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국적 생디칼리즘, 가능한가
유럽 노조 연대
아르셀로미탈은 프랑스의 강드랑주와 플로랑주에 이어 벨기에의 리에주, 룩셈부르크의 시플랑주에 위치한 제철공장의 폐쇄를 결정했다. 체스판 말을 옮기듯 공장을 이전하는 글로벌 전략에 맞서려면 국경을 넘어선 노동권 수호 투쟁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초국적 노조연대 활동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리에주(州)에 내리던 우박이 그쳤다. 아르셀로미탈 공장 폐쇄에 반대하는 파업노동자의 시위 행렬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7일 늦은 오후, 벨기에와 유럽의 노조 대표들이 불러젖히는 <동지가>가 아직도 아브루아 공원 근처 임대아파트 담벼락 위로 메아리친다. 왈로니(프랑스어권) 지역 철강노동자들이 뿌린 색색의 유인물이 인적 없는 거리 여기저기에 찢긴 채 나뒹굴고 있다. 행인들을 집어삼키는 선술집 안은 따뜻해 보인다.
지난해 초 여러 기의 고로(高爐) 폐쇄가 결정된 플로랑주(프랑스 모젤)와 시플랑주(룩셈부르크)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었을 터다. 리에주의 아르셀로미탈은 지난해 11월 우그레에스랭 공장과 셰르탈의 연속주조 제강소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그 결과 "581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산업혁명 이래 철강산업이 이 지역의 경제적 허파 구실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여파로 3천~5천 개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왈로니 지방의 정부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 장클로드 마르쿠르는 지적한다. '풀 미탈 라케트'(영화 <풀 메탈 재킷>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으로, '라케트'는 프랑스어로 '강탈'을 뜻함), '미탈, 사회적 학살을 중지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에서 노동자들의 체념 섞인 분노를 엿볼 수 있다. 소란스럽게 울려퍼지는 박자 소리에 맞춰 입을 꾹 다문 채 행진하는 노동자들 틈에서 실뱅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락슈미 미탈 회장은 철로 철판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돈을 만든다. 그건 낭비다." 세계 6위의 부호인 '철강왕' 미탈 회장도 낭비라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룹 전체 경상수지의 20%가 유럽에서 실현되지만 비용의 60%를 잡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 기업들이 구조조정(1)과 해외이전을 추진하는 세계화 시대에, 노동조합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에 맞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유럽연대시위가 주기적으로 열리고, 2009년 4월에는 프랑스 클레루아의 콘티넨탈사 공장 노동자들이 하노버에서 같은 기업의 독일 노동자들과 나란히 행진했지만, 국경을 넘은 노동운동이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는지는 의문이다. "유럽의 탈노조화 경향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노동운동의 유럽화 현상이 목격된다." 풀다대학 정치학 교수 한스 볼프강 플라처의 지적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단체들 사이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지속적인 구조조정에 맞서려면 초국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2) 독일 금속노련(IG Metall) 기업조사 담당 미하엘 바흐는 "예전에는 유럽 차원의 연대가 없었다. 벨기에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 독일 브레멘의 노동자들에게 득이 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이웃의 공장들이 문 닫는 것을 보면서 다음 차례는 자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불안감이 기업의 유럽 전략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아르셀로미탈의 벨기에 노동자들은 홀로 싸워봤자 달걀로 바위 치기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 노조에 리에주 공장 폐쇄는 유럽 생산시설 철수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고 모두 단결해 공동 투쟁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유럽화를 막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유럽의 인구 고령화와 노조원 수 감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거의 대립에 가까운 문화적 차이도 문제다. 라틴 문화권(벨기에·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집회의 자유를 협상의 한 요소로 이용하는 데 비해, 독일과 북유럽의 노동자들은 노사 간 대화를 더 중요시한다. 예상외로 언어 문제도 자주 지적된다. 미하엘 바흐는 "회의할 때는 통역사들이 있지만, 결정적 대화가 오가는 저녁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아쉬워한다.
5년간 3만명 정리해고
무엇보다 유럽 노조들은 자국 노동시장을 지켜야 할 필요성과 노조들의 다국적 대항세력 형성을 지향하는 국제주의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프랑스 기독교노동자연합(CFTC) 국제문제 담당 조제프 투브넬은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전되면 루마니아 사람들이 와서 집세를 내줄 거냐'고 묻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는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물론 일자리를 지키는 게 우선이지만 공동의 의식을 견지해야 할 필요성도 있음을 설명해준다.
벨기에 노동총연맹(FGTB) 리에주 본부의 널찍한 응접실. 장프랑수아 타멜리니는 유럽 단위 연대를 추진하던 초창기에 겪은 어려움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FGTB 왈로니-브뤼셀 지역 금속노련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 니코 퀴에의 오른팔에 불과하다며 겸손을 떨었다. "2008년 세 나라에서 온 직원이사들은 스랭의 6번 고로 폐쇄 결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 뒤 리에주 공장 노동자들은 유럽 동료들에 대해 상당한 불신감을 갖게 됐다."
기업의 국제화·집중화 경향 속에 같은 그룹 내에서도 서로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 사이에 경쟁을 부추기는 경영 방식이 추진되는 마당에 노조 간의 분열은 더욱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위기의 시기에만 사회적 연대가 형성된다는 느낌이 만연해 있다. 문제는 그마저도 너무 늦다는 것이다. "리에주의 고로 폐쇄 결정이 유럽 차원의 운동에 원동력을 제공했다." FGTB 금속노련 협상대표 로베르 루제우의 설명이다. "회사는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려 한다. 벨기에의 경우 겐트와 리에주 사이에 지역 갈등을 조장하려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회사 쪽과 맞설 힘을 규합하기 위해 서로 만나고, 의논하고, 동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사이 회사 쪽은 큰 보폭으로 우리를 훌쩍 앞지른다. 공장 폐쇄 계획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아르셀로미탈은 지난 5년간 직원 3만 명을 정리해고하고 유럽 내 고로 25기 중 9기를 폐쇄했다. 노조들은 회사 쪽의 '산업파괴'에 맞서 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아르셀로미탈의 프랑스 민주노동연맹(CFDT) 로렌 지부 대표 에두아르 마르탱은 "넋 놓고 앉아 다음 차례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유럽의 철강산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아르셀로미탈은 눈앞의 이익만 좇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12월 7일의 집단행동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룩셈부르크·독일의 일부 공장에서 조업이 중단됐다. 체코·루마니아·마케도니아·폴란드에서 집회가 이어졌다. 2006년 아르셀로미탈이 창립된 이래 최초로 유럽금속노련(EMF)은 공장 폐쇄에 반대하기 위해 유럽 전체에서 24시간 단체행동을 조직했다. 금속노련의 유럽 전략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는 편이다. "EMF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항공·방위·전자·자동차 등 거대 기업들 대부분이 철강산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CFDT 사무국 부국장 마르셀 그리냐르의 분석이다. "수십 년 전부터 철강산업에 변화와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고 있다. EMF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EU, 노동자 보호법 제정 나서야
유럽연합(EU)도 초국적 기업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법적 틀을 마련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2011년 9월 17일 유럽노조연맹(ETUC)이 조직한 유럽연합집회 자리. 유럽재무장관 회담이 열리는 백주년관(옛 인민궁전) 앞에서 폴란드 연대노조 대표 표트르 두다가 입을 연다. 그는 EU 집행위원회가 사회적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정치인들은 연대를 떠벌리면서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유로화를 구하는 게 일자리와 사람들을 구하는 일보다 중요하다. EU가 내세우는 사회적 차원은 허구에 불과하다." 5만 명이 넘게 참가한 집회에서 그와 나란히 걷고 있던 EMF 사무국장 베르나데트 세골이 덧붙인다. "지난 2년간 경제위기의 재앙을 겪은 지금, 유럽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에 주도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산업정책과 더불어 연대와 고용을 위한 유럽 경제 거버넌스를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유럽의 통합은 단일시장을 통해 국가 간 거리를 좁힘으로써 평화를 정착시키고 사회 진보를 이룬다는 목표 속에서 진행돼왔다. 그러나 지난 1월 17일 EU 집행위원회 사회문제·고용 담당관 라즐로 안도르가 한 발언은 실제 목표가 시장 자유화와 사회적 덤핑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친(親)헝가리사회당(MSZP) 성향의 안도르 집행위원은 구조조정이 "기업 활동의 일상에 속하며,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회학자 안 뒤프레슨은 그와 정반대로 "EU는 금융시장의 이윤보다 인민의 사회복지를 우선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하고 전투적인 연대노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의 요구사항을 마련해야 한다"(3)고 주장한다.
EU 건설 프로젝트 속에는 세계화한 경제에 적합한 사회적 틀을 고안한다는 목표가 포함된 적이 없다. 1985년 자크 들로르가 '유럽 차원에서의 노사 간 대화'를 천명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결과 노사 간 갈등이 사회적 파트너십의 문화로 급격하게 전환됐다. 그 뒤 마스트리흐트 조약의 사회 프로토콜 속에 포함된 1991년 10월의 합의를 통해 협의·자문·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법적 절차가 마련됐다. 그러나 노사대표가 공공정책에 동반자로 참여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대화에서 협상은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했다. 유럽 차원에서 단체협약을 진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드러났다. 1995년 이후 업종 간 협상에서는 7개의 기본협정,(4) 업종별로는 5개의 기본협정만이 채택됐다. 이처럼 유럽 차원의 단체협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초국적 기업 협정'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구조조정, 노사협상, 보건과 안전, 인력 관리, 정보 보호 등과 같은 사안은 대부분 유럽기업운영위원회(CEE)(5)를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CEE의 권한은 보고와 자문에 국한된다. 더욱이 EU 집행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구조조정의 경우 절반 이상이 그나마 직원대표기구인 CEE에 자문하지 않고 진행되거나 공식 발표가 된 이후에야 자문이 이루어졌다. 조사 대상 총 85개 사례 중 80%가 자문이 실제 프로세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7년 벨기에 빌보르드의 르노자동차 조립공장이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회사 쪽은 노동자들에게 규정에 따른 사전 고지나 자문 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 뒤 구조조정에 관한 사항이 규정된 이른바 '르노법'이 제정됐고, 사전 고지와 협의 과정을 이행하지 않는 고용주를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사용자연합 사무국장 필리프 드뷔크는 이렇게 말했다. "르노의 구조조정 발표 방식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르노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라진 게 뭔가? 노동자들에게 정보를 더 많이, 더 잘, 더 빨리 주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예전에 회사 쪽은 노조와 협상을 벌였지만 요즘엔 법률가들을 고용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해야 할 말의 절반만 한다."
2009년 5월 6일의 CEE 지침 변경은 구조조정 전 단계에서 초국적 단위의 단체협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노조들은 이를 통해 수세적인 입장에서 대안을 내놓는 주체가 되려 했다. '사회적 파트너'가 아닌 협상 당사자가 되는 게 목적이었다. 아르셀로미탈 유럽 노조그룹 대표 조르주 제스페르는 "아르셀로미탈의 CEE 단위에서는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자문은 없고 통지만 있다. 이런 환경에서 CEE는 경영 방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결정 권한을 갖춘 진정한 유럽 대표단을 구성하려고 애쓰는 이유다."
초국적 기업의 경영진 역시 이런 상황을 감안해야 하고 삼자협의 체계 속에서 노조, 행정기관과 협력해야 한다. 드뷔크는 "노동계약에 기초한 모든 종류의 사회적 관계는 우선적으로 노사 양쪽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삼자협의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사 양쪽의 대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조 쪽의 조프레 솅크는 초국적 경제 체제 속에서 "정치권력은 세계 어느 곳으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삼자협의 체제는 권력의 이상적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사용자가 직원 대표들과 대화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스페인 노동자위원회(CCOO) 대표로 아르셀로미탈 유럽기업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엔리케 소리아노는 "미탈이 아르셀로를 인수한 뒤부터 노조의 기업 활동 참여 방식이 앵글로색슨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유럽기업운영위원회 회장인 미탈 회장은 전혀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정보 공유는 언론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자문도 없다. 회사 쪽이 협의를 전제로 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드뷔크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단체협약(6)보다 기본협정을 우선시한다. 기본협정에서는 오직 권고 사항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은 일단 결과가 발표되면 법적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기본협정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편 사용자연합은 초국적 차원에서 기본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법적 틀을 만들자는 제안에 반대해왔고, CEE가 결정기관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초국적 기본협정은 기업 단위로 축소돼버렸고 업종 간, 업종별 협상에서 더 중요성을 띠는 협의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안 뒤프레슨은 "기업 내 노사협상은 더 이상 사회적 규범 피라미드의 밑변이 아니다. 그 자체로 전부가 되어버렸다."(7)
같은 이유로 유럽노조연맹(ETUC)은 "CEE를 적절한 협상기관으로 보지 않으며, 초국적 협정이 기업 내 노사협상의 대대적인 개별화 경향을 가속화하는 핑계로 사용될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8) 연맹은 무엇보다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될 것을 염려한다. 노조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EU 집행위원회와 경영자들에게 일종의 로비 활동을 펼치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데콜롱주의 평가는 단호하다. "유럽노조연맹은 혁신적인 단체가 아니다. 그들은 유럽연대집회를 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적 권리뿐 아니라 고용 문제에서도 그들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초국적 노조 연대, 불가능만은 아니다"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진다. 투브넬은 "유럽노조연맹은 이를테면 '노조의 유엔'이다. 그들은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본부에서 만난 미하엘 조머 대표는 5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다." 유럽 노조 활동과 관련해서 말을 아끼던 그는 결국 다음과 같이 실토했다. "현재 유럽노조연맹 지도부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 그래서 유럽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것으로 인터뷰는 끝이었다.
유럽노조연맹이 노조 사이에서 대표성을 잃어가는 동안, 벨기에의 철강 노동자들은 아르셀로미탈에 대항해 가열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정치권력에 대한 호소도 마다하지 않는다. 제스페르는 "리에주에서 고로가 폐쇄되기 6개월 전에 우리는 고로를 일시적·반복적으로 정지시키는 행태를 계속할 경우 공장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안타까워한다. "금속노련은 경제부의 지원 아래 조사기관(라플라스·생덱스)에 리에주 제강소의 생존 가능성을 분석하도록 의뢰했다. 아직 조사 중이지만, 생덱스사가 우리에게 말하길, 미탈이 가격 인상을 위해 공급량을 줄이지 않았다면 현재 플로랑주뿐 아니라 리에주의 공장이 전면 가동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과잉생산 능력은 순전히 경기 상황의 문제지 구조적 문제가 아니다. 즉, 유럽 전체의 생산시설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치인들과 노조활동가들은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를 마치 고도로 경영이 집중화된 중간 규모의 기업처럼 운영하는 락슈미 미탈 회장과 그의 아들 아디티야 미탈(CFO)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2004년 아디티야 미탈은 크레디 스위스 근무 당시의 상사를 만나 다음과 같이 포부를 밝혔다. "포드가 자동차 분야에서 이룬 업적을 철강업계에서 달성하겠다."(<렉스프레스> 2012년 1월 4일자) 특히 철광 매입에 기업 이윤을 투입하는 행태에 대해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이 분야는 광적인 투기 열풍에 휩싸여 있다.
벨기에의 노조들은 왈로니 지방의 철강산업을 지역 소유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을 연상시킨다. 1985~87년 왈로니의 철강산업은 공기업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위임 경영자들은 국제적 규모를 갖춘 그룹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위지노르가 250억 프랑(2011년 기준 70억 유로)에 생산시설을 인수했다. 벨기에 연합노조의 입장은 단호하다. 덱시아 은행의 계열사 크레디 코뮤날을 국유화하기 위해 40억 유로를 투입한 정부라면 리에주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10억 유로를 지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제스페르는 최근 유럽의 철강 분야에서 생긴 일을 예로 든다. "GECT 지역(왈로니·로렌·자를란트·라인란트팔츠)의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독일의 라인란트팔츠 주정부와 노조들이 미탈사의 제철공장 주식 71% 획득을 위해 힘을 합친 일을 알게 됐다. 미탈사는 결국 지분을 내놨고, 주정부는 지역은행의 도움으로 그 지분을 매입했다. 현재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가 진행 중이다. 우리의 요구는 결코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유럽에 이미 성공 사례들이 있다. 서로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글•트리스탕 콜로마 Tristan Coloma 노동운동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1) 2008~2010년 유럽연합 내에서 매월 90~100건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고용 창출 인원 1명당 실직자 수 비율은 2.5명에 달했다.
(2) <Les Echos>, 파리, 2010년 5월 4일자.
(3) ‘초국적 노사합의: 유럽 단위의 단체협상을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 <Les Notes de l’IES>, n°11, 파리, 2010년 3월.
(4) 노조와 사용자 사이에 체결된 협정. 사후 협상을 위한 틀 혹은 모델이 되기에는 내용이 너무 일반적이다.
(5) 2011년 2200개 이상의 다국적기업에 932개 위원회가 운영됐다.
(6) 노동조건·사회보장과 관련해 직원대표들과 경영자단체가 합의한 사항. 단체협약 내용은 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7) (3)과 동일.
(8) 유럽노조연맹 집행위원회가 2005년 12월 5~6일 연 브뤼셀 회의에서 채택한 2006년 단체교섭 공조 지침.
작은 코끼리에 짓밟히다
2006년 아르셀로를 인수할 당시 락슈미 미탈 회장은 구원자 대접을 받았다. 벨기에 노동총연맹(FGTB) 셰르탈 지부 대표 조프레 솅크는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는 조그만 코끼리(인도의 상징)와 미탈의 사진이 박힌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아르셀로가 우리를 죽였지만 미탈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공장을 지키기 위해 고용 유연성, 공장 이전, 임금 동결 등과 관련된 모든 제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르셀로미탈은 룩셈부르크에서 전기 아크로 1기와 압연기 2기를, 스페인에서 전기 아크로 1기를 무기한 정지시켰다. 체코에서는 인원을 약 10% 감축하기 위해 직원 600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이다. 2009년 이미 직원 1200명이 해고된 바 있다. 폴란드에서는 압연기 1기와 고로 2기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이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생산량이 줄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8년 2월 4일 강드랑주(로렌)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장도 끝장나고, 산업도 끝장나고, 완전고용도 끝장났다고 체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만약 강드랑주 공장을 위한 적절한 해결책이 제시된다면 "정부는 조기퇴직자나 실직자를 지원하기보다 공장 현대화를 위해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룩셈부르크의 리베르테가에 위치한 그룹 본사에서 매번 공장 폐쇄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놓는 근거는 대개 엇비슷하다. 수요 감소가- 경영진 쪽 주장에 따르면, 2008년 경제위기 이전과 비교해 25% 감소- 예상되는 유럽의 경기 후퇴, 유럽 공장 경쟁력 약화, 과잉 생산 능력, 국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구조조정,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생산 단위 전문화 등 시장에 잘 보이기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르셀로미탈은 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월가에 불어닥친 위기 속에서 2008년 6월 6일 103.01달러이던 주가는 2012년 1월 17일 19.88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아르셀로미탈은 세계적 거대기업의 포부를 밝힘으로써 금융 애널리스트들의 환심 사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아르셀로미탈은 마치 황소 몸집만큼 커지기 원하는 개구리처럼, 내적 성장을 희생해가면서 시장점유율에 집착하는 외면적 확장만 추구했다. 지난 5년간 20건이 넘는 인수·합병을 단행한 결과, 2011년 2·4분기에 부채가 250억 달러에 달했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오늘의 이윤은 내일의 투자, 모레의 고용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수정돼야 할지 모른다. "오늘의 이윤은 내일의 주주, 모레의 실업자를 만든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본부 앞에서 미하엘 바흐는 다음과 같이 귀띔해주었다. "유럽 노조 대표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아르셀로미탈이 각 정부에서 상당한 지원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벨기에 노동자당 연구센터가 2009~2010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아르셀로미탈 벨기에 지사는 거두어들인 이윤에 대해 세금을 거의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리에주 공장에서 열간압연 공정을 관리하는 계열사는 3500만 유로의 수익을 올렸지만(1) 세금으로 936유로를 냈을 뿐이다. 2009년 세금 지출은 496유로뿐이었다. 고용 창출에 대한 약속이 온갖 세제 혜택을 정당화해준 것이다. 그 약속들이 신빙성 없어 보일 때조차 그랬다. 왈로니 정부의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 장클로드 마르쿠르는 "아르셀로미탈이 시장 상황이 상당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8년 왈로니 정부로부터 시설 현대화와 투자를 지원받는 대가로 약속한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분노감을 표시한다.
36개국 75개 노조를 아우르는 유럽금속노련(EMF)의 사무국장 바르트 사민은 "아르셀로미탈은 제조업체가 아니라 마치 투자은행인 것처럼 처신한다. 이윤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은 유럽 강철 산업의 고용, 나아가 유럽 산업 전체를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노조원들의 말에 따르면, 아르셀로미탈은 인수·합병을 통한 국제적 외연 확장- 때로 반(反)트러스트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에 드는 돈을 임금 비용 절약으로 충당하기 위해 유럽에서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07년 아르셀로미탈은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한 사실이 발각되어 미국 스패로우스 포인트 공장을 매각해야 했다. 항간에는 경쟁사 US스틸 인수설이 떠돌고 있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미국 알루미늄 시장 점유율 40%가 고스란히 아르셀로미탈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1) 아르셀로미탈 그룹은 2010년 2380억 유로의 순이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