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오를랑, “사회의 환상을 노래하라”

2023-08-31     질 코스타즈 l 기자, 피에르 마크 오를랑상 위원회 회장

20세기의 프랑스 작가 피에르 마크 오를랑(1882~1970)은 북쪽 지역들, 거친 바다와 맞닿은 땅, 스코틀랜드 등에 대한 애정을 담아 피에르 뒤마르셰라는 본명 대신 마크 오를랑이라는 필명을 선택했다. 오늘날에도 그의 소설 작품 중 일부가 문고판으로 계속 출간되고 있긴 하지만, 그의 삶의 여정을 이루는 세계에 대해서나 그의 이야기들을 구성하는 커다란 주제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에는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이어진 전쟁이, 그리고 20세기 초의 몽마르트르 언덕과 방랑가나 군인이나 뱃사람들의 낭만, 하위 계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매춘에 매달려야만 하는 여성들, 해적에 관한 신화, 대도시와 항구도시들이 지닌 매력 등이 담겨 있다. 동류 작가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로부터 독특하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복고적’ 혹은 ‘역행적’인 창작자로 오랜 세월 인정받아온 마크 오를랑의 세계는 바로 이런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모험, 굶주림, 만화 그리고 소설

특히 오늘날 그의 작품이 각광받는 데는 그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수십 년에 걸쳐 존재해왔으며 당대 작가들 다수가 흔히 사용해온 클리셰들과 거리를 뒀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보헤미안 시대의 몽마르트르는 정말 그토록 매혹적인 장소였을까? 마크 오를랑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곳을 불행의 땅으로 봤다. 이국적 모험은 다시 얻을 수 없는 뜨거운 열정을 안겨주는가?

스코틀랜드식 베레모를 쓰고 어깨에 앵무새를 앉힌 마크 오를랑은 이 질문에도 고개를 젓는다. 그는 역동적인 모험에는 불운과 환멸만이 가득할 뿐, 그보다는 ‘부동적인 모험’, 즉 상상을 통한 모험이 더 낫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법과 도덕에 맞서는 반사회자들은 과연 화가나 작가들이 그들에게 선사하는 시(詩)에 걸맞은 인물들일까? 그는 다시 한번 선을 긋는다. 이 사회의 지하운동가들은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이 허름한 술집, 낡은 공동주택이나 모텔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마크 오를랑의 출신은 프롤레타리아 계층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의 아버지는 보병 장교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탓에 어린 마크 오를랑은 후견인에게 맡겨졌다. 장학사였던 후견인은 프랑스 북부의 솜 지역에 살고 있었던 그를 오를레앙시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로 보냈다. 그리고 1899년, 마크 오를랑은 자신을 죄고 있는 밧줄을 끊고 줄곧 열망해왔던 바로 그 모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파리로 향한 그는 그곳에서 극심한 굶주림을 마주해야 했다. 그는 1947년 출간한 『블라맹크』를 통해 그 시절에 대해 “운동화 한 켤레와 저가의 옷가지 몇 개가 든 천가방 하나를 손에 든 것이 전부였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갖가지 일용직을 전전하던 중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 팔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런던, 브뤼헤, 나폴리, 튀니지 등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이후 군복무를 마친 뒤부터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908년부터 알고 지내기 시작한 유명 만화가 귀스 보파는 그의 만화를 보고 작화보다 스토리가 좋으니 글을 써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마크 오를랑은 이후로도 평생 동안 조금씩 그림을 그리긴 했으나 바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짧은 단편소설을, 후에는 해학소설을 주로 썼고 1912년에는 『불쾌한 귀환의 집』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훗날 보리스 비앙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마크 오를랑의 문체는 괴상하면서도 익살스러우며 엉뚱했다. 그런데 그가 약간의 부와 유명세를 막 얻기 시작할 무렵 전쟁이 터졌다. 그는 다시 전장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서민들 간의 유대감과 민중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을 증언한 작가

1914년 8월, 보병대에 배치된 마크 오를랑은 2년간 전쟁에 참여했다. 부상으로 인해 치료를 받고, 휴전협정이 체결되자 제대했다. 마크 오를랑 역시 전쟁을 증언한 작가들 중 한 명이다. 모리스 주느부아, 롤랑 도르줄레스, 앙리 바르뷔스와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1917년 발표한 『죽은 물고기들』에서는 로렌에서 출발해 아르투아, 베르됭을 거쳐 솜에 이르기까지 소모적이고 불합리하며 괴롭고 무기력한 행군을 이어가는 한 부대의 이야기가 건조하면서도 온화한 문체로 그려진다. 그는 이 책을 “전선에서 목숨을 잃은 제269연대의 동료들”에게 바친다고 적기도 했다.(1)

전쟁이 끝난 뒤, 마크 오를랑은 넘치는 재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학적 요소들을 폭발시키는 한편, 전쟁의 시대를 돌아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론화했다(『완벽한 모험가를 위한 안내서』(1920). 또한 산문시들을 창작하고, 자신이 머물고 싶었던 도시들을 묘사했으며(『브레스트』,1926), 친애하는 화가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등(수필집 『맞춤 가면I, II』,1937, 1965) 긴 세월에 걸쳐 문학적 영감을 아낌없이 펼쳤다. 그의 소설은 이중적이다. 눈앞에서 변모해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파고들기도 하고(『안개 낀 부두』,1927), 거친 바다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모험가들의 옛 세계를 다시 빚어내기도 한다(『자비의 닻』,1941). 

한편 특파원으로서 베니토 무솔리니를 비롯해 전 세계 인물들을 인터뷰했던 마크 오를랑은, 어느 날 활동을 멈추고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생 시르 쉬르 모랭(오늘날의 센 에 마른)에 정착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피흘림의 광기”에 사로잡힌 이 세상 속에서 방황하며 그곳에서 직접 겪거나 느꼈던 불행을 더 이상 보지 않기라도 하는 듯한 결정이었다. 그가 말년을 보낸 덕분에 많은 파리의 명사들이 이 먼 시골을 찾곤 했는데, 그중 한 명이었던 레몽 크노는 이후 출간된 『마크 오를랑 전집』의 서문에서 마크 오를랑을 제라르 드 네르발과 연관지으며 “불량소년들과 불안한 인물들이 사라진 그의 세계는 페트로니우스의 해방노예와 천민들의 세계와 나란히 위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2)

 

차가운 불빛, 따뜻한 눈빛

실상 마크 오를랑은 1945년부터 파리를 등지고 스스로를 점차 고립시켰다. 1950년에는 아카데미 공쿠르의 위원으로 선정되면서 파리로 돌아와 어쩔 수 없이 여러 모임에 참석하곤 했으나 결국은 다시 틀어박히고 말았다. 마치 굶주림과 폭력에 대한 공포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듯한,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관계들이 종국에는 단절되고 말 것이라고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개인의 삶에서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겼던 걸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마크 오를랑에 대한 전기 작품을 쓴 장 클로드 라미(『마크 오를랑, 불변의 모험가』, 2002)나 베르나르 바리토(『마크 오를랑의 삶과 시대』, 1992)의 글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마크 오를랑 스스로도 『아코디언을 위한 노래』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그다지 고무적이지 못한 지난날의 경험이 낳은 결과가 나에게만 국한되도록 애를 쓰게 된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가명으로 외설적인 소설을 썼던 것을 제외한다면 과거 경찰과 휘말린 일 자체도 딱히 없었다. 물론 이 외설 소설 문제 때문에 그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1966년 앙드레 말로 당시 문화부 장관의 주도로 그에게도 수훈의 영광이 돌아갈 수 있었다.

마크 오를랑은 자신의 단편 소설집에 『차가운 불빛 아래』라는 제목을 붙인 바 있다. 또한 특정 장소들에 관한 글들을 묶어 『어두운 등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자신이 쓴 시들을 ‘기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추억담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한편, 직접 작사한 노랫말들을 모아 『노래에 담은 기억들』로 출간해 몇 가지 내면적인 풍경을 통해 삶이 간결하게 응축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그 불빛은 그토록 차가운가? 차가움 역시 하나의 기교일 뿐, 그 안에는 여전히 인간적인 감정들이 담겨 있다. 고통 가운데 단결하는 병사들을, 아직도 꿈을 믿는 아이들을, 내일을 알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많은 부분 그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가엾은 인간상들은 부르주아들에게 내놓을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려고 애를 쓴다. 얼어붙을 듯한 차가움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기이성’이라는 표현의 아래에 깔린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마크 오를랑이 직접 만들어 여러 차례 사용한 이 ‘사회적 기이성’이란 말은 새로운 위협요소들을 만난 새 세계, 그리고 중력파나 눈 먼 전쟁이나 분노의 이념들이 미지의 비극을 알리는 새 시대가 부딪히게 되는 기술적·사회적 혼란을 통찰력 있게 담아냈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 오를랑은 산업적 격변을 좌시하지 않은 작가로, 특히 그의 시 작품들에서 이런 특징을 더욱 잘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줄스 파스킨, 모리스 블라맹크, 파블로 피카소와는 달리 동류 화가들과는 동떨어진 채 활동을 이어갔던 페르낭 레제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실제로 마크 오를랑은 페르낭 레제가 세트 디자인을 맡았던 마르셀 레르비에가 감독의 영화 <비인간>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키 작은 보병의 시선

사실 마크 오를랑의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데는 영화의 역할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오해도 존재한다. 마크 오를랑의 소설 『안개 낀 부두』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근근이 살아가다가 동부 전선의 한 부대에 소속돼 죽음을 맞게 되는 반사회적 인물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바탕을 둔 마르셀 카르네 감독, 자크 프레베 각본의 영화 <안개 낀 부두>(장 가뱅, 미셸 모르강, 미셸 시몽 등 출연)는 르 아브르에서 바다를 건너 프랑스를 떠나려 하는 한 탈영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사회적 기이성’이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으로 바뀌면서 작품이 그리는 대상은 전혀 다른 것이 됐다. 영화에서는 보다 뜨겁게 불타는 열정이 살아있는 반면, 소설에서는 막연하고 혼란하며 옥죄는 듯한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 또한 쥘리앙 뒤비비에가 영화화한 <최후의 망루>에서 나타나는 모험의 낭만도 마크 오를랑이 쓴 원작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한편 마크 오를랑의 작품 세계는 그가 작사한 샹송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낯선 떨림을 더욱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바로 이런 샹송을 통해서다. 실제로 제르멘 몽테로, 카트린 소바주, 쥘리에트 그레코 등 1950~60년대의 유명 가수들과 리노 레오나르디나 레오 페레와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은 마크 오를랑의 샹송을 차용해 리얼리즘 장르를 한층 더 발전시켰으며, 여러 젊은 가수들도 이 노래들을 계속 리메이크했다. 특히 ‘마르가렛의 노래’, ‘북쪽 다리’, ‘런던의 여자’와 같은 곡들은 듣는 그 순간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가 쓴 곡은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환상이 깨져버린 군인들의 세계지만 동시에 불행한 이들을 위한 그 어떤 피난처보다도 더욱 따뜻한 안식처로 추앙받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들의 후회는 춤이나 노래가 되고, 내면의 은밀한 생각은 노랫말 속에 감춰져 때로는 은어나 고어와 같은 말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내게 남겨진 것은 없어 / 너무 많이 마신다면 / 나의 마지막 기회는 / 물에 구멍을 내는 것이 되리라.” 그의 노래 속에서 모든 부끄러움은 의지와 상관없이 표출되는 감정의 동요에 압도되고 만다.

마크 오를랑은 자신의 샹송집 『아코디언을 위한 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곡들은 사라진 기록이나 잊힌 작품들에서 기인한 막연한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쓴 것들이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낳은 결과이며, 여기에는 두 발로 걸었던 주둔지와 행군로에서 배운 지혜가 담겨 있다.” ‘두 발로 걸었던’, 마크 오를랑의 작품들은 곧 키 작은 보병의 시선으로 바라본 비극과 고통의 세계인 것이다.

레몽 크노가 적었듯 “문학적 풍조를 무시”하고 “상상의 삶이 주는 힘과 회고가 주는 미덕”에 대해 강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누구든 피에르 마크 오를랑을, 그리고 그가 그려낸 해적과 밤의 신사를, 고독한 이들의 머리 위로 내리는 빗방울을 반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글·질 코스타즈 Gilles Costaz
기자, 피에르 마크 오를랑상 위원회 회장

번역·김보희
번역위원


(1) 『Les Poissons morts 죽은 물고기들』, David B., Linéart, Paris, 2018.
(2) Raymond Queneau, ‘Préface à Pierre Mac Orlan 피에르 마크 오를랑에 바치는 서문’, 『Œuvres complètes 마크 오를랑 전집』, ed. Gilbert Sigaux, Edito Service/Le Cercle du Bibliophile, Geneva, 1969. 이 전집은 총 25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마크 오를랑의 저서 대부분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총서에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