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헬은 어떻게 화약고로 변했는가

2012-04-14     필리프 레마리

지난 3월 22일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말리공화국에서 아마두 투마니 투레 대통령의 ‘모범적인’ 정권을 전복하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이로써 역내 불안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새롭게 일어난 투아레그 반군 활동에, ‘알카에다 마그레브 지부’를 자처하는 무장조직까지 활개를 치면서 사하라-사헬 지역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무능하다. 북부 지역에서 반군이나 테러조직을 소탕하는 데 무력하다." 지난 3월 22일 말리 정권을 탈취한 전투 위장복 차림의 젊은 장교들은 오랫동안 '민주주의 군인'으로 통하던 장군 출신의 전직 대통령 아마두 투마니 투레 대통령을 비난할 만한 딱히 심한 표현은 찾아내지 못했다. 1991년 3월 아마두 투마니 투레는 무사 트라오레 장군을 상대로 한 군사쿠데타에 가담한 데 이어 인민구제과도위원회 수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국민회의와 선거를 거쳐 민간인에게 권력을 돌려줬다. 정계에 진출한 그는 2002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오는 4월 20일 차기 대통령 선거와 함께 제2기 임기를 마칠 예정이었다.

'민주주의 회복 및 국가 재건 위원회'(CNRDR)가 헌정 중단 조치를 내리고, 대통령 선거 개최를 취소했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탈취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국가를 다시 통합하고 영토를 완전하게 회복하려는 것"이라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모두에게 한목소리로 비난받는 이 군사정권이 알제리, 니제르와 국경을 맞댄 북부 소외 지역에서 현 상황을 유리하게 뒤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구가 가장 적은 황량한 사헬 지대(사하라 사막 남쪽 가장자리 지역)의 유일한 경제 수단이던 관광산업이 중단 기로에 섰다. 알제리와 말리 사이에 걸터앉은 타우데니 분지, 니제르 아이르, 모리타니 아드라르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지도 참조). 설상가상으로 리비아 전쟁에 참전했던 수천 명의 전사(대다수가 투아레그족)가 최근 말리로 복귀하면서 리비아에서 탈취한 전쟁 무기가 역내에 확산되고, 코카인과 담배의 밀매까지 성행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분쟁의 불길이 알제리 남부와 말리 북부, 니제르 북부, 모리타니 일부 지역 등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관광객 발길 끊긴 채 밀매만 성행

사업가 모리스 프로인트는 "1990년대 알제리 내전에 깊이 고무된 분노한 미치광이 무리가 사하라-사헬 지역을 서부극 무대 삼아 지역 주민을 공포와 비탄에 빠뜨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개탄했다. 그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15살짜리 소년들이 가오 지역을 무법자처럼 활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충격에 휩싸였다. 모리스 포로인트는 1996년 사헬 전문 관광업체인 '포앵 아프리크'(Point Afrique)를 세워 관광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2010년 모리타니에서 프랑스 관광객이 피살되고, 2011년 봄 북부 니제르에서 '아레바' 직원들이 피랍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결국 사헬 관광사업에서 손을 떼야 했다.

지난 1월 17일 '푸른 사람'(Hommes Bleus·투아레그족 전사를 지칭하는 별칭)의 반란이 시작됐다. 말리 북부 메나카에 대한 유혈 공격으로 반란의 첫 포문을 연 이후 푸른 사람들은 지난 3월 11일 테살리트 기지를 점령하는 등 말리 정부군 주둔지를 잇따라 공격하며 승리의 기세를 이어갔다. 2011년 '전국아자와드운동'(MNA)과 '북부말리투아레그운동'(MTNM)이 한데 뭉쳐 탄생한 '전국아자와드해방운동'(MNLA)은, 최근 사망한 무아마르 알 카다피 휘하에 있던 군사 400명을 포함해 족히 1천 명에 달하는 전투원을 거느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2012년부터는 '알카에다 마그레브 지부'(AQMI)와 연계된 '안사르 디네(Ancar Dine·이슬람 수호) 운동'과 협력관계를 맺고 전투를 벌여오고 있다. 현재 AQMI는 말리 북동부 요충지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963년, 1990년, 2006년 일어난 투아레그족 저항운동의 맥을 이은 MNLA는 통북투, 가오, 키달 등 말리 북부 세 지역의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80만㎢ 이상에 달하는 이 지역은 말리 전체 영토(프랑스 면적의 1.5배)의 65%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인구는 14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하다. 현재 이 지역은 '서클'(Circle·도시들의 집합)이라 불리는 13개 권역으로 나뉘어 있다.(1)

반군에 패배하는 정부군의 허약함

마흐무드 아그 아그할리 MNLA 정치국 대표는 "1957년 이미 투아레그 부족은 새로 수립될 말리공화국(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에 병합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 30년간 정부와 대화를 하고 협정도 체결했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힘주어 말했다.(2) 독립주의자들은 말리 북부가 국가에 찬밥 신세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아마두 투마니 투레 대통령도 그런 사실을 인정했다. "말리 북부는 도로, 의료 시설, 학교, 우물,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시설 등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다. 차를 훔쳐 밀매조직원이 되지 않는 한, 이 지역 출신 젊은이가 결혼을 하거나 인생에 성공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3)

말리군은 친정부 성향의 투아레그족 민병과 아랍 연합군의 지원을 받은 수천 명의 병력을 가오, 키달, 메나카로 급파했다. 하지만 전투 의욕이 낮고(고위 장교를 비롯해 탈영하는 군사의 비율이 높다) 반군에 비해 무기 성능이 떨어지는 정부군은 잇따라 전투에서 패배했다. 평화시에도 소규모 말리군은 900km에 이르는 모리타니와의 국경선과 1200km에 이르는 알제리와의 국경선을 지키는 것조차 애를 먹고 있었다.

투레 대통령은 최근 말리 북부에서 터진 이 새로운 전쟁으로 임기 말년이 엉망이 되었다. 4월 20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 개최도 불투명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현인다운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북부 분쟁은 50년이나 지속돼온 문제다. 선조도 잘 헤쳐왔고, 우리도 잘 헤쳐나가고 있으며, 후손도 잘 헤쳐나갈 것이다. 북부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4) 투레 대통령은 사하라-사헬 지역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군인, (비정규) 전투원, 밀매조직, 상인 등이 국경선을 유린하며 유럽만큼 드넓은 지대를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0년 타만라세트에서 '합동군사작전위원회'(CEMOC·대테러 활동을 위해 모리타니, 알제리, 말리, 니제르가 결성한 합동 군사조직)가 조직됐다. 곧이어 '사하라 이남 사헬 지역 국가 중앙정보위원회'도 발족했다. 하지만 사하라 지역 국가들은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테면 모리타니는 프랑스 '통합특수전사령부'(COS) 교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절대 안정'을 부르짖는다. 반면 말리는 '장기적 차원의 개발'을 지지한다. 그래야만 지역민이 투아레그족 운동이나 AQMI 카티바(전투조직 단위)에 포섭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말리, 사헬 지역 불안정에 분노

말리 정부에 따르면, 알제리는 테러리즘과 관련한 현 사헬 지역의 불안정을 조장한 원흉이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나라다. 2007년 AQMI로 이름을 바꾼 옛 '살라피스트 선교전투그룹'(GSPC)은 본래 알제리 '이슬람무장그룹'(GIA)에서 비롯됐다. 그렇기에 알제리의 정보·안보 조직이야말로 AQMI를 제압할 최적의 상대인 셈이다. 더욱이 국방 예산으로 60억 유로(말리 국방 예산의 30배를 넘는 액수)를 쏟아붓고 있는 알제리 정부는 사하라 지역의 국경 지대를 통제할 실질적인 재정적 수단도 갖추고 있다. 투레 대통령에 따르면, AQMI 무장납치조직이 은신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말리 최북단은 사실상 또 하나의 알제리라고 할 수 있다. "말리 북부는 곧 알제리다. 가오, 테살리트, 키달은 알제리의 마지막 윌라야(도)다. 알제리의 역사는 이 지역과 연관이 깊다. 말리는 과거 알제리 혁명을 지원했다. 가오, 통북투 등이 당시 '민족해방군'(ALN) 의 근거지가 됐다."(5)

말리 북부에서 일어난 분쟁의 불길이 지역 전역으로 옮겨 붙을 위험에 처한 가운데, 실지회복운동이 테러, 범죄 등과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6) 설상가상으로 사하라나 사헬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던 카디피 대령이 지난해 10월 사망하면서,(7) AQMI는 골치 아픈 적수를 한 명 떼어내는 한편 리비아에서 빼돌린 무기로 조직의 무기고를 증강했다. 마하마두 이수푸 니제르 대통령은 투아레그족의 항거를 "리비아 사태의 부수적 피해"로 해석했다.(8) 그러나 MNLA는 AQMI와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AQMI 활동은 우리 영토를 오염시키고 있다. AQMI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도록 방임한 것은 말리 정부다. 국제사회에 약속하건대, 투아레그족을 독립시키면 더 이상 AQMI가 이 지역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겠다."(9)

사하라-사헬의 제2발칸화에 긴장 고조

이같은 MNLA의 발언은 사하라-사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정치적 대부 노릇을 해온 프랑스도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는 그동안 AQMI의 주요 타깃이 되어왔다. 이유는 2년 전과 똑같았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친이스라엘 외교정책, 프랑스 공공장소 내 부르카 착용 금지, 니제르 우라늄 개발 독점, 니제르·말리 등지에 억류된 피랍자 구출을 위한 특수작전 등이 AQMI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리 정부는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의 훈수- MNLA를 포함한 모든 파트너와의 대화, 기존에 체결한 협정 이행, 북부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등- 를 영 못 미더워하는 기색이다.

미국은 '대테러전'의 주요 전선을 형성하는 사하라 지역에 수많은 특수부대와 비밀정보원(Big Ears)을 파견하고 있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AQMI 수뇌부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 정부는 미 중앙정보국(CIA)이나 미공군 소속 무인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하는 것을 거부한다. 다른 사하라 이웃 국가들도 미국을 불신한다. 미국의 노골적 개입이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지역 분쟁에 기름을 끼얹게 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하라-사헬 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변했다. 모두 분쟁의 불길이 사하라-사헬 전역을 휩쓸며 이 지역을 발칸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니제르나 차드 지역에는 이슬람 과격단체 '보코하람'의 조직원 수백만 명이 은신하는 것으로 추정한다(알랭 비키 기사 참조). 케냐와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대치 상태에 있는 소말리아 이슬람 반군 '셰밥'도 사헬 지역으로 세력을 이동시킬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브릴 이브라힘이 이끄는 '정의평등운동'(JEM)도 다시 다르푸르 분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북부에서는 '재건을 위한 인민전선' 대표 바바 라데 '장군'이 이드리스 데비 차드 대통령의 축출을 주장하며 투아레그족, '폴리사리오 전선'의 사라위족, AQMI 등과 대대적인 연합 전선을 구축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사이 알제리, 니제르,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는 말리 북부 지역 분쟁을 피해 탈출한 20만 명에 달하는 말리인의 피란 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와 같이 식량이 부족한 건기에는 500만~700만 명에 달하는 사헬 주민에게 즉각적인 식량 원조가 시급할 것이라 세계식량프로그램(WFP)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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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필리프 레마리 Philippe Leymarie 언론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1) Robin Poulton, ‘말리 투아레그족의 권리 회복을 향하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6년 11월.
(2) <죈 아프리크>, 파리, 2012년 2월 21일.
(3) <엘와탄>, 알제, 2009년 4월 4일.
(4) ‘아프리카 대담’, RFI, 2012년 2월 26일.
(5) <엘와탄>, 위 기사.
(6) Antonin Tisseron, ‘사하라 지정학’, <에로도트>, 제142호, 3/4분기, 파리, 2011.  
(7) 카다피는 1998년 트리폴리에서 아프리카연맹과 유사한 조직인 ‘사헬-사할 국가공동체’(CEN-SAD)를 창설했다.
(8) <르몽드>, 2012년 2월 15일.
(9) <죈 아프리크>, 위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