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모로코의 와르자자트에서는

모로코, 영화 촬영을 위한 엘도라도

2023-09-26     피에르 돔 l 기자, 특파원

할리우드 영화를 모로코에서 촬영하면 제작비가 절감된다. 와르자자트, 마라케시, 카사블랑카에서는 엑스트라 시급이 약 2달러에 불과하다. 기술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 마을은 아름답고 비용은 저렴하며, 정부는 안전을 보장하고 재정적 지원도 두둑하다. 결국 모로코 영화계는 서구의 외주업체가 돼 버렸다. 모로코의 소프트파워는 쇠락의 길로 가는 것일까?

 

모로코 사막의 관문 와르자자트에 열기가 피어오른다. 리들리 스콧(85세) 영화감독은 아이트 벤 하두의 크사르(요새 마을)에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에일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년), <델마와 루이스>(1991년), <아메리칸 갱스터>(2007년)를 제작한 리들리 스콧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에서 <글래디에이터>(2000년) 후속작을 촬영할 예정이다. 막시무스를 연기했던 러셀 크로우는 전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속편에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샬롯 웰스 감독이 찍은 <애프터썬>의 아일랜드 신예 배우 폴 메스칼과 대배우 덴젤 워싱턴이 등장할 예정이다. 먼지가 휘날리는 반원형 자갈밭 작업장에서 포클레인과 인부들이 격렬한 로마 전투가 벌어질 장소를 제작하느라 바위와 씨름하고 있다. 


영화 촬영을 위해 가게 문을 닫아라

작업장 위쪽 크사르 거리 상인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얼마나 오래 가게를 닫아야 하나? 아무도 모른다. 보상액은? 1일 500디르함(약 45유로), 1,000디르함(약 90유로), 1,500디르함(약 135유로) 등 제각각이다.(1) 화가 아지즈는 “선택권이 없다. 가게를 열면 경찰이 올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역 특산품인 차와 사프란으로 그린 그림 한 점 가격에 해당하는 1,000디르함을 받길 원한다. 이번 영화에 엑스트라 수천 명이 고용될 예정이다. 그들은 1일 11시간 일하고 300디르함(약 27유로)을 받을 것이다. 프랑스는 노사협정에 따라 1일 8시간 최저임금은 105유로이며, 고용주는 사회보험금을 부담한다. 

이번에 현지인 엑스트라 캐스팅을 맡은 와르자자트 출신 하미드 아이트 티마그리트는 “내가 <글래디에이터> 속편의 캐스팅 담당자라는 소문이 퍼지면, 전화통에 불이 날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채용할 수는 없다. 매일 이력서가 쌓인다”라며 난감해했다. 하미드는 이번 대규모 영화 제작에 들뜬 기색보다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드러냈다. “1990~2000년대 와르자자트를 봤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영화 8~10편이 동시 제작됐고, 호텔도 만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라. 와르자자트는 죽은 도시다. 겨우 한두 편 찍는 게 전부다.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는 바람에 지금은 한 푼도 없다!” 

세계적 스타들이 다녀간 5성급 호텔 벨레르, 팔메레, 리아드 살람 등도 문을 닫았다. <글래디에이터> 속편 촬영이 이곳에 활력을 다시 가져올까? 라인 프로듀서 아흐메드 아부누옴, 일명 ‘지미’의 대답은 회의적이다. 모로코 최대 영화사 중 하나인 듄 필름스의 사장이기도 한 지미는 “이 영화가 모든 호텔과 기술진을 몇 달간 독점해서, 다른 영화들은 다른 곳에서 촬영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다른 곳, 즉 경쟁 국가로 넘어갈 거라는 소리다(박스 기사 참조). 

 

천일야화를 찍기 딱 좋은 무대

아이트 벤 하두에서의 영화 촬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부터 수차례 영화 촬영지로 활용됐다. 유구한 세월을 품은 이 요새 마을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1965)의 동양적 배경으로 사용됐고, <007 리딩 데이라이트>(1987, 티모시 달튼이 제임스 본드 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무자헤딘의 본거지였으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1989)에서는 성배로 향하는 길로 등장했다. 이밖에도 미국과 이탈리아 대규모 영화 촬영지로 수없이 사용됐다. 심지어 마틴 스코세이지는 <쿤둔>(1997)에서 아이트 벤 하두를 티베트로 둔갑시켰고, 눈 덮인 아틀리스 고원을 히말라야 산맥으로 꾸며냈다! 방문자 수가 너무 많아지자, 크사르 주민들은 영화 제작자들과 촬영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계곡 반대편으로 이사 갔다. 그러면서도 예전 집들을 여전히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다. 

아이트 벤 하두의 사례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와르자자트는 40년 전부터 세계적인 영화 촬영지였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 베르나르도 베를톨루치의 <마지막 사랑>(1990), 스티븐 소머즈의 <미이라>(1999), 알랭 샤바의 <아스테릭스: 미션 클레오파트라>(2002),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2004), 리들리 스콧의 <킹덤 오브 헤븐>(2005년), 크리스토퍼 맥쿼리의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등이 와르자자트에서 촬영됐다. 드라마 시리즈로는 <엘리트 스파이(Le Bureau des légendes)>(2014~2019, 8개 시즌), <왕좌의 게임>(2010~2017, 8개 시즌), <홈랜드>(2010~2019, 8개 시즌) 등이 촬영됐다.

이 지역에서 촬영된 장편영화와 드라마는 무척 많다. 성서 관련 다큐픽션과 광고도 있다. 성공비결은? 우리가 만난 전문가들은 모두 ‘세계 어디에도 없는 다양한 자연경관’을 원인으로 꼽았다. 아흐메드 아부누옴은 “와르자자트 100km 반경에 오아시스, 오래된 마을, 산, 눈, 모래언덕, 자갈사막, 강, 바다 등 온갖 환경이 공존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런던, 파리에서 비행기로 겨우 2시간 거리다”라고 설명했다.

천일야화를 찍는 데 모로코 전통가옥 리아드가 필요한가? 마라케시에 있다. 거리도 200km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 마을을 찍어야 하는가? 카사블랑카에 가면 된다. 구시가지 부근 중앙시장에 식민시대의 아르데코 건축양식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게다가 엑스트라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매우 오래된 부족 출신이기 때문에 성서시대의 셈족이나 고대 로마인 얼굴형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영화산업 발전을 돕기 위해 와르자자트에 설립된 아틀라스와 CLA 스튜디오는 이렇게 설명했다(전자는 1983년, 후자는 20년 후에 설립). 여기서 말하는 ‘셈족과 고대 로마인 얼굴형’이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이미지인가에 대한 의구심도 없으며, 과학자들도 여전히 예수의 얼굴을 궁금해한다.

 

‘모로코 기술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
 
또 다른 핵심적 성공 요인은 바로 안전이다. 마라케시 명문 시각예술대학 ESAV의 압데일라 힐랄 기술감독은 “사실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은 알제리와 리비아에 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한 촬영지는 모로코다”라고 털어놓았다. 모로코 전국 도로에서 무장 헌병이 검문을 하고, 도시 전역에서는 사복 경찰이 현지인으로부터 관광객을 보호해주는데, 두려울 게 있겠는가? 모로코 정부는 촬영지로서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각종 혜택을 쏟아내고 있다. 부가가치세 및 사회보험금 면제, 로열 에어 모로코의 할인 혜택, 현지 지출액의 30% 환급, 행정 절차 간소화 등이 그것이다.

칼리드 사이디 모로코영화센터(CCM)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참고로 CCM은 모로코 영화를 지원하고 외국 영화 촬영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모로코는 상징적 가격에 군대를 영화 제작에 지원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실제 전투 무기 반입도 허용된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 제작자가 마라케시 우회도로를 9일간 완전 폐쇄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수많은 도로 이용자의 피해를 감수하고 요청을 들어줬다. 화룡점정으로 서양 제작자를 위한 CCM 영문 브로셔에는 ‘모로코 기술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다.(2)

모로코 정부의 의지는 수치로 증명된다. 칼리드 사이디 사무총장은 “2022년 외국 영화 제작사가 모로코에서 지출한 금액이 1억 유로에 달했다. 코로나 전인 2019년에 기록한 8,000만 유로를 초과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실 1억 유로는 외국인직접투자 총액(2016년 15억~35억 유로)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3) 그러나 와르자자트 규모로 보면, 사막에 유로/달러 비가 내리는 셈이다. 와르자자트, 에라시아다가 속한 드라타필랄레트 지방은 매우 가난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매일 몇 킬로미터를 걸어서 통학하며, 외국인을 마주치면 푼돈을 구걸한다. 길에서는 여성들이 몸을 굽혀 저녁식사용 카눈(화로)에 필요한 땔감을 준비한다. 

메크네스 국립농업대(ENA)에서 사회적 농업 분야를 연구하는 모스타파 에라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은 고립된 지역이다. 식민시대에 프랑스는 이곳을 ‘쓸모없는 모로코’라 불렀다. 독립 이후, 그 유명한 펠릭스 모라가 이 빈곤한 지역에 와서 프랑스 북부 광산에 필요한 힘센 일꾼을 모집하기도 했다.(4) 물론 외국 영화 제작자들이 현지 주민들에게 약간의 현금을 지급하지만, 매우 불안정한 수입에 불과하다. 오아시스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청년층이 떠나는 것을 막기에는 부족하다. 청년들만이 야자수 꼭대기까지 올라가 수분 작업을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또한 화재는 오아시스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인이지만, 버려진 오아시스에 마른 잎사귀를 모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모로코를 찾는 진짜 이유, ‘저렴한 가격’

취재 당시 와르자자트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아름다운 오아시스 마을 핀트에서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하는 <공포의 보수>(앙리조르주 클루조 감독, 1953) 리메이크작이었다. 지하디스트 근거지를 공격하는 장면도 있었다. 9.11테러 이후 모로코 출신 단역들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 등 국적에 상관없이 이슬람주의 악역을 도맡고 있다. 모하메드 바디는 우리에게 마을을 구경시켜주며 말했다. “우리 오아시스 마을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 

<바벨>(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06), <퀸 오브 데저트>(베르너 헤어조크, 2015), <나사렛 예수>(프랑코 제페렐리, 1977) 등은 모두 우리 마을에서 촬영됐다.” 핀트 마을 100여 가구 중 5가구만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폐허가 된 집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들은 전쟁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오히려 선호한다.” 

모하메드 바디의 집은 넓고 수수했다. 이런 집과 야자나무, 관개시설을 관리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촬영이 있을 때마다 모든 주민이 번갈아가며 일을 한다. 엑스트라는 일당 300디르함(약 27유로), 인부는 일당 200디르함(약 18유로)을 받는다.” 주민들이 몇 세대, 몇 세기에 걸쳐 지켜온 오아시스 마을의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는? “우리 오아시스가 배경으로 등장하면 여성단체에 300디르함을 지불하고, 특정 구획에서 촬영하면 그 주인에게 최대 3,000디르함(약 270유로)을 지불한다. 이곳 촬영비는 저렴하다. 그래서 영화 제작사들이 다시 찾는 것이다.”

40년 전부터 와르자자트에 ‘달러 비’가 내리고 있지만, 드라타필랄레트 지방의 1인당 GDP는 여전히 1만 8,000디르함(약 1,630유로)으로 모로코 12개 지방 중 가장 가난하다. 모로코 평균 GDP의 절반을 갓 넘는 수준이다. 라바트 농경가축연구소(IAV Hassan II) 경제학자 나지브 아케스비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외국인들은 자연경관의 빛과 아름다움을 찾아 모로코에 오는데, 그런 것들은 미국에도 있다. 실상 비용 절감을 위해 오는 것이다. 엑스트라, 의상담당자, 목수, 미장이, 스태프 등 말이다. 영화는 섬유, IT처럼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티셔츠는 방글라데시, 휴대폰은 베트남, 영화는 모로코에서 제작한다.” 

공식적인 최저 월급은 3,000디르함(약 270유로)이지만, 실상 노동자의 54%가 무계약으로 일하므로 이보다 적다. “모로코 석공의 실제 급여는 1,500~2,000디르함(약 135~180유로)인데, 그것도 일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런 상황이니, 사람들이 영화 촬영지에서 일하려고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독립 이후, 프랑스 북부 광산에서 일하려고 모라에게 매달렸듯 말이다.”

 

오만한 프랑스인들의 멸시, 등골 휘는 현지인들

‘와르자우드’ 주민들을 활용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모로코 10대 대형 제작사에 속하는 카스바 필름의 창립자 카림 데바그는 다음과 같이 딱 잘라 말했다. “그중 최악은 프랑스인이다. 미국인에게 영화는 비즈니스다. 미국인은 모로코에 와서 돈다발을 내밀고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런데 프랑스인은 자신을 대단한 아티스트라고 여기며, 모두가 예술을 존중하는 자세로 프로젝트를 대하길 바란다. 게다가 항상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몇 푼이라도 아끼려고 식민지를 대하듯 멸시하는 태도로 현지인들의 등골을 뽑아 먹는다.”

드라타필랄레트 주민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는 모로코 정부가 계획하는 개발정책으로 상쇄될까? 그렇지 않다. 나지브 아케스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로코는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을 현혹하는 화려한 인프라를 개발하는데 능숙하다. 우리의 멋진 고속도로를 예로 들어보자. 도로망 1,800km 중 1,000km는 수익을 내지 못하며, 30분을 운전해도 차 한 대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탕헤르와 카사블랑카를 잇는 LGV(프랑스 TGV를 본뜬 모로코 고속철도) 노선도 마찬가지다. 와르자자트를 잇는 철도나 고속도로도 없다. 우리는 여전히 식민시대의 ‘쓸모없는 모로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08년 개시한 ‘모로코 그린 프로젝트’는 점입가경이다. “모로코 정부는 농기업들(일부는 유럽 자본)의 대규모 야자수 농장 설립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대량의 물이 투입되기 때문에 정작 오아시스 마을들이 사용할 물이 부족해졌다.” 드라타필랄레트 출신이자 라바트 농경가축연구소(IAV Hassan II) 교수였던 농학자 아흐메드 부아지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모로코인 현장책임자와 스태프들은 촬영현장에서 수십 년간 경험을 쌓으며 카메라, 프레이밍, 조명, 사운드, 전기, 기계, 의상, 메이크업 등 온갖 업무를 배웠다. 이후 마라케시, 라바트, 와르자자트에 학교가 설립됐으며, 학생들은 현재 실습부터 시작해서 외국 영화 촬영지에 활발히 채용되고 있다. 모로코에서 영화를 제작할 경우, 법적으로 인력의 25%를 모로코인(단역 제외)으로 고용해야 한다. 최근 열 번째 장편영화를 찍은 모로코 영화감독 압델하이 라라키는 “그 결과, 모로코는 뛰어난 기술자들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나는 모로코 독립운동에 관한 영화를 찍었다. 폭발, 사격 등 모든 특수효과를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고 예전 방식대로 현장에서 직접 만들 기술자들이 와르자자트에 있었다.”

 

이 시스템의 진정한 승자는?

이처럼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미묘한 차이는 존재한다. 2011년에 마라케시 시각예술대학 ESAV를 졸업한 보조 촬영기사 함자 벤무사(33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실 외국 제작자들은 우리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보조 기술자로만 채용한다. 그래서 시키는 일만 수행하거나 번역 업무를 맡는다. 난 개인적으로 모로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하길 선호한다. 여기선 진짜 촬영기사로 일할 수 있다. 주급으로 1,200유로를 받는데 꽤 만족한다. 다만, 프랑스처럼 고용이 불안정한 산업에 적용되는 실업보험은 없다. 일이 없으면 수입도 없다.”

라바트에서 활동하는 프랑스계 모로코인 감독 소피아 알라위(33세)는 첫 장편영화 <아니말리아>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함자 벤무사를 포함해 우리가 만난 모든 젊은 감독과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인들은 달러 뭉치를 들고 팀 전체를 데려온다. 그리고 모든 포지션에 모로코 기술자를 이중으로 배치한다. 모로코 기술자는 직함도 있고 급여도 높지만, 진짜 업무가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모로코 기술자를 고용하고 싶어도 그들은 너무 높은 수준의 조건을 요구하며, 무엇보다 저예산 영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우리가 인터뷰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꼽는 문제점이 또 있다. 일류 모로코 기술자들은 일정이 외국 영화 프로젝트로 이미 차 있기 때문에, 국내 영화 제작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 또한, 집이 아무리 작아도 조금이라도 아름다우면 가격이 높아진다는 문제도 있다. 압델하이 라라키 감독은 “페스 지역에 있는 모로코 전통가옥 리아드에서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외국 프로덕션에서 한번 사용했던 집이라며 내가 제시한 금액의 5배를 불렀다”라고 말했다. 메디나(모로코 구시가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프로덕션이 한 번이라도 방문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영화 촬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루 100달러를 요구한다. 모로코 프로덕션 입장에서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이 시스템의 진정한 승자는 모로코 출신 책임 프로듀서들인 듯하다. 그들에게는 모로코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모로코영화센터(CCM)는 책임 프로듀서 자격을 유지하려면, 4년마다 모로코 장편영화 1편 또는 단편영화 3편을 제작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칼리드 사이디 CCM 사무총장은 “실제로는 그렇게 빡빡하게 굴지 않는다. 모로코 영화산업에 매년 수천만 유로를 투자하는 기업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34세의 왈리드 아유브 감독은 “책임 프로듀서들은 CCM이 요구하는 조건을 날림으로 처리한다. 이들은 CCM 지원금만 받고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단편영화 3편을 제작한 33세의 림 메즈디 감독은 “10년 전부터 알제리 영화도 흥미로워지고 튀니지 영화도 쇄신을 거듭했건만, 우리 모로코 영화는 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할까?”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외국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는다는 장점이 모로코 국내 영화 발전의 걸림돌이 돼버린 듯하다.

 

 

글·피에르 돔 Pierre Daum
기자, 특파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1,000디르함은 약 90유로에 해당된다.
(2) ‘A celebration of 100 years of foreign film production in Morocco – 1919-2019’, <CCM(Centre cinématographique marocain)>, www.ccm.ma
(3) ‘Rapport sur l’investissement dans le monde 2022’,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2022년 6월 9일, https://unctad.org 
(4) Marie Cegarra, ‘Mora, le négrier 노예상인 모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0년 11월호.

 

 

사우디아라비아가 차기 경쟁국?

 

모로코는 유명 외국 영화 촬영지로 튀니지와 오랜 경쟁관계였다. 안소니 밍겔라의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1978)의 일부 장면 등도 튀니지에서 촬영했다. 모로코인 프로듀서 사림 파시피리는 “2000년대부터 튀니지에서 촬영허가를 받기 어려워졌다. 특히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혼란에 빠진 튀니지를 찾는 사람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남아공도 오랜 경쟁국이었지만, 텔레비전 광고가 감소함에 따라 10년 전쯤 시장에서 후퇴했다. 칼리드 사이디 모로코영화센터(CCM) 사무총장은 “바다, 모래언덕, 사막 등 자연경관에 있어서 우리의 직접적인 경쟁국은 몰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모로코 맞은편에 위치한 카나리아 제도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매우 강력한 신규 경쟁국에 맞서야 한다. 바로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다”라고 말했다. 모로코 영화계에 두 나라는 악몽 같은 존재다. 2014~2022년 8년간 CCM 회장을 역임한 사림 파시피리는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높은 급여를 내세워 모로코 일류 기술자들을 꾀어낸다. 이 때문에 모로코는 4~5년 이후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몇 달 전,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의 사막 한복판에 길이 170km의 미래도시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모하메드 빈 살만 황태자가 계획한 이 미래도시는 ‘더 라인(The Line)’이라 불릴 예정이며, 영화 스튜디오를 비롯한 모든 것이 계획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이는 불공정한 경쟁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용을 최대 40%까지 환급해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현지 촬영비 전액을 환불해준다. 이들에게 돈은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나라 이미지다.” 2022년 12월, 아랍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 제작사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지다 영화축제에 대거 참석했다.(1) 

모로코도 다른 나라처럼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세금을 감면하고, 군대를 무료로 지원했으며, 비용 환급률은 2018년 20%에서 4년 동안 30%까지 증가했다. 경쟁의 끝은 어디일까? 경제학자 나지브 아케스비는 이렇게 답했다. “모로코는 외국 프로덕션에 재정적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돈을 써서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성과는 경제성뿐 아니라 상징성이 있다. 할리우드의 미디어 영향력을 활용해, 국제 경제시장에 모로코를 홍보하는 것이다.” 

이 글로벌 무역전쟁에 모로코 영화를 활용한다. 칼리드 사이디 CCM 사무총장은 “여성들의 상황, 동성애, 이슬람주의 반대 등 모로코는 개방적인 나라임을 서구에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빌 아우크 감독의 <머치 러브드>(2015)에 대해서는 “라마단 기간에 성관계 장면까지 찍었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는 마라케시 매춘을 다룬 영화로, 대중의 반발 때문에 상영이 중지됐다. 

한편 마리암 투자니 감독의 프랑스-모로코 합작영화 <더 블루 카프탄>는 살레 지역의 한 수공업자와 직원과의 동성애를 묘사했는데,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모로코 대표작으로 선정됐다. 칼리드 사이디 CCM 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모든 불안을 떨쳐버린 듯했다. “2022년 외국 프로덕션이 모로코에서 지출한 금액은 1억 유로에 달했으며,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의 목표는 3억 유로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현상이 CCM의 야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바로 기술의 발전이다. 카림 데바그 프로듀서는 “영국은 환상적인 특수효과를 낼 수 있는 그린 스크린을 스튜디오에 설치하고 있다. 클릭 몇 번에 모로코의 모래사막, 크사르(요새 도시), 오아시스를 재현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와르자우드’의 종말을 의미한다.  

 

 

글·피에르 돔 Pierre Daum
기자, 특파원

번역·이보미
번역위원


(1) Lamia Barbot, ‘Cinéma : les producteurs internationaux viennent chercher des financements à Djeddah(세계 영화 제작사들, 지원금 받기 위해 지다를 찾다)’, <Les Échos>, Paris, 2022년 12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