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폭동과 사육제, 그 사이 어디쯤의 교외 소요사태
지도자도 명확한 요구사항도 없는 시위. 작은 불꽃 하나만 튀어도 들불처럼 번질 수 있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는 대혁명 이전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농민 폭동 같은 하층민의 반발을 연상시킨다. 제왕적 대통령의 오만함이 그때와 유사한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 거리에는 분노와 희열이 뒤섞이고, 시위대는 압제를 끝내기 위해 불을 지르고 약탈을 벌인다.
파리 서부 낭테르에서 알제리계 청년 나엘 메르주크가 경찰의 총에 사망한 이후 6일 동안 프랑스 전역이 소요사태로 몸살을 앓았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대혁명 이전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중 집회 양상인 농민폭동과 사육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16~17세기 서구권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난 농민폭동, 그리고 육식이 금지되는 사순절에 앞서 화려한 가면과 분장 차림으로 즐기는 사육제는 프랑스 특유의 정서가 깔린 군중 회합의 형태로서 당국의 폭정에 맞선 하층민의 뿌리 깊은 저항 의지를 토대로 한다. 따라서 이 둘은 현 사태의 기저에 깔린 속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구체제 농민폭동과 비슷한 현대판 유색청년들의 반란
대혁명 이전의 농민폭동은 특히 집단 폭거로 나타났는데, 주된 이유는 극심한 식량난, 국가의 실정, 지도층의 권력남용 등이다. 당시 지배계급인 귀족과 교회, 왕실에서 곡물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과도한 세금을 거두며 강제징집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농민폭동은 주로 제후들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으며, 농민들은 약탈과 방화, 살상을 일삼았다.
16~17세기의 농민폭동이라 하면, 소설과 TV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자쿠 르 크로캉의 활약을 떠올리겠지만, 태양왕 루이 14세 시기 농민폭동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즉 농민들을 이끄는 지도자도, 뚜렷한 요구사항이 담긴 청원서도 없었다. 다만 비참한 삶을 거부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겠다는 농민들의 집단의지가 이들의 인내심을 자극한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표출된 것이었다.
따라서 현대판 ‘게토’ 지구의 청년들, 즉 소외되고 낙인찍힌 빈민가 유색인종 청년들의 반란은 구체제 농민폭동과 비슷하다. 거짓을 일삼으며 자신들을 기만한 체제에 대해, 공화정의 이상적인 기치만 내세운 채 이들 다수의 기대를 저버린 제도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프랑스의 오늘날 현실은 어떤가? 자유와 평등, 박애를 앞세운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현대식 게토인 서민지구에 격리돼 살아간다. 또 평등은 고사하고 계급 간 불평등의 장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인종차별로는 부족했는지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이 기승을 부리고 복지정책이 후퇴하며 불평등이 깊어졌다. 박애는? 끓는 솥을 냄비로 닫아 진정시키라고 공권력을 부여받은 경찰은 모욕과 희롱을 일삼는다.
이 나라의 수장인 에마뉘엘 대통령도 낮은 곳으로부터의 목소리를 대놓고 무시한다. 대오의 선두에 있는 이들에게만 호의의 제스처를 보내는 것이다. 대통령은 내로라하는 다국적기업 사장들에게 “Choose France”라며 러브콜을 보내지만, 그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나라에 발을 들인 이들이 저 낮은 곳에 이미 꽤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온전한 공공서비스도, 시민권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저임금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간다.
수백 년간 이어져온 낮은 곳으로부터의 저항정신
대개 폭동은 분노로 점화된다. 하지만 지난 7월 초에는 또 다른 감정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바로 ‘희열’이다. 이는 사육제 현장에서 흔히 수반되는 감정이다. 대혁명 이전 구체제 하의 프랑스에서는 사육제 기간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3주까지 이어지며 모두의 기분을 고조시켰다.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한 채 마을 곳곳에서 가장행렬을 진행했다.
모두의 즐거움이 표출되는 가운데, 기존의 위계질서도 한꺼번에 뒤집혔다. 성별, 신분 등에 따른 차별이 이 순간에는 설 자리가 없었다. 각 개인의 신분이 구별되던 평소와 달리 사육제 기간만큼은 기존의 모든 서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피지배계층은 지배계층을 비아냥거렸고, 나이 어린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을 비웃었으며, 약자가 강자를, 소외된 이들이 기득권 세력을 조롱했다. 잠시나마 기존 질서를 뒤집어 상위 계층의 전횡을 까발리는 합법적인 제도였던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소요사태에는 세 가지 큰 특징이 있다. 일단 시위대가 사용하는 불꽃놀이용 폭죽은 축제의 양상을 연출한다. 혁명기념일 전 축포를 쏘아대는 사람들처럼 시위대는 현장에서 폭죽을 터뜨렸다. 두 번째 특징은 자유로운 동영상 촬영과 더불어 점점 사람들의 흥분 상태가 고조됐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현장 대치 상황과 시위하는 자기 모습을 신나게 촬영하고 몸싸움과 방화, 약탈 장면을 찍어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뿌리면서 더욱 더 폭주했다.
촬영된 화면은 희열감의 원천을 넘어서서 집단 흥분 상태를 연장시켰으며, 시위대 스스로에게는 뿌듯한 감정까지 안겨주었다. ‘짭새’와 끊임없이 대치하는 야밤의 참호전에서 장렬히 맞서는 영웅이 됐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육제와 마찬가지로 이번 봉기가 일시적으로나마 기존 질서를 뒤집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뒤집힌 질서는 결국 기존 서열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몽둥이가 등장하며 시위대를 진압하는 이유다.
한편으론 물리적으로, 또 다른 한편으론 상징적으로 민중 봉기의 양상을 띤 농민폭동과 사육제는 기존 질서에 대해 피지배계급이 품은 의심과 불신이 표출되는 자리다. 약속을 저버린 채 부당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에 대한 저항 의사가 드러나는 현장인 셈이다. 그리고 2023년의 소요사태 역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즉, 이번 교외 폭동은 프랑스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낮은 곳으로부터의 저항 정신을 근간으로 한다. 따라서 이번 폭동의 정치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어질 또 다른 폭동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글·로이크 바캉 Loïc Wacquant
사회학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교수 겸 파리 정치사회학 유럽센터 객원연구원. 저서로 『Misère de l’ethnographie de la misère 빈민 민족지학의 참혹한 실태』(Éditions Raisons d’agir, Paris)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