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에서 엿본 대통령 선거 풍경

Spécial 프랑스 대선

2012-04-13     쥘리앙 브리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주 에슨의 한 작은 마을인 메를리외제푸크롤(인구 261명)을 찾아가 5주일간 머물며, 이 조그만 마을 사람들이 대선 유세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살펴보았다.

 자동차를 타고 2번 국도를 따라가다 면사무소 소재지 아니지르샤토를 지나서 좌회전하면 메마른 풍경이 펼쳐진다. 사자(死者)를 위한 기념물이 보이고, 감자·밀·무 등을 심은 밭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단장된 주택이 줄지어 서 있다. 드문드문 돌로 지은 대저택들도 보인다. 에슨의 메를리외제푸크롤('티티새와 고사리'라는 뜻)은 프랑스의 다른 수많은 마을과 별다르지 않다. 술집도 우체국도, 사람들을 만나 어울릴 곳도 없다. 학교가 하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골 학교와 마찬가지로 폐교 직전이다. 가구마다 자동차가 한 대 이상 있고, 작은 식당이라도 하나 찾으려면 마을 밖으로 5km 정도 나가야 한다.(1)

 

 

호구 조사

2008년 통계에 따르면, 이 코뮌(프랑스의 가장 작은 행정단위)에는 101가구에 주민 260명이 살고 있다(1962년 155명). 별장은 단 두 채뿐이다. 코뮌 사무소에서 주민 중 메를리외 출신은 3명이라고 했다. 연령대를 살펴보면 14세 이하 37명, 15~29세 17명, 30~44세 30명이며 60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10.2%를 차지한다. 비활동인구(학생·연수생·퇴직자) 비율은 22%, 경제활동인구 대비 실업률은 10.6%이다. 1999년과 비교해 1.6%p 증가했다.

가장 많은 고용인원을 거느린 곳은 '환경감시를 위한 영구센터'(CPIE)다. 시기에 따라 30~45명이 다. 피카르디 자연보존 콩세르바투아르(10여 명), 코뮌 사무소(시청 소속 공무원 5명)가 그 뒤를 잇는다.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공장은 7km 떨어진 피농에 소재한 알루미늄 생산업체 하이드로(90명)다. 근처에서 가장 많은 고용인원을 거느린 민간회사는 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니지 건설회사(SAC)다. 300명 이상의 건설인력을 거느리고 있지만 노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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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에요." "우리 쪽에서는 거의 '전기톱 살인사건' 수준이에요."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사회당)의 선언과 제안에 대해 대중운동연합(UMP) 당원들이 일제히 맹공을 퍼붓자, 당수 장프랑수아 코페가 한 말이다. - <뤼니옹>, 2012년 1월 12일자

일화

이곳에서 '전쟁'이란, 곧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뜻한다. 크라온 지방에서 멀지 않은 피카르디의 초원에 사는 이들의 의식은 세계대전의 기억 속에서 형성돼왔다. 이미 한 세기가 흘렀지만 풍경은 여전히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전사자들의 묘지, 요새화된 성당, 슈맹데담 격전지 등.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정치는 외지인, 제복 입은 사람, 국회의원들과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웃 마을에서 농사 짓는 질 파스키에가 쏘아붙인다. "대통령 선거는 언론이 만들어내는 거다." 델핀 쇼카르는 "정치인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5년에 한 번 공장을 방문하고 멋진 공약들을 내걸지만 금세 잊어버린다. 그러니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보모 자격증이 있는 델핀은 CPIE의 식당에서 교대제로 근무한다. 그곳에서는 3.5유로면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고, 아이를 1시간 맡기는 데 1유로면 가능하다. 그녀는 재봉일을 겸하고 있다.

앙케트

메를리외 주민들은 에둘러 말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벌인다. 민주주의의 죽음, 학교의 죽음에 맞선 싸움이다. 사람들은 이를 '재결집'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빈곤화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중산층은 더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싸우고, 빈곤층은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싸운다. 전통적으로 좌파 후보에게 표를 던져온 이 마을에서 이번 대선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크게 엇갈린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늘 그래왔거나 그렇게 된 사람들)은 정치적 토론이 있는 자리를 피하거나 멀찍이 떨어져 구경만 한다. 이 마을에 사는 평범한 시민은 유명 정치인들의 행보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나 배수공사, 전날 TV 프로그램 등을 얘기하는 모습 속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보다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정치인들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2001년부터 무소속으로 코뮌을 이끌고 있는 올리비에 클레르몽 시장은 "뭔가 얻는 게 있으니까 정치인들이 모두 자리를 탐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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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마케팅여론연구소(TNS-Sofres) 소장은 "마린 르펜이 국민전선(FN)의 당수가 된 지 1년 만에 하나의 '현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들 중 "국민전선이 주장하는 말에 동의한다"고 대답한 이들은 31%에 이른다. 2011년 1월에 같은 응답자 비율은 22%였다. - <르몽드>, 2012년 1월 12일자

일화

아멜리 드뇌빌의 표정이 좋지 않다. 방금 남편과 다퉜기 때문이다. 철제 난간으로 둘러싸인 학교 건너편 작은 광장. 학교와 코뮌 사무소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아멜리는 실비안(코뮌 시장 보좌관)과 셀린(코뮌 사무소 직원)에게 다가가 인사한다. 토론이 시작된다. 베레모를 쓰고 입에 담배를 문 셀린이 말을 시작한다.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어. 할머니는 항상 내게 말씀하셨지. 좌파는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이고, 우파는 부자다. 헷갈리지 마라!"

실비안이 묻는다.

"아멜리, 너는 누구 뽑을지 결정했어?"

"아니, 정치 같은 건 별로…"

"그래도 투표는 하러 갈 거지?"

"물론이지.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지. 더 살펴보고 결정하려고."

"너는 네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아니면 부자라고 생각해?"

"물론 가난하지! 갱신이 안 되는 단일고용지원계약직(CUI)으로 일하는데, 그마저도 두 달 후엔 기간 만료야."

계약직을 전전하는 셀린은 할머니 말씀에 따라 '사회주의자'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다. 이 마을에 사는 상당수 사람들이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 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란다.

실비안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거잖아."

"그렇겠지. 하지만 나라면 그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줄 수 있을 텐데. 내가 장관이 돼서 사회연대소득(RSA·극빈층에게 최저생계비를 주거나 실업자가 최저임금 미만의 일자리에 취업할 경우 최저임금과의 차액을 국가가 보전해주는 제도)을 운영하는 거지. 나라면 그들에게 병원이나 학교, 마을에서 일자리를 찾아줄 거야."

앙케트

어디에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공공시설? 스쿨버스 한 대, 코뮌 사무소(일주일 동안 일하는 정규직원 수는 2명뿐이다), 학교가 전부다. 그나마 아이들 덕분에 사람 사는 곳 같다. 오전 8시 29분~11시 31분, 오후 1시 29분~4시 31분이면 마을 거리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뜀박질 소리로 가득 찬다. 마을 주민 10여 명이 일하는 CPIE이 있다. 도서관 4곳도 있다(환경 관련 도서관 2곳, 시립 도서관과 사회 도서관). 그러나 환경 도서관에는 거의 외지인만 드나들고, 다른 2곳은 일주일 내내 일하는 직원이 부족해 가끔 문을 연다. 최근에 '라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연 민박을 겸한 식당이 있는데 주민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 파리의 물랭루즈 댄서 출신인 식당 주인 자키 데샹은 등에 공작 깃털을 달고 손님들에게 춤을 선보인다. 메뉴 가격은 28유로. 대부분 파리에서 온 관광객이 지나가다가 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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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더드&푸어스는 어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한 단계 강등했다. 대선을 100일 남겨둔 시점에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는 불시에 닥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경제부 장관 프랑수아 바루앙은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앙이 닥친 건 아니다"라며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 <뤼니옹>, 2012년 1월 14일자.

일화

들판과 마을 주변의 관목 숲 위로 얇게 살얼음이 꼈다. 지난 1월 14일 토요일, 코뮌 사무소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유럽중앙은행'(ECB), '금리', 'CAC40의 기록적인 이윤' 등에 대해 떠들고 있다. 시계는 오전 10시 10분을 가리킨다. 신용평가사에 대한 비판은 곧 장작 벌채권에 대한 얘기로 옮겨간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코뮌 소유 숲의 벌채권을 주민들에게 분배하는 행사(주민 한 명당 10스테르)가 열린다. 이 행사는 상당히 정치적인 의미를 띤다. 몇 년 전 분배 방식을 둘러싸고 충돌이 발생한 후부터 추첨을 통해 장작을 분배한다. 코뮌 시장은 "1스테르에 7유로 정도의 싼 가격(시중 가격은 55~100유로)에 장작을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격은 시의회 의결을 통해 책정된다." 우리는 장피에르 랑비에르의 차에 올라탔다. 64살인 그는 우체국에서 근무하며 노조활동을 하다가 퇴직했다. 겨울코트에 장화를 신은 차림이다. 그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소란을 피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한다. "혁명적인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장뤼크 멜랑숑(공산당, 좌파전선 공동후보)뿐이다." 차들이 멈춘다. 벌채 구역을 둘러볼 차례다.

추첨을 통한 방식은 공평해 보인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운이 없어서 너무 작거나 위치가 나쁘거나 집에서 먼 구역을 배정받았다고 불평한다. 시장은 "걱정하지 마라, 흥분해봤자 좋을 것 하나도 없다, 나중에 조정해주겠다"며 불만을 가라앉히려고 애쓴다. 랑비에르는 이 추첨 방식에 비판적이다. "표면적으로는 공평함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토론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주민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솔직한 생각을 교환하고 집단적으로 결정하는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클레르몽 시장에게 '정치'라는 말은 '경영'과 같은 말이다.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채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나는 내 농업회사를 경영하듯이 코뮌 사무소를 운영한다. (중략) 낭비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 살림을 꾸려가야 한다."

호구 조사

2007년 선거에서 메를리외 주민 상당수는 좌파에게 표를 던졌다. 1차 투표에서 루아얄(사회당 후보)은 46표(30.07%)를 얻었고, 니콜라 사르코지는 29표(18.95%), 장마리 르펜은 20표(13.07%)를 얻었다. 2차 투표에서 루아얄은 전체 투표수의 61.07%를 득표했다. 전국 평균보다 14%포인트 높은 득표수였다. 기권자는 6명뿐이었다. 2011년 지방선거에서 2차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전체의 44.71%였다. 좌파연합 후보 다니엘 쿠노가 65.8%를 득표해 34.2%(26표)를 득표한 국민전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좌파와 국민전선이 표를 양분하는 구도가 자리잡았다. 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에 반대한 유권자는 71.6%에 달했다.

앙케트

1970~80년대, 메를리외는 진보적 실험의 대명사였다. 롤랑 뒤랑(1945~83·공산당)과 다니엘 코르시(1983~2001·사회주의적 좌파 성향)가 시장일 때 설립한 시에서 관리하는 수도회사가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마을 골짜기 위에서 흐르는 물 덕분에 다국적 수도회사가 진출한 인근 지역보다 6~7배 싼 가격에 수돗물을 공급받는다. 사업 초기에는 주민들이 교대로 일주일에 두 번 소독액을 직접 살포하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 자동소독기가 도입됐다. 주민 자치 주택단지와 사회주택도 건설됐다(당시 인구는 170명에 불과했다). 1988년에는 학교가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주민 대다수가 공동으로 공사에 참여했다. 이 지역의 유명한 도서축제 역시 자치적 분위기이기에 가능했다. 오는 9월에 열리는 도서축제는 벌써 20회를 맞는다.

지금은 마을 공동체적 분위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주민들은 그때를 영광의 시절로 추억한다.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고, 알고 지내고, 함께 행동했다." 마을에서 매우 정치적이던 도미니크 레스트라는 퇴직자를 가르치는 전문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물랭 드 파리, 크로포트킨 그룹, 아나키스트 도서살롱 등 다양한 아나키스트 공동체를 경험했다. 1973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일종의 대중 감시 단체를 설립했다. '지역 대표자들이 약속을 이행하고 주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도입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980년대 초, 이들의 노력 덕분에 모든 지역 위원회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이들은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봉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봉사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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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에 따르면, 실업 해소와 프랑스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소집한 비상대책회의가 노사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수요일 오전 9시 엘리제궁에서 개최됐다. 노조 대표들과 경영자 대표들이 속속 엘리제궁으로 도착했다. 참석자 대부분이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 <뤼니옹>, 2012년 1월 18일자

일화

마을에 식당이 없으니 이웃과 함께 식사하려면 집으로 초대하는 수밖에 없다. 수요일 오후, 앙드레 메로 부인과 두 딸은 이웃에 사는 시의원 콜레트 다시니 부인 집을 방문했다. 이런저런 잡담이나 나눌 생각이었지만 옆에 있는 기자를 의식해서인지 정치 얘기도 한다.

"난, 마린 르펜이야!" 갑자기 다시니 부인이 선언한다. 메로 부인이 기겁을 한다. "어, 절대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국민전선을 뽑을 순 없어. 극우파잖아!" 침묵. "부자들에게 세금을 충분히 물리지 않을뿐더러 일도 안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퍼주는 게 문제야." 문 앞을 돌아다니는 메로 부인의 개를 쳐다보며 다시니 부인이 말한다. "나는 25년을 일했는데, 이웃 남자는 일도 안 하면서 나보다 2배를 벌어. 나는 세금을 내는데, 주택보조금도 못 받고 노인연금도 못 받아. 집세 548유로에 가스비 115유로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옆집 사람들은 왕처럼 호의호식하는데 말이야. 짜증 나 정말!" 그러나 옆집 여자는 살림하며 아이를 키우고 남자는 파트타임 일을 나간다.

다시니 부인은 자신을 '혁명적'이라고 묘사한다. "무기를 들고 바리케이드 너머로 진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바리케이드? "사르코지에 대항한 전선"이란다. 사르코지는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노동자들과 빈곤층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가난한 이들에게서 돈을 빼앗아 부자들에게 나눠줬다." 연금은 전혀 오를 생각을 안 하고, 공약 지킬 생각을 안 한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우리를 '배신했다', 사회주의 좌파는 '무력하다' 등. "대안은 마린 르펜뿐이다." 그녀는 탈정치화한 것이 아니라 우경화한 경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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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 머리기사] 부르제 유세. 올랑드 특권층 비판하고 나서. [2012 대선] 올랑드 성공적인 연설. 어제 부르제 유세가 일종의 시험이라고 본다면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의 연설은 청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사회당 후보는 첫 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셈이다. - <뤼니옹>, 2012년 1월 23일자

 

 

일화

시장 보좌관으로 일하는 실비안 가토 부인은 지난 30년 동안 사회당 당원이었다. 오후 6시, 퇴근시간. 그녀는 아침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에 대해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군." 그녀는 지저분한 기사들을 즐겨 싣는 이 '우파 신문'(<뤼니옹>)이 올랑드의 첫 유세에 그토록 찬사를 보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앙케트

진보주의적 과거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가령, 코뮌 주민들을 양편으로 갈라놓았던 싸움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메를리외 주민들에게 이 싸움은 지역민주주의의 쇠퇴를 의미했다. 1996~2000년 카페 '르 루 누아르'- 공연이나 강연이 열리는 공간이었다- 의 운영을 둘러싸고 코르시 시장과 레스트라가 충돌한 일이 한 예다. 그 일로 주민들이 양편으로 갈라졌고, 마을은 활기를 잃어갔다. 1973년 결성되어 1990년대 초까지 활동한 '물랭 드 파리'라는 아나키스트 공동체는 카페 르 루 누아르를 열고 공공지원 프로그램을 적절히 활용해 계속 운영해나갔다(지원금 약 100만 유로). 코르시 시장은 그곳을 새로 단장해서 마을 카페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코뮌의 재산인 카페가 "아나키스트들이 선동하려는 장소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하면서 자녀들을 운영단체에 가입시키면서까지 지역의원과 함께 통제권을 되찾으려고 했다. 지금도 그때 흔적이 눈에 띈다. 마을 담벼락에 '루 누아르는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쓴 낙서가 보인다.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고 말하는 클레르몽 시장의 표정에서 끔찍했던 상황이 보이는 듯하다. 충돌이 있은 후 당시 시장은 코뮌의 삶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카페 르 루 누아르는 '라 르네상스'라는 새 이름을 단 민박 음식점으로 변모했다.

클레르몽 시장이 말을 잇는다. "최근에는 오두막 사건이 있었다." 퇴직 교사 필리프 카플리에가 자기 소유 숲에 두 채의 오두막을 지어 인터넷에 매물로 내놨다. 시장은 지역토지관리위원회에 적법성을 문의했다. 공무원이 파견되어 조사를 했다. 거래가 불법인데다 오두막 시설이 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정이 나왔다. 시장은 카플리에에게 두 채의 오두막을 철거하라고 명령하고, 도시계획법 위반 사항에는 벌금 130유로를 물려서 법정에 제소했다. 문제는 카플리에가 2008년 선거에서 클레르몽 시장에 대항해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도서축제의 친구들'이란 단체에서 회장을 맡은 바 있는 카플리에는 이 일이 있고 나서 역시 코뮌의 삶에서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의 아내와 친구들 역시 시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등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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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드가 사르코지에게 말했다. "대선이 다음번 국민투표가 될 것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목요일 저녁 실업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제안에 이렇게 논평했다. 프랑수아 바이루(민주운동당 후보)는 대통령의 제안을 "걱정스러운 탈선", "해악"이라는 말로 비판했다. - <TF1>, 2012년 2월 9일

일화

한 걸음 내딛고 쉬고, 다시 한 걸음 내딛고 쉬고…. 오전에 질 파스키에가 젖소와 육우 축사를 구경시킨다. 그는 메를리외에서 4km 떨어진 리지 마을에 마지막으로 남은 농부다. 150ha의 초원에서 자라는 풀로 100여 마리의 소들을 먹인다.

"사람들은 우리를 특권층, 부자, 환경오염의 주범, 자본가로 취급한다. 요즘 농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다. 내 아버지와 대부분의 농업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항상 선거에서 우파에 표를 던졌다. 하지만 하루 10~12시간 일을 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다. 공동농업정책(PAC) 보조금마저 없어지면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유럽 안팎으로 경쟁이 너무 치열해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 역시 공무원들과 생활보호대상자들에 대한 증오가 뼛속 깊이 박혀 있다. 그에게 부자란 "자본을 다양한 방식으로 굴릴 줄 아는 영리한 사람들"이며, 빈자란 "파이에서 자기 몫을 떼어가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는 70만 유로가 넘는 자본- 그의 노동수단들- 을 소유하고 있지만 늘 적자를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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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게랑: "나는 내가 한 말을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문명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 <RTL>, 2012년 2월 6일.

일화

메를리외에서 4km 떨어진 코뮌, 아니지르샤토에 있는 복권판매점 '자키네 가게'로 들어간다. 라피도, 빙고, 티에르세, 로토 등 즉석복권을 긁는 손님들이 보인다. 오후 6시 30분. 낮 12시 30분부터 지금까지 뤼도비크와 애인 아델은 연신 맥주잔을 비우며 다트 게임에 열중해 있다. 뤼도비크는 하이드로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한다. 아델은 실업자다. 두 사람은 때로 자신들의 최신형 자동차를 타고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옆 가게로 자리를 옮긴다. 1시간 후 우리는 아니지의 아파트에서 열리는 파티에 따라간다.

뤼도비크는 일주일 동안 공장에서 일한 스트레스를 풀려는 듯 작정하고 술을 마셔댔다. 그는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사회주의자던 할아버지가 "항상 좌파를 지지했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당은 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우파로 돌아섰다. 덕분에 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자비에 베르트랑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이번에도 사르코지에게 투표할 것이다." 메를리외의 CPIE에서 청소부로 일한 안이 테이블 끝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입을 연다. "어쨌든 당신들은 우리에 대해 쓸 말이 없을 것이다. 별로 흥미로운 얘기가 없으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쓰레기 같은 삶을 살면서, 쓰레기 같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쓰레기 같은 일을 한다. 계약직이나 정부 지원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실업자 신세가 된다. 여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산다. 공산당은 힘을 잃었고, 아무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저 위에서 광대짓을 하며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이 아래에서 우리는 고생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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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특집 기사는 '위험한 기권'이다. 화요일 국회에서 열린 유럽안정화메커니즘(ESM) 비준 동의안 표결에 불참한 사회당은 양쪽에서 협공당하고 있다. 장뤼크 멜랑숑은 "국민의 대표자는 자신의 의견을 밝힐 의무가 있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 문제를 결정하는 순간에 화장실에 숨어버리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총리는 사회당의 기권을 '역사적인 실수'라고 평가했다. - <뤼니옹>, 2012년 2월 23일자

앙케트

긴 턱수염, '신도 주인도 없는'이라는 슬로건이 찍힌 셔츠, 동그란 안경. 도미니크 레스트라는 '아직도 선거가 재미있나요?'라는 문구가 인쇄된 스티커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그의 활동은 메를리외라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마을은 더 이상 일관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네트워크 속에서 만난다. 라옹, 수아송 등 다양한 지역의 주민들이 사회도서관을 찾고 있다. 크로포트킨 그룹은 같은 마을에 살지 않지만 함께 정치활동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로 기능한다." 공장노동자였던 그의 어머니는 그를 포함해 자식을 여덟이나 낳았다. 현재 60세인 레스트라는 평범하게 성장했다면, 수아송의 볼베르 공장(미슐랭 타이어 제조)에서 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글 솜씨를 알아본 선생님과 어머니의 지원으로 교사가 되기 위해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을 봤다. 그는 18세가 되자마자 아나키즘 관련 책을 모두 수집했다. 그렇게 모은 책이 현재 8,854권에 달한다.

일화

지난 2월 14일 개최하는 도서축제 준비 회의. "정치 토론팀 같은 걸 만들어서 슈퍼마켓 같은 곳에 보내면 어떨까요? 이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슈퍼마켓밖에 없잖아요! 손님들 앞에서 정치적인 글들을 낭독하는 건 어떨까요?"

백발의 남자가 말한다. "어, 아틀리에를 잘못 찾아오신 것 같군요. 여긴 청소년 문학 담당인데." 라옹 시청 공무원이자 이번 도서축제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마리 쥐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래요? 그럼 안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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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쥘리앙 브리고 Julien Brygo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1) 필자는 이 글에서 피에르 벨빌이 로렌의 펜시와 모젤 철강산업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 사용한 르포 형식을 차용했다. Pierre Belleville, <지속적인 쇠퇴: 지역의 위기, 체제의 실패>(Jilliard·파리·196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