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의 쟁점으로 떠오른 우크라이나

공화당을 분열시키는 논쟁 주제

2023-07-31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편집고문

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공화당의 대선 유력 후보다. 수차례 기소를 당했음에도 말이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대외정책 이슈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한다. 다른 일각에서는 미국의 우선 수위는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한다.

 

거의 반세기 동안, 지정학적 이슈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제1차 걸프전(1991년 1~3월)에서 승리했지만, 이듬해 대선에서는 패배했다. 국제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없는 무명의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 아칸소주 주지사에게 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군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전쟁임에도 공화당 후보 간 토론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차기 대선 후보로 확정하고, 거의 만장일치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는 워싱턴의 소수 엘리트(의원, 엘리트 간행물의 논설위원, 싱크탱크의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국민도 해외 이슈, 특히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관심을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미국 대선에 쏟는 관심은 훨씬 더 크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이번 미국 대선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공화당 후보가 누구일지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후보들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부에서 순종적인 부통령 역할을 수행했던 마이크 펜스 후보조차 이번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트럼프와 뜻을 달리할 정도다.

 

당신은 미국을 신경 쓰기나 하는가?

7월 14일 열린 한 보수주의 포럼에서 사회를 맡은 터커 칼슨 앵커는 트럼프와 펜스의 입장 차이를 노골적으로 강조했다.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지닌 칼슨은 트럼프를 경멸하면서도 지지하는 언론인이다. 그는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칼슨은 젤렌스키를 “독재자”라며 혐오한다. 칼슨은 또한 우크라이나전 발발은 미국의 책임이 크며 이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재정지원을 중단할 때라고 재차 주장한다. 칼슨과 정반대 견해를 가진 펜스 후보도 이 포럼에 참석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고 온 펜스 후보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지연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러자, 칼슨은 격렬히 반박했다. “당신은 지금 우크라이나가 미국 탱크를 충분히 지원받지 못해 불만인가? 지난 3년간 미국의 상황은 악화됐다. 차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제는 쇠퇴하고, 자살률은 치솟았다. 비위생적이고 무질서한 환경에, 범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당신은 미국 국민들 중 대다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탱크가 부족하다고 걱정하다니! 당신은 미국을 신경 쓰기나 하는가?”

청중은 칼슨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펜스와 다른 공화당 후보들이 주창하는 제국주의적 신보수주의는 로널드 레이건과 부시 부자 집권시절 오랫동안 공화당을 지배했으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공화당이 변화한 이유로 흔히 트럼프가 꼽힌다. 트럼프는 해외에서 벌이는 전쟁과 산업의 해외 이전이 미국의 사회·경제적 ‘대학살’을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트럼프가 2016년 이런 믿음을 대중화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대선에서 이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화당 진영에서 제국주의보다 민족주의를 더 강조한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그만둬라”

소련이 완전히 붕괴하기 전이었던 1991년 9월, 리처드 닉슨과 레이건 대통령의 수석 고문을 역임한 패트릭 뷰캐넌은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졌으니, 미국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그만두고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30여 년 전,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뷰캐넌의 칼럼 내용은, 앞서 언급한 칼슨의 발언과 일치한다. 뷰캐넌의 칼럼은 현재 공화당 내 ‘세계주의’와 ‘고립주의’의 첨예한 대립을 이론화했다. 

“레이건 연합을 단결시킨 반공주의는 더 이상 공화당을 단결시키는 마법을 발휘할 수 없다. (...) 따라서 미국은 이제 다른 지역의 내부 분쟁에 관여하기 전에 진짜 중요한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문제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46년이 지난 지금, 왜 미국은 미국의 시장을 빼앗은 독일과 일본을 보호해야 하는가? 센트럴파크에서 산책하던 여성들이 불량배들에게 살해당하는 와중에 왜 미국은 페르시아만의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미국 도시에 만연한 무자비한 폭력, 인종 갈등 등을 해결하려면 미국사회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의 핵심 국익이 위협받는 경우에만 해외에 나가 싸워야 한다는 발상이다. (...) 미국의 전쟁, 냉전은 끝났다. 미국은 이제 국내로 복귀할 때다.”(1)

뷰캐넌은 미국이 냉전시절에 체결한 모든 군사지원 협정을 파기하고, 미국의 ‘뒷마당’ 라틴아메리카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한 ‘먼로 독트린’을 훨씬 더 제한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지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희망하는 미국의 새로운 우방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의 반대에 직면하더라도 미국의 핵우산을 동쪽으로 더 확장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1956년 (부다페스트에서 반소련 봉기가 일어났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헝가리에서 싸우지 않았다. 지금 우리도 동유럽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2) 1992년 공화당 예비 경선에서 ‘냉전의 승자’ 조지 H.W.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23%의 득표율을 기록한 뷰캐넌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1년 9.11 테러 발발 이후 고립주의 논리가 밀려나고 ‘테러와의 전쟁’을 옹호한 신보수주의 논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실패, 산업의 해외 이전, 민주당과 공화당을 불문하고 자유무역주의 및 제국주의 엘리트들의 혜안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서, 고립주의가 부활했다.(3) 2008년 민주당 예비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는 이 점을 이용해 오만함과 세계화의 상징인 힐러리 클린턴을 물리쳤다. 이때 교훈을 얻지 못한 힐러리 클린턴은, 8년 후에도 트럼프에게 졌다. 트럼프는 대선 승리 직후 “2016년 미국 국민은 부패한 세계주의를 거부했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지 세계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트럼프의 논리가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공화당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내 경선에서 트럼프에 패배한 신보수주의 공화당 후보들은 여전히 존재감과 영향력을 유지했다. 레이건 시절의 제국주의에 향수를 느끼는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들을 지지했다.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이 대표적인 예다.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 워싱턴의 싱크탱크, 공화당의 거액 기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충동적이고, 과대 망상적이며, 자신의 발언에 도취해 어떤 문제도 분석할 능력이 없는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다 자신의 행정부를 매파(hawks)로 채워 문제를 가중시켰다. 매파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방해하면서도 그 앞에서는 뻔뻔스럽게 아첨을 늘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안보 보좌관,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 대사는 대개 강경한 신보수주의자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인 존 볼턴은 통제가 어려운 미치광이였다. 트럼프는 외국 원수와의 협상에서 양보를 이끌어내야 할 때마다 겁을 주기 위해 이 “미치광이”를 동행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오바마는 베개를, 나는 무기를 제공했다”

그 결과, 트럼프는 (미군이 바그너 그룹 소속 민병대원 수십 명을 살해한) 시리아에 여러 차례 폭격을 명령했고, (트럼프와 대립하려던 공화당 의원들을 포함해 미 의회가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킨)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승인했으며, 우크라이나에 재블린(Javelin) 대전차 미사일을 지원했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이보다 더 강경했던 미국 대통령은 없었다. 오바마는 우크라이나에 베개를 제공했지만 나는 무기를 제공했다”(4)라고 자찬했다. 2017년 12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새로운 전략 방침을 발표했을 때 <뉴욕타임스>도 “이 보고서에 담긴 많은 요소는 이전 행정부들에서 채택해야 했던 것들이다”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만일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2016년 대선 당시 우크라이나는 미 대선 캠페인의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과도하게 무장한 두 강대국 간 갈등 고조의 원인이며 미국은 이미 약 8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미국의 대외정책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다.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처럼, 트럼프는 자신에게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혐의를 씌운 이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트럼프는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주류 미디어, 민주당이 힘을 합쳐 대통령 임기 내내 자신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우크라이나를 신성한 대의명분으로 삼아 자신을 공격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9년 자신의 첫 탄핵 재판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도 기억할 것이다. 대선기간 기밀로 유지돼야 했던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 때문에 촉발됐던 것이다. 해당 통화 내용은 트럼프가 미국의 지원을 대가로 민주당의 바이든을 난처하게 할 폭로를 요구하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 지지자’들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속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이 민주당에 유리하도록 이 전화 내용을 일부러 유출했다고 확신한다.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빈드먼 중령은 당시 미국 대통령과 타국 정상들의 통화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었다. 대부분의 공화당원이 이제 우크라이나보다 미국의 메인주를 우선시하려는 또 하나의 이유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의 주요 경쟁자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후보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디샌티스 후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영토 다툼”으로 간주하며, 중국 견제 혹은 이민 행렬에 대한 미국 국경 방어와 같은 “미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없는 문제로 보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서 레이건과 부시 시절 제국주의 정책에 향수를 느끼는 일부 후보들은 여론조사에서 매우 낮은 지지율을 보인다.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니키 헤일리 후보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중국의 패배를 뜻한다”라고 주장한다. 팀 스콧 상원의원은 “미국이 러시아 군대를 약화시켜야, 러시아가 미국의 영토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쟁(개입)을 멈춰라, 미국 청년들을 위해”

트럼프는 백악관을 떠나며 “나는 수십 년 만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비록 시리아 공습을 허가하고 이라크에서 이란의 카셈 솔레이마니 장군 암살을 지시하긴 했지만 실제로 ‘임기’ 동안 오바마처럼 리비아에 개입하거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에서 전쟁을 벌인 적은 없다.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편견과 달리, 극우파를 포함해 트럼프의 대중적인 지지층은 오히려 트럼프에 고마워한다. 제국주의의 미덕을 설파하는 것은 고등 교육을 받은 부르주아 계층이지만 실제로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계층이기 때문이다.(5) 

지난 20년, 1,600만 명의 미국 참전 용사들은 자신과 동지들의 희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이라크의 팔루자와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에서 깨달았다. 2020년 8월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전적으로 반대하며 “민주당이 열악한 상황에 처한 소수와 지역사회를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끝없는 전쟁을 멈추고 더 이상 다른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미국의 청년들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군수 기업의 기부금으로 배를 채운 의원들이 (올해 기준 8,77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군사 예산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미 의회에서도 공화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은 가장 전쟁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작년부터 세 번에 걸쳐 키이우를 방문한 그레이엄 의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더 늘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순전히 선거 기회주의에 따라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 그레이엄 의원은 이처럼 모호한 태도의 대가를 치렀다. 자신이 대표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한 대규모 트럼프 지지 집회에서 그의 연설은 공화당원들의 야유를 받았다. 공화당 내부에서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반대파의 비중이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는 극소수에 불과했지만(2022년 3월 기준 9%) 이제는 과반수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또 다른 증거다. 

반면, 신보수주의가 확고한 기반을 다진 민주당 진영에서는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발언으로 우크라이나의 대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미국 대선의 핵심 이슈로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대외정책에 대한 토론은 경계가 매우 모호한, 때로는 각 진영의 입장이 뒤바뀐 양상을 보일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편집고문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2) Patrick Buchanan, ‘Now that Red is dead, come home America’, <The Washington Post>, 1991년 9월 8일. 
(3) Benoît Bréville, ‘Les États-Unis sont fatigués du monde (한국어판 제목: 미국의 비(非)개입주의는 어디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5월호.
(4) <Fox News>, 2018년 10월 16일. 
(5) Christopher Mott, ‘Les noces de la guerre et de la vertu 제국주의와 미덕의 결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