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재등장에 거는 러시아 국민의 기대와 불안
지난 3월 4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63.6%의 득표율로 러시아 대통령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정치 상황은 2011년 9월 푸틴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할 당시 그가 바라던 상황과 확연히 다르다. 정통성은 상처를 입었고, 푸틴 캠프에서조차 푸틴이 러시아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진정한 해결책이 있는지 의심하는 형편이다.
러시아식 '컬러혁명'(1)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쪽이 주도한 지난 3월 5일과 10일의 군중집회에는 기대한 만큼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주최 쪽은 그들의 불만 제기 방식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 정권의 오산일 것이다. 지난해 총선을 맞아 12월부터 시작된 유례없는 대중 시위 열기 이후, 러시아 사회는 더욱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선거 부정이 확인되기는 했지만,(2) 푸틴의 재선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단, 상당수 유권자들이 푸틴이야말로 1991년 이래 계속된 정치·경제적 위기에서 러시아의 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 이후 두마(러시아 하원) 앞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많은 군중이 완전한 정치적 단절을 원하지 않았다. 집권당은 정권의 연속성을 약속함으로써 이런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2000년부터 시행되는 현행 선거법 아래서는 신뢰할 만한 야당 후보자가 나오기 어렵게 되어 있다.
푸틴 시대의 고민
이런 (현 정권의) 막후 조치들이 푸틴 재집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사태를 촉발했다. 보리스 옐친 이후 모든 지도층이 들먹거린 '민주적 가치'에 애착이 있는 일부 여론은, '이중 권력'의 한 축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이자 현직 총리인 푸틴의 대선 출마를 발표(2011년 9월 24일)하고, 푸틴이 메드베데프에게 차기 총리 자리를 약속하는 따위의 파렴치한 역할 바꾸기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스크바와 많은 주(州)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이 벌어지자 상대방 후보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한층 가열되었다. 러시아 정치권은 이 시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집권 통합러시아당은 인터넷상에서 유명해진 '불한당들과 도적들의 정당'이라는 별명을 족쇄처럼 달게 됐다. 대선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보인 러시아공산당과 공산당 대선후보 겐나디 주가노프의 세력도 약화되었다. 전통 민족주의 정당인 러시아자유민주당(LDPR) 소속 후보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또한 4위에 그쳤다.
푸틴은 적극적인 사회보장정책(각종 수당과 연금 인상, 교사나 보건 부문 인력 같은 일부 분야의 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전통 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공산당의 영향력을 잠식했고, 그의 애국적 웅변술은 지리놉스키 후보의 선수를 쳤다.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이끄는 야블로코당은 후보등록 지지 서명부에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이유로 아예 대선 후보를 내지 못했다. 한때 러시아의 사회민주당으로 소개되던 야블로코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지난 3월 초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몇몇 야당 대표들과 자리를 함께했는데, 그 면면을 보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모순적인 여러 정파가 현 집권당의 재집권 반대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결집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극도로 분열된 양상을 보이는 좌파 외에 두 계파가 있다. 그중 하나는 자유주의 성향의 우파로, 이들은 러시아의 부흥을 위해서는 전면적 민주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그 세력이 미약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프로호로프가 전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미하일 카시마노프 전 총리, 보리스 넴스토프 전 총리 같은 거물들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억만장자인 프로호로프는 적극적인 반(反)부정부패 캠페인을 펼치며, 신당 창당을 통해 자유주의 진영을 집결시킬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하지만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높은 러시아에서 그의 많은 재산과 노동법 개혁 주장은 정치 경험 부족보다 더 큰 핸디캡이다.
두 번째 계파는 민족주의 계열로, 푸틴이 애국심을 고취하는 연설을 거듭했음에도, 정당 차원을 넘어 현저히 세를 넓혀가고 있다. 이 집단은 특히 외국인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감에 기반한다. 이들의 시위를 관리하기 위해 동원되는 경찰 수는 민주당원들 시위 때보다 훨씬 적다. 대중 선동적 구호를 외쳐대는 이 계파는 기존 체제를 강력히 비판하는 러시아의 파워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가 이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현 정권은 대규모 반대시위에 맞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시위를 조직하는 데 행정력을 동원했다. 당국은 과거에 흔히 사용되던 협박, 즉 '러시아의 적' 또는 '조국의 배신자' 같은 표현을 반대자들에게 사용했다. 그러고 나서 몇몇 요구에는 수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 3월 4일 선거일 전 하원에서 "주지사 선거 부활, 정당 등록 요건 완화 등 개혁 법안에 대한 토론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푸틴은 이 개혁이 가져올 영향력을 제한하는 대책들을 언급했다.
푸틴에 맞선 우파-자유주의와 극우파
러시아 주간지 <더 뉴 타임스>가 3월 5일자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그의 싱크탱크 책임자인 이고르 유르겐스와의 인터뷰 제목을 '우리는 패배했다'로 잡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1차 이중 권력'(메드베데프 대통령-푸틴 총리) 내부의 세력싸움을 분석하면서, 불평등한 두 세력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세력은- 유르겐스도 이 세력에 속해 있다- 12월과 1월 모스크바에서 거리시위에 나선 시민들과 대단히 유사하다. 그들은 러시아 지식인층, 교사 집단, 학생, 연구자, 그리고 신흥 중산계층 등이다. 그들은 러시아의 개방과 민주주의가 더욱 신속하고 깊게 자리잡기를 원한다.
유르겐스는 그 세력의 반대편에 보수압력 단체, 즉 '강력한 동업조합'을 대비시킨다. 이들은 모든 권력기구 내에 포진해 있으면서 '군산복합체', '기업식 농업', '군대'라는 전통적 영역의 지지를 받고 있다. 유르겐스는 이들이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외부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주간지는 그가 거론한 이름들을 훌륭한 도표로 만들어 소개했는데,(3) 이 집단에 속한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 푸틴과 맺은 공식·비공식 관계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규모 교통 인프라 건설업체와 은행, 거대 언론사들이 들어 있다.
이 집단이 러시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러시아 국민총생산의 반 이상, 러시아 수출고의 4분의 3 이상이 이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에 대한 국가적 감시·감독도 강화되고 있다. 언론들은 정부 영향 아래에 있는 이 기업들의 행태, 즉 독점을 악용한 비용의 과다계상, 해외에서의 이익 유출, 부패를 조장하는 회계의 불투명성 등을 끊임없이 고발하고 있다.
우리는 패배했다?
시위대는 선거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를 넘어 정부의 투명성과 정의, 국민주권 등을 요구하며, 지난 20년간 권력 분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탄생한 신흥 특권 계층이 누리는 과도한 특혜에 반발하고 있다. 시위대들이 사용하는 리본, 배지, 공 등의 색깔이 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부정부패, 공금 유용과 횡령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지도층의 권력이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메드베데프-푸틴 쌍두마차가 수차례 반복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권력 중심부에서 멀어진 고위 공직자들 중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는 부정부패나 권력남용으로 권력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푸틴의 경력과 행동을 재검토하면서 그를 역사에 큰 관심이 있는 인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 푸틴은 21세기의 표트르 아르카디예비치 스톨리핀이 되어 러시아의 힘과 역동성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4)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니콜라이 2세 시대의 총리이던 스톨리핀은 1905년 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중요 개혁의 입안자로 유명했다. 푸틴은 스톨리핀이 1907년 러시아 제국의회에서 한 연설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다. 당시 스톨리핀은 "여러분, 우리에게는 대혼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러시아가 필요하다"고 외친 바 있다. 그들은 또 아나톨리 소브차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보좌관을 거쳐 보리스 옐친의 '황태자'가 되었던 푸틴의 정치 역정에 얽힌 여러 일화들을 상기시키면서 시장 개방과 민주주의 건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지향하는 그의 단호한 의지 사이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푸틴의 모순을 언급한다.
푸틴이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첩보장교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러시아는 심한 소요사태를 겪었다. 푸틴은 이 때문에 '컬러혁명'과 '아랍의 봄'이 다시 불을 지핀 최근의 세계적 혼란에 대해 깊은 경계심을 보인다. 그는 새로운 혼란의 도래를 우려한다. 여기에다 최근 몇 달 사이 벌어진 시위가 외국 단체들에 의해 은밀히 조직되었다는 의심을 덧붙이고 있다. 대통령 후보 때부터 푸틴은 일련의 긴 기사들을 통해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어떠한 외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나가면서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가 쇄신되어야만 한다는 견해를 거듭 피력해왔다. 푸틴의 역설적 태도는 내부적 불신과 외부적 불신, 이 이중의 불신에서 비롯됐다. 강력한 통제 속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 한 나머지 민주주의의 원칙 자체가 조롱당하는 셈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새로운 부패 방지 법안을 계획하고(5) 신임 세르게이 나리슈킨 러시아 하원의장이 의회의 역할 증대를 제안하는 사이 푸틴은 독립적 논조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라디오 <에코 모스크바>와 민영 TV <도이트>(Dojd)를 위협하고, 정부는 야당 성향의 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자금원인 알렉산드르 레베데프에게 압력을 가했다.
'푸틴은 21세기 스톨리핀'
5월 7일 공식 취임 후 푸틴은 무엇을 할 것인가? 독일 정치학자 알렉산더 라르에 따르면, 푸틴의 두 번째 임기는 개혁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푸틴이 스톨리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카테리나 2세에게 성공의 환상을 심어주었던 또 다른 총리 그리고리 포툠킨처럼 각종 선언이나 눈속임 수준의 변화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미래가) 불확실한 야당이 푸틴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치적으로 어떻게 조직화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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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장 라드바니 Jean Radvanyi 모스크바 프랑스-러시아연구소장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컬러혁명’이란 2002년 조지아의 ‘핑크혁명’(튤립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같이 민중시위를 통해 집권권력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
(2)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1차 보고서 참조, www.osce.org/odihr/elections/Russia2012·러시아 선거감시무정부기구 골로스(Golos, www.golos.org)는 선거 부정행위가 없었더라도 푸틴이 1차 투표에서 당선됐을 것으로 평가하면서 구체적인 부정행위를 들고 있다.
(3) <더 뉴 타임스>, 모스크바, 2011년 10월 31일.
(4) Fiona Hill & Clifford G. Gaddy, ‘푸틴과 역사의 이용’, <더 내셔널 인터레스트>, 워싱턴, 2012년 1월 4일.
(5) <Nezavisimaïa Gazeta>, 모스코바, 2012년 3월 14일.
(6) <Nezavisimaïa Gazeta>, 2012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