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통곡의 가자 지구…
공포와 빈사의 '헐벗은 땅'…'필자' 아닌 '현장'이 쓴 보고서"그러나 죽지 않는 곳",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자 도살장
특집 - 시오니즘의 폭력Ⅲ
나는 모래 바위가 가득한 사막에서 허리까지 옷을 벗은 채 홀로 서 있었다. 이어 누군가가 바닥에서 흙 한줌을 쥐어서는 내 가슴팍에 집어던졌다. 무언가 생각이 깃든 몸짓이지, 공격을 하려는 의도의 행동이 아니었다. 흙은, 아니 자갈에 가까운 그것은 내게 닿기 전 조각조각 찢어진 솜 같은 것으로 변해 붕대처럼 내 상반신을 휘어 감았다. 이어 솜 조각조각은 다시 한 번 모습을 바꾸어 단어가 되었고, 문장이 되었다. 내가 글을 쓴 게 아니었다. 그 곳 현장이 써놓은 것이었다.
이 꿈을 다시 기억해내면서, '헐벗은 땅'이라는 표현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물질적인 의미에서든 비물질적인 의미에서든 모든 게 닦이고, 빼앗기고, 쓸리고, 휘둘리고, 왜곡되는 장소나 현장, 한 마디로 속살이 만져지는 척박한 땅을 일컫는 표현이다.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기리며
라말라 서쪽 근교 도쿄 거리 끝에는 알 라브웨라는 이름의 작은 언덕이 하나 있다. 언덕 꼭대기 부근에는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가 묻혀있다. 묘지로 쓰이는 곳은 아니었다. (...) 바로 이 가운데에서 다르위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 몇 수를 읊었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비탄의 순간 이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우리는 무덤을 찾아갔다. 묘비가 있었다. 움푹 패인 대지는 아직 맨살이 드러난 상태였고, 고인을 추모하러 온 사람들은 그곳에 초록빛 밀단을 놓고 갔다. 시인이 언젠가 자신의 시에서 노래했던 바로 그 밀이다. 붉은 아네모네도 있었고, 종이쪽지도 있었으며, 사진도 있었다.
시인은 갈릴리에 묻히고 싶어했다. 시인 그 자신이 태어났고, 시인의 모친이 아직도 살아 계시는 그곳, 갈릴리.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금했다.
시인의 장례식 때,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 알 라브웨로 모여들었다. 96세의 노모는 운집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러분 모두의 아들입니다."
소중한 사람이 이제 막 죽었거나 죽임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을 떠올리며 우리는 정확히 어떤 분위기 속에서 말을 하게 되는가? 우리가 하는 말은 현재의 어떤 한 순간, 평소보다 더 현실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에나, 위험이 임박해있는 상황, 번복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릴 때, 탱고를 출 때가 그러한 경우이다. 애도의 말이 울림을 만들어내는 건 영원의 큰 무대 안이 아니라 이 무대에 딸린 작은 곁채 안에서다.
지금은 텅 빈 언덕 위에서, 나는 다르위시의 음성을 떠올려봤다. 시인은 벌 치는 사람의 잔잔한 음성을 갖고 있었다.
돌로 지어진 통 하나, 산 자와 죽은 자가 마른 점토 안에서 아웅대며 살아가는 곳
벌집의 봉와에 사로잡힌 꿀벌들 같이 지내는 그 곳
벌집이 조여질 때마다
벌들은 꽃을 떠나 배고픔의 시위를 한다
그리고는 탈출구를 알려달라며 바다에게 청을 한다
시인의 음성이 떠오르자, 속살이 만져지는 척박한 땅의 초록빛 풀 위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아랍어로 알 라브웨는 '초록빛 풀로 뒤덮인 언덕'을 뜻한다. 알 라브웨를 뜻하는 이 말들은 자신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른 건 아무 것도 없었다. 400만의 사람들이 나눠가진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곳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다음 언덕은 쓰레기장이 되어버렸다. 까마귀가 그 주위에서 원을 그린다.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
저마다 불길한 징조를 느끼며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수개월이 지났다.
지금 이 순간, 재앙은 이름 없는 한 삼각지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삼각지는 훗날, 아주 먼 훗날 지리학자들이 여기에 이름 하나를 붙여줄 때에만 그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이름 없는 이 삼각지의 쓰라린 물 위를 걸어보려 애쓰는 것 말고는 현재로서 달리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무차별 학살과 전쟁의 광풍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 가자 지구는 도살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 밤낮으로 상공이든 해상이든 지상이든 이스라엘 방위대는 인폭탄과 포탄을 투하하고 150만 민간인이 사는 곳을 향해 GBU-39와 기관총을 쏘아댔다. (...) 전쟁의 광풍은 곧 참극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가옥에 물과 전기가 끊겼고, 병원에는 의사도, 의약품도, 발전기도 없게 됐다. 참극에 앞서 봉쇄와 포위가 이뤄진 탓이다.
전 세계에는 비난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들이 보유한 국제 언론의 힘을 등에 업고 핵무기를 뽐내는 부자 나라의 정부들은 방위대가 자행하고 있는 짓에 대해 눈을 감아주겠다며 이스라엘을 안심시킨다.
쿠르드계 시인 베장 마투르는 '우리가 잠든 사이에 통곡을 하고 있는 장소'라고 적고 있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통곡을 하고 있는 장소이자 이로 인해 결코 죽지 않는 장소이다."
그로부터 4개월 전, 나는 라말라의 어느 지하 주차장에 있었다. 주차장은 용도가 변경되어 팔레스타인 조형예술가 소그룹의 작업실로 쓰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란다 다'라는 이름의 여류 조각가가 있었다. 나는 이 여류 조각가가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Puppet Theatre'라고 이름 붙인 작품의 설치를 지켜봤다.
가로 3m 세로 2m의 대형 저부조인 이 작품은 벽에 세워졌다. 바닥에는 환조로 된 세 인물상이 작품과 마주보고 있었다.
여러 개의 어깨, 얼굴, 손 등으로 구성된 부조 작품은 철사, 폴리에스테르, 유리섬유로 이뤄진 뼈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표면은 짙은 녹색, 갈색, 빨간색으로 채색되었다. 양각의 깊이는 피렌체 세례당을 위해 기베르티가 만들었던 브론즈 문 가운데 하나와 비슷하다. 단축법 및 원근법도 거의 대가에 준하는 실력으로 처리됐다. (이 작품의 제작자가 그토록 젊은 사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고작 29살에 불과했다.) 부조 작품이 걸린 벽은 무대에서 바라보는 극장 청중과 비슷한 느낌이다.
벽의 맞은 편 무대 위에는 실물 크기의 세 인물상이 세워져있는데, 둘은 여자고 하나는 남자이다.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색감은 한층 더 창백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관람객의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2미터 더 떨어진 곳에,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두 배 더 먼 곳에 있었다. 세 인물상은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골라 입은 의상 같았다.
인물상의 몸에는 줄이 부착되어 있었고, 줄은 가로로 된 세 개의 막대기에 걸려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이들은 꼭두각시다. 무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꼭두각시 놀음꾼이 가늘고 긴 이 막대기를 이용하여 이들을 조종하는 것이다.
부조 작품 속 수많은 인물들은 모두 자기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며, 손을 꽉 움켜쥐고 있다. 마치 판돈이라도 움켜쥐고 있는 손 같다. 지켜는 보고 있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들이 손을 꽉 움켜쥐고 있는 이유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조 속 인물들이다. 3차원의 입체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 속 실제 세계로 들어올 수도,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할 수도 없다. 이들은 침묵을 표현하고 있다.
심장이 뛰며 실체로서 존재하는 세 인물에게는 뒤에서 꼭두각시 놀음꾼이 조종하는 줄이 부착되어있으며, 바닥에서 이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먼저 머리부터 움직이고 다리는 허공에서 춤을 춘다. 머리가 터져버릴 때까지 이들의 움직임은 그렇게 계속된다. 이들의 손, 이들의 몸통, 이들의 얼굴은 극심한 고통 속에 경련을 일으킨다. 끝이 없는 고통이다. 이들의 다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그렇게 계속된다.
부조 속에 갇혀있는 무능한 관객들과 바닥에 널브러진 희생양 사이를 거닐어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지금껏 내가 다른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보지 못했던 힘이 배어나온다. 이 작품은 작품이 세워진 바닥 위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품은 공포에 질린 관객들과 빈사 상태의 희생양 사이의 공간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주차장 바닥을 '헐벗은 땅'으로 변모시킨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자 지구의 모습을 예견하는 작품이었다.
알 라브웨 언덕 위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무덤은 이후 울타리가 설치되어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결정에 따라 유리로 된 피라미드로 덮어씌워졌다. 이제는 시인 곁의 바닥에 앉아있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시인의 음성은 우리 귀에 와 닿는다. 계속해서 우리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언제까지든 그리 할 수 있다.
폐허가 되어 비탄에 잠긴 불바다에서 내겐 해야 할 일이 있다
로트의 시대에서 히로시마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마치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처럼
내가 알아야 할 목마름과 더불어 이 일을 해야 한다
아마도 현재는 멀어져버린 것 같다
그리고 과거가 다가와버린 것 같다
하여 나는 역사의 변방으로 걸어가기 위해 현재의 손을 잡는다
산염소의 혼돈과 더불어
순환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현재의 손을 잡아본다
어떻게 해야 나의 내일을 구할 수 있을런가?
빠르게 돌아가는 문명의 시간을 통해서?
아니면 느리게 굴러가는 사막의 내 대상 마차를 통해서?
내 삶이 다할 때까지 내겐 해야 할 일이 있다
마치 내가 미래를 보지 않게 될 것처럼
지금 존재하지 않는 오늘을 위해 내겐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여 나는 가만 가만 귀를 기울여본다
살금살금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번역 |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