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잃은 한 지식인의 자화상

Corée Spécial 공부란 무엇인가

2012-04-14     변광배

2005년의 일이다. 참여지식인의 대명사인 사르트르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해에 나는 독일 국적을 가진 한 대학교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나는 어떻게 사르트르를 만나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기획에 동참한 적이 있다. 전세계의 사르트르 연구자 100명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받는 기획이었다. 이 기획의 결과는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후일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그때 내 답변은 대략 다음과 같이 기억된다.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다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 석사학위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연히 집어들게 된 책이 바로 참여문학론의 경전으로 여기는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였다. 문학의 근간인 '글쓰기'를 '드러내기', '고발하기', '변화시키기'와 동의어로 보고, 참여작가는 그가 소속된 사회의 지배세력과 늘 적대관계에 있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 책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작가의 글쓰기를 '항구혁명'의 한 수단으로 여기면서도 문학작품의 작품성을 포기하지 않은 사르트르의 문학관에 끌렸다. 당시 나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뜨거운 욕구와 개인적으로 선택한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는 학문적 욕구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갈등 해결에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이 유력한 해결책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사르트르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계기이다. 물론 대학 시절 수업 시간에 '실존주의'라는 용어를 위시해 사르트르, 카뮈 등의 이름을 듣기는 했으나, 본격적으로 사르트르를 공부한 것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이었다. 내가 만난 사르트르는 다름 아닌 참여작가, 참여지식인으로서의 사르트르였다.

내가 여기서 과거 기억의 한 부분을 들추는 것은 최근에 받은 작은 충격 때문이다. 얼마 전 대안연구공동체에서 사르트르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 기회에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중심으로, 특히 사르트르 연구의 현황과 전망 등을 소개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짧게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그때 한 분이 이런 요지의 질문을 했다. "국내 사르트르 연구의 최근 동향과 연구 전망에서 참여지식인으로서 사르트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국내외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오늘날 참여지식인으로서 사르트르의 중요성이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가."

나는 질문을 받은 순간 한동안 멍했다. 나는 그동안 사르트르를 공부하면서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사르트르와의 첫 만남 이후 지금까지 그와의 인연을 이어오면서 '내가 초심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한 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날만큼 뇌리를 강타한 적은 없었다. 이 글에서 내가 그동안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적어보려 한다. 이 글은 우리나라의 한 지식인의 자화상, 그것도 초심을 잃은 한 지식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1980년 광주사태 이후 민주화 투쟁의 열기는 그 이후에도 줄기차게 이어졌으며,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나는 그 열기에 휩싸여 때로는 시위대열에, 때로는 허름한 술집에서 시국 토론과 신세타령하면서 지내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르트르 문학론에 몰두해 문학이 이 사회를 위해 뭔가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안위하는 한편, 힘없는 정의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우치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세상을 알고 변혁시키려면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1986년의 일이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국내에서는 금서라 구하기 어려웠던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구입했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그때 생각을 하면서 그 서점에 들르곤 한다. 일종의 성지(聖地) 순례인 셈이다.

학위논문 주제로 '폭력'을 선택했다. 당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국가 폭력'이었다. 국가는 왜 그 구성원들에게 폭력적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가. 실제로 그들이 국가에 권력을 양도한 것은 자신들을 더 평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달라는 것일 텐데도 말이다. 이처럼 나는 학위논문에서 폭력에 대한 여러 철학적 사유를 검토함과 동시에 문학이 가진 사회적 기능, 즉 인간 사회에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에 대한 고발과 드러내기라는 기능에도 주목했다. 당시 프랑스에는 이른바 사르트르 참여문학의 시효성은 이미 막을 내리고, 실험성이 강한 누보로망을 위시한 다양한 문학의 흐름이 존재했다. 문학 연구도 후기구조주의가 크게 유행할 때였다. 그러니까 프랑스인 시각에서 보면, 내가 하는 공부는 이미 시효가 지난 공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두고 온,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조국은 여전히 문학의 참여 기능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

내가 사르트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것은 1996년이다. 10여 년 만의 귀국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 '한국사르트르연구회'(GCES)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 사르트르를 전공한 10여 명의 연구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최근에 간행되고 발표된 프랑스어·영어권의 저서와 논문들을 읽고 토론하면서 사르트르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자신이 전공한 작가·사상가에 대한 연구 모임이 결성되어 있고, 게다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니! 새로 박사학위를 받고 온 신참 연구자에게 이보다 더 이상적인 활동무대는 없을 것이다.

1996년 귀국 이후 지금까지 나는 한국사르트르연구회의 일원이 되어 다른 회원들과 교류하면서 비교적 열심히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 15년 이상 지속되어온 모임을 통해 나는 사르트르에 관련된 여러 연구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사르트르와 20세기>, 한국전쟁과 프랑스 지식인들의 관계를 정리한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 사르트르의 후기 사상을 집대성한 <변증법적 이성비판>의 우리말 번역, 1948~2007년의 60년 동안 이루어진 사르트르 한국 수용사 연구의 결과물인 <실존과 참여: 한국의 사르트르 수용 1948~2007> 등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사르트르연구회'(GES)를 위시해 미국·일본·영국·벨기에·이탈리아 등에 있는 사르트르연구회와의 교류에도 일조를 했다. 또한 이 연구회 외에 2005년 결성한 프랑스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를 통해 꽤 많은 수의 인문학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오고 있다. 요컨대 나는 그동안 사르트르 전공자·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지식인·학자로서 개인적 연구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비교적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히 거기에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학하고 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대부분 대학에 자리잡아 교수가 되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줄곧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내가 내세운 목표 중 하나는 대학에 정식으로 자리를 잡아 좀더 나은 환경에서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연구는 실적을 위한 논문 작성 위주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운이 좋아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에 자리잡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학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포기할 수 없어 여전히 실적을 올리기 위한 논문 작성에 매달리게 된다. 실적 위주의 논문을 위한 글쓰기의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질보다는 양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가 표절, 중복 게재, 전공자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전문용어 나열, 만연체 문장 사용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자기들만' 소화할 수 있는 연구로 일관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향을 더욱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국내에서 시행되는 연구자 지원 시스템이다. 과거 한국학술진흥재단(현재 연구재단)을 통해 과제를 공모해, 선정된 과제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이 시스템 덕택으로 많은 성과가 도출되고 있고, 대학에 정식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연구자들에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이 오직 이 지원 시스템에 매달려 심한 경우 1년 내내 공모 과제만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공모 과제에 선정되고, 또한 그 기간이 2~3년 되는 경우 마치 조그마한 액수의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심리 효과를 주기도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문제는 연구의 계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단 과제 선정이 우선이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시의성이 강한 주제, 그리고 이른바 '학진 글쓰기'라는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 화려한 글쓰기만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폐단이 있다.

사르트르와의 만남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본래의 순수한 만남에서 순수하지 못한 만남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가장 심하게 변질되고 심지어 잊히기까지 한 사르트르의 모습은 바로 참여지식인의 모습이다. 사르트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참여지식인으로서 그의 모습은 지금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현상학적 존재론자, 마르크스주의자, 프로이트주의자, 미학자, 매체철학자 등으로서의 사르트르에 더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사르트르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은 다름 아닌 참여지식인의 모습일 것이다. 권력에 저항하고, 불의에 항거하고, 약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가기를 주저하지 않던, 그래서 항상 지배세력과 불편한 관계에 있으며, 그 세력에 딴지를 거는 불온한 세력의 선두를 지키던 '행동하는 참여지식인'으로서의 사르트르야말로 그들이 좋아하고, 또 지금 그에게서 찾으려는 모습일 것이다.

사르트르를 만난 지 어언 30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초심을 잃고 오로지 개인적인 학문적 욕구와 생계를 해결한다는 구실 아래 참다운 사르트르, 우리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사르트르에 대한 연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리면, 나 자신의 '윤리적 전회'가 지금처럼 강하게 요청되는 때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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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변광배 프랑스 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 대표. 주요 저서로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