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국가적 과제인가?
2023년 3월 20일, 세계 행복의 날을 맞이해 2023 세계행복보고서가 발표됐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5.951점(10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 대상 137개국 중 57위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이제 행복은 국가적 과제가 됐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8년 1월,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유명 경제학자들에게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측정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다. 경제학자들은 해당 보고서에 야심에 찬 내용을 담았다. 공공정책의 초점을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 복지 및 환경 지속 가능성에 맞출 것을 제안한 것이다.(1) 그리고 신성불가침의 지표로 여겨지는 국내총생산(GDP)보다는 중위소득(총 가구 소득을 소득 순위로 정렬해 중간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측정)을 기준으로 삼으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스티글리츠 보고서, ‘행복 경제학’에 기여
통계에 ‘혁명’은 없었다. 지도자들은 국가의 부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에 더 관심을 뒀다. 따라서 스티글리츠의 보고서는 정치 분야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행복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에 기여했다.(2) 행복 경제학 지표의 측정법은 매우 간단하다. 설문 응답자들은 통상적으로 0~10점 척도로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한다. 국가, 지역, 도시뿐 아니라 사회 인구학적 그룹으로도 대상을 분류할 수 있다. 이렇게 도출된 결과는 사회 경제적 요인을 비롯해 다양한 요소와 행복 간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 제시하는 가장 기념비적인 보고서가 바로 ‘세계행복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와 이즐리 재단(Fondation Izly) 같은 민간기관의 협업을 통해 전 세계 135개국에서 실시된 갤럽 월드 여론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된다. 이렇게 얻어낸 결과는 2012년 이후 매년 3월 20일에 발표된다.(3) 이날은 유엔 총회가 2012년에 선언한 ‘세계 행복의 날’이다. ‘세계행복보고서’를 개발한 리처드 레이어드와 제프리 삭스 교수는 방대한 세계 경제학자 네트워크를 이끌며 다양한 요인의 상대적 ‘가중치’를 측정하는 행복 방정식과 같은 계량경제학을 활용한다. 아울러 신경과학, 실험심리학과 같은 연계 학문과의 학제 간 연구도 모색한다.
언론매체들은 대개 전 세계 행복 순위에서 핀란드가 1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변화나 과학적 결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 일례로,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23년 북미, 호주, 뉴질랜드는 평균 만족도는 7.3점에서 7점으로 떨어졌다. 반면, 서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의 평균 만족도는 5.6점으로 상승한 독립국가연합(CIS,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포함) 이상의 상승 폭을 기록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소폭 상승을 보이지만, 남아시아는 근동과 중앙아시아와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프랑스의 행복지수는 6.7점으로 수년째 세계 20위권에 머물러 있다.
공동체 전체의 번영이 개인의 주관적 만족도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가장 부유하고 평등한 국가는 전반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위기에 처해 있고 불평등이 만연한 국가는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한편, 서구 사회가 자랑으로 내세우는 서구식 모델의 가치는 특정 지역이나 시점에 발생하는 급격한 변화에 잘 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팬데믹 이후, 행복지수의 변화는?
행복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 법이다. ‘세계행복보고서’도 혼자 오지 않았다. 그 발간 시점에 맞춰 시장 조사 및 컨설팅 기업 입소스(Ipsos)가 ‘글로벌 행복보고서(Rapport global sur le bonheur)’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32개국 2만 2,508명을 대상으로 더 단순한 설문조사 문항을 통해 도출된 결과를 담았다.(4) 해당 설문조사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응답자들에게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물었고, 더 간략한 척도를 사용했다.
이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팬데믹 이후 급증한 행복감과 국가별 순위다. 응답자의 91%가 매우 또는 상당히 행복하다고 답한 가운데,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네덜란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무엇보다도 소득을 기준으로, 중진국의 행복도는 ‘고소득 국가보다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고, 최대 선진국들의 행복도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신흥국과 선진국 간의 ‘추격’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독 순위를 강조한다는 점은 중국 언론도 다르지 않다. <중국일보>(中國日報, China Daily)는 ‘중국은 행복한 시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세계 최초의 국가’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2023년 4월 4일).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수년간 ‘인민 복지’를 공산당의 공식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이때, 행복의 구성 요소에는 제도, 민주주의, 법치(중국식)에 대한 신뢰라는 개념이 포함됐다. 바야흐로 중국 당국이 전 세계에 전파하는 보편주의 담론에서 ‘세계화, 자유 무역, 녹색 성장, 정부에 대한 신뢰’와 함께 ‘행복’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미국과 유럽식 가치의 보편주의에 맞서 세계 다른 국가에는 제3의 이념적 매력을 내세우면서 각종 형태의 제국주의에 저항한다.(5)
작은 왕국 부탄은 1972년에 중국보다 앞서서 자연과 불교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국민 총행복’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서구에서 생각하는 행복의 지표와는 전혀 다른 이념을 추구했다.(6) 이후, 1990년에는 인도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주도로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인간개발지수(HDI)를 개발해 보건, 교육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국가의 사회적 성과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역학과 계층 구조도 조금 더 복잡해졌다.
이후,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행복 보고서에는 불평등에 관한 자료가 추가됐다. 특히 인간개발지수는 2020년을 기점으로 변화를 보여준다. 팬데믹 여파로 평균 기대 수명과 소득이 하락한 것처럼 행복지수도 하락한 것이다.(7) 하지만 1990년 이후 중국과 여러 아시아 국가의 행복지수는 큰 폭의 상승을 보였다. 그러나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는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다. 그중에서도 스칸디나비아 국가처럼 수정자본주의로 불평등이 완화된 국가가 강세를 보인다.
국민의 행복인가, 주주의 행복인가
각종 행복지수와 지표, 도표는 추세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신흥국뿐 아니라 서구 국가에서도 행복 추구는 조직, SNS, 서점을 비롯해 곳곳에서 나타난다. 세계적으로 전파된 요가부터 개인 개발 전문가들이 홍보하는 다양한 형태의 긍정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행복은 상품의 형태로 제시된다.(8) ‘웰빙’은 물질적 웰빙, 개인 역량, 경제성장과 상관관계를 나타내며 공공정책에도 포함되는 요소다. 경제활동은 고용으로 이어지며, 고용은 다시 시장 소비와 만족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 수치와 주식시장 지수는 잦은 급락의 충격을 주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을 기록하면서 시민들의 일상 면면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40년 전 약속한 밝은 미래와는 달리, 여러 가지 단점을 드러내고 있다. 거시경제의 장기적인 성과를 보장하지 못하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또한 환경, 공공시설, (신자유주의 시각에서 명명한) ‘인적 자본’을 훼손해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회 내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시민들 간 신뢰 상실을 초래하기도 한다.
일례로, 공공 부채와의 전쟁에서 불거진 ‘노력의 분배에 관한 논란은 사회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서구 국가들이 세계 경제와 정치 체제에서 상대적 쇠퇴를 보이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체제는 전쟁과 ‘냉전’ 논리를 조장하기도 한다. 기후 변화에서 야기되는 불안에서 비롯된 무기력감은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사회생활의 질을 저하하고, 개인의 정의감에 영향을 미치며, 복지 시장이 제공하는 구제책에 의존하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 일곱 번째 천국이라고도 불리는 최고의 행복이 ‘국가의 과제’라면 국가가 이 영역에서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주주의 행복이다.
글·프레데리크 르바롱 Frédéric Lebaron
파리 고등사범학교 사클레 캠퍼스 사회학과 교수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Joseph Stiglitz, Amartya Sen, Jean-Paul Fitoussi, ‘경제성과 및 사회적 진보 측정에 관한 위원회 보고서’, 2009년 9월. Félicien Pagnon, 박사 학위 논문 ‘Après la croissance : Controverses autour de la production et de l’usage des indicateurs alternatifs au PIB 성장 이후: GDP에 대한 대체 지표의 생산 및 사용을 둘러싼 논쟁’, Université Paris Dauphine(지도교수: Dominique Méda), 2022 년 11월 30.
(2) Claudia Senik, 『L’économie du bonheur 행복 경제학』, Paris, Seuil, 2014.
(3) https://worldhappiness.report/
(4) ‘Global Happiness 2023. Life Satisfaction Across the World’, Ipsos, mars 2023, www.Ipsos.com
(5) Pierre Bourdieu, 『Impérialisme. Circulation internationale des idées et luttes pour l’universel 제국주의. 국제간 사상의 흐름과 보편성을 위한 투쟁』, Paris, Raisons d’agir, 2023.
(6) Thierry Mathou, 『Le Bhoutan. Royaume du Bonheur National Brut. Entre mythe et réalité 부탄, 국민 총행복 왕국, 신화와 현실 사이』, Paris, L’Harmattan, 2013.
(7) 인간개발지수, https://hdr.undp.org
(8) Camille Teste, 『Politiser le bien-être 웰빙의 정치화』, Paris, Binge audio éditions, 2023.(페미니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최근의 비판적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