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디플로 국제판 연례모임 “지구적 극우의 부상과 좌파의 퇴조”
세계 쟁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판 연례모임, 2023년 6월 9일~10일, 프랑스 파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르디플로)를 동시에 출간하는 전 세계 발행인들이 지난 6월 9일~10일 파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변화무쌍한 세계정세를 전망하고, 각 지역의 쟁점들을 정리했다. 또한, 종이 매체의 심각한 위기에 대응할 공동의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도 가졌다.
지난 4월부터 세르주 알리미에 이어 <르디플로> 프랑스어판의 새 사령탑이 된 40대 초반의 브누아 브레빌 신임 발행인은 발제에서 “극우의 부상과 좌파의 후퇴라는 국제적 맥락에서 각국의 정치에서 전통적인 양당제가 무너지고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민주주의적 연대를 위한 국제정치는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14년 동안 <르디플로>를 이끌어온 세르주 알리미는 발행인에서 편집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우리는 그의 통찰력 넘치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르디플로> 국제판 연례모임에서는 프랑스어판의 주요 경영진을 비롯해, 그리스,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이탈리아, 헝가리,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쿠르드, 이란, 한국, 일본, 중국 등 30여 국가의 발행인들이 참여해 의견을 교환했다. 본지는 독자들과 함께 세계정세에 대한 <르디플로>의 인식을 공유하고, 향후 편집 방향과 운영방침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돕고자 연례모임의 핵심 내용을 게재한다.
지난 15년간, 2008년 금융과 경제 위기를 시작으로 월가 점령 시위, 스페인의 로스 인디그나도스(Los Indignados, 분노한 사람들) 운동, 그리스의 긴축 반대 운동, 아랍의 봄, 중남미 좌파 운동, 프랑스의 밤샘(Nuit debout) 시위, 노란조끼 운동 등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에 맞선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권력의 사유화가 두려워) 지도자를 앞세우거나, (권위주의를 피하고자) 위계조직을 구축하거나, (회유를 염려해) 정당이나 노동조합과 협력하거나, (모략과 중상의 세계로 불리는) 선거 게임에 뛰어드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런 ‘순수주의’는 효율성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11년 10월 15일, 82개국 952개 도시에서 수백만 명이 모인 점령 시위(Occupy movement)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전 세계적인 집회였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했다. 노란 조끼 시위대는 토요일마다 수십 차례 행진을 이어갔다. 프랑스에서 가장 길게 이어진 사회 운동이다. 그들도 많은 것을 얻지는 못했다.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아랍의 봄’ 집회가 열린 지 10여 년, 이집트에는 2011년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보다 더 지독한 압델 파타 알시시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르디플로>의 기자 히샴 엘알라우이는 ‘아랍의 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청년들은 (...) 수직적 질서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왜일까? 수십 년간의 부패를 목격한 청년들은 정치 체제가 더럽다고 판단해 정치 제도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이상주의를 지키려면 순수함을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 그러나 거리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무리 거센 압력을 가해도 그 압력이 정치 제도에 반영되지 못하면 결국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등식은 간단하다. 조직이 없으면 영향력이 없고, 영향력이 없으면 성과도 없다.
지난 15년 동안의 시위가 대부분 실패한 가운데, 의외의 결과도 나타났다. 바로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반응이다. 적어도 한시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그 세력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영국의 우익 브렉시트당,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헝가리의 오르반, 필리핀의 두테르테, 이탈리아의 멜로니, 스웨덴의 스웨덴 민주당, 스페인의 복스(VOX) 등이 그 예다.
이들이 패배한다고 해도, 이들의 움직임은 정치에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긴다. 트럼프의 패배는 트럼프주의의 패배가 아니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트럼프주의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보우소나루는 패배했지만 보우소나루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양당제의 종말?
양당제 전통이 사라져가는 국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경제, 국제관계와 같은) 주요 사안에 관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두 세력, 이른바 극단적 중도파가 서로 대립하는 형국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저물어가는 자유주의적 근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 세력이 무수히 많은 적개심을 부추긴다.
정치판이 세 개의 블록으로 갈라진 국가가 점점 늘어난다. 극단적 중도파가 권력을 차지한 가운데, 좌파 진영은 활동의 체계화와 진전에 난항을 겪는다. 참고로 프랑스의 사회당(PS)과 공화당(LR), 대중운동연합당(UMP), 그리스의 범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 이탈리아의 민주당, 브라질의 우파정당을 비롯한 전통적인 중도주의 좌파와 우파정당들은 입지를 잃고, 쇠퇴하며 사라져간다. 반면, 소위 ‘우익 대중영합주의’ 바람을 일으키는 극우 정당들은 전 세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런 극우의 성공은 국가별 차이가 있지만, 그 테마는 기본적으로 같다. 신화화된 과거에 대한 향수(이민자나 세계화가 없던 “옛날이 좋았는데”)를 토대로 널리 확산된다. 쇠퇴해 가는 듯한 기분, 사라진 위대함에 대한 향수, 옛 질서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은 트럼프주의(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와 에리크 제무르의 담론의 핵심(프랑스의 자살』, 재정복당 Reconquête)에서 잘 드러난다.
또 다른 공통 테마는 바로 모든 국가에서 극우 담론의 근간이 되는 반이민주의 수사다(“우리나라에서 우리끼리 살자”). 이런 이야기는 최근 프랑스 안시(Annecy)에서 일어난 놀이터 칼부림 사건의 경우처럼 뉴스거리를 통해 반복된다. 우파와 극우 진영의 날조로 외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난민’에 대한 대대적 ‘논의’가 시작된다. 곳곳에서 같은 구호가 반복된다. “지난 30년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앞장서겠다.”
또 다른 공통적 테마는 농촌, 지역 사회, 전통적 뿌리다. 트럼프는 농촌, 소도시, 벽지 산골에 진정한 미국적 가치를 구현하는 ‘정통’ 미국인이 있다는 생각을 전파했다. 이탈리아의 극우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과 프랑스의 르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우익대중주의 정당인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RN) 역시 현장의 현실에 무지한 엘리트나 파리의 의사 결정권자가 아닌 ‘실제 국민’과의 친밀감을 강조한다. 농촌의 뿌리에 대한 강조는 대도시, 개방성, 국제주의, 기술 지향 등 ‘현대성’으로 대변되는 것들에 대한 혐오나 나날이 격화되는 비난과도 맞물려 있다.
이른바 ‘현대성’에 대한 우파 진영의 공격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현대성의 ‘위선’을 체험한 일부 노동 계층과도 결부돼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도시의) 지식인, 기술자, 고위 공무원, 전문가를 겨냥해 비판이 거세지고, 그들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엘리트 계층은 노동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은 양보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이런 인식은 정당, 국회의원, 언론인 등 다양한 엘리트 체제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진다. 여러모로 합당한 불신이지만 진보의 출구를 가로막는 불신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디어에 대한 불신은 자본주의적 미디어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수용자들을 독립적인 ‘대안’ 미디어로 단번에 몰아가지도 않는다. 이는 도처에 만연한 불신의 문제다. 그렇게 사람들은 공개토론에 흥미와 관심을 잃고, 음모적 성향의 매체, 재구성된 미디어나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대안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대중의 이런 불만을 해소하려면, 좌파 진영의 노력이 절실하다.
언론을 위협하는 ‘가팜(GAFAM)’의 위력 2022년은 전반적으로 성과가 좋은 한 해였다. 월평균 유료 발행부수가 17만6,400부에 달해 2021년 대비 0.4%, 예산 대비 5.9% 상승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판매부수는 상반기와 하반기가 크게 엇갈렸다. 상반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반면, 하반기에는 위축됐다. 2022년 8월호까지는 2021년보다 실적이 좋았지만, 상승세는 9월부터 꺾이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2023년 초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졌다. 1월은 실적은 괜찮았지만 2월과 3월은 매우 부진했고, 1분기 평균 유료 발행 부수는 16만 2,200부로 예산 대비 2.7% 낮았다. 그 원인으로는 부진한 뉴스, 대선 직후에 감소하는 판매량,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 문화 관련 지출을 줄이게 만드는 인플레이션의 여파, 코로나 팬데믹 2년간의 상승세 이후 침체기 등 다양하다. 우려스러운 점으로, 2021년부터 감소세를 이어가는 홈페이지 트래픽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는 SNS 매체 중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온라인 홍보 역량을 집중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이 두 플랫폼은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떨어졌다. 요즘 청년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과 같은 플랫폼을 선호한다. 하지만 해당 플랫폼은 <르디플로>의 존재감이 미약하며, 이미지 중심이므로 텍스트의 파급력이 낮다. 페이스북 알고리즘 변화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사용자의 ‘담벼락’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알고리즘이 도입된 이후, 정보나 정치 콘텐츠보다는 개인 콘텐츠와 사진이 먼저 노출된다. 이런 변화는 <르디플로>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미디어가 영향을 받는다. 알고리즘만 바꿔도 신문을 아예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빅테크(Big Tech) 기술 기업들, ‘가팜(GAFAM,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의 위력을 보여준다. 광고 의존도가 높았던 언론사는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완전히 추락한 인터넷 매체도 있다. 미국 온라인 뉴스 사이트 <버즈피드(Buzzfeed)>는 뉴스 부서를 정리하고 인력의 15%를 해고했다. 독일 미디어 그룹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는 2023년 초에 “기업 건전성과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인력의 10%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에는 <복스(Vox)>, <더 버지(The Verge)>, <뉴욕 매거진(New York Magazine)>을 소유한 복스 미디어그룹이 직원 7%를 정리해고했다. 프랑스에서도 <부아 뒤 노르(Voix du Nord)>, <미디 리브르(Midi Libre)> 등, 인력을 정리해고하는 언론이 늘고 있다. <르디플로>의 상황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매출은 줄고 전기요금, 종잇값 등 각종 비용이 늘긴 했지만, 2023년에도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우리는 더욱 분발해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몇 가지 개편사항을 공유한다. - 홍보자료 재구성: 최근 우리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각종 서신(재구독 안내 및 구독 유지 제안 등) 등 홍보자료를 모두 검토한 후, 수년간 고정적으로 사용해온 문구를 더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손질했다. - 소식지 재구성: 우리는 월 1회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소식지를 보낸다. 해당 월 기사의 이해를 돕는 과거 기사를 선별해 전송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기에 비해 소식지의 효과가 줄었다. 열어보는 사람도 링크를 클릭하는 사람 수도 초기보다 적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더 적극적으로 시사 쟁점을 전달할 예정이다. 되도록 한 달에 두 번씩 소식지를 발송하고, 편집진이 기록물 가운데서 엄선한 기사를 소개하는 짧은 글과 지도, 통계치, 인용구를 깔끔한 배열로 담아낼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접근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따라서 이메일로 직접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색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 애플리케이션 출시: 현재 <르디플로>를 전자문서로 읽는 형식은 PDF뿐이다.(한국어판의 경우 온라인 서점을 통해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다 - 역주) 화면을 확대하거나 끌어올려 문단을 이동하는 이 방식은 편리하지 않다. 그래서 가을부터는 태블릿, 전자책 단말기, 휴대전화에서도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더욱 편리하고 실용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려고 한다. 현재에는 온라인 구독자의 비중이 낮지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온라인 구독자가 늘기를 기대해 본다. 가을에 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면 편집팀의 협조로 준비한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할 예정이다(홈페이지상의 ‘열린 공간의 날’, 특별 구독 상품 등). - 연 2회 지도 부록 제공: 11월~12월은 미디어 지도, 2024년 봄은 탈세, 조세 회피처 지도 등 - 도안 개선 작업: 미술팀에서 진행 중 - 2024년 특별호: 『르몽드 역사 교과서 비판(하나일 수 없는 역사)』 개정 및 증보판 발간. |
가난과 극우의 함수관계
지리적 격차와 정치적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학력과 경제력이 높으며, 개혁적인 대도시(파리, 런던, 뉴욕, 프라하, 바르샤바)와 상대적으로 학력과 경제력이 낮으며 보수적인 지역(농촌 지역 및 외각 지역) 간의 단절이다.
이런 단절은 전혀 새롭지 않다. 프랑스를 둘로 가르는 텅 빈 대각선, 미국 해안 지역과 내륙 지역,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 런던 대도시 지역과 나머지 지역 간의 단절 등 대다수의 서구 국가들에서 계속됐던 현상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특히 심화됐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 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8~2016년 3%p 증가한 반면, 그 외 지역에서는 제자리걸음을 이어갔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대도시 지역 고용률이 4.8%p 상승하는 가운데 비수도권 지역의 고용률은 2.4%p 하락했다. 2008년 이후 영국에서는 국가 전체 고용 창출의 35%가 런던에 집중될 만큼 도농 간 격차가 심화됐다. 파리, 뉴욕, 런던, 암스테르담, 토론토에서 금융 위기는 일시적인 사건에 불과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고용시장은 호조를 보이고 부동산 시장은 회복됐으며, 투자가 몰려들고, (공영주택 단지에는 빈곤층이 남아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층 비율이 높아졌다. 반면, 인구 밀도가 낮고 노동자 비율이 높은 지역은 경기 침체의 영향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공장과 저숙련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인구가 감소했고, 이는 다시 부동산 가격 하락과 지방 재정 위기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졌다. 인구 감소, 일자리 감소, 주택 가격 하락은 지방 당국의 세수 감소를 의미하며, 공공 서비스와 기반 시설의 유지보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지방은 매력을 상실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세계화와 재화와 용역의 자유로운 이동에 도전하는 극우 정당, 더 넓게는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의 지지도는 바로 이런 지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소득 증가율이 가장 낮고 인구가 감소하고 사망률이 높아지는 카운티에서 선전했다. 프랑스의 국민연합과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 정당들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은 곳은 부동산 가격 하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다. 반대로 자유무역, 녹색 자본주의, 개방성, 혁신을 옹호하는 ‘진보적인’ 정당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표를 얻었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은 주요 도시를 포함해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카운티의 약 90%에서 승리를 거뒀고, 워싱턴 카운티에서는 상대 후보 트럼프에게 겨우 5%만 내어주기도 했다.
헝가리도 상황이 비슷하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최대 적수인 연구원 출신 녹색 정당(Párbeszéd, 헝가리를 위한 대화) 대표가 2019년 10월부터 부다페스트 시장을 맡고 있다. 체코에서는 유럽 내 ‘이민자 증가’를 비난하는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와는 달리 8년 내 묘목 100만 그루 심기 목표를 세우고 난민들을 옹호하는 해적당 소속 의원이 2018년 11월에 프라하 시장으로 뽑혔다. 25년 전에 이슬람 보수주의자 에르도안 대통령의 근거지였던 이스탄불에서도 2019년에는 세속적인 사회민주주의 야당 출신 시장이 나왔다.
좌파의 ‘가치’가 지닌 양면성
동유럽권의 프라하, 브라티슬라바, 바르샤바, 부다페스트의 시장들은 2019년 12월에 ‘자유 도시 협약’에 서명했다. 이들은 현 정부가 ‘지난 세기에 유럽을 두 번이나 전쟁으로 몰고 갔으며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를 확산시킨다고 비난한다. 네 도시 시장들은 “우리는 시대에 뒤처진 주권, 정체성 같은 낡은 개념에서 벗어나 자유,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 평등, 법치, 사회 정의, 관용,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열린사회를 믿는다”라며 도시들이 “자원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도록” 장려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대도시들은 대통령의 정책에 앞장서서 반기를 들었다. 2017년 1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보스턴, 뉴욕, 워싱턴, 디트로이트, 시카고 시장들은 불법 이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스턴 시장은 이 법안이 ‘파괴적’이고 ‘반미적’이며, ‘보스턴의 사람들, 보스턴의 힘, 보스턴의 가치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지탄했다. “선거 결과가 우리 도시와 우리의 가치를 바꾸진 못할 것이다. (...) 우리는 연방 정부 공무원이 아닙니다.” 몇 달 후, 대도시들은 환경 문제로 또 한 번 반기를 들었다. 미국의 일부 도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 협약 탈퇴 결정과 무관하게 협약을 계속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분열의 불씨를 던졌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이후, 런던의 독립을 선언하고 EU에 합류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벌어져 불과 몇 주 만에 18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수도의 분리 독립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중앙정부와는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 서명 운동 결과가 나오고 나흘 후에 칸 시장과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파이낸셜 타임스>와 <르 파리지앵>을 통해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파리와 런던은 출신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자기 집처럼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도시다. 우리는 파리와 런던의 시장으로서 유럽과 전 세계 도시 간의 더욱 굳건한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더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힘을 합치면 민족국가의 무기력과 로비 세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힘을 합쳐 우리는 다음 세기를 열어갈 것이다.”
칸 런던 시장은 관광객과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LondonIsOpen(런던은 열려 있다) 해시태그 구호를 중심으로 홍보 캠페인을 벌였다. 상공 회의소와 시티오브런던 법인(City of London Corporation), 여러 싱크탱크와 다국적 기업의 협조를 받아 런던에서만 유효한 취업 비자 발급과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위한 수도 런던의 예외적 특수성을 요구했다. 이 요구들 중 실현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칸 시장은 예상치 못한 국제적 위상을 얻었다. 이제 그는 외교부 장관과 국가 원수들(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연단에 서게 됐다.
친환경, 유기농의 ‘계급성’
일반적으로 좌파는 윤리적 ‘가치’에 초점 맞추는 이런 접근을 좋아한다. 일례로 프랑스 좌파 언론은 미국의 성역 도시 운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이런 접근의 부수적인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접근은 대도시 지역이 국가의 다른 지역 운명에는 무관심하다는 생각을 더 깊이 각인시킨다. 결과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분열을 부추긴다. 특히 이런 식의 접근은 사회 지리적 분열을 문화적 갈등, ‘가치’의 갈등으로 바꾸는 데 한몫한다. 대도시 지도자들이 소위 ‘개방주의’에 대한 반대를 논할 때 끊임없이 ‘가치’라는 단어를 쓴다. 결국 분열은 세계화, 자유무역, 지식 인력의 이동, 값싼 이민 노동자의 혜택을 보는 지역과 고통 받는 지역 간 분열이 아닌,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지역과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지역 간 분열로 바뀐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지리적 격차가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에 두드러진 것은 그 격차가 문화적 격차, 사회 계층 간의 가치관 차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도시 부유층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점점 더 빈번히 교류하면서 노동자 계층과는 점점 더 동떨어진 취향과 소비 습관, 생활방식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언론, 당위적 문화, 공공 담론은) 이들의 삶을 추종해야 할 규범처럼 선전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식생활, 여가 활동, 교통수단 등에서 나타난다. 너무 짜고 기름진 음식, 가공식품 비중이 높은 식생활을 개선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해 환경보호를 주장할 경우, 환경보호는 도시, 특히 도시 상류층이 외부에서 강요하는 공격적 현대화가 될 위험이 있다.
극우파의 투표에 관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의 어느 농부는 “이제 모든 것이 유기농”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도시의 엘리트들은 매사에 제약과 규제를 만들어냅니다. 곧 사냥까지 금지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집약적인 농업방식에 대한 맹렬한 비판’은 농촌 지역에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집약농업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농촌에 일종의 낙인을 찍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간파한 극우파는 농촌에 대해 무지한 도시의 진보주의자들에 맞서 농촌을 비호하는 듯 행세한다.
이 새로운 정치 지형은, 결과적으로 엘리트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엘리트화 되어 가는 좌파에 대한 거부감을 키운다. 트럼프의 예를 보면, 2016년과 2020년에 엘리트층 전체가 트럼프에 반대하는 견해를 보였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재계 지도자들, 언론계, 학계, 안보 당국, 고위 공무원, 예술가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트럼프가 “무능한 러시아 첩자”라고 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주요 SNS에서 계정이 정지됐고, 기소돼 법정에 섰다. 어쩌면 투옥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공화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에게 높은 기대를 가지고, 각종 비난을 야권 정치 지도자의 집권을 막기 위한 기성정치 세력의 책략쯤으로 여긴다.
투표율과 학력의 함수관계
이런 변화는 제도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징후는 기권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프랑스 의회는 그림자 연극판으로 전락했다. 2022년 6월 2차 총선에서는 등록 유권자 53% 이상이 기권을 택했다. 여기에 미등록 유권자 5~6%를 더하면, 프랑스 국민의 약 60%가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의회의 다수당을 결정한 것은 프랑스 국민의 40% 이하라는 것이다.
투표장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관련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연령과 학력이 높은 사람의 투표율은 80%에 달하는 반면, 저학력 청년층은 기권율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과 학력, 거주지역과 투표의 상관관계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977년 파리에서 공산당은 20개 구 중 4개 구에서, 사회당은 2개 구에서 승리했다. 당시 수도에는 노동자 거주 구역이 적지 않았다. 이후 1983년과 1989년에 우파는 20개 선거구를 모두 휩쓸었다. 수도의 젠트리피케이션도 변화 요인들 중 하나다. 2001년, 2008년, 2014년, 2020년에는 좌파와 녹색당이 파리 대다수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부르주아지 진영은 과거와 다르다. 미국 뉴욕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전 개인 변호사를 역임한 공화당 출신의 루돌프 줄리아니가 오랫동안 시장을 지냈다. 대선에서 도시 인구의 80%가 민주당에 투표하는 뉴욕에서는 이제 공화당의 우세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닉슨, 레이건, 부시 대통령 시절에 캘리포니아에서는 공화당에 투표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오늘날 트럼프 지지율이 가장 높은 주로 꼽히는 웨스트버지니아(농촌과 빈곤층 비율이 높은 지역)는, 2000년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노동조합의 거점이었다. 미국에서 학력은 투표의 주요한 변수가 됐다. 미국에서는 고학력자가 민주당에 투표한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지지층이 고학력자로 대표되는 반면,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 지지층은 저학력자들이 주를 이룬다. 좌파는 이런 사회학적, 정치적 변혁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국제관계의 탈이데올로기
냉전 직후, 사람들은 미래를 어떻게 예측했을까? 소련 붕괴 이후 사람들은 미국 중심주의, 혹은 대서양주의라고도 불리는 서구적 질서가 전 세계를 좌우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며 제국 간, 문명 간, 정치와 경제 모델 간의 충돌이 종식된다고 주장하던 시기다. 1990년대에 동구권 국가들은 신자유주의와 민영화로 급격히 전환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질서에 따라 ‘전 세계의 미국화’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세계화의 햇살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달러, 자유무역, 미국 브랜드(나이키, 맥도날드 등)가 의기양양하게 과거 공산주의 블록의 국가를 점령했다.
전 세계의 미국화라는 주장에 대해 일부 분석가들은 세계의 축이 ‘새로운 방향으로 기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중심의 질서가 신흥 강대국들이 이끄는 대안적 세계 질서의 도전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머리글자를 딴 BRIC은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더해져 BRICS로 바뀌었다. 세계의 축이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은 2010년대 초에 절정에 달했다. 이후 BRICS는 학술이나 언론 약어가 아닌 매년 개최되는 정상회담의 공식명칭이 됐다.
동시에, 외견상으로는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후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오바마는 2008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전쟁과 교전을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수만 명의 목숨과 수천억 달러의 비용, 국가 이미지에 입은 영구적인 타격 등 전쟁에서 잃은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2010년대 초, 힐러리 클린턴의 국무장관 시절 미국은 아시아 중시(Pivot-to-Asia) 외교 정책을 도입했다. 그 이전까지 미국은 석유와 가스 공급망 확보를 위해 주로 중동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막대한 투자를 했다.
그러나, 에너지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다. 셰일 가스와 석유의 가격 상승, 채굴 기술 혁신으로 수익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노스다코타, 텍사스, 그리고 인근 국가 캐나다 앨버타에 널리 분포한 탄화수소 덕에 에너지 자립을 공고히 했다. 미국은 중동에서 철수한 후, 아시아에 군사외교 자원을 재배치해 에너지와 무역 공급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중동지역에서의 미군 철수는 시리아 전쟁 중 극명히 드러났다. 미국과 프랑스 강경파가 거듭 호소했고,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규정한 화학무기를 사용했지만, 미국은 지상군을 투입하지는 않았다. 리비아에서도 최소한의 개입만 이뤄졌다. 카다피 축출을 위해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리비아 비행금지구역을 넘기는 했지만 말이다.
미국의 군사적 철수나 자원 재집중으로 전 세계 균형의 축이 달라졌을까? 지난 10년 동안 다른 강대국이 등장해 국제무대를 주름잡거나 세계 질서를 재편했을까? 세계의 서구중심주의 종식의 신호탄이 됐을까? 미국이 떠난 공백을 다른 국가, 다른 강대국이 대신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 시리아 개입을 거부하자 러시아는 중동에서의 영향력, 무엇보다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해 러시아, 이란, 시리아 간의 결속을 강화했다. 이 상황은 미국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프리카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경제투자, 군사협력, 소프트파워로 영향력을 키웠고, 아프리카 대륙용 뉴스 채널도 개설했다. 러시아에서 방송하는 국제보도 전문 채널 <러시아 투데이> 방송이 유럽연합에서 금지됐을 때도, 프랑스어판 채널은 아프리카 프랑스어권에서 계속 운영됐다.
이 모든 상황은 다자 국제질서의 출현이 아니라, 동맹관계의 강화를 의미한다. 국가 간 동맹관계는 일시적으로 교차되기도 하지만 주로 평행선상에 병렬적으로 유지된다. 2023년 5월 19일,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날에 세 가지 국제 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본 히로시마에서는 G7 회담이, 중국 시안에서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담이,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는 제32회 아랍연맹(AL) 정상회의가 열렸다. 그보다 3개월 전에는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아프리카연합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같은 날 세계 곳곳에서 정상회의가 열리는 현실은 이제 세계가 ‘국제공동체’라는 개념에서 멀어져, 경제, 문화, 인구, 군사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블록으로 분열됐음을 보여줬다.
세계는 이념적 충돌이나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 국가 간 동맹의 변화는 특정 이념과는 무관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그 방향과 빈도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탈이데올로기화는 전 세계의 미국화인지, 아니면 새로운 축의 도래인지를 예측하게 해주는 힌트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서구화된 세계의 배경에는 ‘축의 변화’라는 맥락이 깔려있다. 중남미처럼 미국의 뒷마당이었던 지역에서도 미국의 헤게모니가 도전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방적으로 행동할 경우, 미국도 세계에서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1980~1990년대 일본과 같은 경쟁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같은 적대국도 상대해야 한다.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두 번이나 참패했다. 미국은 두 국가를 장기간에 걸쳐 침략하고 점령해 힘이 약해졌다. 그러나, 소득은 전혀 없었다. 미국은 오히려 경제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부정적인 결과만 얻었다. 미국은 자국의 질서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국가들, 이제는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춘 여타 다른 국가들과 힘을 공유해야 한다. 미국이 설파하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 수호’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얼마나 위선적인 말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세계 각국의 입장만 봐도 알 수 있다.
북반구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전시에 단일한 사고방식이 강요되듯, 반대 진영의 목소리는 묻히곤 한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남반구의 시각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 ‘다른 시각’은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발언으로 요약된다. 그는 사람들이 흑인과 백인 삶에 동등한 관심을 쏟지 않고, 예멘이나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인의 생명과 우크라이나인의 생명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으며, 일부는 다른 이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여러 국가의 기권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에 관한 유엔(UN) 결의안 채택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기권한 것이다. 기권국 중에는 독재 정권 국가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아르메니아, 멕시코, 세네갈, 브라질도 있었다. 언론인 알랭 그레시는 지난해 <르디플로>에 기고한 글에서 트리타 파르시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파르시는 지난 2022년 3월 26일~27일에 전 세계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2천여 명이 모인 도하 포럼에 참석한 이후 이렇게 평가했다.
“남반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고, 러시아를 침략자로 본다. 하지만 ‘법에 따른 질서 유지’라는 구실로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 단절이라는 무거운 희생을 강요하는 서방의 요구에는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여태껏 그 질서에 따라 면책권을 얻어 국제법을 위반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에 자국의 시각을 강요할 수 없게 됐다. 저항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쇠퇴’라는 후렴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를 묻어버리려 한다면 실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반미주의 국가들은 새로운 세계의 대안적인 이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비난할 뿐,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 탈이데올로기화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제국주의자 대(對) 식민지 국민, 자본가 대(對) 공산주의자, 세계화의 사도 대(對) 반세계화주의자와 같은 대립이 뚜렷했다. 정치적 반대는 지정학적 반대로 풀이되어 외교적 동맹으로 이어졌다. 여러 면에서 오늘날의 세상은 더 이상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현대의 지정학적 긴장은 점점 더 국가가 원자재, 무역로에 대한 접근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는 입지 전쟁을 방불케 하지만, 아무도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옹호하거나 제안하지 않는다.
2017년 다보스 경제포럼에서 중국이 자유무역을 옹호했지만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은 이를 비판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미국은 비난과 도전을 받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은 현재의 세계 질서를 실질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자본주의적인 소비사회다. 두 국가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국제연합(UN), 세계은행 등 주요 국제 금융 기구나 외교 기구를 문제 삼지 않는다.
미국은 쇠퇴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항상 배수진을 치고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한다. 가까운 예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미국은 이 전쟁을 최대한 활용했다. 따라서 분쟁의 신속한 외교적 해결책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가스와 석유를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피해도 거의 없었다. 대(對) 러시아 제재는 유럽 국가들의 무역과 남반구 국가로의 식량 공급에 차질을 빚지만, 미국에는 피해가 없다. 적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길고 비용이 많이 소모전으로 지쳐가는 상황에, 미국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한 점이 또 하나 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존재 이유가 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협력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2019년 12월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NATO가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고 평가했다. 주의할 점이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하면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손에 놀아나고 블라디미르 푸틴을 지지한다고 말이다. 대서양주의 전략에 대한 비판을 ‘친러시아적 행동’이라고 몰아세우는, 지능적 협박인 셈이다.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쇠퇴라는 주제는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거듭 대두됐고, 쇠퇴와 승리가 반복됐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승전국 미국은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실행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인 1950년, 이미 과도한 예산 투입으로 인한 미국의 쇠퇴를 우려했다. 1949년 소련의 첫 번째 핵실험과 1957년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 당시에도 미국의 ‘기술 쇠퇴’ 우려가 공론의 중심에 있었다. 1960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존 F. 케네디는 이렇게 개탄했다. “미국은 소련에 비해 쇠퇴했고, 공산주의는 점차 세계 각지로 확산하고 있다.”
케네디는 당선되자마자 방향을 바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떤 부담도, 어떤 고난도 감수할 것이다. 또한 어떤 우방이라도 응원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어떤 적과도 맞서 싸울 것이다.” 1960년대는 낙관주의가 만연했다. 시민권 법안과 강력한 성장에 힘입은 린든 존슨 대통령의 ‘빈곤과의 전쟁’은 평화로운 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공산주의의 확산에는 제동이 걸린 듯했고, 우월한 우주기술의 상징으로 미국인들은 1969년 달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2년 후, 경제학자 폴 스위지와 해리 매그도프는 이미 ‘미국 패권의 종말’을 언급했고, 이 말은 10년 동안 후렴처럼 반복됐다. 이 시기에 미국은 복합적인 내부 문제(달러의 금본위제 폐지, 워터게이트 사건, 오일 쇼크, 경제 위기 시작, 금리 인상, 가계 부채 등)와 대외 문제(베트남의 철수, 소련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진출, 이란 혁명,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등)에 직면했다. 쇠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국은 쇠퇴국이 됐다가 하루아침에 패권국으로 떠오른다. 그 주기는 언론과 정치 동향에 따라 달라진다. 역설적으로, 미국 쇠퇴라는 이 후렴은 미국에게 이득을 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역사의 격변을 극복하고 계속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해주기 때문이다.
국제판 발행인들 간의 토론 [편집 방향] - <르디플로> 칠레판의 학생 운동 기사처럼 사회운동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 유럽연합의 구조에 대한 비판에 더욱 주력해야 하고, 노동자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 계층의 실상과 행적도 분석해야 한다. 분석을 통해 변화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장기적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 - 고용이냐, 환경이냐? ‘이데올로기적 종말을 맞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모순적인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 발칸 반도의 정치나 포르투갈의 백신 확보 사례 같은 진보적인 유럽의 면모와 대서양주의에 동참하거나 자본을 통한 노동 지배를 우선시하기도 하는 유럽의 상반되고 모순적인 면모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 <르디플로>가 주권주의, 좌파 대중영합주의, 민족주의와 그 모순에 관한 토론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
정리·안세실 로베르 Anne-cécile Ro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이사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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