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기억을 포착하라

2012-04-14     마리노엘 리오

소설 <폭력 이야기>(1976)는 '나의 무지하고 온순한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이 편지에서 저자 나니 발르스트리니는 이런 말을 한다. "진실한 작품(책·그림·음악)은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해주려고 여러분에게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게 해주거나 나아가 여러분의 시각, 세계관을 바꿔준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이탈리아의 영화감독·시인·평론가)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 여러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글도 직접 써보고 삶에도 적극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발르스트리니는 파졸리니의 조언을 따랐다. 움베르토 에코와 에두아르도 상기네티와 함께 아방가르드 문학운동 '그루포 63'을 창설해 이끌했고, 토니 네그리와 함께 '노동자의 힘'을 조직했으며, 이탈리아 노동조합 '노동자 자율주의'의 지원을 받아 두 개의 극좌운동에 참여했다. 1979년에는 여러 지배층의 위협을 이기지 못해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에 이어 독일로 가게 되었다.

<폭력 이야기>는 총 10개 장에 걸쳐 전쟁 등 현대사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역사 속의 격렬한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1968년 밀라노에서 부르주아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본사를 상대로 한 격렬한 시위 '비아 솔페리노 투쟁', 1968년 윌리엄 켈리 중위가 베트남의 500곳 마을에서 벌인 송미 학살 사건에 대한 1969년 재판, 1969년 피아트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벌인 격렬한 투쟁, 1975년 프랑스 뇌이에 있는 미국 병원에서 사망한 아리스토트 오나시스…. 여러 사건이 다방면으로 다뤄져 그 실체가 드러난다. 발르스트리니는 신문과 잡지 기사 스크랩, 다양한 증언, 경찰의 조사 자료를 이용해 글을 전개한다.

윌리엄 켈리의 어머니가 1인칭 시점으로 쓴 책 <증언>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발르스트리니의 책은 치밀하다. 사실, 켈리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과 미국의 명성에 자부심을 느끼기만 했지 아들이 벌인 학살 사실은 덮으려 했다.

<폭력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다. 발르스트리니는 마치 조물주처럼 이야기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역사 속에 들어 있는 개인의 역사를 토대로 글을 써나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모든 등장인물, 사건, 장소, 저자가 충돌하듯 만난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갑자기 이탈리아 국민이 권력을 잡는다는 유토피아가 나타난다. 마치 '나는 사랑으로 가득해요'라며 즐거워하는 여자처럼 유토피아가 아름답게 등장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하는 일은 단순히 사건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났는지만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순간에 나타난 찰나의 기억 같은 것을 포착하는 일이 바로 역사가가 하는 일이다." 발터 베냐민이 한 이 말은 발르스트리니의 계획과도 잘 맞아, 발르스트리니는 소설 후기에서 이 말을 맨 앞에 인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발르스트리니의 한계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던적 거창함을 포기하고 역사를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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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리노엘 리오 Marie-Noël Rio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