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뉴스를 금지하다?

2023-06-30     피에르 랭베르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1973년 6월, 프랑스의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텔레비전 뉴스는 프랑스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공사(ORTF)에 소속된 세 채널에서 방영되는 정시 뉴스들뿐이었다. 당시 정시 뉴스 프로그램은 매일 오후 1시, 8시, 11시에 방영됐으며, 특히 11시 뉴스가 끝난 뒤에는 그날의 방송 신호 송출도 함께 종료되곤 했다.

물론 뉴스 방송 외에도 시사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제1채널에서는 건축 등으로 주변의 미관이나 풍경이 훼손되는 사례를 고발하는 <일그러진 프랑스(La France défigurée)>, 제2채널에서는 영화 토론 방송의 시초나 다름없는 <스크린 파일(Les dossiers de l’écran)>, 제3채널에서는 주간 르포 방송 <Magazine 52>가 방영됐다. 

 

우리는 정보를 더 잘 얻고 있는가?

전 채널을 아울러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뉴스·시사 프로그램의 총 방영시간은 평균 75시간 남짓하며, 지역방송을 포함하면 약 85시간 정도였다.(1) 출판 언론은 시사 문제에 대한 전망과 분석을 내놓을 수 있었던 데 반해, 방송 언론계는 정치권의 엄중한 감독 하에 시사를 ‘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그로부터 50년 동안 프랑스의 언론 시장은 자유화됐고 공영 방송사의 독점은 무너지고 말았다. 지상파 디지털 방송의 확대로 현재 프랑스에는 약 30개의 전국방송 채널이 무상 송출되고 있으며, 그중 5개 채널 <LCI>, <CNews>, <BFM>, <France 24>, <Franceinfo>에서 24시간 뉴스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 채널들이 단 하루 동안 송출하는 뉴스의 총량은 ORTF의 한 달 송출량보다 많다. 뉴스들이 초 단위로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1980년 미국의 뉴스전문채널 <CNN>이 설립된 시기부터 이른바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가 돼버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실시간’ 뉴스는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도 성공했다. 이제는 언제든지 주머니에서 뉴스를 꺼내 볼 수 있다. 방송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정보를 예전보다 더 잘 얻고 있는 걸까?

 

어떤 전쟁은 ‘인기’가 없다

분할된 화면, 전문가들의 한담과 정치인들의 설전, 토론을 흉내 낸 갑론을박, 맥락 없이 이어지는 생중계, 우주가 폭발이라도 하는 듯 강조되는 잡다한 소식들, 금지처분명령에 대한 즉각 대응,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문장들의 세세한 편집과 관련 댓글의 자막화 등 언론계에서는 저가의 방송 형식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2) 그로 인한 폐해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24시간 뉴스가 예상보다 더 자주 뉴스거리를 직접 생산하며 ‘프레임’을 강화한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시청자들에게 정보가 아닌 모호한 이미지와 말을 쏟아내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들, 2020년의 공중보건 위기 사태, 그리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는 동안, 프랑스의 대표적인 24시간 뉴스채널 <LCI>, <i-Télé>(현재의 <CNews>), <BFM>은 시청자와 영향력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정치·과학·군사 분야의 인사들은 본래 관심조차 없던 사안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군가의 견해를 치켜세워달라는 독촉과 스튜디오 방송의 달콤한 독배 앞에서, 언론사들의 지시에 순종하고 있다. 

자료조사보다는 분장에 더 공을 들이는 이 ‘비선출 집단’은 결정권자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 집단은 생방송 표시를 배경으로, 대(對)러시아 제재를 강조하고 보건문제에 대해 더욱 강경한 명령을 요구한다. 그리고는 시위참가자들의 ‘폭력성’을 규탄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팔릴 만한 주제들과 그렇지 않은 주제들을 선별한다. 일례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자, 예멘 전쟁은 후자에 속한다. 

지난 2월 10일부터 27일까지 <BFMTV> 채널을 보자. 프랑스 코미디언 피에르 팔마드의 교통사고 소식은, 같은 시기에 일어난 튀르키예 대지진(사망자 5만 6,000명, 부상자 10만 5,000명 발생) 관련 뉴스 대비 10배, 프랑스 연금개혁 뉴스 대비 2배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3) 언론매체가 직접 ‘뉴스거리’를 선정하고 생산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CNews>나 <BFM> 등 24시간 뉴스 채널에서 주로 집중하는 것은 ‘시청률’을 올리는 ‘호기심’이라는 상품이라는 데 있다.

 

“나는 내가 왜 촬영하는지 몰라”

‘시청’에 그친다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의 차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4시간 뉴스 채널들의 폐해는 ‘실시간’이라는 요소가 판을 지배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실시간은 뉴스 채널을 구성하는 원칙 그 자체다. 그러나, 인간의 어떤 시스템도 뉴스처럼, ‘실시간’으로 가동되지는 않는다. 국회의 회기, 군중집회, 군사분쟁, 직장생활, 학교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행동과 생각, 작업과 휴식, 노력과 준비, 공격과 소강, 그리고 열망과 회피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나 24시간 미디어는 이런 세상에 멈추지 않는 자신들의 시계를 강요한다. 팩트와 이미지와 글자를 쉬지 않고 쏘아대며 시청자들을 데이터의 홍수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제대로 얻으려면 이 시곗바늘을 잠시 멈춘 채 의견을 교환하고, 글을 읽고, 다가올 일을 전망해봐야 한다. 제자리에 멈춰 사유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언론인들조차 사유할 시간이 없다. 그저 정보를 긁어모으느라 바쁠 따름이다.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인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도 이런 정체성 상실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미국 방송국 소속으로 멕시코에서 일하던 친구가 있다. 언젠가 길 한복판에서 그 친구를 마주쳤는데, 그는 어떤 학생 무리와 경찰들의 대치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야?’라고 묻자 그는 촬영을 계속하며 ‘전혀 몰라’라고 답했다. ‘난 촬영할 뿐이야. 이미지를 뽑아내는 데만 집중하는 거지. 내가 촬영한 자료를 보내주면, 그걸로 무엇을 할지는 방송국에서 정해.’”(4) 

 

저질 정보의 과잉 생산, 책임은 누구에게?

결과적으로 방송 매체의 다원주의는 ‘부족에 따른 검열’에서 ‘과잉에 따른 검열’에 이르게 됐다. 1962년, 미국의 사회학자 버트럼 그로스는 관리자의 뇌에 혼란을 일으키는 ‘정보 과잉’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지나치게 많은 데이터는 결정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미국에서는 텔레비전 채널들이 급증했고 엘빈 토플러는 저서 미래의 충격』(1970)에서 미국 국민들이 뉴스 과잉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적었다. 산적한 정보들은 혼란과 고통만 줄 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1990년대에는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솅크가 ‘정보비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식단을 조절해 다이어트를 하듯 정보 역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과거 영양실조로 대표되던 국가적 식이영양 문제가 이제는 비만으로 바뀐 것처럼, 심리적·사회적·정치적 차원에서의 주요 문제 역시 정보의 결핍에서 정보의 과잉으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5)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방송 시스템이 디지털화되고 채널 개수가 급증함에 따라 대중의 관심 -한정적 자원이 돼버린- 을 사로잡기 위한 전쟁이 만연하기 시작했고, 그 지휘권은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에게 넘어갔다. 이에 국회의 공식문건, 경영, 컨설팅 어디에서나 쏟아지는 데이터로 뇌가 포화상태에 빠지는 것을 경고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6) 하지만 단 한 분야는 예외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저질 정보의 과잉 생산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 온라인으로 게시되는 기사 중 64%가 다른 사이트의 글을 복사-붙여넣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쟁이 낳은 폐단이 아닐 수 없다.(7) 그러나, 정보비만의 원인인 이른바 고지방 정보를 파는 언론계는 오히려 그 책임을 소비자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프랑스 앵테르>의 한 비평가는 피에르 팔마드 사건과 관련된 언론 보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보고 싶지 않다면 채널을 돌리면 된다”라고 꼬집기도 했다(2023년 2월 21일 방송). 하지만 24시간 뉴스 채널들이 끝없이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각 개인이 태도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공급을 막아야 할 때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

 

다시금 강조되는 공정보도의 원칙

최근 리마 압둘 말락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CNews>와 <C8>에 대해 송출권이 갱신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내비쳤다. 다소 갑작스럽지만 극우 성향의 억만장자 뱅상 볼로레가 소유하고 있는 이 뉴스 채널들의 다원주의 원칙 위반을 우려한 것이다. 뒤이어 다수의 좌파 위원들이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8) 아직 부분적이고 일방적인 조치지만, 점차 광범위한 제안들로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실시간 TV의 코미디 같은 행태가 공공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차기 대선 후보들은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공영채널을 제외한 모든 24시간 뉴스 채널의 전면 금지안에 합의할 수도 있다.

‘미디어의 다원주의’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던 1990~2000년대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일이지만, 이제는 민주주의를 위한 방송 금지도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2월에는 유럽연합이사회가 러시아의 방송 채널인 <RT>와 <스푸트니크(Sputnik)>에 대해 송출 금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배경을 마련하고 정치를 함께 생산할 뿐만 아니라 고유의 속도에 맞추어 이를 알리는 것은 남은 뉴스 채널들의 몫이 될 것이다. <프랑스국회방송(LCP)>이나 

<미국국회방송(C-SPAN)>이 그러하듯 국회 회기, 국정조사, 정치·협회·조합 대표자들의 담화 등을 방영하고 군중집회 및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채널에는 무엇보다도 ‘공정성의 원칙’이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 미국에서 1949년부터 1987년까지 이미 시행되기도 했던 이 공정보도원칙에 따르면 미디어 매체는 여러 견해가 대립될 수 있는 공익과 관련된 쟁점을 다룰 경우 다양한 관점을 공평하게 소개해야 한다.(9) - 비록 이론의 여지가 있는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말이다. - 이것이야말로 각 개인의 지성에 거는 일종의 도박이자, 뉴스 방송 생태계가 정립될 수 있도록 하는 발걸음이 돼줄 것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보희
번역위원


(1) 프랑스국립시청각기구자료실(Inathèque), 특히 델핀 카시만(Delphine Cassiman)의 연구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음.
(2) Sophie Eustache, ‘Les recettes de l’information en continu 24시간 뉴스 채널의 수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1년 4월호. & Marc Endeweld, ‘Des chaînes “tout info” bien peu dérangeantes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뉴스 전문’ 채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7년 6월호.
(3) <Europresse>의 발표 수치.
(4) Ryszard Kapuściński, ‘Les médias reflètent-ils la réalité du monde ? 미디어는 세상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9년 8월호.
(5) David Shenk, 『Data Smog : Surviving the Information Glut』, Harper Collins, New York, 1997.
(6) Ludovic Haye, ‘Face à l’explosion des données : prévenir la submersion 데이터 폭발에 맞서 : 침몰에 대비하라’, <Notes scientifiques de l’Office>, no.26, Assemblée nationale-Sénat, 2023년 1월; Caroline Sauvajol-Rialland, ‘Infobésité, gros risques et vrais remèdes 정보비만, 높은 위험성과 진정한 치료법’, <L’Expansion Management Review>, no.152, Paris, 2014.
(7) Julia Cagé & Nicolas Hervé & Marie-Luce Viaud, 『L’Information à tout prix 무슨 일이 있어도 정보』, INA Édition, Bry-sur-Marne, 2017.
(8) 문화부 장관의 인터뷰 내용, <르몽드>,  2023년 1월 16일;
‘“Derrière les provocations de Cyril Hanouna se cache un véritable bras de fer politique” “시릴 아누나의 도발 뒤에는 정치적 알력 다툼이 숨겨져 있다”’, <르몽드>, 2023년 2월 9일.
(9) Steve Randall, ‘Le principe d’impartialité 공정성의 원칙’,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146호, 2016년 4-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