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인 의사들을 짓밟은 프랑스 의사협회
의사들에 대한 처벌과 불투명한 절차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진단서에 대해 2007년부터 고용주가 의사협회에 이의신청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의사협회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의사들에게 진단서 수정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의사들을 처벌하기도 한다. 일선 의사들에 대한 이런 압박은 점점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센생드니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 일하는 카린 제밀은 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한다. 10년 전, 그녀는 각기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두 여성 노동자의 자살시도와 업무 간 연관성을 인정하는 진단서를 작성했다. 두 노동자는 고용주로부터 여러 해 동안 성추행 등 정신적 괴롭힘을 당한 끝에 우울증을 앓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제밀에게 책임을 물었다. 제밀은 징계법정에 회부돼 ‘편향적인 진단’이라는 질책을 받고 진료정지 6개월이라는 처벌까지 받았다.(1) 항소심에서 처벌기간은 3개월로 줄었으나, 제밀은 그 3개월 동안 임금도 실업급여도 없이 생활해야 했다.
“그 의사의 입을 막아야 해!”
변호사나 측량기사, 공인회계사와 마찬가지로 의사는 사법(私法) 기관인 의사협회의 규제를 받는다. 입법부는 이 조직들에 의료윤리 및 규정 준수 관리 등 공공기관의 임무를 위임했다. 누구든 특정 의사에 대해 규정 위반, 의료과실, 비밀준수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진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진정에 대해 협회 지역위원회에서 타당하다고 판단을 내리면, 징계법정을 열고 경고, 견책, 진료중지 등 해당 의사에 대한 처벌수위를 결정한다. 처벌절차에 대해서는 보건규정 R. 4126-1항에 명시돼 있는데, 2007년 법령을 통해 ‘특히’라는 부사가 추가됐다. 이제 해당 항목은 “전국위원회 및 지역위원회는 자발적으로 또는 외부의 요청에 의해, 특히 환자나 의무 건강보험 지역기관, 각종 사회기금, 사회보장제도 시행기관에 배치된 의학 자문위원이나 의료감독 책임자의 요청에 의해”라고 적혀 있다.
2017년 10월 11일, 프랑스 국참사원은 개정된 보건규정의 적용범위를 명확히 해달라는 청구를 기각했다. 의사단체들은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으로부터 고용주들의 징계요청 행위를 금지하는 판결을 받고자 소를 제기했었다. “건강과 노동의 연관성을 밝히는 순간, 고용주에게 직업환경의는 부정적 경제 요인이 된다. 그래서 고용주들로서는 그 의사의 입을 막아야 하고, 모든 예방시스템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회원인 직업환경의 알랭 카레가 유감을 표하며 말했다.
기업법을 주로 다루는 온라인 매체 <렉스플리시트>는 협회에 대한 청구가 “고용주들을 보호하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2) 이 주제에 대한 유일한 자료인 마틸드 부르시에의 의학논문에 따르면, 고용주들의 이의제기가 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 부르시에의 질문서에 답변한 17개 지역위원회에서, 고용주들의 이의 신청이 비율이 2011년 6.5%에서 2015년 13.5%로 늘었다. 2011~2015년 사이 매년 일반의 200명, 직업환경의 100명, 전문의 100명 등 평균 400명의 의사가 표적이 됐다는 뜻이다.
거세지는 고용주 압박, “건강과 노동 간 연관성을 삭제하라”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살피고 위험요소들을 제거하는 직업환경의학을 퇴보시킨다. 2016년 일명 ‘노동법’에 따라 필수검진 주기는 2년에서 5년으로 바뀌었고, 2018년 1월 1일부터 고위험군 일자리만 제외하고 채용검진은 단순문진 및 예방검진으로 대체됐다. 2010년 이후,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수는 20% 이상 감소해 현재는 주로 여러 기업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의사 4,800명이 민간부문 노동자 1,800만 명과 공공부문 노동자 570만 명을 상대한다.
고용주의 고발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사협회 지역위원회는 먼저 조정 기일을 열어 해당 의사와 기업 측 변호사를 소환하고 합의를 시도한다. 이때 대부분은 ‘(노동자에게) 호의적인’ 진단서를 발급했다는 이유로 해당 의사를 질책하고, 진단서에서 건강과 노동 간 연관성을 삭제할 것을 유도한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 가엘 나이트는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통신사 부이그에서 일하던 한 기술자는 나이트에게 수면장애, 우울증, 자살충동 등 자신의 근무환경이 생활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2014년, 나이트는 이 노동자의 요청에 따라 진단서를 작성했고, 자신의 의견을 인용부호와 함께 분명히 기재했다. “내 업무는 특정 근무환경을 접하기 전에는 어떤 정신과 병력도 없던 사람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리 골절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라는 협회의 의학적 기준은, 진술이 주가 되는 임상의학인 정신의학에는 적용할 수 없다.”
“노동자 의견은?” vs. “노동자와 무관하다”
협회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의료인들이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진술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한다. 직업환경의이자 전국 의사협회 부르고뉴 프랑슈콩테 지부장인 프레데리크 나수아스텔랭은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은 자신이 작성한 문서의 중요성을 유념해야 한다. 노동자의 진술을 인용부호를 사용해 전달해야 하며, 절대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제밀과 나이트는 이 원칙들을 잘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제밀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협회에 노동자의 존재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노동자의 목소리는 무시된다. 조정단계에서도, 그 후에도 노동자에게 출석 및 진술의 기회를 준 적이 없다! 고용주에게 정신적 괴롭힘 및 강간까지 당한 노동자는 자신이 물건 취급을 받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2002년 3월 4일자 법에 의해 환자가 치료시스템의 중심에 놓이게 됐지만, 의사협회는 환자의 발언권을 무시하는 선택을 했다. 고용주들이 제기한 이의 처리 과정에서 환자인 노동자의 진술을 듣거나 심리하는 기회는 전혀 없다. 제밀은 이런 상황이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반면, 나수아스텔랭은 문제될 게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의사와 고용주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므로 노동자와는 무관하다.”
저항하는 의사들의 진퇴양난
제밀은 대다수의 의사들, 자신의 동료들과는 달랐다. 조정단계에서 합의를 거부했다. “합의를 거부했더니,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대부분 그 단계에 가면 자신이 작성했던 진단서 내용을 수정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어떤 동료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위협적인 방식에 질린 많은 의사들은, 이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건강과 노동 간 연관성을 인정하는 진단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인 가엘 나이트는 이미 견책 처분을 받았고, 추가적인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환자들에게 소송 전문 감정인으로 일하는 의사들을 찾아가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 의사들의 진단 비용은 약 400유로로,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의사가 조정을 거부하는 경우, 사건은 지역 징계법정으로 넘어간다. 항소가 이뤄지면 국가 징계법정에서 사건을 처리한다. 심리에서는 대체로 의사 측 변호인 또는 동료 의사, 그리고 고용주 측 변호인 사이에 논쟁이 오간 후, 처벌이 내려진다. 프랑스 전력(EDF)에서 직업환경의로 일했고 현재는 ‘건강과 직업환경의학’ 협회 부대표를 지내고 있는 도미니크 위에즈에 따르면, “고발을 당한 의사 중 20~35%가 징계법정에 회부된다. 이 법정은 징계에 관한 예외적인 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이 법정에서는 양측 자료 모두에 접근이 가능한 전문의의 감정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알랭 카레는 그런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수아스텔렝은 반박했다. “협회의 첫 번째 역할은 직업윤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감정이나 수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협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직업환경의의 업무와 문서들은 쉽게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징계법정이 주로 의사와 판사로만 구성되고 직업환경의가 드문 건 사실이다. 그 숫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위에즈는 “대부분의 처벌은 의료윤리규정의 매우 편파적인 해석을 토대로 결정된다”라고 지적했다. “징계법정의 판결문은 정당한 판결을 받은 피고인인 해당 의사만 열람할 수 있다.” 고용주가 진단서에 대해 항의할 방법은 그밖에도 많다. 노동감독관의 최종결정 전에 ‘기술 의견’을 발표하는 노동재판소에 제소할 수도 있고, 무고죄로 형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전문가 감정이 이뤄지며 정식으로 심리가 열린다. “하지만 고용주들은 의사협회에 고발하는 것을 선호한다. 정식 심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단 ‘조정’ 단계부터 의사는 노동자가 경험하고 표현한 내용들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는 진단서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는 1년 징역 및 1만 5,0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비밀준수 의무 위반에 해당된다. “고용주가 피해자의 과거 병력에 대해 모두 알 필요는 없다. 협회도 의료비밀과 연관된 방어권 침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는 진퇴양난에 빠진다”라고 변호사 장루이 테소니에르가 설명했다.
10년 소송 끝에 얻은 노동자 승소
테소니에르는 고용주들에게 공격받은 의사들을 대리하고 있다. 이 모든 절차를 진행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든다. 모든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건 해당 의료인인데, 국참사원이나 유럽인권법원(ECHR)에 제소되는 경우 소송이 몇 년 간 이어지기도 한다.
위에즈의 경우가 그랬다. 2011년 말, 시농(앵드르에루아르)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용접공의 우울증과 업무의 연관성을 기재한 진단서 때문에 EDF의 협력업체인 오리스(Orys)가 위에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해당 용접공은 모터의 전력유지 관리를 담당했었고, 과도한 열기 및 석면 오염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이미 업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었다. 유럽인권법원은 10년의 소송 끝에 위에즈의 손을 들어줬다.
제밀의 경우, 2012년 조정 기일부터 2017년 항소심에서 처벌이 수정되기까지 길고 지루한 6년을 보냈다. “조정 기일에 했던 모든 이야기를 징계법정에서 다시 했다. 심리는 매우 힘들었지만 나는 끝까지 잘 버텼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이런 재판은 의사 및 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노동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주치의를 통해서 암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진단서를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4)
제밀은 “노동자의 건강과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작부터 공포를 주는 이런 방식은 손해”라고 지적했다. “환자인 노동자들에게는 물론, 의사들에게도 손해다. 질병에 대한 연구, 사회심리적 위험 예방,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직장 내 사망 등 모든 측면에서 손실이 큰 것이다.”
글·셀림 데르카위 Selim Derkaoui
기자
번역·김자연
번역위원
(1) ‘Médecin du travail condamnée : ses confrères réclament la suppression des chambres disciplinaires ordinales 직업환경의 처벌 결정, 의사협회의 징계법정 폐지를 요구한 동료 의사들’, <Le Quotidien du médecin>, 2018. 5. 14.
(2) ‘Saisir le conseil départemental de l’Ordre des médecins : un levier au service de la défense des employeurs 의사협회 지역위원회에 대한 소청 제기: 고용주들을 보호하는 수단’, <LEXplicite>, 2022. 4. 4, https://www.lexplicite.fr
(3) Mathilde Boursier, ‘Évolution du nombre de doléances et plaintes aux conseils départementaux de l’Ordre des médecins contre des médecins généralistes pour des certificats en rapport avec le monde du travail 노동 관련 진단서 작성 의사들에 대한 의협 지역위원회 진정 및 고발 건수 변화’, 수행 논문, Rennes 대학교, 2017.
(4) ‘Ces cancers professionnels qui tuent en silence 암(癌), 노동자 생명을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22년 6월호.
강제로 등록시키고, 성범죄는 덮고
모든 의사들은 의무적으로 의사협회의 지역위원회 명부에 등록해야 한다. 연회비는 340유로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회비 납부를 거부한다. 지난 3월 10일, 푸아(아리에주) 법원은 6명의 의사에게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은 법원에 협회의 ‘잘못된 운영’과 ‘환자들의 항의 처리 과정에서의 엄격성 부족’을 주장했었다.(1) 2019년 회계법원에서 발표한 보고서도 같은 현상을 지적하며 징계법정의 편향성을 비판했다. 판사들에 따르면, “2014~2017, 성범죄 피해에 대한 고발 150건이 협회에 접수됐으나, 이 중 약 43%가 기각됐다.” 미성년자 환자들을 괴롭혀 온 의사 조엘 르스쿠아르네크 사건에서, 2005년에 아동포르노 영상 소지 혐의로 형사 처벌이 내려졌다. 그러나, 2006년 피니스테르 의사협회 지역위원회에서는 만장일치로 그 어떤 징계 절차도 밟지 않았다. 2020년 해당 의사는 강간 및 성폭력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 받았다. (1) Jacques-Olivier Badia, ‘Ils contestaient les dérives de l’Ordre, six médecins ariégeois condamnés à payer leurs cotisations 의사협회의 비리에 항의한 아리에주의 의사 6명에게 회비를 납부하라는 판결이 내려지다’, <La Dépêche>, Toulouse, 2023.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