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으로부터의 도피

나자트 엘 하크미 『풍요의 어머니』

2023-07-31     아르노 드 몽주아 | 작가

“저의 이 목소리로 자매님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자매님들과 같은 배에서 나온 이가 겪은 일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 혀를 따뜻하게 해줄 차 한 잔을 주십시오. 그리고 제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문을 닫아주세요.”

파티마는 자매들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멀리 떠나기로 할 때, 외면과 내면으로부터 도피해야 할 때, 그들이 어떻게 ‘망각 질환’으로 고통받는지를. 그러나 아무리 멀리 떠나도, 외면 또는 내면으로부터 도피해도 발목을 잡는 것은 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뇌리에 남아 계속 고통을 주는 것. 그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낡은 악습이다.

파티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의 작은 공업도시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딸 사라와 함께 모로코에 있는 고향 리프로 돌아왔다. 규범에 따라 성장한 파티마는, 왜 자신이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도피 생활을 계속하게 됐는지 점차 알게 된다. 그 이유가 유년기, 사춘기 및 성인기의 관례와 관행을 만든 암묵적인 법에 따른 것이었음을 말이다. 파티마는 조신하고 부지런하다. ‘풍요의 어머니’의 딸답게 말이다. 그렇기에 ‘현자’이자 시장인 ‘마스터’가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었을 때 ‘더럽혀진’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흘리는 피가 자연적인 현상임을 알게 될 무렵, 파티마는 결혼 적령기의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다. 결혼할 남자의 이름은 모하메드, 그의 머리카락은 가을의 짚단 빛깔이었으며 그녀를 사랑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약혼식, 결혼식 그리고 이별. 파티마는 친정을 떠나 남편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고, 시댁에 적응하려 했으나 자신이 그곳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남편 모하메드는 파티마를 사랑했지만, 그녀 곁에 있어 주지는 못했다. 먼 나라로 일하러 갔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와서 기념엽서를 남기고 갔고 그렇게 딸 사라가 태어났다. 시댁 식구들은 파티마를 버림받을 만한 또는 버림을 자초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결국 파티마는 딸 사라와 함께 남편을 찾아 떠난다.

글을 모르는 파티마는, 외워서 끄적거린 주소를 가지고 헤맨 끝에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이 생기 없는 도시에 도착해 딸과 함께 이주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파티마는 자신의 처지를 견뎌내고, 일자리를 구하려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고, 작업장에서 남자들을 상대하고, 종종 그녀의 종교와 대척점에 있는 기독교의 낯선 규칙들에 익숙해진다. 그녀는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면서 딸 사라의 삶도 보여준다. 사라는 변화한다. 학교에 다니고, 책을 탐독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엄마와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이 소설은 모로코에서 태어나 8세에 그곳을 떠난, 카탈루냐 작가 나자트 엘 하크미의 네 번째 작품이다.(1) 이별과 애착,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이야기. “글을 읽을 줄도 모르셨지만, 내게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어머니에게”라는 헌사에 힘이 넘친다.

 

 

글·아르노 드 몽주아 Arnaud de Montjoye
작가

번역·송아리
번역위원


(1) 그때까지 단 한 작품만 번역됐다. 『Le Dernier Patriarche 마지막 가장』, Actes Sud, Arles,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