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민중이 즐겨읽은 ‘카나르’의 운명

범죄를 노래하고 즐기다

2023-07-31     장프랑수아 막수 하인즌 | 역사학자

15세기 말부터 프랑스 해방기까지, 잡상인이 팔던 인쇄물에는 살인 등 온갖 사건들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었다. 논픽션과 픽션이 섞여 있었으며, 대개 자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즐겼다. 이야기에 익숙한 가락을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대중은 집단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런 정기간행물에, 썩 중요해 보이지 않는 종이 언론을 찬양하는 내용을 실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비정기적으로 제작되고 판매되던 이 흥미로운 인쇄물은 ‘임시신문’, ‘하루살이’ 또는 ‘오리(Canard)’라고도 불렸다. 무려 6세기 전에 등장한 이 인쇄물은 가늘고 길게 명맥을 잇다가, 프랑스 해방과 함께 사라졌다. 헤드라인으로 그림과 서술형 문장이 자주 등장했으며, 범죄사건 특히 가십거리와 유명한 정치적 사건들을 다룰 때는 노래의 형태를 빌리기도 했다. 연극과 그랑기뇰(Grand-Guignol, 살인이나 폭동 등 끔찍하고 기괴한 내용을 주로 다루는 연극-역자 주) 사이 어디엔가에 있던 이 간행물은 오랫동안 대중에게 쾌락을 선사했다. 매거진 <Détective(사설탐정)>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피고인, 들어오세요(Faites entrer l’accusé)>, <범죄(Crimes)>, <범죄 사건(Affaires criminelles)>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이런 형태의 인쇄물은 15세기 말에 탄생했다. 먼 곳에서 일어난 전쟁, 왕조 탄생 기념식, 이상 기후, 각종 범죄사건 등이 다뤄졌다. 이 인쇄물은 16세기부터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내용들 중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들도 많아서, 이 인쇄물의 별명인 ‘오리(Canard)’가 거짓말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였다. 잡상인들은 이 인쇄물을 거리나 시장에서 팔면서, 주요사건의 장면을 큰 그림이나 큰 목소리로 묘사하며 호객행위를 했다. 이렇게 팔린 ‘오리들’은 서민 가정의 저녁 식탁이나 파티에서 오락물로 소비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논평을 하고, 인쇄물을 서로 보여주거나 함께 읽었다. 그중 노래 형태의 것들은 외우기도 쉬웠다.

 

취객들 간 다툼을 살인사건으로 만들다

초반에는 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해 급조한 소책자 형태로 보급됐지만, 후에는 61x84cm 규격의 종이에 양면 인쇄됐다. 과장된 헤드라인은 전면 대문자로 찍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헤드라인 아래에는 자극적인 도입문이 실렸다. 도입문은 이런 식이었다. “끔찍한 사건의 전말. 비소니에라는 여성이, 다른 폴란드 여성을 질투해 살해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집인 노낭디에르가 10번지 앞 보도에 시신을 방치했다. 사건의 첫 번째 심문과 범행 자백 내용을 밝힌다.” 

이후 다소 긴 글이 이어지고, 목판화로 인쇄한 삽화가 함께 실렸다. 다만 그 목판은 매번 재사용하는 것이라서, 때마다 다른 사건을 자세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인쇄물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주제로 만든 노래’ 또는 ‘이야기 가사’ 챕터에서는 글의 내용을 가사 형태로 만들어 사람들이 노래로 부를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이런 인쇄물은 다양한 분위기의 글을 싣고 대중의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해주면서, 다소 어설프기는 하지만 이미지, 글, 노래가 가진 힘을 최대한 이용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인쇄물을 읽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형태로 즐기고 소비했다.

“어른과 아이들은 모여라 / 슬픈 이야기를 들어라 / 존속살인자의 이야기를 / 우리는 본 적이 없다네 / 이토록 파렴치한 자를 /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인 아들을 / 그의 이름은 피에르 가요 / 방직공장의 노동자라네 / 청년들은 잘 봐둬라 / 그가 지은 죄와 받게 될 벌을 / 부모에게 복종해라 / 오래 살고 싶다면”(1) 

범죄 내용과 그에 대한 판결과 처벌은 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피로 범벅된 오리’에는 고발장, 판결문, 범죄자의 마지막 발언이 그대로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는 대부분 가십거리의 내용을 부풀려서 다시 쓴 잔인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의 지면을 채웠다. “(1883년에) 트라베르신 가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사망자 두 명 중 한 명은 칼로 11차례나 찔렸고 다른 한 명은 오른팔의 동맥이 잘렸다.” 그러나 실상 이 사건에서 사망자는 없었다. 정통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취객들 간의 주먹다짐’에 그친 사건이었다. 한편 유혈사건에 대한 높은 관심은 프랑스 전역에서 나타났다. 두 명을 약탈하고 살해한 혐의로 1844년에 처형된 피에르 델쿠데르크의 이야기는 총 4편, 141절의 노래가 됐다.

 

노래에 살고, 가십에 살고

제2 제정이 시작되면서 정식 대중매체가 하나둘씩 생겨났고 이들은 다양한 가십거리로 독자들의 마을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것이 ‘오리’의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실상 그 반대에 가까웠다. 새롭게 등장한 정식 대중매체는, 오리들에게 노래의 소재를 선사했던 것이다. 1860년 이후부터 오리들은 ‘실제’ 사건만 다루기 시작했다. 1855~1861년 리옹에서 12명의 하녀를 살해한 마르탱 뒤몰라르, 1869년 한 가족의 구성원 8명을 죽인 장밥티스트 트로망(팡탱 사건), 1890년대에 수십 명의 목동을 살해한 의혹을 받은 조세프 바셰, 벨에포크 시대에 프랑스 전역을 누빈 ‘보노 집단’ 등이었다.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1870년에 ‘트로망의 노래’가 실린 호는 무려 20만 부나 판매됐고, 1914년 5월에 베리 지역에서는 한 가수가 ‘카이요라는 여성의 범죄’라는 제목의 노래를 1천 곡 이상 판매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리’와 정식 매체의 유일한 차이는 ‘노래’였다. ‘오리’는 대중에게 범죄사건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노래를 만들었다. 이런 흐름은 해방기까지 계속돼, 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 사건의 노래가 실린 호는 47만 5,000부나 팔렸다.

“군인들은 저주를 받으라, 프랑스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 난폭하고 잔인한 군인들이 저지른 일을 / 그들은 문명인이 아니다 / 자유로운 민중은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 오라두르 학살사건을”(2)

노래에는 가사와 가락(멜로디)이 필요하다. 가사는 출력만 하면 되지만,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대중에게 가락을 어떻게 알려줬을까? 답은 ‘개사곡’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가락에 새로운 가사를 붙였던 것이다. 글의 내용을 담은 가사를 적고 그 상단에 ‘가락(멜로디) : 방랑하는 유대인’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면, 독자들은 알아서 노래를 완성했다. 앙시앙 레짐에서 불렸던 ‘작센 사령관의 노래’의 멜로디에는 ‘바스티드와 조지옹, 그의 공범들이 로데즈에서 퓌알데스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을 소재로 툴루즈에서 만든 노래’의 46절이 1817년에 입혀졌다. 

“프랑스 민중이여, 들어라 / 칠레 왕국의 민중도 / 러시아의 민중도 / 희망봉의 민중도 들어라 /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을 / 아주 중요한 사건을”(3)

이 노래는 프랑스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가락으로 쓰인 ‘퓌알데스의 노래’는 1930년대까지 단골로 등장했다. 1933년에 ‘6명을 살해한 무아락스의 노래’도 이 가락을 차용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정의롭고 엄격한 판사는 / 조금의 자비도 없이 / 판결을 내렸다네 / 모든 민중이 바라던 판결을 / 그리고 살인자의 운명을 결정했다네 / 사형을 구형했다네”(4) 

19세기 중반부터는 순회공연 가수나 레스토랑에서 공연하는 가수들의 활동이 늘어났다. 좀 더 현대적인 가락에 범죄사건을 묘사한 가사를 붙이는 일이 많아졌고, 이제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곡에 붙여 부르기도 했다. 1894년 사디 카르노 대통령 암살사건은 ‘퓌알데스의 노래’, ‘방랑하는 유대인’, ‘아카데미의 베랑제’, ‘전사 프랑스’, ‘파리의 고아’의 가락을 통해 재탄생했다. 특히 ‘라 팽폴레즈’(테오도르 보트렐, 외젠 포트리에, 1895년)의 가락은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드레퓌스 사건, 보노 집단의 테러, 랑드뤼 연쇄살인사건, 스타비스키 스캔들, 11세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알베르 솔레이앙의 이야기가 이 가락 위에 입혀졌다. 

“잔혹한 이야기 / 공포스러운 이야기 / 끔찍한 괴물의 이야기 / 그 괴물의 이름은 알베르 솔레이앙 /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마 /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네 / 소름이 돋게 하네 / 불쌍한 소녀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네 / 흐느끼는 가족들 / 소녀를 다시는 볼 수 없음에”(5)

초기에 이런 노래는 긴 시와 비슷한 형태를 지녔다. 후렴구는 없고 절이 수십 개, 때로는 100개가 넘었다. 가사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우선, 1절에서는 대중의 흥미를 끌어야 했다. 그래서 ‘모두 들어라’, ‘이리 와서 이야기를 들어라’와 같은 문장이 쓰였다. 다음은 해당 사건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인쇄물의 판매처와 가까운 지명을 등장시켰다.

“들어라, 아버지들이여 / 물랭, 몽트뤼송의 아버지들 / 가나, 에리송의 아버지들 / 부르봉, 푸리유의 아버지들 / 샤틀라르에서 일어난 범죄는 / 주아나르가 범인이라네”(6) 

그리고 실제 희생자나 범죄자의 이름이 나왔고, 사건의 발견과 그 내용(가끔 지어내기도 했다), 범인의 체포, 재판, 처형까지가 상세하게 묘사됐다. 마지막 부분에는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즉 교훈에 담겼다. 가십거리에 교훈을 담고 사건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청년들은 올바른 길을 가도록, 그리고 부모들은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독려했다. 

“게으름을 따라가면 / 그 끝은 단두대 / 사형집행인을 두려워하는 / 청년들은 / 악의 길에서 도망쳐라 / 죽음에 이르는 그 길에서” 

‘생제니에 살인사건에 관한 노래’(1882)의 가사다. 종종 복수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런 류의 노래에는 때로 민중의 정의 구현 욕구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사형은 고통스럽다 /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 모험을 쫓는 자는 /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거나 / 칼에 찔려 죽는다”(7) 

 

단두대 위에서 낭송하는 시

제2 제정 이전에는, 민중이 주장한 단두대 처형을 1인칭 관점에서 묘사함으로써 처형 장면을 더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에서 미셸 푸코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회상하며 쓴 이상한 시는 때로는 처형 현장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기도 했다”라고 썼다.(8)

“단두대에 오른 제 모습이 보이시나요 / 신이시여, 저를 용서해주소서 / 청년들이여, 높은 곳의 그분께 기도하라 / 절대로 나처럼 행동하지 말라 / 아니면 나처럼 죽게 될 것이다 / 법의 칼날 아래에서”(9)

이런 패턴을 보이는 가사의 형태는 1914년까지 지속됐다. 이후 길고 지루한 가사는 사라지고, 3~4절 정도로 간결해졌다. 대중의 취향에 맞춰 후렴구를 도입하고, 실명은 싣지 않았다. 그러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논픽션’을 다룬 노래와, 사건과 무관하지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픽션’을 담은 노래를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범죄 내용을 묘사한 노래는 ‘사실주의 노래’의 장르에 흡수됐다.

 

프랑스가 해방된 뒤 자취를 감춘 ‘오리들’

1870~1940년 발생한 630건의 범죄사건을 가사로 하는 약 1,300곡의 노래를 프랑스 전역에서 수집했다.(10) 숫자로만 보면 사건당 평균 두 곡이지만, 특정 사건에 편중돼 있었다. 사건의 약 75%는 한 곡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사건일수록 노래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것이다. 1908년 슈타인하일 스캔들, 1894년 사디 카르노 암살사건, 1869년 팡탱 범죄사건을 다룬 노래가 30여 개씩, 1919년 랑드뤼 스캔들, 1911년 보노 사건, 1907년 솔레이앙 사건, 1887년 프랑지니 사건, 1933년 비올레트 노지에르 사건을 다룬 노래는 20개가 넘었다. 파리의 거리에서부터 프랑스 전역의 마을에까지, 우편과 지방 가수들을 통해, 비올레트 노지에르 사건에 관한 노래가 담긴 인쇄물은 4만 부 이상 판매됐다. 반면 덜 유명한 사건의 노래가 담긴 인쇄물은 수십 부 팔리는 데 그쳤다.

‘오리들’은 편집 형태와 판매량이 제각각이었을 뿐만 아니라 어조도 여론의 분위기에 따라 매번 바뀌었다. 특히 각종 스캔들이 터질 때면 본능에 충실하고 유대인을 경멸하는 최하층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아니오, 드레퓌스가 침착하게 답했다 / 장교님을 잘못 봤군요 / 저는 절대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 랍비께서 이미 확인해 주셨습니다”(11) 1933년 오스카 뒤프렌을 살해한 ‘팰리스 극장 살인사건’의 경우에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은밀하게 공개되자, 이에 대한 이미지와 말장난이 포함된 노래가 대중들 사이에서 퍼졌다. 

“모두가 의심을 받고 있네 / 당신을 체포하기를 바라네 / 선술집에서 / 투르느도를 주문했다는 이유로 (중략) 그는 바다의 사나이 / 이곳으로 숨어들어왔네 / 조용하고 은밀하게 (중략) 그는 몸을 숨기네 / 작은 구멍을 좋아하는 사람 (중략) 하지만 그것은 사실 / 동성애자는 두 명이라네”(12) 수많은 사건이 그렇게 ‘웃음거리’로 소비됐다. ‘연쇄살인범’ 랑드뤼 사건을 담은 노래는 여성혐오증을 유머의 형태로 만들어 확산시켰다.

이런 류의 노래는 뉘앙스의 표현력에 따라 인기가 좌우됐다. ‘오리’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무시한 채 사형집행인의 가족과 희생자의 가족을 비웃었다. ‘목동들의 살인자’ 조세프 바셰의 죄를 뒤집어썼던 불쌍한 바니에는, 노래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았다. 한 변호사가 어떤 사람에게 사형을 면하게 해줬다. 그러자, 가족들이 이렇게 말하면서 기뻐했다고 한다. “노래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13)

그러나 양차 대전 사이에 이 인쇄물들은 신뢰를 잃었다. 독자들은 삽화가 담긴 매거진들, 일례로 1928년부터 가스통 갈리마르가 실력 있는 작가들의 글을 모아 출간한 <데텍티브(Détective)> 등으로 넘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오리들’은 감소하기 시작했고, 프랑스가 해방된 뒤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1960년까지는 브르타뉴 지방의 시장과 툴루즈의 거리 등지에서 초판본이 간단히 판매되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런 장르의 유행은 이미 지나갔다.

이 문화는 프랑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14) ‘서푼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칼잡이 매키’는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어린 시절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장에서 들은 범죄에 관한 노래(Moritat)에서 가져온 인물이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이런 노래를 ‘머더 발라드(Murder ballad)’라고 불렀다. 스페인에서는 ‘맹인들의 로맨스(Romance de ciego)’라고 불렀는데, 이런 인쇄물을 주로 맹인들이 팔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노래는 남아메리카에까지 퍼져있었다. 독일에서는 뱅클쟁거(Bänkelsänger, 유랑가수), 이탈리아에는 칸타스토리(Cantastorie, 이야기가수)가 이런 류의 노래를 부르며 인쇄물을 팔았다. 이런 전통은 프랑스 외의 국가에서 더 길게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공영방송국 RAI의 자료실에는 1960년대에 시칠리아의 광장에서 루키 루치아노(Lucky Luciano)를 부르는 칸타스토리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있다. 브라질에서는 악독한 범죄자들이 등장하는 노래를 떠돌이 가수들이 책자로 만들어 지금까지도 팔고 있다.

이런 노래들은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통상적인 기준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들이 예배당을 방문하거나 거리시위에 참여할 때 느낄 법한 감정이다. 또한 듣는 이로 하여금 범죄와 관련된 의혹보다 사건 자체의 비극에 집중하게 만든다. 따라서 감정적 호소를 통해 집단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전 세계의 뉴스를 홀로 접하고 소비하는 오늘날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미디어다. 

 

 

글·장프랑수아 막수 하인즌 Jean-François ‘Maxou’ Heintzen
역사학자이자 클레르몽 오베르뉴 대학교 공간문화역사센터(CHEC)의 객원 연구원. 저서로 『Chanter le crime. Canards sanglants & Complaintes tragiques 범죄를 노래하다. 피 흘리는 오리들과 비극적인 노래들』(Bleu Autour, Saint-Pourçain-sur-Sioule, 2022)가 있다.

번역·김소연
번역위원


(1) Arrêt du conseil supérieur qui condamne Pierre Gayot [...] Complainte sur le même sujet 피에르 가요에게 유죄를 선고한 최고 위원회의 판결문, 이 주제에 관한 노래, Lyon, 1771.
(2) Yves de Saint-Hubert, L’odieux massacre d’Oradour-sur-Glane 오라두르쉬르글란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살사건, 1944.
(3) Complainte [dite de Fualdès] 퓌알데스의 노래, 1817.
(4) La complainte du sextuple assassinat de Moirax [air : Fualdès] 6명을 살해한 무아락스에 관한 노래 (가락 : 퓌알데스), Bordeaux, 1933.
(5) Marius Réty, Pauvre Petite Marthe [air : La Paimpolaise] 불쌍한 소녀 마르트 (가락 : 라 팽폴레즈), Paris, 1907.
(6) Complainte du crime de Chatelard 샤틀라르 사건에 관한 노래, Allier, 1891.
(7) L’assassin du 20-100-O, 20-100-O 살인사건, Limoges, 1886.
(8) Moi, Pierre Rivière, ayant égorgé ma mère, ma sœur et mon frère… Un cas de parricide au XIXe siècle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19세기에 일어난 존속살인사건, Gallimard, Paris, 1993 (1973년 초판본).
(9) Arrêt [...] qui condamne à la peine de mort la nommée Louise Belin [...] Complainte à ce sujet 루이즈 벨랭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결문, 이 주제에 관한 노래, 장소와 날짜 없음 [1820년경으로 추정].
(10) https://complaintes.criminocorpus.org 
(11) A. d’Halbert, L’interrogatoire de Dreyfus [air : La Paimpolaise] 드레퓌스 심문(가락 : 라 팽폴레즈), Paris, 1899.
(12) P. Fiquet, ‘Les degats de la marine’, Paris, 1933
(13) <Le Petit Parisien>, 1887년 9월 4일.
(14) Una McIlvenna, Singing the news of death. Execution ballads in Europe 1500-1900, <Oxford University Pres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