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려면?
윤리와 정치 사이에 놓인 생애 말기에 대한 논쟁
시민 자문기구 ‘생애 말기에 대한 시민 협약’이 ‘적극적 조력사’ 허용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프랑스 의회는 올 가을까지 구체적인 법적 테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미 10여 개 국가에서는 ‘적극적 조력사’를 허용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하지만 법제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의료 체계 보존 및 강화만이 진정한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간 전에 약을 먹었어. 자정이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나치 수용소 생존자인 79세 할머니 모드와 자살 시도가 취미인 청년 해롤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해롤드와 모드(Harold and Maude)> 속 대사다. 해롤드는 모드로 인해 삶에 대한 의욕을 찾았지만 모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971년, 할 애쉬비 감독은 캣 스티븐스의 노래가 흐르는 이 컬트무비를 통해 죽음을 선택할 자유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1974년, 프랑스 생화학자 자크 모노를 비롯한 3명의 노벨상 수상자는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이후 대부분의 선진국은 생애 말기 의료를 개선하는 법률을 채택해 고통을 완화 및 단축할 가능성을 도입했다. 많은 국가들이 법률 제정이나 판례를 통해 ‘소극적 조력사’를 합법화했다. 하지만 엄격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적극적 조력사’ 역시 허용하는 국가는 10여 개에 불과하다(지도 참조). 인구 고령화,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질병의 확대, 종교의 쇠퇴를 배경으로, 칠레, 뉴질랜드, 캐나다 퀘벡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단체, 의회, 법원에서는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력사 법제화의 선구자인 스위스는 1942년 이미 “이기적인 동기”가 없을 경우 “자살 조력”을 처벌하지 않는 형법을 채택했다. 21세기에 접어들자 스위스에서는 조력사 요청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조력사로 생을 마감한 스위스 국민의 수는 2000년 이전 100명 미만에서 2021년 1,391명(외국 국적 환자 221명은 제외)으로 증가해 전체 사망자의 1.9%를 차지했다.(1) 2001년 “환자의 요청에 의한 안락사 및 조력사”에 관한 법을 채택한 네덜란드에서도 안락사 및 조력사로 생을 마감한 환자의 수는 매해 증가해 2022년 전체 사망자의 5.1%에 해당하는 8,707명을 기록했다.(2) 2016년부터 안락사와 조력사를 허용한 캐나다는 시행 첫해 1,018명이 의사 조력사를 선택했으며 이 수치는 2021년 10배로 증가했다.
프랑스에서는 40여 년 전 출간된 『죽음을 바꾸다(Changer la mort)』라는 책이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3) 이후 정기적으로 실행된 여론 조사에서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은 개인의 선택 존중과 ‘적극적 조력’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프랑스 의회의 입장은 달랐다. 가장 최근의 안락사 및 조력사 법제화 시도는 2021년 4월 올리비에 팔로르니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환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과 주변 국가들 및 의료계의 변화로 프랑스 의회의 입장이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 184명으로 구성된 ‘생애 말기에 대한 시민 협약’(이하 ‘시민 협약’)에 일임했다. 시민 협약은 “현행 생애 말기 지원 체계는 의료 현장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합의에 도달했으며 자문위원 3/4이 “적극적 조력사” 허용에 찬성했다.(4) 지난 4월 3일, ‘시민 협약’의 제안을 수용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을 전에 새로운 법안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관련자와 단체의 입장 표명이 뒤따랐다. 적극적 조력사 허용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려면, 실질적 반대와 표면적 반대 의견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개인 또는 공동의 선택, 자유 또는 평등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연구 결과, 나이가 들수록 자살을 선택하는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대륙의 자살률은 65세 이상, 특히 75세 이상 인구에서 급격히 높아진다.(5) 시몬 드 보부아르는 50년 전 이미 이점을 지적했다. “노인 자살의 일부는 치료에 실패한 신경성 우울증의 결과지만 대부분 돌이킬 수 없고, 절망적이며,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6) 많은 이들이 조력사 합법화를 기다리지 않고 자살을 선택했으며, 또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개인의 자유로 간주하며 이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박스기사 참조). 폴 라파르그와 로라 마르크스(카를 마르크스의 딸) 부부, 앙드레 고르와 도린 고르 부부는 각각 1911년, 2007년 동반 자살을 선택했다.
어떻게 하면 적절한 조건 하에 개인의 선택을 보장할 수 있을까? 프랑스 경제사회환경위원회(CESE)는 무엇보다 노령자와 환자가 “사회와 타인에게 짐”이 된 느낌을 받지 않도록 공동체가 이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7) ‘시민 협약’의 자문위원 184명은 선언문 서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모든 환자, 특히 임종을 앞둔 환자를 지원하는 보건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3월 20일, 인권연맹, 교사연맹, 존엄사권리협회(ADMD), 국가정교분리운동위원회를 비롯한 총 18개 단체는 법적인 틀을 개선하기 위한 “진보주의 및 공화주의 동맹”을 형성했으며 4월 6일 “법적인 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완화 의료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8)
적극적 조력사, 소극적 조력사
1995년 이후 생애 말기에 관한 5개의 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모호함이 존재한다. 이 중 최초로 도입된 법은 2005년 4월 22일 프랑스 의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일명 ‘레오네티’법이다. 이후 프랑스는 ‘소극적 안락사’ 형태의 관행을 허용했지만 안락사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불치병 환자가 ‘무의미한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해 “임종 과정을 연장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레오네티’법 2조는 “불필요하고, 지나치며, 인위적인 생명 유지 외에 다른 효과가 없는” 일부 의료 행위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중보건법(L.1110-10조)은 “완화 의료”의 목적을 “통증 및 정신적 고통 완화”에 제한했다. 환자의 명시적 요청이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의해 치료 행위를 중단하면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하지만 ‘과잉 치료’와 ‘안락사’ 사이의 중간을 추구한 프랑스의 접근법은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2012년 12월 디디에 시카르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를 비롯한 다수의 보고서는 완화 의료 접근성 문제를 고발했다. 시카르 보고서 발표 몇 달 전 대선 후보 시절의 프랑수아 올랑드는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의료 조력”을 허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하지만 2016년 2월 2일 채택된 일명 ‘클래이-레오네티’법에서도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이 법은 완화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구속력과 대리 의사 결정권자의 권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클래이-레오네티’법 3조는 매우 특정한 경우에만 “강한 진정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해 사망 시점까지 의식불명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데 그쳤다.
강한 진정제를 지속적으로 투입한 상태로 사망한 환자의 수에 대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CESE는 “모호하고 심지어 위선적인” 일부 용어 때문에 “해석의 문제, 즉 남용의 위험”이 있다는 의사들의 우려에 주목했다. CESE는 또한 ‘클래이-레오네티’법은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혼란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환자 스스로 안락사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강제로 안락사 당할까봐 두려워 마취 자체를 거부하는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시민 협약’은 강한 약물을 투여해 진정상태를 지속시키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적용이 쉽지 않고 국내 관행이 일치하지 않아 더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상황”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는 “중증 불치병으로 임종이 임박한” 환자의 경우 현행법 체계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9) 하지만 그 한계 역시 인정하며 임종이 임박하지 않은 환자의 앞날을 결정할 법안을 준비 중인 의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회복 불능 상태에서 엄청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가 자신의 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고, 다른 이들도 이를 지켜보지 않기를 바라는 정당한 요구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는가?”
완화 의료 혹은 적극적 조력사
2022년 대선에서 이 문제에 대한 우파와 좌파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발레리 페크레스, 마린 르펜, 에릭 제무르, 니콜라 뒤퐁에냥은 완화 의료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안 이달고, 나탈리 아르토, 장뤽 멜랑숑, 야니크 자도, 필리프 푸투, 파비앵 루셀은 조력사 법제화를 주장했다. 장 라셀과 에마뉘엘 마크롱은 대대적인 공개 토론 또는 ‘시민 협약’을 통한 논의를 제안했다. 완화 의료의 부실성과 개선 필요성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정부는 공공 보건 전문가인 프랭크 쇼뱅 교수에게 완화 의료망 구축 10개년 계획 수립을 맡겼다. 하지만 일부 의료진, 대부분의 우파 의원, 프랑수아 브라운 전 보건장관을 비롯한 일부 마크롱 지지자들은 현상 유지를 원한다. 상원에 제출된 한 보고서는 이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완화 의학은 1990~2000년대에 큰 발전을 이룩했다. 프랑스 국민이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서 임종을 맞는 것은, 전국적인 완화 의료망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가 나아갈 길은 적극적 조력사 합법화가 아니라 완화 의료 서비스망 구축이다. 적극적 조력사는 만족스러운 의료 서비스의 공급 부족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 될 위험성이 크다.”(10) 프랑스 주교회의 역시 완화 의료에 초점을 맞추는 “프랑스식 방식”을 옹호하며 “가장 바람직한 것은 죽음에 대한 적극적 조력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적극적 조력이 아닐까?”라고 질문했다.(11)
프랑스 완화의료지원협회(SFASP)도 같은 입장이다. 클레르 푸르카드 SFASP 회장은 “인위적 임종의 합법화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모든 국민이 프랑스 전역에서 완화 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정한 현행 법률을 제대로 적용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한 삶을 누릴 기본권을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2) 반면, ADMD가 이끄는 간병인 단체는 “길고 느리며 고독한 임종 과정”을 강요하는 현 체계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환자 스스로 받아들이고 친지 및 간병인이 함께하는 빠른 임종”을 비교하며 “의식과 의사결정 능력이 있는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의료 서비스는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조력사를 요청할 때 이를 허용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13)
‘시민 협약’은 생애 말기 지원 서비스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했다. ‘시민 협약’은 “누구나 어디서든 접근 가능한 완화 의료 서비스 제공”을 위한 방안들을 제안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홍보 캠페인, 의료 서비스 개선, 재택치료, 전국적인 의료망 구축, 간병 인력 교육, 예산 할당 등을 제시했다. ‘시민 협약’은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의사와 자유 의지가 우선한다”는 기본 원칙을 인정하며 “현행 제도의 완전한 적용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안락사 또는 조력사
프랑스 국가윤리자문위원회(CCNE)는 2022년 9월 발표한 권고문에서 “임종이 임박하지는 않았지만 치료로 완화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일부 중증 불치병 환자의 경우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 비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14)라고 인정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면 새로운 법적 틀부터 설정해야 한다. “의사는 치명적인 약물을 투여해 고의적으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거부하는 프랑스의사협회도 이제 조력사의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15)
미국 오리건주는 1997년 “의사가 처방한 치사량의 약물을 환자가 직접 복용 및 주입하는 임종 방식”을 허용하는 법률을 채택했다.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비롯한 다수의 국가가 오리건주의 뒤를 따랐다. 환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결정을 번복할 수 있다. 이 법률 덕분에 환자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의료진은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 적극적 조력사를 선택한 오리건주의 환자 1/3은 처방된 약물을 투여하지 않았다. 실행에 옮기기 전에 사망했거나 결정을 번복했기 때문이다.(16) 반면 이 법은 신체적으로 약물을 자가 주입할 능력이 없는 환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CCNE는 “다른 환자에게는 조력사를 허용하면서 신체적 핸디캡이 있는 환자의 고통 완화는 거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고 질문했다.
벨기에는 안락사만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몇 년 전부터 안락사와 조력사 모두 허용하는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캐나다 등에서는 대부분의 환자가 의료진에 의한 약물 투여를 선호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 협약’ 내부에서도 입장 차이를 보였다. 자문위원의 40%는 두 가지 적극적 조력을 모두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10%는 조력사만, 3%는 안락사만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18%는 모든 적극적 조력에 반대했으며 28%는 조력사와 더불어 특별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중요성
오랜 세월, 의사들은 직업윤리를 앞세워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동안 여러 법을 거치며 환자에게 부여된 권리는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적극적 조력사를 허용하려면 여러 법률적 합의가 필요하다. 형법상 간병 인력의 환자 임종 조력을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직업적 양심을 인정하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 환자는 반복적으로 의사를 피력해야 하며 환자의 의사는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외부의 압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환자는 분별력이 온전한 상태여야 하며 질병 악화나 사고로 분별력이 손상된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대리 의사 결정권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현재 프랑스 국민 5명 중 1명 미만(65세 인구에서는 1/3)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으며 57%는 이 서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17)
의학적 소견의 합의 수준, 제도 모니터링 방식, 이의 제기 방법 등 일부 세부 제도에서는 국가별 차이가 존재한다. 모든 국가가 치유 및 고통 완화 불능을 조건으로 정했지만 기대 수명 예측은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쟁의 대상인 조건들도 있다. 관련 환자 수가 많을수록 더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치매 환자 일부에게 안락사를 허용하는 네덜란드의 경우 2022년 안락사로 사망한 환자 중 치매 환자의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안락사를 신청한 환자들은 대부분 암, 신경계 혹은 복합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었다. 2014년 안락사 연령 제한을 전면 철폐한 벨기에에서 지금까지 안락사가 허용된 미성년자는 4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모두 매우 특수한 질환을 앓고 있었다.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미성년자 안락사 허용 여부 및 치료 불가 중증 신경인지 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의 안락사 사전 신청 가능성에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18)
고령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과 비경제활동 인구에 대한 폄하를 방지하기 위한 더 복합적인 보호막 구축이 필요하다. CCNE는 “노령층이 인간 생명 경시 풍조에 동화돼 스스로를 사회에서 배제할 수 있다”라고 경고하며 “모든 사회 구성원에 대한 연대와 형제애라는 책임감으로 이 용납할 수 없는 추세에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죽음에 대한 질문은 지난 7월 11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유명 작가 밀란 쿤데라의 『이별의 왈츠(La valse aux adieux)』를 관통하는 주제다. 이 작품 속에서 야쿠프는 조국을 떠나기 전날 올가에게 푸른 알약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건 내게 원칙의 문제야.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되는 날 엄숙한 예식을 거쳐 독약을 받아야 해. 자살을 부추기기 위함이 아니야. 반대로 더 큰 확신과 평온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야. 자신이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음을 알면서 살기 위해서지.”(19)
글·필리프 데캉 Philippe Descamp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기자
번역·김은희
번역위원
(1) ‘Causes de décès 사망 원인’, 스위스연방통계국, 2023년 4월 17일자 자료, www.bfs.admin.ch
(2) ‘Jaarverslagen 2022 2022년 연보’, Regionale Toetsingscommissies euthanasie, www.euthanasiecommissie.nl
(3) Léon Schwartzenberg & Pierre Viansson-Ponté, 『Changer la mort 죽음을 바꾸다』, Albin Michel, Paris, 1977.
(4) ‘Rapport de la Convention citoyenne sur la fin de vie 생애 말기에 대한 시민 협약 보고서’, 프랑스 경제사회환경위원회(Conseil économique, social et environnemental), 2023년 4월, www.lecese.fr
(5) ‘Prévention du suicide, l’état d’urgence mondial 자살 예방. 전 세계적 비상사태’, 세계보건기구(WHO), Genève, 2014.
(6) Simone de Beauvoir, 『La Vieillesse 노년』, Gallimard, Paris, 1970.
(7) ‘Fin de vie : faire évoluer la loi? 생애 말기. 법 개정의 필요성?’, 프랑스 경제사회환경위원회(Conseil économique, social et environnemental), 2023년 5월, www.lecese.fr
(8) ‘Le Pacte progressiste fin de vie salue les travaux de la Convention et appelle le gouvernement et les parlementaires à prendre leurs responsabilités 진보적 생애 말기 협정은 ‘시민 협약’의 결정을 환영하며 정부와 의회가 책임을 다 하길 촉구한다’, 존업사권리협회(Association pour le droit de mourir dans la dignité), 2023년 4월 6일, www.admd.net
(9) ‘Favoriser une fin de vie digne et apaisée : répondre à la souffrance inhumaine et protéger les plus vulnérables 존엄하고 평화로운 생애 말기: 비인간적인 고통에 대한 대응과 취약계층 보호’, 프랑스 의학아카데미 권고문, 2023년 6월 27일 총회, www.academie-medecine.fr
(10) Christine Bonfanti-Dossat, Corinne Imbert & Michelle Meunier, 사회보장위원회 위임 보고서, ‘Fin de vie : privilégier une éthique du soin 생애 말기: 간병 윤리 강조’, 보고서, 상원, 2023년 6월 28일.
(11) 프랑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선언문, 2022년 9월 24일.
(12) ‘Fin de vie, les données du débat 생애 말기를 둘러싼 논쟁의 자료’ SFAP, 2023년 3월, https://sfap.org
(13) ‘Fin de vie : ‘‘Nous, professionnels de santé, disons haut et fort que l’aide médicale à mourir est un soin’’ 생애 말기: “의료진은 의료조력사도 일종의 치료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르몽드>, 2023년 2월 6일.
(14) ‘Avis 139 – Questions éthiques relatives aux situations de fin de vie : autonomie et solidarité 권고문 제 130호-생애 말기에 관한 윤리적 문제: 자율성과 연대’, 2022년 9월 13일, www.ccne-ethique.fr
(15) ‘Fin de vie et rôle du médecin 생애 말기와 의사의 역할’, 국립의사협회(Conseil national de l’Ordre des médecins) 2023년 4월 1일, www.conseil-national.medecin.fr
(16) Oregon Health Authority, ‘Oregon Death with Dignity Act, 2021 Data Summary’, Salem, 2022년 2월 28일.
(17) ‘Les Français et la fin de vie 프랑스인과 생애 말기’, BVA, 2022년 12월 8일, www.bva.fr
(18) ‘Rapport annuel d’activités du 1/04/21 au 31/3/22 2021년 4월 1일~2022년 3월 31일 연례 활동 보고서’, 생애 말기 의료 위원회, Québec.
(19) Milan Kundera, 『La Valse aux adieux 이별의 왈츠』, Gallimard, 1976.
“나는 선택할 자유를 원한다”
2022년 12월 7일, 나는 집 근처 라자르자트(La Jarjatte) 스키장(드롬(Drôme)주 소재)에서 그해 겨울 첫 산악 스키를 탔다. 도착 지점을 코앞에 두고 넘어진 나는,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구조 헬기가 출동했고 나는 가프를 거쳐 마르세유로 이송됐다. 사소한 낙상도 삶을 순식간에 바꿔버릴 수 있다. 나는 마비된 몸에 갇힌 포로 신세가 됐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휩싸였다. 모든 빛이 사라지고 암흑이 나를 뒤덮는 듯했다. 흡수되지 않은 혈종으로 인한 척수 압박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지난 9개월 동안 의사들은 미미하지만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마비된 몸에 갇혀버린 나는 의사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너무 잔인했다. 나는 ‘의식이 있는 식물인간’이 돼버렸다. 이제 내 몸에서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오직 뇌뿐이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듯하다. 나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기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일 만큼 나는 강하지 않다. 사고 이틀 후, 마르세유 병원에 입원 중이던 나는 “최대한 빨리 단식투쟁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20년만 젊었다면, 내 생각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79세인 나는 이미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생존에 불과한 삶에 적응할 여력이 없다.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다. 이것은 정말 개인적인 결정이다. 내 아들 야니크는 SNS에서 친구 그룹을 만들어 간병 일정표를 짰다. 100여 명의 사람들이 이에 동참했다. 당시 알프드오트프로방스(les Alpes-de-Haute-Provence)의 의료시설에 6개월간 입원 중이던 나에게,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매일 한 명씩 찾아와 식사를 챙겨줬다. 심지어 사부아 퐁뒤를 만들어 온 사람도 있었다! 한번은 음악가 친구들이 찾아와 시설 내 모든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 가장 내밀한 대화도 나눴다. 내 친구들은 내 결정을 받아들였다. 누구도 내 마음을 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나는 가족과도 내 결정을 의논했다. 내 아내와 두 자녀는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야니크는 내게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다. 지난 몇 달 동안 해왔고 지금도 순조롭다. 우리는 전보다 가까워졌다. 나는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선택이라면,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8월 초,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사회와 내 지인들은 전적으로 나를 돌봐줄 준비가 돼 있고 실제 매일 돌봐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항상 복지국가와 약자와의 연대를 옹호해 왔다. 병원 및 재활 시설 직원들과 친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내 ‘용기’를 격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 결정은 비겁한 선택일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이 문서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35년 전에 암에 걸린 적이 있다. 예후가 좋지 않은 악성 종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암에 맞서 싸웠다. 그때는 자녀들이 아직 어려 독립을 하기 전이었다. 또 나는 지역 생산자들과 함께 양모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암과 싸울 이유가 충분했다. 다른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같은 사람, 같은 시련이라도 직면한 시기에 따라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 매우 강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내게 자유는 매우 소중한 가치였다. 지금 나는 바로 그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다른 사지 마비 환자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겁쟁이이고 쉬운 길을 택했다고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청년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 선택을 옹호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자유에 대한 논의가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종교의 영향력 때문이다. 내 이성은 더 높은 의식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 자랐고 첫 영성체도 받았다. 하지만 산에 올라 하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을 보며,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가 없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선택권을 가질 때가 됐다” 왜 이 글을 기고하는가? 프랑스 사회, 특히 법을 바꾸기 위해서다. 대통령은 많은 약속을 했지만 실현된 것은 전혀 없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나는 ‘생애 말기에 대한 시민 협약’의 논의를 지켜봤다. 이들의 논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변화를 주저하는 것은 의료계다. 일부 의료진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내 입장을 전적으로 이해하는 의사들과도 의견을 교환했다. 올해 가을,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프랑스의 상황이 변한다면 더 기다릴 의향도 있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만약의 가능성도 남겨뒀다. 하지만 솔직히, 내 결정은 변한 적이 없다.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벨기에나 스위스행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방법을 모르거나 재정적 제약으로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벨기에와 스위스의 조력사 비용은 각각 약 6,000유로, 1만 3,000유로에 달한다.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다! 우리의 기본권은 명백한 불평등을 겪고 있다. 내 계획 실행의 첫 단계는 벨기에 의사와의 화상 회의였다. 다음 단계는 벨기에 현지로 가서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거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국가는 결국 안정 장치를 동반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살아왔다. 황량한 외딴 산골에 정착한 것은 내 선택이었다. 농사를 지을 때도 나는 생산성 지상주의, 농약 사용, 집약적 농업에 강하게 반발했다. 나는 농민연맹의 회원이었으며 노조 활동의 한계를 느낀 후에는 정치에 몸담아 내 마을에서 3선 시장을 역임했다. 자화자찬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모든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자유를 위한 내 투쟁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우리는 아직 이 자유를 쟁취하지 못했다. 과거 낙태 합법화 이전 부유한 여성들이 영국행을 선택했듯이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프랑스 주변국에서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제 모두가 이런 선택권을 가질 때가 됐다.
글·장클로드 가스트 번역·김은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