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 공화국 당국의 발표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트란스니스트리아 지도자들을 겨냥한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암살 음모를 저지했다고 발표했다. 반실라 앵커는 뉴스 시작 전 취재진에게 “그 발표는 거짓 정보로 판단되므로 보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밝혔다. 한편, 편집국의 한 기자가 온라인 게시를 준비 중인 한 영상의 도입부에서 ‘부패척결’ 판사들이 한 ‘범죄조직’으로부터 약 5만 유로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 현금은 야당이 주도하는 거리시위 지원자금이었다고 한다. 

접경국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은, 몰도바에 쿠데타와 불안정화 책동에 대한 소문을 확산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몰도바의 균열, 러시아와 서구가 몰도바에서 벌이는 영향력 다툼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몰도바는 1991년 8월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줄곧 분리독립 위협에 시달렸다. 1990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독립을 선언했다. 1992년, 수도 키시나우의 중앙정부는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에는 러시아군이 주둔하며 친러 성향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을 보호하고 있다. 튀르키예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몰도바 남부 가가우지아 지역 역시 강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이 지역은 5월 14일 친러 성향의 주지사를 선출하며 친러 노선을 명확히 드러냈다. 

 

“모든 시위는 반역행위가 돼버렸다”

2020년 11월, 마이아 산두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전체 유권자의 약 16%에 속하는 해외 몰도바 교민은 대대적으로 그를 지지했다.(1) 이후 몰도바 중앙정부는 친유럽 노선으로의 전환을 강경하게 추진 중이다. 48세에 대선에 출마한 마이아 산두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 강화, 그리고 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산두는 2차 투표에서 57%의 지지를 얻고 친러 성향의 현직 대통령 이고르 도돈 사회당 후보를 제쳤다. 2022년 5월, 도돈 전 대통령의 “반역”, “소극적 부패”, “범죄조직을 통한 정당 재원 조달”, “부정 축재”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도돈 전 대통령은 구속을 거쳐 2022년 11월까지 가택연금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몰도바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심각한 위기에 빠뜨렸다. 3월 12일, 전국 각지에서 온 수천 명의 시위대가 스테판 셀 마레 대로에 다시 집결했다. “마이아 산두를 타도하라!” 시위대는 몰도바 국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쳤고, 경찰들은 의회 진입로를 봉쇄했다. 2022년 가을 이후 수도에서 열린 다른 시위들처럼, 이번 시위의 배후도 해외 도피 중인 과두정치가 일란 쇼르였다. 쇼르는 2012~2014년 몰도바의 3개 주요 은행에서 벌어진 10억 달러 횡령에 가담한 몰도바 신흥재벌로 궐석 재판에서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스캔들은 몰도바 사회에 강한 분노를 일으켰으며,(2) 산두 대통령 당선의 토대가 됐다. 

이스라엘로 도피한 쇼르는 이제 몰도바에서 고조되고 있는 사회적 분노를 이용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몰도바 정부는 쇼르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재정적, 조직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비난한다. 지난 2월, 산두 대통령은 외국(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러시아, 벨라루스) 국적 선동가들이 시위에 잠입해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우크라이나 정보국이 사전에 파악해 몰도바 당국에 통보했다고 발표했다.(3) 키시나우 공항에서 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용병이 체포되는 사건 등 우려스러운 징후들이 이 가설을 뒷받침했다. 

그럼에도 반(反)산두 시위대의 불만은 여전히 정당성을 띠고 있다. 평생 농장에서 일한 58세의 알렉산드루는 “정부는 우리가 돈에 매수돼, 러시아를 위해 시위를 벌인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우리의 말에 귀를 닫고 소통을 거부한다. 물가는 비싼데, 나는 직장도 아무 소득도 없다. 연금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한탄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몰도바는 공급망 차질과 연료 가격 상승에 극도로 취약하다. 인플레이션이 34%에 달한 지난해, 몰도바는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였다. 2022년 말 국제공화주의연구소(IRI)의 설문조사 결과,(4) 몰도바 국민의 57%가 우선 현안으로 꼽은 것은 생계문제였다. 외부 분쟁, 전쟁, 안보는 8%에 불과했다. 하지만 산두 정부는 모든 비판을 무마하려는 듯 보인다. 몰도바 사회학자 비탈리 스프린세아나는 “우리는 입장의 첨예화를 목도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모든 반대파가 러시아의 앞잡이라고 주장하며 시위대를 러시아 스파이로 매도한다. 마치 모든 시위는 반역행위가 된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몰도바 정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했다. 그다음 날, 몰도바 정부는 러시아군 철수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권 존중을 촉구하는 한편, 몰도바 헌법에 명시된 중립성을 재확인하며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긴장 고조를 억제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지도자들도 분쟁의 전염을 우려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 달 후 상황이 악화됐다. 러시아군이 오데사를 겨냥하자 몰도바 정부는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의 합류 가능성을 우려했고, 트란스니스트리아 당국은 우크라이나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예방 작전을 펼칠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민의 60%, “중립만이 살 길이다”

러시아는 오데사를 공격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였지만 몰도바 당국은 여전히 안보 문제로 고심했다. 2023년 1월, 산두 대통령은 미국 일간지 <폴리티코(Politico)>와의 인터뷰에서 “(몰도바가) 독자적인 방어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더 광범위한 동맹의 일원이 돼야 하는지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라고 밝히면서도 러시아뿐만 아니라 일부 몰도바 국민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직접 거론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산두 대통령은 또한 중립국 지위 포기는 “민주주의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IRI가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몰도바 국민의 60%는 여전히 중립성이 몰도바의 안보를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몰도바 정부 내에 존재하는 금기는 이미 깨지고 있다. 2022년 11월 15일, 도린 레치안 당시 몰도바 대통령 안보 수석은 미국과 독일 대사가 참석한 국방위원회에서 “헌법에 명시된 중립성이 무방비 상태 유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몰도바는 국방 투자를 확대하고 더 큰 규모의 방위 인프라에 속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의 행보를 모델로 한 NATO와 몰도바 간 협력 강화에 가장 우호적인 서구 국가 중 하나다. 2022년 5월,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몰도바가 NATO의 기준에 부합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같은 시기에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EU 가입 후보국 지위를 부여한 EU는 5월 초 4,000만 유로의 신규 군사 원조를 약속했으며 6월에는 유럽평화기금(EPF)을 통해 같은 금액의 지원금을 제공했다. 

몰도바의 유럽-대서양 동맹 구조 편입이 구체화되자, 러시아의 내정 간섭 퇴치 움직임도 강화됐다. 2022년 6월, 산두 몰도바 대통령은 러시아 TV 뉴스 및 방송의 방영을 금지하는 정보 보안법을 공포했다. 이 법은 또한 몰도바에서 방영되는 콘텐츠의 50%는 EU, 미국 또는 유럽 평의회의 ‘초국경 TV에 관한 유럽 협약’을 비준한 기타 국가들의 방송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2017~2021년, 미 국무부는 ‘시민사회 단체와 (...) 미디어’에 약 1억 달러를 지원했다. 몰도바는 러시아 영향력 대응 기금의 첫 수혜국이다.(5) 크렘린 궁은 몰도바 정당들에 자금을 지원하며 보다 비공식적인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고 있다. 소련 시절의 향수와 러시아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는 입지를 잃고 있다. 

2월 18일 도린 레치안이 총리로 임명되며 몰도바의 안보 정책은 한층 더 강경해졌다. 레치안은 총리 취임일 한 공영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공 방어 시스템 구축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대공 방어 시스템을 획득하기 위해 모든 우방국을 방문할 것이다. (...)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사회 불안정화, 공공질서 유린, 국가 기관들에 대한 공격, 하이브리드 전쟁, 허위 정보 유포, 사회적 불안감 상승, 민족 간 혐오와 같은 다른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몰도바의 정체성을 루마니아와 동일시하는 몰도바 정부의 민족주의(6)는 오히려 민족 간 혐오의 불씨를 지폈다. 2023년 3월 16일, 몰도바 의회는 몰도바의 공식 언어를 ‘몰도바어’ 대신 ‘루마니아어’로 지칭하는 헌법 개정안을 채택했다. 베네치아 위원회(독립적인 헌법 전문가로 구성된 유럽 평의회 자문 기구)는 또 다른 우려의 원인을 지적했다. 산두 대통령은 정보국(SIS)의 특권을 도청과 감시까지 확대했다. 이로써 범죄 수사와 정보 당국의 수사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정보국이 대통령실에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7)

그 사이, 미국 사이버 사령부 사령관인 윌리엄 J. 하트만 장군을 비롯한 다수의 미국 안보 관계자들이 몰도바를 방문했다. 지난 3월 15일에는 로라 쿠퍼 미 국방부 러시아·우크라이나·유라시아 담당 차관보가 포함된 사절단이 몰도바 수도 키시나우를 찾았다. 작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재개한 미국-몰도바 전략 대화의 일환인 이 사절단의 방문을 기념해 미 공군의 재즈 밴드가 몰도바 전역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1950년대, 루이 암스트롱, 튜크 엘링턴과 같은 재즈 뮤지션들이 전 세계를 돌며 미국 문화를 선전하는 사절단으로 활약한 바 있다. 과연, 군인 밴드의 이름 없는 뮤지션들도 몰도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글·글렌 존슨 Glen Johnson
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Andrew Wilson, ‘Separate ways: Contrasting elections in Georgia and Moldova’,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0년 11월 19일, www.ecfr.eu
(2) Julia Beurq, ‘Un milliard disparaît de Moldavie 도둑들이 활개 치는 몰도바 대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10월호.
(3) ‘Russia’s security service works to subvert Moldova’s pro-Western government’, <Washington Post>, 2022년 10월 28일. 
(4) Public Opinion Survey: Residents of Moldova | 2022년 10월-11월, <IRI>, Washington, 2022년 11월 9일.
(5) ‘Information Report: Countering Russian Influence’, 미 국무부 감찰국(OIG), 2022년 12월. 
(6) 몰도바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 참조. Loïc Ramirez, ‘Transnistrie, vestige d’un conflit gelé 트란스니스트리아, 종결된 갈등의 흔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월호. 
(7) ‘On the draft on the intelligence and security service, as well as on the draft law on counterintelligence and intelligence activity’, 베네치아 위원회 보고서, Strasbourg, 2023년 3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