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로부터 배우자

세계의 창(窓)

2012-05-14     세르주 알리미

'변화의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선거 승리에 고무된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에게 정부의 의지를 천명하고 환율 통제를 지시하는 한편, 13년 전 민간에 헐값으로 넘겼던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한다. 행정명령에 따라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기존 사장을 해임하고 다시 공공 소유가 된 대기업을 관리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유치한 경제적 절도 행각')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는 심지어 이 '해적' 국가를 주요 20개국(G20) 명단에서 제명하고 그 국민은 비자 없이 외국을 여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분개했다.

구대륙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지난 4월 16일 스페인의 다국적기업 렙솔이 최대주주로 있는 아르헨티나 석유회사 YPF를 국유화한다고 발표하면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아니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의 천연자원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물론 토탈, BP, 엑손 등의 기업이 공기업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원을 공공 재산으로 삼기 위해 벌인 투쟁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1951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 소유의 석유회사를 국유화했다. 1956년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를, 1971년 우아리 부메디엔 알제리 대통령은 엘프와 토탈의 소유지분을 국유화했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2003년부터 정유회사 유코스를 사실상 기탁 관리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PDVSA를 접수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YPF의 이전 소유주들이 회사 수익의 90%를 주주들에게 나눠줬다며 비난했다. 투자 부족으로 아르헨티나의 석유 생산은 2004년 이후 20% 감소했고, 에너지 수입은 20배 증가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은 뒤 국가재정 균형을 위해 외국,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나라로서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배짱 있는 정책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불매 협박, 부정적 경제 예측 등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위협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2001년 정부가 부채 상환을 거부하고 통화가치를 절하했을 때, 국제수지 위기가 오고 경제적으로 파산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난무했다.(1) 그 뒤 아르헨티나의 국제수지는 흑자로 돌아섰고, 생산은 90% 증가했으며, 실업과 빈곤은 감소했다.(2) 유럽은 스페인의 다국적기업 주주들을 편들기보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의지를 본받는 편이 낫지 않을까?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