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린당하는 땅, 팔레스타인

2009-02-01     아크람 벨카이드 | 언론인

특집 - 시오니즘의 폭력Ⅴ

1947년 11월 29일 뉴욕. 국제연합 총회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국가(영토의 56%)와 아랍국가(44%)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관리 체제 하에 두기로 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전쟁은 운명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이스라엘은 사생아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집트(가자), 요르단(웨스트뱅크)과 함께 나눠먹고 국토면적을 3분의 1가량 늘렸다. 그리고 8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무력에 의해 집과 땅을 등져야 했다.
 20년(그리고 두 번의 전쟁)이 흐른 뒤인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동예루살렘·가자 지구를 차지했다. 점령은 곧 식민지화로 이어졌고, 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1977년에 5천명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 수는 이츠하크 라빈 노동당 당수가 선거에서 승리한 1992년에 12만 명(동예루살렘 제외)에 이르렀고, 그후 10년 동안 다시 2배나 증가하여 25만 명을 넘어섰다.
 
 라빈 총리 암살, 사태 원점으로
 1987년 말 시작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 인티파다는 현상 유지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었다. 요르단이 웨스트뱅크의 소유권 주장을 거둬들이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1988년 말 건국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의 평화협상은 오슬로조약(1993년)으로 결실을 보았다.
 사상 최초로 해결책이 가시화되는 듯 보였다.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야세르 아라파트는 자치정부의 수반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라빈 총리가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후임 총리인 벤야민 네탄야후(1996 ~1999년 재임)와 에후드 바라크(1999~2000년 재임)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한 것이다.
 2000년 7월에 열린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자 상황은 악화되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수용안인 팔레스타인 영토의 22%에 관해 협상할 것을 주장하면서, 웨스트뱅크의 90%만 반환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공동주권과 난민들의 귀향권 인정을 거부했다. 그해 9월 말 샤론이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사건은 화약고에 불을 당긴 격이었다.
 2001년 초에 총리로 선출된 아리엘 샤론은 1948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천명했다. 이듬해 봄에는 자살 테러가 증가한다는 핑계로 웨스트뱅크를 재점령했다. 그러나 아라파트 대통령 포위, 자치정부의 기반시설 파괴, 웨스트뱅크의 장벽 건설은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을 불법시설로 간주하고 철거를 명령했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국제연합 총회가 찬성 150표, 반대 6표, 기권 10표로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또 4자회담(국제연합·미국·유럽연합·러시아)도 이스라엘 정부에 '로드맵'을 제시하고 요구 조건을 따르도록 촉구했다.


 
 지탄 받을 만한 이스라엘 정책
 이 시기에 샤론은 자신만의 '평화 제스처'를 취했다. 언질을 준 것은 도브 와이스글라스 보좌관이었다. (가자지구) 철수계획은 평화협상의 중단을 의미한다. 이 평화협상을 중단하면 팔레스타인 건국이 불가능해지고, 난민·국경·예루살렘에 대한 논의도 불가능해진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위해 가자지구에서 철수했을 뿐이다. 결국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정착촌 4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이스라엘이 합병했다.
 '국제사회'는 기막히게 연출된 유대인 정착민들의 가자 지구 철수 장면에 취했는지 법의 원칙을 모조리 망각한 듯 하다. 2005년 4월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올메르트는 국제사회의 호의적인 분위기를 이용했다. 웨스트뱅크의 절반을 합병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국경을 정한 쪽은 올메르트 총리인데도 서구 사회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처벌했다. 하마스에게 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식량 배급을 끊은 것이다.
 올메르트 총리의 방식은 그의 목표만큼이나 비난받아 마땅하다. 분쟁 당사국은 상대국에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 특히 진정한 팔레스타인 건국을 막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1947년 아랍 민족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44%를 약속 받았건만, 어떻게 2007년에는 동예루살렘에 수도도 없이, 난민 문제의 해결책도 없이 영국령 영토였던 시절의 10%에도 못 미치는 땅에 4개의 자치구밖에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출처: <르몽드 세계사>

번역 | 권지현 yein20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