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은 학교를 구할 수 있을까?

2023-09-26     로랑스 드 콕 l 역사가, 교사

프랑스에서 대안교육을 내세운 사립학교들이 인기다. 하지만 ‘대안교육’이라는 하나의 이름 뒤에는 다양한 지적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 교육을 정치와 무관하게 오직 아동의 학습과 자아실현을 위한 기술로 보는 경우도 있는 반면, 공교육과 대중교육을 통한 저소득층의 계층 이동을 목표로 삼는 교육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계속 성장하며, 꽤 돈이 되는 분야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안교육’이 그것이다. 이 현상은 출판계에서도 두드러진다. 2012년 출간된 『우리 아동을 행복하게 하는 학교들(Ces écoles qui rendent nos enfants heureux)』(Actes Sud, Arles)도 그중 하나다. 저자 앙토넬라 베르디아니는 이 책에서 “교육이란 인간의 영혼으로 행하는 신성한 일”이라고 적고 있다. 국제연합 산하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UNESCO)에서 고위직을 지낸 그녀는 열정적인 어조로 ‘아동의 정신을 양육하는 교육’이라는 이상을 부르짖으며 다양한 교육법과 실험 사례들을 제시한다. 

 

폭발적 성장 중인 대안교육, 그 기원은?

언론인 카트린 피로 루에의 감수로 2017년 출간된 『초심자를 위한 대안교육(Les Pédagogies alternatives pour les nuls)』(First, Paris)은 대안교육을 쉽게 소개하는 책이다. 특히 자녀에게 최상의 것을 주고 싶은 부모들에게는 보물단지와도 같다. 책 속에는 행복과 기쁨의 교육, 박애주의적 교육의 대명사와도 같은 몬테소리, 프레네, 슈타이너, 드크롤리 등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프랑스의 대안교육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2년 신학기 기준으로 비종교계 사립학교 1,449개 중 신설학교의 수가 120개에 달한다. 그중 오드주 아르장 지역의 ‘레 클레 드 렁볼(Les Clés de l’en- vol, 날아오름의 열쇠)’, 일에빌렌주 샤토지롱 지역의 ‘그렌 드 주아(Graines de joie, 기쁨의 씨앗)’. 모젤주 무아예브르 그랑드 지역의 ‘레 프티트 브랭디유(Les Petites Brindilles à Moyeuvre-Grande, 작은 나뭇가지들)’, 리옹 지역의 ‘레 프티 플뤼스(Les Petits Plus, 가장 작음)’ 등도 있다. 신설학교 중 2/3는 대안교육의 또 다른 이름인 ‘능동교육’을 표방하고 있으며 2.8%는 ‘민주주의학교’, 8.3%는 ‘생태시민학교’에 해당한다. 

대안교육기관의 증가 현상은 대도시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신설학교 3개 중 1개는 인구수 2,000명 미만의 소규모 행정구역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1) 최근 몇 년 동안 봉쇄조치가 거듭되면서 개인별 학습 지원이 용이하고 새로운 환경에 알맞은 교육 방식이 각광받은 것 역시 대안교육의 인기에 일조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교육의 위기는 물론 많은 학부모들이 교육법의 현실에 대한 혼란을 느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안교육을 정답이나 마법처럼 여기는 이들은 수치화되는 현실, 즉 비용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부양가족 수에 따라 학비를 차등화하는 등 사회적 정책을 내세우는 학교들이 늘고 있지만, 프랑스 내 비인가 사립학교의 학비는 매월 300유로(한화 약42만원) 이상으로 경제적 장벽이 없지는 않다. 때문에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사립학교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례로 파리 외곽의 19구 지역에는 팡탱 시 중학교와 연계된 몬테소리학교 1개와 민주주의학교 1개가 있는데, 이 두 학교에는 좌파 부르주아 학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미래 세대의 모든 아동이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대안교육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을 늘어놓곤 한다.

오늘날의 다양한 대안교육 모델은 ‘신(新)교육 운동’에서 출발했다. 19세기 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던 교육 개혁 운동은 1921년 프랑스 칼레에서 열린 회의를 통해 ‘신교육을 위한 국제연맹(이하 ‘신교육연맹’)’을 출범시켰다. 신교육연맹의 핵심 세력은 대부분 ‘신지학’과 연관된 인물들이었다. 신지학이란 1875년 시작된 일종의 철학 운동으로, 이성과 종교의 조화를 강조한다. 신교육연맹은 이내 세계 각국의 교육학자들을 공통의 신념으로 결집시켰다.

교육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동의 주춧돌이 돼야 하며, 이를 통해 평화와 박애를 실현하고, 아동에게 관심을 가지되 그들을 채워야 할 빈 그릇이 아닌 학습 능력을 갖춘 개인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동을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존재로 치부하고 그들의 고충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기존의 학교들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적 가치관으로, 심리학의 부흥에 힘입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여전히 신지학의 색깔이 짙은 용어들을 사용하던 신교육연맹은 정기간행물 <새로운 시대를 위해(Pour l’ère nouvell)>를 통해 “아동의 영적 역량을 해방”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

 

몬테소리 vs. 프레네

다양한 교육학자들이 신교육 운동에 가담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마리아 몬테소리와 알렉산더 니일이 있다.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의학박사로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유아들을 위해 교구 조작에 기반을 둔 교육법을 개발했으며, 정신분석학에 조예가 깊었던 니일은 자유지상주의적인 교육 방식을 강조하며 영국 서머힐 학교를 세웠다. 또한 『능동적 학교(L’École active)』(1922)를 쓴 스위스의 교육학자 아돌프 페리에르, 이 책을 자신의 애독서로 손꼽았던 프랑스 남부 시골 지역에서 활동하던 교육학자 셀레스탱 프레네, 읽기 학습의 ‘포괄적 교육법’을 주창한 벨기에의 오비드 드크롤리, 소집단 학습의 선구자 로제 쿠지네, 1929년 설립된 신교육연맹의 프랑스 지부 GFEN(le Groupe Français pour une Éducation Nouvelle, ‘프랑스신교육협회)의 대표 폴 랑주뱅 등이 있다. 

한편 191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자유로운 발도르프 학교를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는 생전에 직접 신교육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0년에 발도르프 학교 전체가 신교육연맹에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신지학을 반대하고 그보다 총체적인 차원의 ‘인지학’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이란 “우주의 공감과 반감”이라는 정반대의 두 힘이 빚어내는 결과물이며, 이 때문에 인간이 “보편적 정신”에 이르는 일련의 육신화의 과정을 겪는다고 봤다.(3) 오늘날에도 발도르프 학교는 우주론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종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4)

하지만 이 각각의 교육 세계는 조화롭게 공존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여러 교육이론 사이의 분열은 신교육 운동 초기부터 드러났다. 특히 정치적인 대립이 두드러졌다. 새로운 교육이 사회 정의 실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냐는 질문이 대두된 것이다. 이탈리아를 휩쓸던 파시즘의 바람이 독일에 상륙한 1930년대 초, 프레네와 몬테소리는 바로 이 질문을 둘러싸고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프레네는 공산주의자이자 빈민가 아동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교육운동’을 지지하던 인물이었다.(5) 때문에 그는 몬테소리의 교육법이 흥미롭긴 하지만, 아동의 사회적·집단적 배경은 배제한 채 아동 개인의 발달을 돕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봤다. 실제로 자본주의 폐지를 주장한 프레네와 달리, 몬테소리의 교육법은 사회적·정치적 방향성이 없었던 덕분에 1936년까지 파시즘 정권 하에서도 공존할 수 있었다. 

한편 니일의 경우 인지심리학과의 연관성은 부정한 채 아동을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며 학습할 권리와 학습하지 않을 권리 모두를 존중해야 한다는 자유지상주의적인 접근법을 주장했다. 지금도 니일의 서머힐 학교에는 부유층 출신의 아동이 다수 입학하고 있다. 이는 19세기 설립된 이후 고위 상류층 아동 유치에 주력하는 프랑스의 ‘에콜 데 로슈’ 등과 별로 다르지 않다. 

반면 프레네는 권위에 대한 고민을 억누르고, 놀이나 프로젝트만을 중요시하며, 학교에서의 학습은 경시하는 능동적 교육법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지막으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법의 경우 그 이론과 실천이 다소 난해해 단순히 대안교육의 한 갈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대안교육의 사례들이 혼돈 속에서 유지되면서 아동의 행복에 대해서는 얕은 논의만이 지속되고 교육학적 이슈들은 정치와 무관한 것이 돼갔다.

파리 민주주의 학교 홈페이지에는 자립심, 나눔, 결속력, 협동심, 자신감, 자아실현 등의 가치관을 중시하고 있으며 아돌프 페리에르, 셀레스탱 프레네, 그리고 서드베리 학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학교 소개가 적혀 있다. 하지만 이는 무의미한 융합에 지나지 않는다. 서드베리 학교는 1968년 컬럼비아 대학의 교육자들이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서드베리 지역에 세운 새로운 형태의 대안학교다. 

본래 서드베리 학교에서 중시하는 요소들은 서머힐 학교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학생 총회, 성인과 아동 간의 위계질서 폐지, 수업 자율 선택제, 프로그램·커리큘럼 철폐 등이 그것이다. 서드베리 학교의 설립자들은 이내 모든 활동을 자율화했고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더욱 강조했다. 파리 민주주의 학교에서는 “이제 학교는 변화를 통해 아동이 리더십, 자립심, 비판적 정신, 창의성, 적응성, 협동 정신, 자주성 등 21세기가 요구하는 역량을 갖추고 각자가 가진 미래의 꿈을 이루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6) 공산주의를 내세우던 프레네의 프롤레타리아 교육으로 이런 목표를 이루겠다는 것은 꽤 모순적이다.

프랑스의 교육운동가 라민 파르한기는 저서 『아동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Pourquoi j’ai créé une école où les enfants font ce qu’ils veulent)』(Actes Sud, 2018)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건 순종적인 노동자가 아닌, 자율적이고 진취적인 인격체”라고 적었다. 비록 그가 파리에 세웠던 에콜 디나미크(l’École dynamique, 역동적 학교)는 지난해 문을 닫았으나, 파르한기 본인은 웰빙, 요가, 마음챙김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가 아리에주 지역에 만든 푸르그 생태마을은 파르한기에게 유명세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1970년 출간된 니일의 베스트셀러 『서머힐의 자유로운 아동(Libres Enfants de Summerhill)』의 제목을 따 푸르그 생태마을의 아동을 ‘푸르그의 자유로운 아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022년 6월, 프랑스 언론매체 브뤼트는 이 마을에 대한 특집 방송 <아동이 학교에 가지 않는 마을 이야기>를 제작했다. 이 방송에 등장하는 마을의 아동과 어른들은 학교 출석의 의무에서 벗어난 삶이 주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협동 실험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생태마을에는 파르한기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민주주의 학교가 세워져 있으며, 스스로 삶을 경영하는 법, 긴장에서 벗어나는 삶 등 다양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5일짜리 강의 수강료가 1인당 약 1,000유로 선(한화 약142만원)이다. 천국이 아닐 수 없다.

 

더 적은 투자로 더 나은 결과를 얻다

푸르그 생태마을은 프랑스의 환경운동가 피에르 라비가 2007년 시작한 ‘콜리브리(Colibri, 벌새) 운동’과 연관된 협회에 속해 있다.(7) 콜리브리 운동은 밀림에 큰 불이 나자 ‘자신의 몫’을 하기로 결심하고 온 힘을 다해 불을 끄려던 벌새를 그린 아메리카 원주민의 설화(벌새는 결국 죽고 만다)에서 시작됐다. 벌새처럼 우리도 성장주의와 과소비에 맞서 ‘양심의 저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아마냉 학교 역시 콜리브리 정신을 따르는 대표적인 학교다. 2006년 프랑스 드롬주의 한 생태농장 인근에 설립된 이 학교는 협동 정신, ‘진실된 삶’, 평화·철학 교육을 지향한다. 아마냉 학교의 설립자 이자벨 펠루는 2014년 악트 쉬드(Actes Sud) 출판사를 통해 저서 콜리브리 학교 : 협동의 교육(L’École du colibri. La pédagogie de la coopération)』을 펴내기도 했다. 대안교육 분야는 실제로 20여년 전부터 ‘악트 쉬드’나 ‘레자렌(Les Arènes)’과 같은 대형 출판사들을 통해 다수의 책을 출간하며 자기계발이나 반(反)모더니즘(특히 디지털의 습격 등 기술 분야의 모더니즘) 등의 분야와의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례들이 행복과 재충전의 현장과 대안적인 삶의 ‘실험실’을 오가는 동안 모든 아동을 위한 학교라는 대안교육의 핵심 가치는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다. 특히나 교육 불평등이나 사회적 불공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일부 신교육 운동에 어울릴만한 부르주아적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공교육 역시 대안교육 운동에 한 몫을 해왔다. 1970년대 이후로 대안교육은 학교 체제 개혁의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계층의 아동을 수용하기 위해 교육 대중화의 차원에서 조직부터 실무까지 교육 체제 전반을 변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교육개혁가들은 68혁명 세대의 반권위주의적 요구에 응답하고자 신교육 운동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켰고, 이에 정부는 ‘교육법 혁신’과 ‘프로젝트 중심 교육법’을 장려하고 자율운영고교(생나제르·올레롱·파리), 그르노블 빌뇌브 학교 등의 혁신적인 교육 실험을 실시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신자유주의가 부상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예산 감축의 맥락에서 볼 때 더 적은 투자로 더 나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기대가 생겨난 것이다. 덕분에 신교육 원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교육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구조적 개혁(교사채용, 학교 건물 개보수, 학급당 인원수 하향조정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육 혁신’은 위기에 처한 공교육을 구원할 일종의 주문이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교육학자 셀린 알바레즈가 몽테뉴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실시한 ‘학교를 위한 행동’ 프로젝트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알바레즈의 프로젝트는 몬테소리의 신경과학적 교육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2010년 당시 장 미셸 블랑케 교육부 장관은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며 알바레즈에게 전권을 위임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후 3년 동안 젠빌리에 지역의 한 유치원에서 1만 유로(한화 약1416만원) 상당의 교구를 갖추고 읽기와 산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법을 실시했다. 하지만 2012년 정권이 바뀌면서 이 실험도 끝이 나고 말았다. 알바레즈는 이후 저서 『아동의 자연스러운 방법들(Les Lois naturelles de l’enfant)』(Les Arènes, 2016)을 통해 자신은 ‘혁신을 수용하지 못하는 제도가 낳은 비정치적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제 일을 하지 않는 학교’들에 대해 비판적인 기자들에게 자신의 교육법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출범으로 ‘혁신’이라는 마법에 대한 믿음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올해 마르세유에서 처음 시행되는 학교 혁신 사업 ‘미래학교’ 역시 참여 학교에 지원금 지급을 약속하며 대안교육을 실용화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교육 혁신에 5억 유로(한화 약7077억원)를 투자하기로 발표하면서 “자율좌석제를 도입해 수학을 가르치고, 실험 수업으로 언어를 가르치려는 모든 시도들”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8)

 

교육 불평등을 감추는 왜곡

그런데 같은 지역 안에도 고성능 컴퓨터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최신형 책걸상, 협동학습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쾌적한 교실 등을 갖춘 학교들이 있는 반면, 낡은 건물 속 허름한 교실 창문에 몇 년 동안 두꺼운 커튼을 드리우고 있는 학교들도 있다. 결국 대안교육이 학교 간 경쟁과 성과주의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는 꼴이다. 또한 공교육의 압박에서 벗어난 사교육이 ‘혁신’을 내세우는 일을 정당화하며 전통적 교육방식과 시스템을 구식화하는 결과가 빚어지기도 한다. 교육 대중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대안교육 도입에만 급급할 경우 공교육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경제인연합(MEDEF)이 2017년 하계학술대회에서 장 미셸 블랑케 교육부 장관을 초청해 ‘프레네, 몬테소리, 드크롤리, 슈타이너… 대안교육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좌담회를 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교육 정책의 효과를 따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의 효율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피에르 부르디외와 장 클로드 파스롱을 중심으로 하는 비판사회학에서는 높은 수준의 문화자본을 갖춘 아동은 학교문화와 멀어지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강조한다. 높은 수준의 문화자본을 갖춘 아동은, 대안교육과 무관하게 저소득층 아동에 비해 문제해결능력을 쉽게 얻는다. 

실제로 부유층 부모들이 대안교육을 선호하는 것 자체가 효율성이라는 경험적인 기준보다는 소규모 학급 편성, 개인별 맞춤형 지원, 다양한 외부 활동 등 학교생활의 안락함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러므로 대안교육이 실질적으로 아동의 학습 능력이나 교육 불평등 완화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려면 저소득층 아동의 사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1979년, 프랑스의 교육사회학자 비비안 이장베르 자마티는 파리 지역의 교사 375명을 상대로 조사연구를 실시했다. 

그로부터 10년 전인 1969년부터 프랑스의 초등학교에는 대안교육운동의 영향을 직접 받은 ‘감각 활동 프로그램’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수학과 언어를 제외한 모든 교과목에 적용된 이 프로그램은 학생 중심의 교육으로 돌아가고 아동이 관찰과 탐구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장베르 자마티는 조사 당시 부유층 학교와 저소득층 학교를 구분해 연구했다. 그 결과, 부유층 학교의 교사들은 학생들 대부분이 이미 가정 내에서 충분한 혜택을 누리고 있기에, 굳이 세상을 접하는 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은 사유, 비판, 학습방법 배우기 등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을 중시했다. 학생들이 장차 고학력자 및 고위직 종사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감각 활동 수업을 통해 새로운 학습 유형을 배울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저소득층 학교에서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교사들 대부분이 감각 활동 수업을 주요 과목의 수업 사이에 시행하는 놀이 및 휴식 정도로 봤다. 또한 아동이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것, 특히 자연 관찰 등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도구를 제공하기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 것이다.(9) 

하지만 교육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동의 지적 욕구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저소득층 아동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수십 년 전의 연구에서 확인된 이런 현상은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GRDS(Groupe de Recherche sur la Démocratisation Scolaire, 교육대중화연구그룹)의 주축이기도 한 장 피에르 테라이유는 1970년대 교육 대중화 당시의 현상이 ‘결핍의 패러다임’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저소득층 아동이 지식 부족 상태에 처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아동을 ‘능동적’으로 만들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기존의 교육법을 저소득층 아동에게 맞추려 했다는 것이다. 

 

교육부 장관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

테라이유는 저소득층 아동의 결핍을 전제로 하는 이런 프로그램은 결국 지적 욕구의 타협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실제로 다른 연구들을 통해서도 교사가 학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이 교육 방식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10) 저소득층 아동이라면 학습에 대한 동기를 다시 부여해야 하고 학교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탓에 학습 성과에 대한 목표보다는 교육학적 장치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대안적 교육 방식들이 기반으로 하는 근거는 학교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보다 명확한 지시를 필요로 하는 아동에게는 지나치게 함축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 결과 교사의 기대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고, 이는 이미 취약한 아동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면 교육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난관에 빠진 블랑케 교육부 장관은 알바레즈의 실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여러 교육법의 효율성을 ‘설득력 있는 데이터’를 통해 입증하고자 했다. 신경교육학적으로 볼 때 좋은 교육법과 그렇지 않은 교육법을 구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알바레즈 역시 저서를 통해 자신의 교육법은 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그녀의 프로젝트를 관찰한 에두아르 장타즈 교수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현재 몬테소리 교육법이 지닌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 결과는 존재하지 않으며, 알바레즈의 실험 역시 그 어떤 결과도 드러내지 못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11)

그렇다고, 전통적인 교육법으로 돌아가자는 결론은 아니다. 저소득층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신교육 방식의 긍정적 결과는 여러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되고 있다. 『대안교육의 사회학(Sociologie des pédagogies alternatives)』(La Découverte, Paris, 2022)을 쓴 프랑스의 교육학자 기슬랭 르루아는 프레네 교육이 빈곤층 아동의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2007년, 여러 교육학자들이 프랑스 북부 지역에 위치한 프레네 학교를 5년에 걸쳐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과 동일하다.(12) 충분한 학습 자산이 없는 학생들도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기억제력을 길러주며 질문과 논쟁과 토론 등의 협동 교육을 시행한다면 중산층 출신 학생의 학습 성과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교육 방식이든 이를 실천하는 교사의 교육수준, 과거·현재의 교육법에 대한 지식, 교육문제에 대한 사회학·심리학적 연구 여부에 따라 그 효율성은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정부 차원에서 교육 혁신을 단행하는 것보다는, 교사들에게 교실에서 직접 교육법을 실천할 자유를 주고 그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의 교육 정책은 정확히 그 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것은 대안교육 그 자체가 아니다. 

다른 교육법을 희생시켜서라도 일부 프로그램에만 혜택을 주고, 교육 불평등을 감추기 위해 대안교육을 왜곡하며, 대안교육을 미끼 삼아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을 제공하려 하는 교육 분야의 선택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때다.

 

 

글·로랑스 드 콕 Laurence De Cock
역사가, 교사. 『파시즘의 하루 : 엘리즈 프레네와 셀레스탱 프레네, 교육가 그리고 운동가』(Agone, 2022)의 저자.

번역·김보희
번역위원


(1) ‘120 nouvelles écoles à la rentrée 2022 : une croissance affirmée! 2022년 신학기, 신설 학교 120개에 달해 : 성장세 확인!’, 보도자료, Fondation pour l’école, 2022년 8월 30일, www.fondationpourlecole.org
(2) ‘Principes de ralliement 참여 원칙’, <Pour l’ère nouvelle>, no. 1, Geneva, 1922년 1월, www.unicaen.fr
(3) R. Steiner, 『La Nature humaine : Fondement de la pédagogie 인간의 천성 : 교육법의 기반』, Triades, Paris, 2002 / Anne-Claire Husser, ‘Des âmes ayant déjà vécu plusieurs vies. Réflexions sur les conséquences pédagogiques d’une conviction métaphysique à partir de la pensée de Rudolph Steiner 영혼은 이미 여러 번의 삶을 살았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철학에서 출발한 형이상학적 신념이 낳은 교육학적 결과에 대한 사유’, <Le Télémaque>, vol.56, no.2, Caen, 2019.
(4) Jean-Baptiste Malet, ‘L’anthroposophie, discrète multinationale de l’ésotérisme 인지학, 난해성에 대한 다국적인 은밀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7월호.
(5) Laurence De Cock, ‘Dans la classe des Freinet 프레네 교실엔 규정이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12월호, 한국어판 2023년 1월호.
(6) https://ecole-democratique-paris.org
(7) Jean-Baptiste Malet, ‘Le système Pierre Rabhi 피에르 라비의 시스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8월호.
(8) 대통령 담화문, 2022년 8월 30일.
(9) Viviane Isambert-Jamati, 『Les Savoirs scolaires. Enjeux sociaux des contenus d’enseignement et de leurs réformes 학교의 지식 : 교육 콘텐츠와 그 개혁에 대한 사회적 이슈』, L’Harmattan, Paris, 1995.
(10) Sébastien Goudeau, 『Comment l’école reproduit-elle les inégalités ? Égalités des chances, réussite, psychologie sociale 학교는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 기회의 평등과 성공과 사회심리학』, Presses universitaires de Grenoble et Université Grenoble Éditions, Grenoble, 2020.
(11) <France culture>, 2022년 11월 14일.
(12) Yves Reuter (dir.), 『Une École Freinet. Fonctionnements et effets d’une pédagogie alternative en milieu populaire 프레네 학교 : 저소득층 대상의 대안교육이 지닌 기능과 효과』, L’Harmattan, Paris, 2007. / Sylvain Connac, 『Apprendre avec les pédagogies coopératives. Démarches et outils pour l’école 협동교육법으로 배우다 : 학교를 위한 발걸음과 도구』, ESF éditeur, Montrouge,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