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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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옵세르바퇴르>, 1988-데스파탱 & 고벨리 |
정신분석학은 개인의 심리적 해방에 기여한다. 하지만 두려움·욕망·환상 등과 같은 개념의 발견은 지배세력이 만든 치밀하고 정교한 가치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정신분석학은 가능한 단 하나의 현실로 여겨지는 정치적 모델의 해방에도 기여하고 있다.
"계급투쟁에는 잠재된 내용이 있는가?"(앙리 르페브르, <차이주의 선언>)
'시장(市場)의 불안.' 이 해괴한 표현은 실재를 은폐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렇게 해괴하게 사용됐지만 이 표현을 통해 '불안'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는 데 이점은 있다. 시장의 불안이 아니라 개인의 불안이 그것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경제학자들은 '부채'와 관련해 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파렴치하게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여러분은 너무 오랫동안 분수 이상의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타자', 낯선 자와 마주할 때 겪게 되는 '공포/폭력'이 다시 활성화됐다. 그것의 뿌리는 정치적이다. 그것의 뿌리는 현행 대학의 학과 분리에 의해 부인되고(학문적이지 못하므로…) 은폐된 정서적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결국 불안하게 하는 능력, 우매화하는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은 공포/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폭력의 숨겨진 측면인 원초적 공포- 타자의 공포- 를 인지한다는 것, 그것은 언젠가 결국 이루어질 실재적 변화에 없어서는 안 될 준비 단계다. 폭력은 단지 거짓된 과격함, 도달하지 못한 과격함일 뿐이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타자에게 가는 방법,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할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기술이다. 그로부터 교육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라캉('프로이트로 돌아가자'의 주창자)에 의한 프로이트 텍스트의 만남을 상기시키는 허구적 이야기를 꾸며보자는 생각이 나왔다. 평생 동안 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실존적 위험을 감수했던 두 인물의 상상적 만남이 그것이다.
그(라캉)는 이제 완전히 부동의 상태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성(姓), 즉 누구도 결코 그 이름을 모를 터인 자기 아버지의 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이름(자크 마리)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가 남길 수 있던 그만의 독특한 표식에 적어도 얼마간은 더 계속 붙어 있으리라.
그는 오랫동안 그렇게 혼자였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왔다. 제자들도 왔다. 그 수가 너무 많아 그들이 자기 주장을 왜곡하도록 방치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는 세미나 때마다 그들에게 칠판에다 끝없는 도식들과 간결한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넘쳐흘렀던 것 중 그 무엇도 좋은 것은 없었다. 단 한순간도 말이다. 좋은 것, 그는 자신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을 위해 간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인가 결코 결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모든 질문은 하나의 묶음으로 모아졌고, 단 하나의 질문이 되었다. 그 질문을 제기한 장본인은 유순했던 반란자, 그를 죽이지 않고도- 그를 죽이는 일이 실제 일어나곤 했다- 그에게서 떠날 능력이 있던 유일한 사람인 퐁탈리스였다.(1) 여러 해 전에 퐁탈리스는 그에게 '실재'에 대해 물었다. 그는 그것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퐁탈리스에게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실재,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연 모습을 드러내는 모든 새로운 피분석자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 '타자'의 얼굴, 그의 말은 절대적 시작이다. 이 시작에서는 가장 잘 다듬어진 이론, 가장 정교한 도식들도 산산조각 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이 첫 순간, 이 이름 지을 수 없는 순간이 제대로 기술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실제 항상 잊히는 꿈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자유연상법- 프로이트의 혁신적인 착상이다- 을 통해서만 종종 다시 찾아낼 수 있는 덧없는 이미지다.
그는 피곤했지만, 기이하게도 이미지들, 단어들은 평소처럼 이어져나갔다.
실재는 결코 실재가 무엇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실재가 아닌 것을 끊임없이 말해준다. 실재가 출현하는 순간, 무의식 속 기억이 흘러나온다. 과격한 속성을 가진 실재는 지치지 않고 그 기억을 쫓아내버린다. 실재는 이렇게 항변한다.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니다.'
계속 도망가고, 불안케 하는 이 새로운 실재 앞에서 자아를 재구축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특한 굴곡, 즉 그 자신의 굴곡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가 절망적으로 우리 말 속에 더 많은 연상을 끼어넣으려 한들 무엇이 놀랄 일이겠는가? 상상계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타자에게 개개인은 위험 속에서 고통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도시와도 같은 존재다. 여러 차례의 전진과 후퇴- 예상할 수 없는 기대와 절망의 연속- 가 있은 뒤, 다소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는 미로와도 같은 것이다.
타자- 가장 가까운 타자라 해도 그렇다- 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은 우리에 맞서 자아를 재구축하도록 타자를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사람들이 타자의 말에서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타자가 '우리에게서 스스로 벗어나기' 위해, 즉 역사로 가득 찬 이 도시에서, 타자에게 우리가 보여주는 이 미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용해야 하는 길인 것이다. 타자가 만일 우리에게서 차용한 특징- 타자가 서툴게 모방하는 양식, 수법, 리듬- 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재구축하지 못할 경우, 그가 우리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우리의 것이고 때론 우리를 짓누르는 특이성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여파로 무게를 덜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또 그것을 떠맡도록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타자를 원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 나타난 타자의 얼굴 앞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화랑의 가장 오래된 초상화들까지 일깨우는 격랑으로 인해, 기억은 완전히 흔들리게 된다. 이후 조금씩 타자의 새로운 얼굴은 우리의 연상을 따돌리고 먼 바다로 떠나버린다. 마치 예인선이 필요 없는 배처럼 말이다. 그때 그 얼굴은 환원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우리의 기억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타자는 하나의 기억이 될 것이다.
프로이트. 그는 타자에 맞서며 자신을 재구축하는 데 일생을 보냈다.(2)
스타니슬라스 중학교를 졸업한 자크 마리 라캉에게는 비엔나의 '문객'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 상상할 수 없는 색조를 가진 만남은 절대적 시작이었다. 이 두려운 낯섦 앞에서 그는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게, 또한 필사적으로 수학에서 언어학에 이르는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을 연결했다. 거기에는 그를 열광시켰고 또 그가 새로운 모델들을 보았던 광학 역시 포함된다. 그가 만들어낸 도식 안에서 자아는 합쳐지고 재결합됐다. 그는 자신에게 도약하고 예지력을 갖출 수 있게 해준 종합을 실천하며 아주 기쁘게 살아가면서 일종의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다. 물론 이 종합은 임시적이었지만, 끝없는 분석 과정에서 불안정하면서 필수불가결한 단계였다. 그 삶의 방식은 그의 투쟁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당시 그의 동맹자가 누구였는지도 이야기해준다. 프로이트는 과연 자신이 그의 동맹자, 즉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해 말한 내용- "그들은 완전히 미치광이들이다(도수 95도의 술처럼)" -을 라캉에 대해서도 말했을까?
그는 프로이트와의 이 만남에 대해 강렬한 기억을 간직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불꽃 형상에 자화상을 그려넣었다. 살바도르 달리는 재구축돼가는 '자아'가 무엇인지 자화상에서 보여주었다. 멍에로 빠듯하게 붙잡아 매둔 볼, 턱, 귀를 통해서 말이다.
달리가 물체들을 다뤘듯이, 그는 자신의 연상과 모델들에 대해 작업했다. 그것들을 잡아당기고 장식하면서, 또는 벌거벗기고 가능한 모든 수법으로 서로 접근시키면서 말이다.
살아 있는 프로이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말하자면 프로이트의 맥박이 다시 뛰게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멈춰 서 있던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하는 마술사처럼, 라캉은 이론을 기형화하고, 얌전해지고 진정되었던 몇 가지 측면을 과대하게 확대시키고, 그것들의 괴물성과 광기를 돌려주어야 했다. '나의 파우스트, 나의 프로이트' 혹은 어떻게 라캉 자신의 특이성과 괴물성을 그 이론에 투사하면서 새로운 지각을 되찾느냐의 문제였다.
그는 이 작업을 했다.
그에게 프로이트가 가슴 뛰게 하는 상징적 이식이었다. 프로이트에 '맞서', 그리고 프로이트와 '함께' 자신을 재구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식 이후의 유일한 출구였던 것이다. 타자를 거부하는 것은 재구축 실패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실패 때문에 1963년 그의 새로운 이론을 이해할 능력이 없던 국제정신분석협회는 라캉을 파문했다.
이런 반항은 매일 밤 꾸는 꿈은 '다른 몽타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와 제자들이 상투적인 분석을 하고, 한 당파에서나 통하는 암호를 사용하자 자신의 학파를 해체해버렸다. 그는 상투적인 씨앗보다 고유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씨앗, 외쳐댈 수 있는 씨앗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그가 프로이트와 스피노자를, 그리고 또한 이 여자, 이 남자를 완전히 떠나게 될 때, 그는 두 눈을 뜨고 있을 것이다. 그가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들이 자기에게 하나의 시선을 선사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시선을 알아차린다.
도식.
마침내 그는 그 도식을 처음으로 보고 있었다. 그 도식은 거기, 그의 두 눈 앞에 다이아몬드처럼 단순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것을 그들에게 누설할 수 없을 터이다. 그것이 실재의 씨앗이니까. 항구적인 하나의 반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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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막스 도라 Max Dorra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저서로 <한 존재의 마음을 뒤흔드는 짧은 구절은 어떤 것인가? 프루스트, 프로이트, 스피노자>(갈리마르 출판사·파리·2005)가 있다.
번역•변광배
(1) 장베르트랑 퐁탈리스(Jean-Bertrand Pontalis)는 정신분석학자이자 작가다. 장폴 사르트르의 제자였다가 나중에 자크 라캉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1964년 ‘프랑스정신분석학회’의 창설에 참여하기 위해 라캉을 떠나 1967년 <정신분석학 잡지>를 창간했다. 정확히 1955년 5월 12일에 있은 ‘자아’에 대한 세미나에서 퐁탈리스가 이 질문을 했다. 자크 라캉, <세미나, 2권: 프로이트 이론이나 정신분석학 기술에서의 자아>, 쇠유 출판사, 파리, pp.254∼256, 1977 참조.
(2) 여기서는 라캉이 1933년 자신의 박사논문을 프로이트에게 보냈을 때, 그로부터 “박사논문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의 답장만 받았을 때 통감했을 실망감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그치겠다. 라캉은 프로이트가 영국 런던으로 망명을 가기 전 1938년 잠시 파리에 들렀을 때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자크 라캉: 한 삶에 대한 소묘, 한 사유 체계의 역사>, 파야르 출판사, 파리, p.88·106·121·120, 199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