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강대국들이 전쟁을 벌이는 진짜 이유는?
유럽 미디어에서는 금지된 분석
지배적인 담론에 따르면 서구의 대외정책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주의 국제관계학의 대가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 간의 관계를 좌우하는 것은 이상이 아니라 전략적 동기라고 설명한다.
30년 전, 서구의 많은 전문가들은 강대국들의 대립은 끝났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확신은 환상임이 드러났다. 오늘날에도 강대국들은 여전히 대립 중이며 특히 두 분쟁은 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인다. 동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는 대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서구의 입지는 약화됐다. 그동안 세계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또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계를 설명하는 국제관계 이론, 즉 국가들이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할 보편적 틀이 필요하다.
현실주의 vs. 자유주의
국제정치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는 ‘현실주의’ 이론이다. 이 이론은, ‘국가들은 다른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최고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공존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소한 약점도 국가를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국가는 세력균형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국가들은 힘의 각축장에서 경쟁하지만, 이해관계가 일치할 경우에는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 특히 강대국 간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경쟁의 원칙을 따른다. 현실주의 이론에서 전쟁은 국가가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통치 수단 중 하나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표현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현실주의는 서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서구는 전쟁을 정당방위의 경우에만 정당화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이는 유엔(UN) 헌장에도 부합하는 관점이다. 서구가 특히 현실주의 이론을 비난하는 이유는 염세주의적 공리(公理)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에 따르면 강대국 간의 경쟁은 신성 불가침적 현상이며 필연적으로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는 존재 법칙이다. 현실주의는 또한 민주주의와 독재를 불문하고 모든 국가는 동일한 논리를 따른다고 전제한다. 서구에서는 체제의 성격에 따라 국가의 경쟁 성향이 달라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지닌 반면, 독재체제는 전쟁을 도발하는 성향을 지닌다는 시각이다.
따라서 서구가 현실주의의 반대 개념인 자유주의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도덕적인 수사학으로 행동을 포장할 뿐 실제로는 거의 항상 현실주의 논리를 따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냉전 기간 내내 중국의 장제스, 이란의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한국의 이승만,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모부투 세세 세코, 니카라과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같은 파렴치한 독재자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정책에는 주목할 만한 단절기가 있다. 바로 1991~2017년, ‘단극체제 시대’다. 이 시기 미국 정부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지정학적 현실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세계질서 확립을 추구했다. 또한 법치, 시장경제, 인권의 자비로운 수호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으며, 지금의 혼란스러운 세계를 만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냉전 막바지였던 1989년에 미국의 통치자들이 현실주의 대외정책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안전한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국가는 철창에 갇힌 포로다
현실주의는 여러 방식으로 분화될 수 있다. 미국의 법학자 한스 모겐소가 주장한 ‘고전적’ 현실주의 이론에 따르면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내재적 본성이다. 모겐소는 지도자를 움직이는 힘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려는 타고난 충동, 즉 ‘권력에 대한 무한한 욕구(animus dominandi)’라고 설명했다. 각자 자신만의 이론이 있겠지만 필자의 이론은 무엇보다 국제체제의 구조 자체가 국가 간 경쟁의 원동력이며 국가, 특히 강대국에 치열한 경쟁의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국가는 철창에 갇힌 포로 신세다.
무엇보다도 강대국은 의지할 보호자가 없이 경쟁국의 위협에 홀로 맞서야 하는 국제체제에 속해 있다. 자기방어의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모든 국가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갖는 제약은 국제체제의 다른 두 가지 측면 때문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모든 강대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별 차이는 있겠지만, 강대국은 다른 국가를 공격해 상당한 피해를 줄 힘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국가의 의도가 평화적인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군사력과 달리 국가의 의도는 지도자의 마음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그 국가를 이끌지, 상황이 변한다면 그 국가의 의도가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강력하고 적대적인 경쟁국에 홀로 맞서야 하므로, 서로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두려움의 강도가 다를 뿐이다. 이처럼 위험한 세계에서 합리적인 국가가 살아남는 최선의 길은 국력을 키우는 것이다. 1839~1949년, 중국이 겪은 ‘백년국치(百年國恥)’는 강한 국가일수록 다른 국가의 취약성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성향이 있음을 보여줬다. 국제무대에서는 아기 사슴 밤비보다 괴수 고질라인 편이 낫다. 유럽연합(EU)은 이런 규칙의 예외로 보이지만 이는 겉보기일 뿐이다. EU는 미국의 보호 아래 탄생했다. EU 회원국이 더 이상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EU 내 군사적 충돌을 불가능하게 만든 미국의 영향력 덕분이다. 유럽 지도자들이 미국이 아시아에 더 집중하기 위해 유럽에 등을 돌리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강대국 정치의 특징은 냉혹한 안보 경쟁이다. 각 국가는 상대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힘의 균형이 자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기우는 것을 막고자 노력한다. 국가는 ‘세력 균형’으로 불리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력을 강화하거나 유사한 위협에 놓인 타국과 동맹을 결성한다. 현실주의적 세계에서 국력은 곧 군사력이다. 그리고 군사력은 경제발전과 인구수에 좌우된다. 강대국이 되려면 역내 강자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즉, 자국이 속한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른 중견국이나 강대국이 이 지배권에 도전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논리의 완벽한 예다. 미국은 18~19세기 서반구의 패권을 다진 후 20세기에 들어 독일 제국, 일본 제국, 나치 독일, 소련이 아시아와 유럽의 유일한 강자로 부상하지 못하게 저지했다.
모든 국가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다. 국가가 살아남지 못하면 그 어떤 다른 목표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부의 생산이나 이데올로기의 전파와 같은 다른 목표를 우선 과제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다른 목표가 국가의 생존 가능성을 위협하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강대국도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고 동맹으로 인해 세력의 균형 관계에서 자국의 입지가 약해지지 않는다면 서로 협력할 수 있다. 일례로,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은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영국과 함께 핵확산방지조약(1963년)을 체결하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유럽 강대국들은 강력한 경제적 이해관계로 서로 연결돼 있었지만 동시에 치열한 안보 경쟁을 벌였다. 유럽은 결국 경제 협력 대신 전쟁을 선택했다. 강대국 간 동맹의 이면에는 언제나 자국의 안보 보장을 위한 경쟁이 존재한다.
지정학 분야에서 현실주의 학파는 규칙을 기반으로 한 세계질서의 핵심인 국제기구를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은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서 국제기구는 안보 경쟁 억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냉전시기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혹은 오늘날의 세계무역기구(WTO)와 유엔이 대표적인 예다. 다만 현실주의자들은 이런 국제 또는 다자기구는 강대국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수립한 규칙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제기구는 어떤 경우에도 영향력 있는 국가가 자국의 안보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할 수 없다. 그럴 경우, 해당 국가는 규칙을 무시하거나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할 것이다.
자유주의의 역설
이런 논리는 서구에서 널리 통용되는 믿음과 모순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독재국가와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독재국가는 법에 기초한 세계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 믿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독재국가는 평화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현실은 이런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다. 모든 국가가 자국의 생존을 추구하는 자기방어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정치체제의 성격은 중요하지 않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 미국은 국제법을 위반하고 1999년 유고슬라비아,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으며 1980년대에는 니카라과의 유혈 내전을 선동하기도 했다. 자국의 중대한 이익이 걸렸다면, 모든 강대국은 거리낄 것이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핵무기 혁명’으로 인해 현실주의의 본질이 상당 부분 흐려졌다고 주장한다. 다른 국가의 공격을 억제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모든 형태의 파괴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에 권력 경쟁의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이 전문가들은 또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두려움만으로도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 간의 재래식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이 이런 논리에 동조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냉전 시기 ‘빅 투(Big Two)’ 간 경쟁에 미국과 소련은 엄청난 자금을 퍼부었다. 오늘날의 중국, 러시아,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들 3국은 재래식 전쟁 준비를 중단한 적이 없다. 핵무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강대국 간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은 확실히 낮아졌지만, 여전히 가시적인 위협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현실주의는 여전히 타당한 이론이다.
현실주의 교리에 따르면 강대국의 전략적 이익이 달린 핵심 (역외) 지역은 경쟁국을 견제할 수 있거나 세계경제에 필수적인 자원을 보유한 지역이다. 냉전 시기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은 미국이 전쟁을 준비해야 해야 하는 역외 지역으로 소련이 속한 유럽과 동북아시아 그리고 유전이 존재하는 페르시아만을 꼽았다. 베트남 전쟁은 거의 모두가 반대했다.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자 이제 동남아시아는 미국에 훨씬 더 중요한 지역이 됐다. 미국 정부는 대만과 남중국해의 현상 유지를 위해 군사력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
자유주의 지정학의 목표는, 특정 지역을 우선시하지 않고 최대한 널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자유주의 대외정책 지지자들은 전쟁을 혐오한다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전쟁을 불사한다. 무력을 앞세워 중동의 민주화를 주장했던 부시 독트린은 자유주의 대외정책의 완벽한 예다. 현실주의 지지자들이 이라크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서구의 ‘가치’ 보편화에 집착하고 자유주의 패권 신봉자들을 등에 업은 신보수주의자들이 계획하고 추구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자유주의 대외정책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반(反)자유주의적이다. 자유주의는 의견의 다양성을 용인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개인이며 모든 개인이 동의하는 최선의 공동생활 및 통치 방식은 절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 사회는 개인과 집단이 각자의 신념과 원칙을 고수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대외정책에서만큼은 모든 국가에 어떤 체제를 적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1) 이들은 전 세계가 서구를 모방해야 한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믿음을 강요한다. 이런 개념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상적인 정치체제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없으며, 현실적인 논리를 벗어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익이 위협받으면 자기를 방어하는 주권 주체다. 하물며 경쟁국이 자국의 정부 체제를 바꾸고자 위협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양극에서 단극, 이제 다극 체제로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을 지탱하던 양극체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체제로 바뀌었다. 2017년, 중국이 부상하고 러시아가 국력을 회복하면서 단극체제는 다극체제로 또 한 번 바뀌었다. 물론 미국은 새로운 체제에서도 여전히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경제력과 나날이 발전하는 군사력을 갖춘 중국이 미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러시아는 명백히 세 열강 중 가장 약체다.
이런 다극체제는 미국, 중국, 러시아 모두 각기 다른 현실주의 논리를 따르는 두 개의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의 주요 목표는 역내 패권 확보다. 이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적대 관계와 유사하지만 현재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갈등과는 다른 양상이다. 두 경우 중 어디에 해당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전 세계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현 경쟁 구도의 경우 러시아의 유럽 지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동으로 설명된다.
19~20세기, 중국은 강대국에 속하지 못했다. 물론 당시에도 중국은 상당한 인구를 자랑했지만, 충분한 군사력을 구축할 자원이 없었다. 1990년대 초, 중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첨단 기술 개발력을 갖추자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중국 정부는 경제력을 활용해 군사력 증강에 나섰다. 중국은 아시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미군을 몰아내 아시아 전역의 패권을 장악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또한, 중국이 구축 중인 대양 해군은 전 세계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중국의 포부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중국 정부는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안보를 극대화하는 최선책을 추구하고 있다. 바로 미국의 선례를 따르는 것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아시아 지배를 꿈꾸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만 수복, 남중국해 장악 등 민족주의적 영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동안 수차례 입증했듯이 미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힘써왔다. 이제 미국은 중국의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견제(containment)’ 정책을 수립 중이다. 우선 군사적 견제책으로 미국은 과거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던 동맹을 부활시켜 대(對)중국 동맹을 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호주, 영국, 미국의 3자 안보협의체(AUKUS) 및 미국, 호주, 일본, 인도의 4자 안보대화(QUAD)와 같은 다자 협력체계를 구축 혹은 부활시켰으며 일본, 필리핀, 한국을 비롯한 오랜 우방과의 양자 동맹 강화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중국을 경제적으로도 견제하기 위해 핵심 전략 기술을 통제하고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을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러시아와의 무역 단절로 타격을 입은 많은 유럽 국가가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 지금, 중국과의 대결은 유럽과의 관계를 위협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은 머지않아 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경쟁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양국의 경쟁은 ‘안보 딜레마’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안보 딜레마는 한 국가가 방어 목적의 조치를 취할 때 상대 국가는 이를 공격 의도의 증거로 해석하는 상황을 뜻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위험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양국의 경쟁은 대만과 관련이 있다. 거의 모든 중국인은 대만을 중국의 신성한 영토로 여기지만 미국은 대만이 미국의 보호 아래 독립국으로 남길 바란다. 둘째, 양국이 전쟁에 돌입한다면 전투는 중국 연안의 섬들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주로 공중전, 해상전, 미사일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나리오가 전쟁 격화로 이어지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전투가 아시아 대륙으로까지 확장된다면 희생은 훨씬 커질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냉전시기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유럽에서 대처한 방식으로 전쟁의 과열을 막기 위해 훨씬 더 신중할 것이다. 따라서 지상전으로의 확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나, 만약을 대비해 양측 모두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현실주의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이 위험한 대결 구도를 탄생시킨 책임이 크다. 1990년대 초,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국가는 없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였다. 미국은 자유주의 기조에 따라 중국에 손을 내밀었고 중국이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국제무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 지도자들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미국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책임 있는 주체’가 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변할 것으로 믿었다.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중국은 미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후 드러난 것처럼 이는 미국의 전적인 오산이었다. 미국 지도자들이 현실주의 논리를 따랐다면 중국의 성장을 돕지 않았을 것이며 양국 간 힘의 격차를 좁히는 대신 오히려 확대하거나 유지하려 애썼을 것이다.
러시아의 유럽, 중국의 아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서구의 지배적인 시각은, 러시아가 유럽을 대하는 태도는 중국이 아시아를 대하는 태도와 같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국주의적 야망에 사로잡혀 과거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길 꿈꾸며 바르샤바조약기구 시절처럼 주변 국가들을 러시아의 군사적 영향력 안에 두려 한다는 것이다. 즉, 푸틴은 유럽 전체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굶주린 러시아의 전채 요리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는 곧 주변국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이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NATO의 역할은 냉전 시기 소련의 유럽 지배를 막았듯 푸틴 정권 견제에 한정될 것이다. 이는 흔히 언급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시나리오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거나 다른 동유럽 국가를 정복할 의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만일 푸틴이 그런 의도를 가졌더라도, 러시아는 그 의도를 실현하거나 나아가 유럽 대륙에 러시아의 패권을 강요할 군사력이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접경 지역의 방패로 삼겠다는 미국과 유럽 동맹국의 결정이 러시아의 공격을 도발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은 우크라이나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시켜 NATO와 EU에 통합시키려 했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이런 정책을 러시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용인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이런 경고에 담긴 러시아의 굳은 결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명확했다.
2008년 4월, NATO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을 때, 주러시아 미국 대사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외교 전문을 보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은 (푸틴뿐만 아니라) 러시아 엘리트들에게 가장 명백한 레드라인이다. 2년 반 이상 러시아의 결정권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그들 중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러시아의 이익에 대한 의도적 침해로 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당시 같은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반대했다. “나는 푸틴이 그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 전적으로 확신했다. 푸틴의 관점에서 그것은 선전포고였다.”(2)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추진 발표 6년 후인 2014년 2월, 분쟁은 이미 시작됐다. 푸틴은 먼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지지하는 미국이 마음을 돌리도록 설득하며 외교적인 분쟁 해결을 시도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군대를 무장 및 훈련시키고 NATO 군사훈련에 참여시키는 등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박차를 가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기정사실화되자 러시아 정부는 2021년 12월 17일 NATO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포기하고 엄격한 중립을 준수할 것을 보장하고 이를 문서화 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022년 1월 26일, “상황은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신냉전, 과거 냉전보다 훨씬 더 위험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NATO 확장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반응은 선제 조치를 통해 외부의 위협에 대처하는 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푸틴의 목표는 러시아와 국경이 맞닿은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강이자 소련의 숙적이었던 미국이 이끄는 군사동맹에 합류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 점에서 러시아의 입장은 19세기 미국이 수립한 먼로 독트린을 연상시킨다. 먼로 독트린은 그 어떤 강대국도 지구 반대편에 자국 군대를 주둔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러시아의 사활이 걸린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외교적 노력으로 풀지 못하자 결국 푸틴은 전쟁을 선택했다. 러시아의 시각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정복 전쟁이 아니라 자기방어 전쟁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와 주변국들의 시각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발발을 부추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푸틴이 앞으로도 정복 전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신화를 믿는다면 NATO 확장은 확고한 현실주의적 논리에 기반을 둔 계획이며 미국과 동맹국의 목표는 러시아를 억제하는 것뿐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거짓이다. NATO 확장은 1990년대 중반, 즉 러시아 군대가 극도로 약화된 상태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NATO 확장을 용인하도록 강요할 수 있었던 시기에 내려진 결정이다. 국제체제에서 힘이 약한 국가가 겪는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2008년, 러시아는 여전히 유럽에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NATO는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오늘날 미국의 목표는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럽에서 아시아로 방향을 전환하고, 중국에 대항하는 ‘세력 재균형’ 동맹에 러시아를 동참시키는 것이다. 동유럽에서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속도를 늦추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신중하지 못했던 중국과의 관계 개선 정책과 마찬가지로 NATO 확장은 동유럽과 서유럽을 통합해 유럽 전역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자유주의 패권 구상의 일부였다. 조지 케넌과 같은 현실주의자들은 NATO 확장에 반대했다. 러시아를 위협해 재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실주의 논리가 우세했고 NATO가 우크라이나의 합류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유럽은 훨씬 더 평화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단극체제는 다극체제로 바뀌었다. 미국과 동맹국은 이제 중국, 러시아와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신 ‘냉전’은 과거의 냉전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위험할 것이다.
글·존 J. 미어샤이머 John J. Mearsheimer
시카고 대학교 정치학 교수. 이번 달 말 출간 예정인『How States Think. The rationality of Foreign Policy 국가의 사고방식. 대외정책의 합리성』(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공저.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Christopher Mott, ‘Les noces de l’impéralisme et de la vertu 제국주의와 미덕의 결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1월호.
(2) 다음 기사에서 인용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발언. Hans von der Burchard, ‘“I don’t blame myself” : Merkel defends legacy on Russia and Ukraine’, Politico, 2022년 6월 7일, www.politico.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