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

2012-04-14     자비에 몽테아르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2011년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 20%나 되는 인플레이션에 발목을 잡힌데다 구매력 감소로 단순노무직 노동자 수천 명이 파업을 일으켰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경제·사회적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교육기관과 고등교육을 거쳐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제가 좋아했던 건 칼라시니코프(AK자동소총)를 다루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나쁜 제국주의자들에게서 나 자신을 지킬 줄 알게 되었답니다." 이엔(21·가명)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여학생이 말한 건 대학 생활 첫 달의 군사이론 수업 및 실습 교육이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베트남의 교육기관마다 인민군 교사가 비슷한 수업을 한다. 대학 신입생들은 1945년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세운 호찌민의 '호찌민 사상' 과목(7장으로 구성)을 소화해야 한다. 물리학자, 회계사, 조형예술 교수가 될 학생이라도 모두 국가의 공식 정치 기조에 따라야 한다. 프랑스 식민 지배와 이후 미국의 침략에 맞서 30여 년간 전쟁을 치른 사회에서 베트남 젊은이들은 잠재적으로 모두 애국 민병대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엔도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이런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AK소총과 대학

베트남에서는 군과 국가주의의 역할은 점차 구시대의 유물이 돼가고 있다. 교육 관련 인구가 증가한 때문일까? 1987∼2009년 고등교육의 변화는 극적이었다. 교수 수는 3배, 교육기관 수는 약 4배, 학생 수는 13배 이상(1) 증가했다. 인구가 8700만 명에 달하는 이 나라에서 학생 수는 175만 명이다. 프랑스의 학생 인구는 230만 명이다. 대학입학시험을 보는 연령대의 16%에 불과한 학생 비율은 주변 강대국들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농경국가인 베트남에서 고등교육은 거의 전무했다. 기록적인 시간 안에 이런 성장을 이룬 데는 베트남의 국가적 노력 덕분이었다.

1945년 독립 이후 호찌민은 '교육을 통한 해방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문맹퇴치 캠페인을 벌였다. 이어서 공산권 '형제국가'의 선례, 소련연방 및 위성국가와의 협력 및 교류를 통해 중앙집권적인 교육 모델을 완성했고, 그중 최고의 장점을 모아 국가와 당의 교육 기틀을 다졌다. 그런데 이제 이런 교육 체계가 자본주의 도입으로 야기된 국민의 엄청난 변화와 기대로 인해 과도기를 맞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칼라시니코프에 흠뻑 빠진 이엔의 경우는 베트남 교육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1985년 박닌 지방에서 태어난 이엔은 일찍이 딸의 미래를 생각한 농사꾼 부모에 의해 6살에 하노이로 보내졌다. 이엔에게는 군대에서 인쇄일을 하는 할아버지의 입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 빈곤을 막 벗어나려는 나라에서 공무원인 동시에 군인 신분의 인쇄사는 이중의 혜택을 누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지원 덕에 10여 년이 지나서 이 어린 소녀는 대학입학자격을 통과한 뒤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 인쇄학교에 들어갔다(연간 학비가 150만 동(약 7만 원)이다). 그러나 3년간의 공부 뒤 그녀가 얻은 학위로는 노동직으로 진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같은 또래 젊은이들과 비교해볼 때 자신이 배운 인쇄 공부의 가치가 (다른 고등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느꼈다. "그래서 국립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7월에 있는 입학시험을 위해 1년간 준비했어요."

고교생의 95%가 대학입학자격을 취득하지만 대학입학시험은 더 엄밀히 학생들을 선별한다. 이엔은 시험에 실패했다. 그래서 그녀는 눈높이를 낮춰 공립과 사립의 중간 정도인 탕롱대학의 상업영어과에 입학했다. 학비(연간 약 72만 원)는 인쇄학교와 비교할 수도 없이 비쌌고, 그녀가 원했던 국립 혹은 공립 대학의 학비(연간 약 15만 원)보다 매우 비싼 편이다. "할아버지 집에서 살기 때문에 집세는 내지 않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어요." 낮에는 와인 및 주류 판매점에서 일하고 저녁에 수업을 듣는다. 지난해 10월 이엔은 결국 학사를 취득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학위가 좋은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공공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대학 졸업생의 60%만이 취업한다. 그리고 취업자의 3분의 1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에 취업한다.(2)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연구 대학과 학생 교육을 위한 대학을 엄격히 분리한 소련식 모델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혼란스러운 공급 체계 속에 혼재돼버린 상태다. 베트남에는 현재 단기 직업전문학교를 비롯해 '사회주의' 정부 지원을 받는 편대식 교육, 6년 과정의 학부 대학, 6학기 과정으로 끝나는 유럽식 모델 대학이 있는가 하면, 외국 기관과 공동 운영되는 이중 학위 과정, 학비가 연간 4천 달러에 육박하는 앵글로색슨계 비즈니스스쿨의 '국제 학위' 과정까지 있다.

입시에 매달리는 젊은이들

하노이시 하노이구의 한 저녁 풍경. 여느 저녁때처럼 상업대학 학생 4명이 매트도 깔리지 않은 방에서 하나뿐인 길이 2m, 너비 1.5m의 침대에 앉아 밥과 채소로 차린 저녁을 먹는다. 밤이면 네 학생은 가로로 누워 잔다. 여하튼 4명이서 방을 함께 쓴다. 학생 투오이가 말한다. "18㎡의 이 방에 우리는 월 40유로(약 6만 원) 정도를 내요. 여기에 수도요금으로 각자 2400원, 전기요금 3천 원, 인터넷 이용료 4800원을 내지요." 그때 친구 2명이 막 들어온다. 가까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그중 한 친구가 뿔 모양 컵에 담긴 갈색 음료를 권한다. '마름'이다. 학생들은 학교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 자신들은 먼 길을 통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가 멀리 있는 것에 대한 이점도 있다. 자취비가 따로 들지 않아서 학비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 6명의 학생들은 모두 지방 출신이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거나 노동자이기 때문에 월소득은 7만5천 원에 그친다. 따라서 무엇보다 재정적 문제가 학교 선택을 결정짓는다.

바늘구멍 취업을 위한 고난의 학업시대

하노이의 다른 편에 위치한 경제대학 기숙사 건물 3층에서도 같은 풍경이 보인다. 410호에는 학생 10명이 5개의 이층침대에서 잔다. 요리할 주방도, 온수도, 에어컨도 없다. 구식 화장실 2개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숙사 이용료는 최저 수준이다. 방 하나가 월 5300원가량 한다. 쿠인(21)은 "우리는 고등학교 때 우등생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런 혜택을 누리고 있어요.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대학 기숙사는 외지거나 가난한 지역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요"라고 말한다.(3) 방을 가득 채운 봉제인형보다 이 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노트북컴퓨터다. "학생 대출을 이용해 45만 원을 대출받았어요." 컴퓨터는 매우 비싸지만 컴퓨터 없이는 학교 수업이 불가능하고, 베트남의 징 사이트나 페이스북에 접속할 수 없다. "교수님들이 전자우편으로 숙제를 보내거나 휴강을 알리거든요. 불행히도 인터넷 접속이 아주 느려요. 뉴스는 읽을 수도 없지요." 이런 불편이 있고 비좁은 곳에서 생활함에도 쿠인은 만족해한다. "3년 전부터 이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 전에 있던 기숙사는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했어요. 쥐한테 물린 적도 있다니까요. 하지만 여기는 쥐가 물지는 않아요."

기숙생들은 학교 수업보다 삶의 질에 대해 할 말이 더 많다. 좀 이야기를 나눠보면, 교수의 최고 덕목은 근면이 아님을 알게 된다. 권위적인 태도와 끝없이 이어지는 장광설로 가득한 수업은 인터넷 세대의 기대와는 거의 맞지 않는다. 해외에 나가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타는 것은 모든 학생이 원하는 바다. 베트남의 교육 현실을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공교육 체계에 관한 여러 보고서를 읽으면 된다. 그러나 관료주의로 점철된 역사 탓에 교육 관할 부서가 여럿으로 쪼개지면서 교육정책이 일관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연수부는 376개 고등교육 기관 중 14.5%만 감독한다. 그 외의 다른 부처들(과학기술부·산업경제부 등)이 31%, 인민위원회(시청 같은 지자체)가 33%를 관할하고, 21.5%는 사립교육기관이 맡고 있다.

예를 들어 수력대학교는 농업 및 농촌개발부 관할이다. 최근 개교 50주년을 맞았다. 분홍색 학교 건물은 세월의 무게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화려한 입구는 오히려 지저분한 주변 대로변과 동떨어져 보인다. 당과 정부로부터 '노동 영웅', '호찌민 메달' 등을 받는 것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이 대학은 '시범교육 전략'으로 유명하다. 이 대학의 부총장 트린 민 투의 소개를 들어보자. "우리 학교는 국립대학에 속하기 때문에 학비는 평균 수준이다. 그렇지만 영상실을 비롯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 시설이 돼 있고, 무료로 교과서를 제공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학교가 응용연구와 기술의 민간 이전과 같은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일정한 수익을 거두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주에도 일부 학과에서 홍강(紅江)을 관찰하기 위해 단체로 현장실습을 떠났다. 이런 일이 일부 학생에게는 불만스러울 수 있겠지만, 우리는 (어떤 사업의) 경쟁 입찰에서 다른 회사들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이익이 학교 시설이나 급여에 재투자되기도 한다."

교수도 이익을 내야 산다

투 부총장은 담담한 어조로 공공교육기관이 현대 교육을 제대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한다. 2011년 교육연수부 예산이 증가해(2.9% 증가) 3천억 원으로 늘어났지만, 인구의 절반이 26살 미만인 베트남의 교육 수요를 충당할 수는 없다. 몇 년 전부터 베트남 학교들은 공교육과 사교육(교육 외적 수익활동)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다. 예를 들어 수력대학의 한 교수는(그가 맡은 학생 수는 500명이다)는 공무원 급여 외에 고용주가 되는 기관에서 별도의 임금을 받는다. 이 경우 교수는 자신이 보유한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수입을 얻는다. 투 부총장에 따르면, 많은 교수들이 이 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학교 직권으로 채용된 박사 학위자 외의 교수 채용 심사는 엄격하다. 석사나 학사급은 영어와 컴퓨터, 구술 강의가 포함된 채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을 통과한 뒤에는 대학 내 엄격한 서열에 따라 대학의 모든 일에 헌신해야 한다. "2007년 이후 우리 학교는 모든 관계자에게 노트북과 컴퓨터를 제공한다.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해서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좋은 업무 여건을 조성할 수 있었다."

투 부총장은 공공과 민간 협력을 통한 수익 창출로 동기부여를 하는 이 대학의 '윈윈' 방안을 철석같이 신봉하지만 이 논리가 다수의 견해는 아니다. 개인적 신념, 습관이나 사유로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신의 교육 방식을 바꾸는 데 거부감을 갖는다. 복도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이같은 교육 방식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 교육은 외국식으로 변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교육 프로그램과 학과목, 교육 방식의 변화를 강요했다. 보다시피 나는 구세대다. 1976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이제 3년 뒤면 은퇴한다. 이전에는 학생들 간에 강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모두 한 과 안에 있었고, 공동 목표가 있었으니까. 첫해부터 마지막 해까지 모두 함께 수업을 받으며 학위를 땄다. 지금은 개인화된 학과 과정 때문에 학생들 간의 관계가 소원하다.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영어와 인터넷을 배우려고 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이상을 주장하고 교수의 권위를 변호하는 그가 그의 직업에 대한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신자유주의에 포위된 대학 시스템

2007년 음력 설에 80살이 된 '베트남 수학계의 아버지' 호앙 투이는 당시 '국가 과학과 교육의 끝없는 침체'를 신랄히 비판하는 글을 써 파문을 일으켰다.(4) 그는 그 원인이 현재 상태에서 수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임금과 수입의 모순', 즉 공식 임금이 비급여 수입의 일부에 그치는 모순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국제적 명망가'란 보호막 아래 그는 발언의 수위를 높여 부패의 원인까지 과감히 언급했다. "물론 이런 모순을 재정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뜯어고치기란 어렵다. 투명하지 못한 정부 정책과 결탁된 일부 공무원이 자신들이 다칠 일을 굳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뒤, 하노이의 한 물리실험실에서 30대의 박사 및 박사 논문 준비생 3명이 이 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디엡은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의 기본급은 약 12만 원이다. 그런데 교수들은 이보다 40% 정도 더 많은 보너스를 받는다. 그렇지만 이 정도 금액도 생활하기에, 또 한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수들도 살아야 하고, 그들에겐 가족이 있다. 결과적으로 다른 수입원을 찾게 된다. 부업을 하든가, 이 경우에는 교육의 질이 떨어질 테고, 아니면 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추가 수입을 얻을 것이다."

이 '추가 수입'은 오늘날 베트남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5) 교수들은 저녁에 유료 추가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이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은밀한 돈거래다. 타오는 다음과 같이 그 사정을 들려준다. "부모님은 내가 고향으로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기 원하셨다. 내 자리도 알아보셨다. 자격이 될 만한 학위는 충분했지만,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교수 자리를 얻으려면 8천 유로를 내야 한다. 몇 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학교의 모든 관계자와 각 과, (그녀는 잠깐 주저하더니) 심지어 총장까지 돈을 건네야 한다. 만약 내가 이에 동의했다면, 앞으로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작은 조직을 만들어서 미래에 교수가 될 학생들이 내 수업을 돈 내고 듣도록 했을 것이다. 내 위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런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이 세 사람은 급여를 대대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라에 돈이 없다. 설사 공무원 임금을 다소 올린다고 해도 국가는 국가권력을 지탱하는 조직인 군의 급여를 우선시하도록 강요받는다.

교육체계의 불안은 더 광범위한 위기로 이어진다. 지난 20년간 물가는 상당히 오른 데 반해(2011년 20%의 인플레이션), 공공직 근로자는 동결된 임금 때문에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고용시장이 변화하면서 학생들은 상업이나 회계 관련 과정에만 몰려든다. 현재 '매니저'로 통칭되는 회사 간부가 되려는 것이다. 월급에 제한이 없다며 젊은이들의 야망을 부추기는 다국적기업의 간부 말이다.

호앙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아버지는 하이퐁의 세관원이고, 어머니는 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 그는 자신이 중산층임을 당당히 인정한다. 22살밖에 안 됐지만, 그는 세 번째 대학 경력을 쌓았다. 그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기회 균등보다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진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대학입학자격 취득 뒤 하노이의 국제경상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최고의 국립대학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 목표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3~4개월간 오스트레일리아교육훈련센터에서 실력을 쌓았고, 성적이 좋아 멜버른의 모내시대학 은행금융과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연간 2만5천 달러(약 2300만 원)의 학비에도 불구하고 호앙의 가족은 3년간 호앙을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보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2009년 베트남 화폐인 동(Dong)의 가치가 급격히 폭락한 것이다. 호앙은 당시 또 다른 금융위기가 올 수 있는 상황에서 유학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2010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학사 과정을 끝내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호앙은 많은 것을 배웠다. 현대 교육 방법에 익숙해졌고, 18살에 잠깐 엿본 기존 베트남 교육체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걸고 호앙의 가족이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외국 브랜드의 대학이었다. 바로 하노이과학기술대학이다.

외국 유학, 멋진 돌파구?

하노이과학기술대학은 프랑스와의 제휴 아래 설립된 국립대학이다. 프랑스의 10여 개 고등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컨소시엄 형태로 협력하고 있다. 2008년 세워진 호찌민시의 베트남 독일대학에 이어 비슷한 유형의 두 번째 혼합 체계 대학이다. 하노이과학기술대학은 '신대학'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자유고등교육이라는 미래지향적 교육을 구체적으로 실현한다. 즉 투명한 운용, 학사-석사-박사 통합 과정, 기업들과 직접 교류 등의 교육이다. 총장 피에르 세반은 이렇게 말한다. "순수한 학문 연구로만 머무른다면 하노이과학기술대학이 존재할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산학협력 연구의 마스터를 양성하려 한다. 기업을 참여시켜 훌륭한 과학 연구를 할 수 있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멋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은 만만치 않다. 프랑스는 이 대학에 10년 동안 1억 유로(약 15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돼 있다. 학부모 처지에서 학교가 우수하다고 여기는 만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연간 약 90만 원의 학비가 든다. 호앙에게는 모내시대학보다는 저렴하지만, 교육 서비스는 비슷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와 베트남에서 모두 학위가 인정되고 유럽연합 기준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교수 현황을 보면 약 60%가 프랑스인이고, 40%가 베트남인이다. "베트남 교수들의 경우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는 임금을 4배로 올려주고 전임교수를 확보하고 싶지만, 다른 대학에 있는 교수를 시간제로 써야 할 듯하다." 세반 총장은 권위적인 베트남 교육 행정구조 안에서 독립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학문'이 없는 교육체계, 불안한 미래

수많은 반대자에게서 신랄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매년 수백 명(또는 최대 수천 명)의 학위자를 배출할 뿐인 '신대학'이 베트남의 대중 교육에 공헌하는 바는 대체 무엇인가?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돈을 독식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일부에서는 2010년 말 베트남의 고등교육 개혁을 위해 세계은행이 5천만 달러를 빌려준 사실과, 아시아개발은행이 하노이과학기술대학 한 곳을 위해 1억9천만 달러를 빌려준 사실을 나란히 비교한다. 베트남 고등교육 체계가 근대화돼야 한다면, 그리고 이에 대해 베트남 사람이 모두 동의한다면, 외국의 교육체계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베트남의 공교육 체계를 변화시킬 방법은 과연 없는가?

베트남 국립인문대학 부총장 트린 반 퉁은 이렇게 말한다.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대학이 수없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아 부모들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의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대학이 많이 생기면 대학 간의 서열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이 대학들이 대학에 걸맞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까?" 그는 이 점이 의심스러운 듯했다. "철학자나 역사학자는 무엇을 할 수 있게 될까? 그들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열매를 따먹는 것, 이윤을 창출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또 어떤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한다면, 기초학문과 인문학을 망각한다면 베트남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의 급격한 부상과 전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인해 베트남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몰릴 위험이 있다. 바로 값싼 노동력을 현 수준으로 유지한 채, 안일한 지도층이 저임 노동을 기반으로 성장의 기계를 돌려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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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비에 몽테아르 Xavier Monthéard 국제투기자본 감시 시민연대인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에서 펴낸 <발전의 미래는 있는가: 절약과 연대의 사회를 위하여>(Mille et Une nuits·파리·2004)를 편집하고, <노망 든 자본, 경제학 비판 단상>(Le Passant·베글·2002)을 썼다.

번역•박지현 sophile@gmail.com 남극보호연합(ASOC) 한국 어드바이저.

(1) 각각 2만172명에서 6만1190명으로, 101개에서 376개로, 또 13만3136명에서 175만2561명으로 증가. 2010년 6월 아시아개발은행 Gai Sheridan의 보고서 ‘Vietnam: Preparing the higher education sector development project’ 참조. 바로 왼쪽 수치를 제외하고 기사 안에 인용된 수치는 모두 이 보고서에서 인용함.
(2) 2011년 9월 19일자 하노이에서 발행된 <난 단>(Nhan Dan).
(3) 2009년 9월 196개 베트남 공공 교육기관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 85만5337명 중 20%가 대학 기숙사에서 기거함. 2010년 10월 26일 자 호찌민시 <탄 니앤>(Thanh Nien) 참조.
(4) 호앙 투이 ‘New year, old story’, <Tia Sang>, 하노이, 2007년 2월.
(5) 초등 및 중등 교육의 부패에 관한 분석은 Philippe Papin과 Laurent Passicousset 공저의 <베트남 사람들과 살기>(Vivre avec les Vietnamiens), L’Archipel, Paris, 2010. 특히 3장과 6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