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야합’의 중심지 포르투갈 노바대학
그리스보다 포르투갈이 나은 점이 있다면? 포르투갈이 보여준 최근의 ‘정치·사회적 컨센서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포르투갈 사무소장을 확신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런 컨센서스는 IMF가 강요하는 긴축정책에 대한 국민적 동의보다는 한 대학에서 거의 모두 이뤄지는 엘리트들 사이의 믿을 수 없는 ‘야합’의 실상을 보여준다.
"전화 한 통이면 각료나 총리, 심지어 대통령도 만날 수 있다."
포르투갈의 최고 경영대학원 리스본 노바대학 경영대학원의 페레이라 마샤두 원장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의 자신만만한 미소에는 노바대학이나 자신의 영향력을 겸손하게 낮출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지난해 9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의 한 기사는 마샤두 원장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보여줬다. 신문은 "포르투갈의 국가 부채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무렵, 총 78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협정을 협상하기 위해 리스본에 온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단이 갑자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며 상세히 보도했다. 당시는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한창이었고, 포르투갈 국민은 이른바 '트로이카'인 EU·IMF·유럽중앙은행(ECB)이 포르투갈에 대한 처방으로 마련한 만병통치약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은 "대표단 일원인 독일인 2명과 덴마크인 1명이 노바대학 경제학부 교수들과 은밀한 조찬 모임을 갖기 위해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1)고 전했다. 마샤두 원장은 "그들은 우리 견해를 듣고 싶어 했다"며 그들과의 만남을 확인해줬다.
노바대학의 국제적인 대학 순위에 이끌려 30여 개국에서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는 노바대학의 금융 석사 과정을 세계 최고 30개 과정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여기에서 경영전문석사(MBA)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포르투갈 최저임금의 15배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2)
전임 사회당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루이스 캄포스 에 쿤하 교수는 '트로이카' 고위 관리들과의 조찬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내 의견을 듣는 데 아침 식사까지 같이 할 필요는 없다"며 냉소적 태도를 보였다.
마샤두 원장은 "노바대학은 사회적 엘리트라기보다 지식인 엘리트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구분은 애매하다.(3) 포르투갈의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이 이 대학 출신이고(현 재무장관 비토르 가스파르를 포함해), 포르투갈 대기업 이사회 멤버들 가운데 노바대학 졸업자와 교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다폰 포르투갈의 전 최고경영자 안토니우 카라파토수, 포르투갈 은행협회 회장이자 최대 금융회사인 CGD의 전 최고경영자 안토니우 소사 같은 인물이 모두 이 대학 출신이다.
포르투갈의 엘리트층을 보면 포르투갈이 아주 작은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요 고위 관리와 정치인, 기업인들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학자 출신으로 포르투갈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이끌었던 루이스 마케도 핀트 데 소사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헌법 구조가 정치와 경제 간 '회전문 인사'을 부추긴다. "각료들이 결정한 많은 정책들은 그 각료가 나중에 일하게 될 기업들과 관계된 것이기 일쑤다. 우리 헌법에선 각료가 퇴임한 뒤 의회에 입후보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이는 영국과 반대다. 그렇다 보니 각료들의 종착지는 대개 민간기업이 된다."
노바대학이라는 한 대학의 이해관계와 이 대학이 장려하는 아이디어는 대체로 지배계급의 이해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 사이에서 일치된 이해관계는 마치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은밀하게 작동된다. 쿤하 교수는 "포르투갈엔 독립적인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 그 때문에 그 역할을 대학들이 맡고 있다"고 말한다. 좌파건 우파건 이 나라의 정치적 책임을 지는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노바대학 교수들의 '가이드'를 받는다는 것이다.
스타 교수들은 자신의 영향력이 연구의 객관성에 근거한다는 점을 별로 의심하지 않는 눈치다. 그들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처럼 비치는 걸 좋아한다. 마샤두 원장은 "노바대학은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의견을 제시한다. 교수들은 어떤 로비에 의한 것도 아닌 독립적 의견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이데올로기적으로 공평무사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노바대학 교수들은 대학 내에 하나의 컨센서스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마샤두 교수는 "우리는 개념적 수준에서 생산성 증대의 필요성, 자유무역, 노동시장 개혁, 경쟁력 강화, 그리고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해 의견을 같이한다. 의견이 다른 부분은 단기적 전략의 경우다. 그러나 우리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노바대학에 케인스 학파가 있는지 묻는 질문에 마샤두 원장은 웃음으로 답했다.
노바대학의 경제학자들은 포르투갈의 구제금융 패키지에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사회적 지출 삭감과 부가가치 세율 인상 등이 그것이다. 정확히 말해 이 방식은 그리스·아일랜드·스페인·이탈리아에 적용됐고, 프랑스에도 적용될 것이다. EU·IMF·ECB에 대한 노바대학의 영향력과, 브뤼셀(EU)과 프랑크푸르트(ECB)에 의해 이미 결정된 긴축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한 노바대학의 영향력 중 어느 쪽이 더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구제금융 처방은 포르투갈 국민을 설득해내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4일 포르투갈 양대 노총은 독재정권 붕괴 이후 두 번째 총파업에 들어갔다. 시위 참가자들은 "4월 25일은 영원하다. 파시즘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이라고 외쳤다. 진보적인 군 장교들이 독재자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신국가 체제'를 무너뜨리고 카네이션 혁명을 이룩한 1974년 4월 25일을 빗댄 말이다.
민주주의와 긴축 사이의 대립관계를 부정하는 것과 거리가 먼 노바대학의 이데올로그들은 복잡하지 않게 이 점을 받아들인다. 노바대학 경영대학원 전 학장으로 많은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주제 네베스 아델리누 교수는 "물론 틀림없이 그건 내가 한 말이다"라고 했다. 그는 건강보험을 예로 들면서 지금까지 "정책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고안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전 국민 무료 건강보험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전 국민에게 무료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그건 간단하다. 부채를 20% 더 늘리면 된다. 그러나 이 무료 시스템은 더 이상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곧 봉착하게 될 것이다."
마샤두 원장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개혁으로 인해 몰락할 특정 집단이나 압력 그룹을 쉽게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개혁으로 이득을 보게 될 사람들은 훨씬 더 분산돼 있다. 그들은 미래 세대이고, 사회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샤두 원장의 해법은 무엇일까? "한 야당 지도자가 '6개월 동안 민주주의를 일시 정지시킬 수 있다면!'이라고 말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물론, 그가 민주주의 일시 정지를 정말로 권한 것은 아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개혁과 민주주의의 충돌이 불가피할 때 민주주의를 일시 정지시킬 수 있다면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기 더 쉬울 것이란 뜻이었다."
노바대학 최고경영자과정 학장인 나딤 하비브 교수는 희망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현재 18∼19살 젊은이들을 보면서 포르투갈 경제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게 됐다. 이 나라를 변화시킬 이들은 바로 이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의 정치 지도자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뒤이어 등장할 정치 지도자들과 함께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학장은 이 점을 인정했다. "나는 현 정부 사람들이 우리 말에 귀기울이는 것보다 다음 세대의 정책 결정자들이 귀기울여주는 것을 더 바란다." 그들이 선거에서 당선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노바대학 출신일까? 하비브 학장은 이에 대해서는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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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오언 존스 Owen Jones <차브족(Chavs): 노동계급의 악마화>(Verso·Londres·2011) 저자.
*차브족: 저급문화를 즐기는 영국의 젊은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 원래 집시들의 말에서 유래한 차브는 2005년 사전적 용어로 정착됐다. 조잡한 짝퉁 문화, 저소득에 어울리지 않는 명품 패션 등을 고집하는 양아치 문화를 정체성으로 삼는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
번역•류재훈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
(1) 'A degree of influence?’, <파이낸셜타임스>, 런던, 2011년 9월19일.
(2) <파이낸셜타임스>, 2011년 경영대학원 순위, http://rankings.ft.com.
(3) ‘Ou se cachent les pouvoirs’, <Manière de voir>, n°122, avril-mai 2012.
포르투갈, 유럽 성장의 시험대
“나는 가끔 포르투갈이 시험대라는 느낌을 받는다. 유럽이 경제성장을 회복하려 한다면,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이 언젠가 견뎌내야 할 시험대라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리스본 노바대학 최고경영자과정 학장인 나딤 하비브 교수의 말이다. 실제로 포르투갈이 다른 나라에 적용될 정책 실험대의 역할을 해낸다면, 유럽 사회는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가장 중요한 사회변혁을 감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와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은 EU에서 세 번째로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가 됐다. 지난해 5월 포르투갈 정부는 EU와 IMF에서 780억 유로를 받는 대신, 올해 말까지 재정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9.1%에서 5.9%로, 내년 말까지 3%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토르 가스파르 재무장관은 2015년까지 공공지출을 GDP의 50.5%에서 43.5%까지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스파르 장관이 인정한 대로, “반세기 만의 전례 없는 계획이다”.(1)
포르투갈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민영화의 첫 번째 파도가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포르투갈 정부는 국영에너지기업 에네르기아스(Energias)의 주식 일부를 중국의 장강삼협집단공사(CTGC)에 매각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공항관리회사, 국영항공사, 상수도, 국영라디오, 그리고 대중교통이 차례로 처분 대상이 될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국가행정의 경계가 새롭게 재정의되는 동안, 저소득 및 중간소득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새로운 압박을 받고 있다. 전기와 천연가스의 부가가치 세율은 6%에서 23%로 인상됐다. 지난해에만 한 달 임금의 50%에 해당하는 보충소득세가 모든 노동자에게 부과됐다. 남유럽 국가들에서처럼, 공무원 임금은 1년에 14번에 나눠 지급됐다. 전체적으로 공공부문 노동자의 소득은 25% 줄었다.(2) 민간부문의 임금은 더욱 궁지에 몰렸다. 정부는 하루 30분씩 근무시간을 연장했다.
긴축 조처로 인해 국내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더 줄어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포르투갈 중앙은행은 지난 1월 초 경제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 예상했던 -2.2% 대신 -3.1%로 발표했다.(3) 지난 1월 13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유로존 9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포르투갈에 대해선 ‘리스크 증가’(투자 부적격 등급인 BB로 두 단계 하락)로 평가했다. S&P는 “일자리 안정성과 순수입 총액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 증가로 국내 수요가 붕괴되고 국가의 재정 수입이 잠식되는 한, 금융긴축에만 기초한 개혁 과정은 의도한 것과는 반대의 효과를 낼 위험이 있다고 평가한다”며 이번 결정의 정당성을 설명했다.(4) 포르투갈 정부는 2011년 말 재정 적자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연금자산에서 56억 유로를 돌려막은 덕분이었다.(5)
(1) <파이낸셜타임스>, 2011년 8월 31일.
(2) ‘Fears of cosmetic reform as Portugal austerity bites’, <파이낸셜타임스>, 201년 11월 24일.
(3) ‘Portugal Lowers Economic Outlook’, <월스트리트저널>, 2012년 1월 10일.
(4) ‘When, oh when, will Europe face the truth?’, <데일리텔레그래프>, 2012년 1월 16일.
(5) ‘Portugal raids pension funds to meet deficit targets’, <데일리 텔레그래프>, 2011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