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 싱가포르의 이면
“우리의 부(富)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통으로 세워져”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번영과 안정의 모델로서 중국에 영감을 준 나라다. 그런데 9월 1일 새로운 대통령(명예직)을 선출한 싱가포르에 이민자 학대, 생활비 상승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20년째 막강한 권력을 장악해온 총리도 대중의 불만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유리와 강철 타워 꼭대기에 ‘NTUC(National Trades Union Congress)’라는 빨간 글씨가 보인다. 싱가포르 유일의 전국노동조합의회, NTUC의 패트릭 테이 위원장은 “리콴유(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가 이 건물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는 노동자들의 공간이 생기기를 바랐다. 당시에는 건물 주변이 황량 그 자체였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여세를 몰아 건물 주변에 금융·관광 중심지 마리나 베이를 건설하는 ‘호의’를 베풀었다. 공공과 민간이 자연스럽게 융화됐고, 다국적 기업과 고급호텔이 줄지어 들어섰다. 대표적 예로 2010년 건설된 ‘마리나 베이 샌즈’가 있다. 호화로운 55층 건물 3개가 나란히 있고, 지상 200m 높이의 옥상에서 수영장이 3개 건물을 연결한 형상이다. 지상층에는 고급 쇼핑몰과 대형 카지노가 있어,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한 직장인들과 마카오에 질린 본토 중국인들이 몰려든다.
공존하는 노사 협의, 유쾌한 난장판
일명 ‘NTUC 빌딩’은 이처럼 주변에 든든한 ‘동반자’가 수두룩한 최적의 입지에 자리하며, 삼성 같은 굴지의 기업들과 정부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한편 국회에서 급히 돌아온 테이 위원장은 활기찬 모습으로 9층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노조위원장인데도 여당 인민행동당(PAP) 의원이다. 그는 이것이 모순적이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의회에 노동자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다. 입법자로서 노동자를 위한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어 행복하다.” 그는 오히려 노조를 견제세력으로 보는 관점에 손사래를 친다. “우리의 임무는 갈등 고조를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 협의과정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국민이 원하는 안정이 유지되는 것이다.” 기업 대표, 노조위원장, 정치인, 고위공무원, 장관이 이 유쾌한 난장판 속에 공존하며, 때론 서로 다른 역할로 옮겨가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사회·정치 관계는 이렇게 흘러왔다. 1965년 독립 때부터 정부, 기업, 노동자(대표) 등 트리오 체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며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근친상간’에 가까운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들은 ‘권력을 전유한 엘리트 집단’을 구축했다. 싱가포르 전문가인 마이클 D. 바르(Michael D. Barr)(1)는 ‘싱가포르의 생존은 150명에게 달려있다’는 리콴유의 1966년 연설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싱가포르를 지배하는 가문의 수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리콴유가 1963년부터 PAP당의 진보파와 그 동조세력을 제거한 사실이다. 120명을 체포한 이 작전의 명칭은 ‘콜드스토어(Coldstore)’였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1988년, 이 같은 일이 또 반복됐다. ‘스펙트럼 작전’은 20여 명의 인물(정치운동가, 노조원, 변호사, 학생, 지식인 등)을 ‘마르크스적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로 체포했다. 오늘날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은 거의 불가능하다. 각 시대의 정치적 망명자를 조명한 탄 핀핀 감독의 영화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2013)는 동료 감독들의 인정과 호평을 받았지만, ‘국가 안보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2015년, 만화가이자 작가인 소니 류는 찰리 찬 호크 체의 그려진 삶』이라는 멋진 작품을 통해 싱가포르의 공식적인 역사를 재조명했다.(2) 앞서 언급한 영화처럼 검열을 당하진 않았지만, 해당 출판사는 싱가포르국립예술원의 투자금을 반환해야 했으며, 그 결과 운영난에 빠지게 됐다.
싱가포르에는 70년 넘게 총리가 3명밖에 없었다. 그중 두 명이 리콴유와 그의 아들 리셴룽이다. 2004년에 총리직에 오른 리셴룽의 퇴임 약속과 함께 한 왕조가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러나 퇴임 시기가 계속 늦춰지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싱가포르는 다른 나라에서는 용어뿐 아니라 그 실체조차 생소한 ‘반자유적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투표권은 존재하지만, 야당들에 대한 규제도 존재한다. 헌법에 명시된 파업권은, 사실상 행사할 수 없다. 최근 사례를 들면, 2012년 버스 기사 파업이 결국 불법 판정을 받고, 파업 지도부가 체포된 것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 반론을 제기하는 싱가포르 국민은 거의 없다. 고위 공무원이었던 중국계 웨이첸탄은 “생존을 위해 항시 투쟁하는 마음으로 산다”라고 말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 20세기 초에 싱가포르에 정착했으며, “본토 중국인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부유층 사이에는 베이징, 상하이, 홍콩에서 온 부자를 포함해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
반면, 제임스쿡대학의 스테판 르 쾨 고용관계학 교수는 권력이 억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권력은 복지를 가져온다. 정부, 기업, 노조는 사회적 안녕 및 경제성장 보장이라는 공통 목표를 가진다.” 사실 ‘세계지도의 작은 빨간 점’(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표현)은 1970~1980년대 한국, 홍콩(당시 영국령), 타이완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됐다. 네 국가의 인권 수준은 낮았지만, 전 세계에 저가상품 공세를 펼치며 다국적 기업을 만족시켰다. 중국의 모델이 된 싱가포르는 이후 10년간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인력을 활용해 수출지향적 경제구조를 구축했다. 이후 싱가포르 인력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됐다.
‘작은 스위스’로 불리는 조세피난처
“중국이 문을 개방하자, 리콴유는 첨단기술 기반의 생산에 집중하고 싱가포르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서 핵심적 중심지로 발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웨이첸탄은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가 외국인 투자(2022년 기준 약 2,000억 달러)를 유치하고자 조세피난처를 자처한 덕분에 작년에 세계 최고의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잊은 듯하다. 사실상 싱가포르는 ‘작은 스위스’로 불리고 있으며, 두바이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오늘날 아시아 대기업의 절반 이상이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홍콩에 기반을 둔 외국회사 상당수가 싱가포르로 자산을 이전하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어쨌든, 싱가포르 통화청에 따르면 ‘패밀리 오피스’라 불리는 중국 및 홍콩 자산운용사 수는 3년 전만 해도 몇 안 됐는데, 점점 증가해 2021년에는 700개에 달했다.
이 도시국가의 역할은 금융, 은행, 보험에 국한되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활기찬 동남아시아 중심부이자 말라카 해협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 및 산업 허브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상하이 다음으로 큰, 세계 2위 규모의 컨테이너 항구 덕분이다.(3) 또한 주변국에서 구매한 모래로 싱가포르 서부에 모든 핵심 기능을 자동화한 투아스 항만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허브로서의 기능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공업부문(정유, 화학, 전자 등)도 뒤따라 이전할 예정이며, 첨단기술 부문은 남부와 동부에 집중될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현재 두 부문은 싱가포르 GDP의 약 25%(프랑스는 17%)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요컨대 독단적인 정부(개발을 계획하고 재정적으로 지원), 다국적 기업(여기서 이익을 챙김), 노조(합의를 도출) 셋이 싱가포르를 정상으로 끌어올린다. 1인당 국민소득은 7만 7,000달러(또 다른 조세피난처인 룩셈부르크 바로 다음)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약 550만 명에 면적 729㎢(프랑스 파리와 이를 둘러싼 ‘작은 왕관’ 지역에 맞먹음)에 달하는 이 섬나라는 만사형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해당 통계와 대부분의 사회복지프로그램은 싱가포르 국적 및 영주권 소지자만 추산한 것이다. 나머지 이민자들은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를 굴러가게 만드는 장본인은, 바로 싱가포르 경제활동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이민자들이다!
기업, 대학, 연구소, 관공서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이민자를 고른다. 이렇게 선택된 행운아들은 싱가포르에 체류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서류를 받게 되며, 체류기간은 엄격한 서열체계에 따라 2~5년 또는 그 이상이 된다. 서열 꼭대기에 있는 높은 스펙의 외국인은 EP(Employment Pass) 비자를, 바로 밑의 기술 자격증 소지자는 SP(Salary Pass) 비자를 받는다. 싱가포르 노동부에 따르면, ‘소셜 덤핑(저임금 등 부당한 노동조건을 통해 생산비를 절감한 저가 상품을 수출하는 일-역주)을 방지하기 위해’ EP 및 SP 비자 소지자에게는 해당 분야의 최고 1/3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가족을 데려올 수는 있지만, 월세가 매우 비싸다. 한 호주 연구원에 의하면, 외곽에 위치한 방 5칸짜리 집의 월세가 1만 싱가포르달러(2023년 9월 18일 기준, 한화로 무려 약 973만원)다. 이 ‘소중한’ 이민자들은 싱가포르 경제활동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
“제초제가 사람보다 비싸다”
나머지 30%는 WP(Work Permit) 비자를 소지한 미숙련 노동자다. 이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다. TWC2(Transient Workers Count two)와 같은 인권단체, 인권운동가, 변호사들도 이들의 부당한 처우를 지적한다. 알렉스 오 TWC2 공동책임자는 외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사무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미숙련 노동자들이 겪는 지옥 같은 상황을 설명했다. 그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싱가포르에는 최저임금 개념 자체가 없음), 가족을 데려오지도 못한다. 또한, 싱가포르인과의 결혼도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4)
이들 대다수가 건축, 조선, 화학, 정유, 청소 분야에서 일한다. 또는 카페나 식당,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주로 미얀마, 중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 출신이며, 무급으로 추가근무를 하거나 휴무가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알렉스 오에 따르면, 싱가포르 법은 교묘하게도 “노동자가 요청하거나 동의하면 원하는 만큼 일하도록 허용한다”고 ‘마치 양측이 평등한 것처럼’ 명시하고 있다.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미숙련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가건물 기숙사에 갇혀 산다. 몇백 미터에 달하는 방범망이 쳐진 곳도 있다. 지하철 종착역에서 30분은 버스를 타고, 내려서 또 걸어야 하는 투아스 일부 구역처럼 말이다. 이 기숙사는 고용주가 제공하며, 노동자는 일을 그만둘 경우 싱가포르에서 추방된다. 노동자들은 대개 비나 땡볕에 노출된 소형트럭을 타고 일터로 이동한다. 그리고 풀 한포기 없는 건물 앞, 도로, 공사판에서 일한다.
스테판 르 쾨 교수는 “제초제가 사람보다 비싸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그늘 밑이나 땅바닥에서 자거나, 밤늦게 그들을 ‘수거’해 갈 트럭을 기다리며 바닥에 꿇어앉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싱가포르인들에게 이 광경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체면을 중시하는 싱가포르의 모든 가정은 가사도우미를 한 명 이상 고용한다. 필리핀, 미얀마, 말레이시아, 중국에서 온 젊은 도우미들은 필리핀 가정에 거주하며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고용주가 원하면 언제든 달려가 일해야 한다. 학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알렉스 오는 “수년의 투쟁 끝에 이 ‘소녀’들은 한 달에 한 번 무조건 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알렉스 오는 이렇게 단언한다. “싱가포르 모델은 간략하게 정의된다. 우리가 부유한 이유는 높은 생산성뿐 아니라 저임금에 고통받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중국과의 경쟁에 맞서기 위해 제품의 질을 높여왔는데, 이제는 일본과의 경쟁에 부딪혔다. 인건비를 낮추는 동시에 첨단기술에 주력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자국 남성과 여성 모두가 집안일에서 벗어나 커리어를 쌓으면서 안락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도록 이민제도를 선택한 것이다.”
몇몇 NGO와 운동가를 제외한 모두가 이 이중 시스템을 용납했다. NTUC는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며, 총리가 서문을 작성한 연례보고서에 한 직원이 추가수당을 받았으며, 또 다른 직원이 일정 자격을 취득하는데 성공한 사례를 언급했다. 두 야당은 이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삼지 않는다. 탄쳉복 박사가 설립한 전진싱가포르당(PSP)은 투표권이 없는 의원이 2명밖에 없는데, “우리가 데려온 사람들을 올바르게 수용해야 한다”라고 말할 뿐이다.(5) 1965년 이후 최초로 의원이 10명인 노동자당(WP)은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걱정하는 청년 싱가포르인들을 대변하는 입장이다. 청년 싱가포르인들은 ‘이민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라고 생각한다.
잉글리시와 ‘싱글리시’, 두 언어계급
“이민자 유입은 싱가포르인에게 명백한 이득을 창출해야 한다.” 프리탐 싱 WP 당수는 2022년 4월 21일 국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오직 영어시험을 통과한 외국인’만이 영주권 또는 귀화 자격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싱가포르는 영어, 만다린, 말레이어, 타밀어 등 4개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각 민족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중국계 싱가포르인 74.3%, 말레이시아계 13.6%, 인도계 8.9%, 메티스 포함 기타 3.2%).
“영어 실력이 싱가포르인으로서의 자격의 결정할까?” 매튜 매튜스와 마빈 테이 연구원이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6) 교육 수준이 높은 부유층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일반 서민층은 ‘싱글리시’를 사용한다. 4개 국어가 섞인 이 역사적 방언은 오랫동안 신문, 광고, 텔레비전에서 사용이 금지됐었지만, 최근 다시 공공장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리탐 싱이 쏘아올린 논쟁은 싱가포르인끼리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영어가 선택의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함에 따라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경쟁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양에서 포괄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그토록 찬양하는 그 유명한 ‘싱가포르 모델’과 함께 말이다. 초등학교 처음 두 해는 영어(읽기, 쓰기), 수학, 모국어에 전념한다. 그다음 두 해에는 과학과 과외활동이 추가된다. 그러나 극도로 엄격한 PSLE(초등졸업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좋은 중학교에 입학해 좋은 대학과 최고의 직장에 들어가려면, 어린이들은 12세에 이 시험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이 시험에서 중간 성적을 받은 학생들은 이공계열에 만족해야 한다. 그 나머지는?
이런 상황이니, 학생들이 받는 압박감은 매우 크다. 한 부모의 표현에 의하면 ‘몰상식’한 수준이다. 자신의 아이가 자살할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다. 2022년, 10~29세 청소년 12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7) 용슈링 감독의 영화에 출현한 여선생은 “PSLE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은 학생에게 학교는 지옥이다. 내가 계산방식을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배움의 기쁨은 줄 수 있다”고 말했다.(8) 이 극도로 선별적인 교육방식은 첨단기술과 문화에 반드시 필요한, 배움에 대한 목마름과 창의성을 말살한다.
30대의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런 교육방식은 계층과 민족 간 불균형을 낳는다”라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계인 그녀는 편하게 의견을 표출하면서도, 익명을 요구했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PSLE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집에서부터 완벽한 영어를 사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립학교를 다녀야 한다. PSLE 성공률과 교육비는 정비례한다. 그녀의 부모님은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소상인으로, 자녀의 성공을 위해 온갖 희생을 자처했다. 유명 역사학자이자 불평등 반대 운동가인 텀핑친(PJ Thum)에 따르면, 싱가포르 최상위 부유층 20%의 자녀 교육비는 최하위층의 4배에 달한다.(9) 또한 20~39세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대학 졸업자 비율은 59.2%인 반면, 말레이시아계는 16.5%에 불과하다.(10)
공식적으로는 차별이 없으며,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물론 리틀 인디아, 차이나타운, 캄퐁 글램(무슬림) 등 정체성이 뚜렷한 지역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모임이나 쇼핑을 위한 곳이지, 민족끼리 몰려 사는 동네는 아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4/5는 99년간 주택을 ‘빌릴’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대개 대규모 공공 주택단지에 사는데, 싱가포르 민족별 비율(중국계74.3%, 말레이시아계 16.3% 등)에 따라 각 민족을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싱가포르에 게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마다 평등함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로렌스 웡 부총리 겸 차기 총리는 2022년 6월 ‘앞으로, 싱가포르(Forward Singapore)’라는 협의 플랫폼을 출범했다. 중산층의 우려를 감지하고, 권위주의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위험 부담이 큰 시스템에 얽매이고, 졸업자와 노동자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내 집 마련이 실상 불가능한 상태다.”(11) 청년들이 부모세대처럼 집을 사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부모집에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싱가포르 주민의 절반이 세계 최상위 부유층의 10%에 속하는 상황에서, 로렌스 웡은 “성공의 척도는 여정의 끝에 놓인 꿀단지가 아니라, 개인의 목적과 성취에 의한 것이야 한다”라고 말했다.(12) 그리고 “사회계약이 실패한다면, 싱가포르 국민 대다수는 소외감을 느끼고, 시스템은 자기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교적 가치와 변형된 서구적 가치가 혼합된 ‘사회계약’은 몇 가지 의문을 던진다. 2020년 총선을 보자. 여당은 선거구를 편의대로 나누고, 야당의 미디어 접근을 강력하게 제한했으며, 9일에 불과한 선전기간에도 역사상 최악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과반수(여당 83석 대 야당 10석)를 유지하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해석은 모두 ‘거짓’
과연 차기 총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미미해 보인다.(13) 공론화는 안정성을 해치는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전히 제한적이며, 환경문제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8호선 크로스 아일랜드 노선 공사도 크게 논란이 됐다. 싱가포르 최대 자연보호구역 지하를 뚫고, 면적 3만㎡의 땅을 개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통부는 이동시간을 6분가량 단축하고 요금을 15% 인하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웠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임스쿡대학의 캐롤린 웡 부학장은 마리나 베이 노선을 만들 때도 똑같은 논란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공공복지라는 명목과 경제적 정당화(관광객 유치, 일자리 창출, 다양성 제공 등)를 내세워 반대의견을 묵살했다. 삶의 질을 단순히 경제성장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는 이런 방향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싱가포르 정부는 논쟁을 억누르고 있다. 정부는 대형 언론의 이사회 및 편집장을 직접 지명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싱가포르는 180개국 중 129위다. 예를 들어 작년에 <더 온라인 시티즌(The Online Citizen)>이라는 정보 사이트의 테리 슈 발행인과 대니얼 드 코스타 편집장은 3주간 구금됐고, 사이트는 몇 달 전에 폐쇄됐다.
2019년 거짓 및 조작에 대한 보호법은 이 제도를 완성한다. 이제 정권에 불리한 어떤 해석도 모두 ‘거짓’으로 간주되며, 제재가 가해진다. 특히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운동가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지난 4월 26일, 한 싱가포르인이 대마초 1kg을 반입했다는 혐의(결국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음)로 사형됐다. 그로부터 3주 후, 또 다른 싱가포르인이 마약 1.5kg을 거래했다는 혐의로 사형에 처해졌다. 7월에도 두 명이 처형됐는데, 그중 한 명은 여성으로 헤로인 30g을 거래한 혐의를 받았다.
2022년 3월 이후 15명이 사형됐는데, 공정한 재판을 받은 경우가 드물었다. 용기를 내서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는 감시, 경찰 소환, 검열 등 괴롭힘의 표적이 된다. 분명 싱가포르는 중국이 아니다. 그러나 텀핑친처럼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도 <뉴 나라티프(New Naratif)>라는 공격적인 사이트에 개입했다가 결국 추방당했다며, “상황이 너무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부편집장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Michael D. Barr, ‘The Ruling Elite of Singapore: Networks of Power and Influence’, <I.B.Tauris>, London, 2014년.
(2) Sonny Liew, ‘Charlie Chan Hock Chye, une vie dessinée 찰리 찬 호크 체의 그려진 삶’, <Urban Comics>, Paris, 2017년.
(3) Philippe Revelli, ‘Triangle de croissance ou triangle des inégalités 성장의 삼각형 또는 불평등의 삼각형’,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7월호.
(4) TWC2 홈페이지에 게재된 증언 참고, https://twc2.org.sg
(5) 의원은 기명투표와 연기투표를 결합한 시스템을 통해 선출된다. 좌석은 ‘최고의 패자’에게 할당된다.
(6) Mathiew Mathiews, Malvin Tay, ‘Must you speak English to qualify as Singapore PR or new citizen’, <The Straits Times>, Singapore, 2023년 3월 4일.
(7) Gabrielle Chan, ‘476 suicides reported in Singapore in 2022, 98 more than in 2021’, <The Straits Times>, 2023년 7월 6일.
(8) Yong Shu Ling, ‘Unteachable’, 2019년.
(9) Thum Ping Tjin, ‘Explainer : Inequality in Singapore’, <New Naratif>, 2023년 4월 28일, https://newnaratif.com
(10) 싱가포르통계청, 2023년, www.singstat.gov.sg
(11) ‘Lawrence Wong launches ‘Forward S'pore’ to set out road map for a society that ‘benefits many, not a few’, <Straits Times>, Singapore, 2022년 6월 28일.
(12) <2019 Global Wealth Report>, Credit Suisse, 2020년, www.credit-suisse.com
(13) Éric Frécon, ‘Singapour. Des politiques et des efforts de transition, d’ajustements… ou de façade?’ Gabriel Facal, Jérôme Samuel(Edited by), ‘L’Asie du Sud-Est 2023. Bilan, enjeux et perspectives 2023년 동남아시아. 결산, 쟁점 및 전망’, <Irasec>, Bangkok, 2023년.
파란만장한 과도기 싱가포르 건국자의 아들이자 18년째 정권을 잡고 있는 리셴룽 총리가 퇴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리 가문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대(독립 이후 4번째인 ‘4G’ 세대)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지난 7월, 총리는 수브라마니암 이스와란 교통부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억만장자 옹벤셍처럼 부패행위조사국의 수사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관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은 37년 만에 처음이다.(1) 몇 주 전에는 외교장관, 내무장관, 법무장관이 고가의 주택 개조로 의심을 받았다. 결국 무죄 판결이 났지만, 불평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초호화 주택의 이미지는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다. 인민행동당(PAP)을 뒤흔든 스캔들에 이어, 국회의장은 최저임금제 도입을 주장한 야당 의원을 “빌어먹을 포퓰리스트”로 불렀다는 이유로 사퇴해야만 했다. 분명 혼자 중얼거렸는데, 모두가 들어버린 것이다. PAP당과 정부의 주요 인물인 타르만 샨무가라트남은 2023년 9월 대선을 위해 사임했다. 싱가포르 대통령은 명예직이지만, 행정부 주요 직위를 지명하는데 관여할 수 있다. 따라서 차기 총리로 예정된 로렌스 웡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을 갖게 된다. 대선에서 타르만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싱가포르 미래 지도자를 뽑는 2025년 11월 23일 총선이 한층 파란만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번역·이보미 (1) Arnaud Leveau, ‘Singapour, une transition pas si tranquille 싱가포르, 고요하지 않은 과도기’, <Lettre confidentielle Asie21-Futuribles>, 파리, n°174, 2023년 7-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