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특권에서 다수의 참여로

Corée Spécial 공부란 무엇인가

2012-04-14     김종락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는 왜 하고, 어떻게 하는가. 다른 세상을 꿈꾸며 지난해 출범한 '대안연구공동체'가 최근 첫돌을 맞이해 '공부'를 주제로 일련의 특강을 진행하며 가졌던 의문이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일종의 대안대학을 자처한 공동체는, 대학에서의 공부가 문제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 시대 대학의 위기는 (자본과 시장과 경쟁이라는 우상에서) 그 거리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 대학의 이상을 지켜나갈 대학이 있다면 그것은 대학 밖의 대학일지 모른다. 배움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시대를 직시하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있는 곳, 그곳은 자본의 시장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아고라'일 것이며, '큰 배움'으로서 대학이 존재하는 곳이리라."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서보명 시카고 신학교 교수가 <대학의 몰락>(동연·2011)에 쓴 마지막 구절이다. 서 교수가 서구 대학의 역사를 정리하며 위기를 분석한 이 책에 따르면, 대학 위기론은 중세 이래 800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대학이 급속하게 변화한 가장 큰 배경은 글로벌 신자유주의 체제다. 신 또는 이성이 차지하던 자리를 돈이 차지한 뒤, '학문 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가치는 사라지고 대학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전초기지이자 그 자체가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전락했다.

1990년대 이후 국내 대학의 비극은 미국 대학보다 더 미국적이었다는 데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 자본주의에 벌거벗은 대학은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구호를 본산인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학의 목표는 맹목적인 순위 경쟁이었을 뿐 대학 순위가 나온 정치적 배경은 물론이고, 대학의 본질이나 의미에 대해 관심을 쏟는 대학은 없었다. 이런 대학의 현실은 이 땅에서 등장하는 대안 지식 공동체들의 문제의식을 압축하면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나는 공부와 친하지 않다. 대다수가 그렇듯이, 남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초·중·고와 대학 시절 내내 그 지겨운 공부에 내몰렸을 뿐이다. 그건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사 문화부에서 짧지 않은 세월을 북리뷰하는 걸 일로 삼으면서 '이건 아니다'란 인식이야 왜 없었겠느냐마는, '목구멍이 포도청' 운운하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본이 굴려대는 쳇바퀴에서 몸을 뺄 용기를 낸 것은 50살이 되어서였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국어사전에는 공부를 '학문을 배움, 배운 것을 익힘'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그 뜻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금의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공부에는 심신 수양이나 종교적 수행, 실천까지 두루 포함한다. 사랑, 자리이타(自利利他), 성기성물(成己成物) 등 공부의 목표로 제시된 말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마음과 몸의 변화, 삶의 변화까지 포괄한다. 50살이 되도록 공부와 거리가 먼 곳에 살면서도 지식 공동체에 참여해 학자들 틈에 낀 건 뒤늦게 얼치기 학자 행세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 혹은 성기성물을 구현하는 마음과 몸의 변화, 삶의 변화를 원했다. 인문학 공부를 중심에 놓은 공동체에 참여한 것 역시 인문학이야말로 삶의 변화를 위한 지남(指南)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대안연구공동체'가 출발한 직후 당면한 큰 어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과 경쟁력의 문제였다. 학문과 예술이 자본에 예속되고, 대학의 인문학이 시장과 경쟁에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며 나선 공동체가 그리도 비판해 마지않던 자본과 경쟁력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자본력 없이, 뜻으로만 출범한 공동체에서 말로만 듣고 떠들던 인문학 위기의 실상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3월, 40여 개의 철학사상과 세계 다언어 강좌를 내걸고 시작한 봄학기의 수강자가 모두 합해 50여 명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애써 만든 강좌의 대부분을 폐강하고, 강좌당 평균 3~5명의 수강생을 상대로 강의를 했으나 수강료 수입은 강사들의 교통비에도 못 미쳤다. 적잖은 금액의 건물 임대료와 운영비 등이 고스란히 적자로 이어졌다. 석 달 뒤 여름학기에는 봄학기보다 더 많은 준비를 했으나 결과는 비슷했다. 인문학을 기치로 공동체를 꾸린 지 6개월도 못 돼 존폐의 기로에 섰다.

그 뒤 다시 몇 개월, 천신만고 끝에 첫돌을 맞이한 대안연구공동체가 '공부'를 주제로 한 특강을 진행했다는 것은 그 지속 가능성에 약간의 탄력이 붙은 것을 의미한다. 적잖은 우여곡절과 진통이 있었으나 별다른 자금 수혈 없이 존속하며 '공부'라는 화두를 아직도 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길담서원', '다중지성의 정원', '수유너머'를 비롯한 선행 지식 공동체의 직간접적 도움으로 공동체의 공부 내용과 방법을 혁신한 덕이 컸으리라. 무엇보다 공부를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야말로 공동체가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들은 청년학생, 주부, 회사원, 전문가, 학자 등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연령대도 수능시험을 갓 마친 고교생에서 일흔을 넘은 전직 교사와 노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대 초반의 청년과 70대 어르신이 마주 앉아 니체 원전을 강독하는 것을 보며, 대학원생과 공인회계사·공무원·의사·신문기자·피아니스트·대학강사가 둘러앉아 플라톤의 저작을 토론하는 것을 보며 '인문학의 위기란 허구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가는 인문학이 사라지는 건 있을 수 없다. 인문학이 위기인 것은, 신자유주의에 투항한 교수들이 주도하는 제도권 인문학에서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사라졌거나 희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제도권 인문학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대학 제도에 의존해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강제로 교수하는 인위적인 생명 유지 장치 덕분일지 모른다. 대학 강좌와 유사한 인문학 강좌로만 출범한 대안연구공동체가 곧바로 존폐 기로에 섰던 것은 대학이 지닌 생명 유지 장치가 없은 탓이다. 공부를 향한 공동체의 꿈이 미망에 그치지 않으려면 (인위적 생명 유지 장치를 가진, 그래서 그 장치를 제거하면 사망할) 제도권 인문학에는 없는 내용과 방법이 필요했다.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이다. 대안지식공동체의 공부에서 선행돼야 할 것은 '왜 공부하는가'를 제대로 묻는 것이다. 그러면 공부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우리의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이었다. 서두에서 언급한 서보명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배움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시대를 직시하고 정의를 외치는 것, 이를 위해 인문학은 특정한 학문이 아니라 모든 지식을 인간의 차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재조직돼야 했다. 문사철을 중심으로 한 텍스트의 이해에서 나아가 인문적으로 쓰고, 그리고, 만들기, 시대를 직시하며 삶을 성찰하기, 그래서 삶의 방식 바꾸기, 이를 위한 마음과 몸 만들기. 강의를 통해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고 세계 다언어를 습득하는 것 위주로 돼 있던 대안연구공동체의 공부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이유다.

우선 해야 할 것은, 인문학 영역을 이해와 비평에서 표현까지 확장하는 것이었다. 표현 인문학은 인문학 영역을 음악·미술·무용·사진·영화 등을 해설하고 비평할 뿐 아니라, 그 형성과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문화예술의 생산을 선택된 몇 사람의 영역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문자로만 이해하던 것을 입체적으로, 몸으로 이해하는 것과도 통한다. 이는 기존 이해 인문학의 깊이를 더하면서 문화예술에서의 참여 범위를 확장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인문학은 인간학이다. 인간이 복잡하고 다의적이듯이, 인문학 또한 근본적으로 세분화보다 학제적임을 요구한다. 인문학을 텍스트의 해석과 이해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전문 영역이나 학문의 최첨단을 시민들의 일상생활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도 필요했다. 이는 20세기 이후 신의 자리를 꿰찬 자본과 과학기술,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공동체에서의 가로지르기는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그리스 철학 읽기 모임에서 플라톤의 저작을 읽는 이가 불교시민강원에 참여하고, 들뢰즈의 <시네마> 강독에 참여하는 이가 건축 동아리에서 주택 모형을 만들며 집에 대한 글을 쓰는 식이었다. 철학으로 대중문화를 논하거나 인문학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공부 모임도 생겨났다. 스님들이 강원에서 배우는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불교시민강원을 개설하고, 코이네 헬라어로 기독교 성서 읽기 모임을 시작한 것도 인문학이 좁은 의미의 인문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성찰에서 비롯됐다.

공동체 공부에서 또 한 가지 유념한 것은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들의 자세다. 가르치는 이들이 지적 우월 의식 없이 배우는 이들과 어울리며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고 참여하기. 학자 혹은 지식인에게, 지배 가치를 비판하며 대항 가치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억압받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설명하며 바라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동료 시민을 수업을 들어야 할 학생이나 개종시켜야 할 이교도, 또는 기피해야 할 속물이 아니라 동료이자 조력자로 생각하는 것은 공동체 공부의 핵심 중 하나였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이런 요구는 강의 일색으로 진행되던 공부에 참여자가 적극적으로 발제하고 토론하는 다양한 공부 모임을 꾸리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강사가 강의를 하면 수강생은 듣기만 하던 수직적 강좌에서, 구성원 모두가 배우고 가르치는 수평적 공부 모임으로 전환한 것의 효과는 컸다. 수동적인 수강생의 자세로 강의를 듣기만 하던 이들이,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공동체의 주인으로 바뀌어갔다. 스스로 공부한 것을 동료 참여자에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은 텍스트 이해의 효율성에서도 강의에 뒤지지 않았다. 공동체 공부 모임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의 공부 모임에 박사급 학자나 관계 전문가가 지도자로 동참해,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서로 배운다는 점이다. 다른 세상을 꿈꾸며 출범한 공동체가 나 홀로 공부하며 세상과 담을 쌓는 것에 대한 반성도 따랐다. 공동체 학자들을 중심으로 중앙 일간지를 비롯한 몇몇 매체에 철학사상이나 기타 연재를 시작했다. 여기서 공부한 내용을 책으로 기획하거나, 철학을 공부한 참여자가 방송의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게 된 것 역시 세상과 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해에서 표현으로, 세분화에서 학제화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수동적인 구경하기에서 적극적인 참여로, 그래서 소수 전문가의 특권에서 다수의 일상적인 공부로. 이제 겨우 첫돌을 지난 대안연구공동체가 여러 선행 공동체를 흉내내며 비틀거리며 걸어온 길이지만 여전히 출발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내년이나 10년쯤 뒤, 이 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바라건대 큰 배움을 원하는 이들이 명실상부한 주인이 돼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며 변화시켜가는 여유 있는 품이 돼 있기를, 그래서 지금껏 생존에만 급급했던 나의 삶도 더불어 풍성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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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전 신문기자. 공부하는 틈틈이 강원도 산골로 가서 농사를 짓고 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번역했고, <세상 고쳐 쓰기> 등 몇 권의 책을 공동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