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르셀로나, 유럽명문구단의 비밀
세계적인 명문 축구단 FC 바르셀로나(약칭 바르샤)는 카탈루냐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네그레이라 스캔들과 심판 매수 의혹이 일면서 카탈루냐 지역 유지들이 운영하고 있는 바르샤 구단의 투기적인 일탈이 조명됐다.
지난 3월 19일 일요일 바르셀로나의 서부 레스 코르츠에서는 수만 명의 축구팬들이 캄 노우 구장으로 모여들었다. 캄 노우 구장에는 파란색과 선홍색의 FC 바르셀로나 깃발과 금색 바탕에 4개의 붉은 줄무늬의 세니에라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세니에라는 카탈루냐의 깃발이다. 그러나 스페인의 깃발은 없다. 100년 넘게 카탈루냐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FC 바르셀로나는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치욕스런 중앙집권제와 군주제의 상징이다.
두 명문 구단의 더비 매치(Derby Match)인 엘 클라시코는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다. “1920년대 이후 FC 바르셀로나는 무기 없는 카탈루냐의 군대를 상징하고, 레알 마드리드는 프랑코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구단이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라고 카탈루냐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이 언급했다.(1) “FC 바르셀로나는 구단 그 이상이다.” 1968년 나르시스 드 카레라스가 FC 바르셀로나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한 이 발언은 그 후 구단의 좌우명이 됐다.
바르샤는 카탈루냐 시민군, 레알 마드리드는 프랑코 정권 상징
캄 노우 구장 바로 옆에 있는 FC 바르셀로나 박물관은 스포츠 구단이자 동시에 카탈루냐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박물관 이곳저곳에는 여러 스폰서 기업들의 로고 아래, 바르샤의 우승을 축하하는 그림 위에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다. 관람객들, 팬들, 관광객들이 이를 눈여겨보는지는 모르겠다. 구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수상한 7개의 발롱도르 헌정 부스와 FC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5개를 전시한 부스 앞에서는 쉴 새 없이 관람객의 카메라가 터진다. 대형 스크린에서는 레전드 슈팅 장면과 우승 후 환희에 찬 선수들의 모습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FC 바로셀로나가 재정적으로도, 스포츠적으로 가장 빛났던 2008~2015년을 부풀려 그린 영상이다.
유럽 최대 구장인 캄 노우에는 엘 클라시코를 관람하러 온 9만 5,745명의 관중이 가득 들어찼다. 리모델링 후에는 최다 관중 수가 10만 명을 넘을 것이다. 카탈루냐 군대 즉 바르샤 팬들이 바르샤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블라우그라나(파란색과 선홍색, 바르샤 팬의 별칭 중 하나-역주)다. 우리가 남부 출신이든 북부 출신이든 상관없다. (…) 블라우그라나 깃발 아래 우리는 하나다.’
경기가 시작되자, 홈팀 선수가 공을 잡으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상대팀 선수의 액션에는 야유를 보낸다. 선수 간 충돌이 일어나고, 바르샤 선수에게 어드밴티지가 주어져 바르샤가 2 대 1로 승리했다. 행복에 도취된 몇몇 바르샤 팬들은 플로렌티노 페레즈 레알 마드리드 회장을 놀리며 불러댄다. “플로렌티노는 어디로 갔나?” 며칠 전, 레알 마드리드는 FC 바르셀로나가 스페인 심판협회 전직 부회장에게 돈을 입금한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했었다. 돈을 받은 호세 마리아 엔리케즈 네그레이라의 이름을 딴 ‘네그레이라 스캔들’이다. 그는 2001~2008년 FC 바로셀로나로부터 7백만 유로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부패혐의로 고소를 당한 FC 바로셀로나의 회장 조안 라포르타는 4월 17일 기자회견장에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카탈루냐 정체성의 상징인 구단이 역사상 가장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다면서, 프랑코 독재 체제(1939~1975년) 당시 레알 마드리드가 정권의 공모자였음을 상기시켰다. “레알은 역사적으로 정치권력과 경제 스포츠 권력 간의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구단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프랑코 구단이라는 낙인을 벗고자, 트위터 계정에 ‘프랑코 정권의 구단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은 FC 바르셀로나를 스페인 카우디요(독재자)의 앞잡이처럼 소개했다. 당시 신문기사를 오려낸 장면과 고문서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서 해설자는 바르샤로부터 세 번이나 훈장을 받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바르샤 구단을 파산 위기에서 세 번이나 구해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를 프랑코 독재의 희생자처럼 소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무근이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은 프랑코 독재시절 이득을 본 쪽이다.
스페인에 여전히 독재의 유령이 있음을 증명하듯, 일주일간의 격론 끝에 독재자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의 유해가 파헤쳐졌다. 1939년 프랑코 독재 체제 당시 유일당이었던 파시스트 정당, 팔랑헤당의 창당자인 리베라는 발레 데 로스 카이도스(Valle de los Caidos)의 지하납골당에 묻혔었다. 프랑코의 유해 또한 2019년도에 이곳에서 끌어내려진 후 일반 묘지에 묻혔다.
4억 명이 넘는 바르샤의 SNS 가입회원들
레알 마드리드의 의도적인 편집 동영상에,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당시 FC 바르셀로나 회장 조셉 선욜을 비롯한 프랑코 독재의 모든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평했다.(2) 조셉 선욜은 카탈루냐 공화좌파당(현재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이끌고 있음) 소속 의원으로, FC 바르셀로나 회장으로 취임한지 일 년 후인 1936년 8월 3일 스페인 내전 초반에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체포돼 총살당했다.
호세 안토니오의 아버지이자, 1923년~1930년 독재자였던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의 독재시절, FC 바르셀로나는 숨죽여 있었지만 카탈루냐 (민족)의식을 잘 보여줬다고 역사학자 브누아 펠리스트란디는 설명했다.(3) 1925년 영국 해군과의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가 흘러나오자 바르샤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고, 정부는 6개월간의 구단 폐쇄 명령을 내렸다.(4) 스페인 제2공화국(1931년~1939년) 말에 FC 바르셀로나는 큰 위기를 겪었다. 구단의 해체까지 고려한 프랑코 정권의 명령으로, 스페인 축구 연맹 소속인 FC 바르셀로나는 1946년까지 카탈루냐적인 색채를 모두 지워야 했다.
바르샤, 카탈루냐의 모던한 이미지를 세계에 전파
카탈루냐는 1932년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바르샤는 카탈루냐 자치 지위에 찬성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프리모 데 리베라처럼 프랑코는 공공장소에서 카탈루냐어 사용과 국기를 금지시켰다. 캄 노우 구장은 격리된 마을 같았다. 자비에르 안티치 Omnium cultural 협회(카탈루냐 언어와 문화 보호를 위한 NGO) 회장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 때 바르셀로나 팬들은 카탈루냐적인 특색을 드러내며 자부심을 보였다. 당국은 스포츠의 비정치성을 이유로 내버려뒀다”라고 말했다.
프랑코 독재 체제 동안에는 프랑스에서 숨어서 일해야만 했던 Omnium cultural 협회는 현재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카탈루냐의 단체다. 물론 유명세면에서는 FC 바르셀로나가 압도적이다. 2021년 6월 18일, 구단은 FC 바르셀로나의 다양한 SNS 가입자가 4억 명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카탈루냐의 여러 기관들은 이런 FC 바르셀로나의 영향력을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 “명문 구단인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모던한 이미지를 널리 퍼뜨려준다”라고 카탈루냐 자치정부 언어정책 책임자인 프란세스코 자비에르 빌라가 말했다. 자치정부는 바르샤 구단이 ‘국가 언어 협정’ 차원에서 카탈루냐어를 널리 알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관련 기구의 부재를 일정 부분 FC 바르셀로나 명성이 상쇄해 줄 것이다. 그러나 관광면에서는 독이 되고 있다고 나르시스 페레르 카탈루냐 관광 안내소장은 말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박물관은 프라도이지만, 카탈루냐에서는 FC 바르셀로나 구단이다. FC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스포츠 브랜드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투영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 전까지, 전세계에서 FC 바르셀로나 구단의 명성이 바르셀로나 도시보다 높았다”라고 ‘바르셀로나 브랜드’의 시청 경제홍보담당자인 파오 소라니요라가 설명했다.
지난 1월 말,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관광사무소와 공동 제작한 짧은 홍보 영상을 상영했다. ‘Feel the colours’란 제목과 ‘Love FC Barcelona, Discover Catalonia’란 부제가 붙여진 이 영상은 캄 노우 구장, 상징적인 유적지, 자연풍경을 번갈아 보여준다. 페레르는 “우리는 바르샤의 영상 덕분에 어마어마한 반응을 얻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관광사무소는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건축가 가우디의 특이한 벽으로 유명한 카사 바트요(Casa Batlo) 근처에 위치해있다.
두 달 후 바르샤는 새로운 홍보 영상을 올렸다. FC 바르셀로나가 배출한 신예 여자축구 스타인 이타나 본마티가 고향 카탈루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영상이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에게 나는 코스타 브라바 해안, 해로나 시, 몬세라트 산을 소개해준다.”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부르주아”
바르셀로나 지역의 다른 구단들은 FC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자치정부간의 특별한 관계를 탐탁지 않아 한다. 수 십 년 동안 FC 바르셀로나의 그늘 아래에 있는 RCD 에스파뇰은 이런 이해관계가 얽힌 편애를 받아본 적이 없다. RCD 에스파뇰은 ‘more than two colours’라는 영상을 배포하며 카탈루냐에는 다수의 다른 축구단이 존재하며, 카탈루냐의 유산과 문화에 깊은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비드 톨로 RCD 에스파뇰의 역사학자는 “우리도 카탈루냐인이며, 바르샤만큼 우리의 정체성에 긍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구장에서는 오로지 축구만 이야기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1900년에 창단한 RCD 에스파뇰은 바르샤와는 대조적으로 에스파뇰(스페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FC 바르셀로나는 RCD 에스파뇰 보다 일 년 앞선 1899년 스위스인 한스 감퍼를 주축으로 창단됐다. FC 바르셀로나와 달리 RCD 에스파뇰은 항상 카탈루냐의 투쟁과는 거리를 둔다. 이에 일부 바르샤 팬들은 뉘앙스 차이를 신경 쓰지 않고 ‘RCD 에스파뇰의 공공연한 비정치성이 친 레알 마드리드, 친 스페인, 더 나아가 은둔형 파시스트 같다’고 말한다. “역사가 정복자들에 의해 쓰여지듯 그들은 너무 우스꽝스럽게 풍자한다”라고 RCD 에스파뇰의 열혈 팬인 철학자 자비에르 피나는 말했다.
문화를 가르는 경계선은 무엇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정치학자 가브리엘 콜로메는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부르주아에 속한다”라고 분석했다. 유서 깊은 카탈루냐 가문 출신이든, 다른 자치 지역 출신이든 상관없이 RCD 에스파놀의 팬들은 바르샤의 뽐내는 카탈루냐주의와는 거리를 둔다. FC 바르셀로나에 관한 책을 저술한 영국 기자 사이먼 쿠퍼는 “RCD 에스파뇰은 집에서 카탈루냐어로 말하지 않는 바르셀로나인들의 구단이다”라고 설명했다.(5)
경기마다 17분 14초에 부르는 카탈루냐 독립가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선언 과정에서, 두 구단 간의 갈등은 카탈루냐 사회의 내부 분열을 심화시켰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사회정치과학 기관(ICPS)의 연간 지표에 따르면, 2017년 가을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양 진영은 함께했다.(6) 카탈루냐 독립지지자들은 캄 노우에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매 경기마다 같은 의식이 반복됐다. 바르샤의 수천 명의 팬들은 경기 시간 17분 14초에 카탈루냐 국기를 흔들며 ‘독립가’를 불렀다. 1714년 9월 11일은 새로운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 군대에 바르셀로나가 패배한 날이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 출신인 펠리페 국왕은 스페인에서 카탈루냐가 수백 년간 지키고 있던 자치권을 빼앗았다. 카탈루냐 독립주의자들은 매년 9월 11일을 ‘디아다(diada)’라고 부르며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2017년 9월 11일,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독립을 외쳤다. 몇 주 후인 10월 1일,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국회의 의사일정과 긴급 심의 및 야당의 수정 권한 축소법안을 수정하고, 스페인 정부의 승인 없이 민족자결 국민투표를 조직했다고 펠리스트란디는 설명했다. 국민투표에 대한 찬성 의견이 많았지만 기권자 수가 많았고, 독립반대 정당들은 보이콧을 선언했다. 스페인 정부는 위헌이라고 선포했다. 카탈루냐 의회의 독립 선언에 따라 보수당 마리아노 라호이가 주도했던 국민투표는 무효화됐다.
“캄 노우 구장이나 거리에서 독립주의자들은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다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콜로메는 지적했다. ICPS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사람의 53.2%는 현재 카탈루냐의 독립에 관한 지역 국민투표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39%는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카탈루냐인의 3/4은 항상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응답했다.(7)
카탈루냐 해방 투쟁에 공헌해 온 바르샤
스페인 정부 명령으로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체포되자 FC 바르셀로나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FC 바르셀로나는 국가의 안보,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결정할 권리를 위해 성실히 참여하고 있으며, 이런 권리의 행사를 가로막는 모든 행위를 규탄한다.’라고 2017년 9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낭독했다. 그렇다고 해서 구단이 독립주의자들의 신조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바르샤는 독립주의자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이 문제에 민감한 독립 반대주의자들 또한 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자비에르 로이그가 설명했다. 그는 카탈루냐 온라인 언론 <폴리티카 이 프로사(politica i prosa)>의 경영자이자, 라포르타 회장의 전 선거위원장이었다. 라포르타는 2003년~2010년 그리고 2021년에 다시 FC 바르셀로나의 회장을 역임했다.
논란의 국민투표 당일에 독립주의자들은 누 캄프 구장에서 예정된 축구 경기를 취소할 것을 요구했지만 구단 지도층은 중립성을 이유로 거절했다. 비공개로 치러진 경기에서 FC 바르셀로나는 라스 팔마스 팀을 이겼다. 그 사이 경찰과 독립주의자들간의 폭력적인 충돌이 일어나 백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의 책임이었다. 현 체제를 지지하는 극우 카탈루냐 신문 <스포르트(Sport)>는 구단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충돌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한다며, 2017년 10월 2일 일면에 ‘치욕’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시했다.
2014~2020년 바르샤 회장인 주제프 바르토메우는 스페인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협조적이었을까? 2021년 회장 후보였던 빅트로 폰트는 그를 비난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었다. 협동조합 FC 바르셀로나의 조합원인 소시오들은 카탈루냐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구단의 주인인 소시오들이 총회에서 회장을 선출하고, 구단의 운영 방향을 투표로 결정한다. “주제프 바르토메우는 종종 대다수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어긋나는 방향으로 가는 듯한 인상을 줬다”라고 민족주의 기업 CEO인 빅토르 폰트는 설명했다.
14만 3,000명의 소시오 중 대부분은 스페인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을 찬성할까? 그들 중 최소 92%는 카탈루냐에 살고 있는가?(8) 독립주의자 측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하지만, FC 바르셀로나 구단은 지지자들 사이의 분쟁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폰트는 “그것은 틀렸다. 소시오들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발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바르샤는 2013년 6월 카탈루냐의 해방 투쟁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 구단은 캄 노우 구장에 독립주의자들의 콘서트 개최를 허락했다. 독립주의자들은 캄 노우에서 초대형 카드 섹션으로 ‘카탈루냐를 위한 자유(Freedom for Catalonia)’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몇 주 후, 프랑스 국경에서부터 세니에라가 펼쳐진 캄 노우 구장을 거쳐, 타라코나 시까지 40만 명의 사람들이 인간 사슬을 형성하며 ‘카탈루냐 길’을 만들어 국경일 ‘디아다’를 기념했다. 경제학자 로제르 빈톤은 “산드로 로셀 회장(2010~2014년)이 대다수 소시오의 의견을 존중했었다”고 회고했다.(9)
메시는 떠나고…재정이 불안한 바르샤
FC 바르셀로나 전 간사의 아들이자, 보수 민족주의 정당 Convergencia i Unio(현재는 독립주의)의 공동 창립자인 산드로 로셀은 전형적인 ‘culé’ 성향의 회장이었다. 엉덩이라는 뜻의 culé라는 표현은 1909년에 문을 연 FC 바르셀로나의 첫 구장에서 생긴 별명이다. 당시 구장에는 모든 팬들이 들어갈 수 없어서 일부 팬들이 벽을 기어 올라갔다. 팬들이 구장을 둘러싸고 앉아있는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엉덩이만 보인 것에서 유래해 culé는 바르샤 팬을 지칭하게 됐다. 그 의미가 확장돼 현재는 FC 바르셀로나의 팬, 지도자, 선수 모두를 가리킨다.
스페인과 브라질에서 나이키 임원을 역임한 로셀은 2003년 라포르타 곁에서 FC 바르셀로나의 2인자가 됐다. 라포르타가 회장이 되는 것을 도왔던 그는 그 뒤 본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은 FC 바르셀로나의 정치사에 전환점이 됐다. “라포르타 회장 시절에는 독립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컸다. 그래서 우리 독립 반대주의자들은 소외감을 느꼈다”라고 바르셀로나 자치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프란체스코 트리야스가 비판했다. 캄 노우에서 하나의 스페인을 원하는 팬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여전히 팀을 사랑한다. ‘카탈루냐 독립을 위한 연대’라는 작은 독립주의 정당을 창당한 라포르타는 2010년~2012년 카탈루냐 의회에 입성했다.
변호사였던 라포르타는 1990년대 말, 캄 노우 구장을 상업 전시관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막는 ‘푸른 코끼리(L'Elefant blau)’운동을 시작하면서 바르샤 팬들 사이에 유명해졌다. 라포르타 회장 재임시절 푸른 코끼리 운동의 주도자들은 구단에 카탈루냐 색채를 복원시켰고, 그들이 반대하며 투쟁했던 구단의 상업화 프로세스에 모두 착수했다. 그들은 축구 산업의 상품화의 선봉장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영향을 받았다. “라포르타의 임원들은 레알 마드리드 회장의 노하우에 매료돼 있었다”라고 자비에르 로이그는 전했다.
홍보에 능한 이 바르샤 회장은 2006년 유니세프(Unicef)와 계약하며 솜씨를 발휘했다. 구단 창단 이래 처음으로 바르샤 구단은, 107년 동안 광고가 없었던 유니폼에 후원사 로고를 부착했다. 그러나 FC 바르셀로나는 후원금을 받는 대신에 구단 연간 소득의 0.7%를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바르샤는 2022년 후원 계약이 끝날 때까지 총 2,150만 유로를 기부했다. 그러나 돈벌이 유혹에 대한 저항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부터 유니세프의 로고와 함께 카타르 재단의 로고가 바르샤의 유니폼에 부착됐고, 이 계약으로 구단은 세 시즌 동안 9,000만 유로를 벌었다. 그 후 선수들의 유니폼에 넉넉한 계약을 맺은 다른 후원 업체들의 로고가 부착됐다. 스포츠의 성공을 위한 과도한 후원사 모집은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준다. 바르샤는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 2020년부터 바르샤와 레알은 유럽 슈퍼리그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있다. 유럽 슈퍼리그는 최대한의 이윤을 내기 위해 가장 부유한 구단들만 참가하는 리그다.
“구단은 잠재적인 수입원을 영원히 잃었다”
FC 바르셀로나는 유럽 내에서 명성을 되찾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손해를 입었고 2021년 리오넬 메시는 파리 생제르망으로 떠났다. 기록적인 채무(13억 5,000만 유로)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2022년 여름 많은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해 4월 말, 회장실은 캄푸 누 구장의 대규모 리노베이션 계획인 ‘l’Espai Barça’를 위해 14억 5,000만 유로의 은행 대출을 받았음을 알렸다. 유럽 챔피언을 5번 차지한 구단은 유동성이 부족해서, 향후 25년간의 TV중계권의 지분 1/4을 Sixth Street 투자회사에 5억 유로에 팔았다. 또한 구단의 시청각 콘텐츠를 운영하는 자회사의 자본의 49%를 매각했다.
TV중계권 판매 전문 회사인 Mediapro 사장 하우메 루레스가 운영하는 Socio.com과 Orpheus 미디어는 각각 1억만 유로로 서로의 주식을 절반씩을 사들였다. 주식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는 바르샤 구단은 장기적으로 구단의 자원을 매각하는 걸 넘어서 구단의 특색까지 담보로 삼지 않을까? 바르샤의 서포터즈 그룹 중 하나인 Seguiment FCB 서포터즈의 대변인 마르크 코르네트는 “구단은 잠재적인 수입원을 영원히 잃었다. 구단의 경제적 리스크까지 감수하려는 선수는 없다”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경제학자 이반 카베자는 “매도한 주식은 FC 바르셀로나 전체 수입의 7~9%에 지나지 않는다. 바르샤 구단의 온전한 상태를 해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모든 것은 총회에서 소시오가 승인한 사항이다”라며 안심시킨다. 이에 대해 코르네트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반박한다. “바르샤의 재정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구단은 이미 은행의 손안에 있다.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가 있다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그는 구단이 밀어붙인 명칭 변경 투표에서, 계약 조건의 불투명성을 비판했다. 전설적인 구단의 명칭에 후원 기업의 이름이 덧붙여졌다. 이사회는 기밀유지 조항을 핑계로 캄 노우 옆에 이름을 덧붙이도록 계약한 글로벌 음원 사이트와의 계약 총액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소시오 대부분은 재정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팀이 승리하기만을 원한다. 추첨으로 뽑힌 4,000명의 소시오(14만 3,000명 중 3%)들 중 1/4만 총회에 참석한다”라고 루레스는 말했다. 반면 회장 선거에는 소시오 전체가 모인다.
3월 19일 엘 클라시코 더비가 열렸다. 경기 시작 전과 하프 타임에 카탈루냐 가수 로살리아의 노래 ‘Despecha’가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바르샤 홈페이지에서는 글로벌 음원 사이트에서 2022년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청취한 가수가 로살리아라고 소개했다. 엘 클라시코 전 날, 친 바르샤 성향의 일간지 <스포르트>와 <엘 문도 데포르티보(El Mundo deportivo)>는 음원 사이트의 애프터서비스를 친절히 알려주는 기사를 실었다. 로살리아의 앨범 <Motomami> 로고가 새겨진 스페셜 에디션 유니폼 판매를 홍보해주는 기사도 여럿 나왔다. 1,899장만 판매되는 <Motomami> 스페셜 에디션의 첫 번째 시리즈 유니폼은 장당 399.99유로에 판매됐다. 두 번째 시리즈로 단 22세트만 판매되는 유니폼 세트는 1,999.99유로다...
엘 클라시코를 관람하기 위해 기자석에 자리한 언론사들은 구단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잊지 말고 후원사 명칭을 넣은 정확한 구단 이름(스포티파이 캄 노우)을 써달라는 메시지였다. 프란체스코 트리야스 교수는 바르샤 팬 수에 대한 원통함을 표시했다. “예전에 바르샤는 구단 그 이상의 구단이었지만, 현재는 구단 그 이상이 아니다.”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기자. 주요 저서로 『Histoire secrète de l'OM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구단의 비밀 역사』( Flammarion. 파리, 2013), 『JO 2024, miralcle ou mirage 2024 올림픽은 기적일까 신기루일까』(공저, Libre & Solidaire, 파리, 2018) 등이 있다.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참조 ‘Qui a peur des Catalans? 카탈루냐를 두려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Manuel Vasquez Montalba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6년 8월
(2) ‘El Govern de la Generalitat pide al Madrid “que retire su video manipulador”’, <El Mundo deportivo>, 2023년 4월 18일
(3) Benoît Pellistrandi, ‘Le Labyrinthe catalan 카탈루냐의 미로’, Desclée de Brouwer, 파리, 2019년
(4) 참조 Gabriel Colomé, ‘Conflits et identités en Catalogne 카탈루냐의 갈등과 정체성’, <마니에르 드 부아르> 프랑스어판 n˚38, ‘Football et passions politiques 정치적 열정과 축구’, 5~6월 1998년
(5) Simon Kuper, ‘La complejidad del Barça. El ascenso y la caída del club que construyo el futbol moderno’, Córner, 바르셀로나, 2023년 1월 13일
(6) Jose Rico가 인용한 조사, ‘El apoyo a la independencia de Catalunya baja del 40%, según una encuesta del ICPS’, <El Periódico>, 바르셀로나, 2023년 1월 13일
(7) Op. cit.
(8) ‘Rappport annuel du FC Barcelone 2021-2022 FC바르셀로나의 연간보고서’, www.fcbarcelona,com
(9) David Garcia , 『El Barça davant la crisi del segle』, Destino, 2021년
바르샤의 자금줄, 후원금 기탁 제도
“이사(directiu)가 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 프란체스코 트리야스 경제학 교수는 인정했다. 협동조합 FC 바르셀로나의 조합원인 소시오들은 6년마다 캄 노우에 모여 회장과 18명의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선출한다. 이사들은 무보수로 일하며, 구단에 손실이 생기면 자신의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재정적 의무를 지닌 이사들은 부유한 기업가나 변호사로 바르셀로나 최고 대학 출신이다. 부회장을 제외한 모든 이사들은 카탈루냐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모두 옛날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영국 기자 사이먼 쿠퍼는 FC 바르셀로나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밝혔다. 지역공동체의 연대를 중시하는 이런 경영방식은 구단의 이익에 해가 될 수 있다. 주제프 바르토메우 회장은 2014~2020년 임기 동안 선수들의 이적과 연봉을 모험적으로 운영했지만 이런 거래를 알고 있던 사람은 소수였다. “라포르타 회장은 바르샤가 가족 기업 같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다. FC 바르셀로나가 예전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면, 다른 세계적인 구단처럼 전문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라고 빅토르 폰트는 단언했다. 그는 2021년 회장 후보로 라포르타와 경쟁했다. 좀 더 설명을 하면 구단의 정관으로 인해 이런 연대가 생겼다. 회장으로 선출되면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기탁금의 하한선이 최근에는 완화됐더라도, 회장은 구단 전체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1만 2,150만 유로의 기탁금을 내야한다. 기탁금은 마감 날짜 몇 시간 전에야 다 모였다. 재생에너지 기업 Audax renovables의 호세 엘리아스 회장은 라포르타에게 7,500만 유로를 기탁했다. 라포르타를 돕고 엘리아스는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더불어 카탈루냐에서 가장 막강한 기관의 영향력을 손에 넣었다. 스포츠 마케팅 그룹 Mediapro의 자우메 로레스 회장은 3,000만 유로를 기탁했다. 사업을 위해 로레스는 바르샤와 채무관계를 맺고 싶어 했다. 그는 이사회의 과두적인 성격에 관해서는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이런 기탁 시스템은 필요하다. 모이는 금액과 상관없이 이 시스템은 지도층에 책임의식을 불어넣는다.” 프랑코 독재시대부터 민주화 시대까지도 계속해서 사업가들이 FC 바르셀로나를 지배하고 있다. “1946~1968년까지는 면직물 기업들이 구단의 수장 자리를 이어왔다”라고 경제학자 로세르 빈턴이 말했다. 현 회장은 부유한 가문 출신이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는 소아과의사이며 장인으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그의 장인 후안 에세바리아 푸이그는 스페인 닛산 그룹의 전직 회장이다. 라포르타는 처남을 구단의 보안 담당 이사에 임명했었는데, 처남이 프랑코 재단의 회원으로 밝혀지자 사임시켰다.
글·다비드 가르시아 David Garcia 번역·김영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