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을 싫어하는 프랑스 언론귀족

프랑스, 17년 만의 정권 교체

2012-05-14     피에르 랭베르

대선 유세에 전운이 감돌았다. 장뤼크 멜랑숑이 촉구한 '시민봉기'가 실제로 일어났거나, 니콜라 사르코지가 호출한 '침묵하는 다수'가 분노했기 때문은 아니다. '반란'을 일으킨 건 모든 대선 후보에게 동등한 발언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언론 규정에 반대하는 '언론 귀족'들이었다. 라디오방송 <프랑스 앵테르>에서 파트리크 코엔은 2007년 대선을 "끝도 없는 민주주의적 수다로 얼룩진 선거였다"고 회고하며 분노감을 표시했다. <RTL>과 <카날 플뤼스>의 스타 인터뷰어 장 미셸 아파티는 지난 1월 20일 <LCI>에서 마치 자신이 라바숄(19세기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이라도 된 양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나는 반란을 원한다. 기자들이 헌법위원회 건물 앞으로 몰려가서 시위를 벌여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 나서서 단식투쟁이라도 해야 한다."

<유럽1> 보도국장 아를레트 샤보는 "감히 말하건대 이 모든 게 비민주적이다"라고 일갈했다(Lepoint.fr, 2월 6일). 이날 라디오·텔레비전 방송 책임자 9명(<BFM TV> <RMC> <BFM 비즈니스> <RTL> <유럽1> <프랑스 퀼튀르> <프랑스 블뢰> <프랑스 앵테르> <프랑스 앵포>)은 헌법위원회 위원장에게 발언권 보장 기간을 5주에서 2주로 단축해줄 것을 요구했다.

민주주의 원칙의 적용을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의 싸움이 부각되지 않았다면 이 '뉴스 장사꾼'들의 요구는 스피리츠 제조와 관련된 세제 개혁을 요구하는 증류업자들의 집단 청원 같은 모양새가 돼버렸을지 모른다. 투표로 선출된 입법자와 언론주주들이 임명한 편집책임자 중 누가 '불필요한 후보자'(아파티는 자크 슈미나드 후보를 그렇게 불렀다)를 솎아내는 기준을 정할 것인가? 의견을 전파하는 거대 수단에 대한 접근권은 형평성에 맞춰 보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완전히 공평하게 보장해야 하는가?

형식을 둘러싼 싸움은 내용과도 관련을 맺기 마련이다. 프랑스 방송위원회(CSA)는 대통령 선거 유세와 관련해 세 시기를 구분하고 있다. 첫 번째 시기에는 형평성 원칙에 따라 각 예비 후보자의 발언 시간 비율이 과거 성적과 여론조사 결과를 참조해 결정된다. 이를테면 형평성 원칙은 가장 널리 퍼진 관점을 채택한다. 반면 일단 공식 유세가 시작되면(올해 대선의 경우 4월 9일)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공평성 원칙은 약세를 보이는 후보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부여한다. 두 기간 사이에는 양자를 절충한 방식이 적용된다. 각자는 동일한 발언 시간을 보장받지만 대신 서로 다른 방영 시간대를 배정받는다. 가령 긴축과 관련된 토론은 저녁 8시, 계급투쟁과 관련된 발언은 새벽 3시에 내보내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언론사 사장들은 형평성 원칙을 지킨다.

인쇄매체 언론사들은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지만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방송사들의 요구에 동조하고 있다. <르몽드>를 비롯해 상당수의 지역 신문사, 공영방송, <TF1> 방송 관계자들은 이 규정이 "기자들과 발행인들의 개인적·집단적 책임감을 부정한다"며 입을 모아 비판한다(<르몽드> 2012년 3월 14일).

'공정성 원칙'의 운영

이런 논쟁은 대서양 건너편에서도 별로 낯설지 않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49년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주요 사회적 이슈를 다뤄야 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각각의 의견을 소개할 의무를 지게 됐다.(1) 오랫동안 이 규정 덕분에 가장 진보적인 논자부터 가장 보수적인 논자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기상천외한 주장을 펴는 이들까지 포함된 소수자의 발언이 전파를 탈 수 있었다. 1969년 대법원은 "청취자와 시청자의 권리가 매체의 권리에 우선한다"면서 이 규칙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1987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부는 공정성 원칙을 폐기한다.

프랑스에서는 발언 기회의 공평성 원칙이 유지되고 있다. 언론 귀족들은 차마 규정을 어기지는 못하고 대신 자신들의 선거 드라마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 후보자들을 경멸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들에게 선거란 2명의 주연과 몇 명의 조연·단역이 출연하는 드라마에 불과하다. 지난 4월 12일 <프랑스2>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말과 행동>이 끝나고 출연자들에 대해 논평하는 자리에서 <르푸앵> 발행인 프란츠올리비에 지스베르는 "몇몇 후보는 안 나와도 될 뻔했다"고 평했다. 그는 반자본주의신당(NPA) 후보 필리프 푸투는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했고, 노동자투쟁당(LO) 후보 나탈리 아르토의 발언에 대해서는 "등골이 오싹하다"는 표현을 썼다. 녹색당의 에바 졸리 후보에 대해서는 "완전한 캐스팅 실패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으니 상관없긴 하지만"이라고 쏘아붙였다. 좌파전선 후보 장뤼크 멜랑숑은 어땠을까? "그의 문제는 경제정책에 있다. 완전히 미친 주장을 한다." 반면 프랑수아 올랑드(사회당)에 대해서는 "노련하고 지적"이며, 프랑수아 바이루(민주운동당)는 "열정적"이라고 평했다. 당연히 니콜라 사르코지를 빼놓고 넘어갈 순 없다. 지스베르는 그에 대해 한마디로 "괜찮다"고 평했다. 만약 주요 후보 3명과 언론인 30명만 출연해도 된다면 공인들의 삶은 얼마나 편할 것인가! 몇 주 전 지스베르는 <르푸앵> 3월 1일자에 '만약 프랑스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면?'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한 터였다.

무자격 정치 발언도 방송해야 하나

생방송이 거듭되면서 후보자를 멸시하는 적나라한 발언들이 전파를 탔다. <BFM-TV>가 공평성 원칙 때문에 노동자투쟁(LO) 회합에서 한 당원이 발언하는 장면을 내보내자 기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20초 정도 긴장을 풀어도 되겠죠" 하더니, 발언자의 외모를 놀려대며 박장대소했다(4월 18일). <프랑스 앵테르>의 파스칼 클라르크는 고통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왜 자크 슈미나드 후보의 말을 듣기 위해 내 인생의 5분을 낭비해야 하는가. 그 5분이 내게는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방송위원회(CSA) 규정이 어떠하든 간에 내 기분은 변함이 없다. 내 기분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클라르크는 자신의 '개인적 기분'에 맞지 않는 후보들의 발언을 뒤죽박죽 조각난 채로 이어붙여 방송 말미에 내보냈다. 그는 "다원주의 시간 편성 원칙 때문에 짜증이 난다"고 고백했다. "밤에 악몽을 꿀 정도다. 4월 9일부터는 더 심할 것이다. 완전히 공평해야 하니까."

스타 정치인들에 비해 언론에 노출되는 모습에 별 구애를 받지 않는 군소 후보들은 유명 기자들에게 큰 기대를 안 하는 만큼 그들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공평성 원칙 때문에 유명 기자들은 적당한 타협 속에서 진행될 수도 있는 인터뷰를 싸움처럼 치러야 할 때도 있다. 4월 13일 <카날 플뤼스>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르 그랑 주르날>에 출연한 니콜라 뒤퐁애냥(공화국세우기)은 사회자 미셸 드니조에게 보수를 얼마나 받는지 물었다. 그가 대답을 거부하자 뒤퐁애냥은 "당신은 프랑스 국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신이 얼마를 버는지 대답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많이 벌기 때문이다"라고 쏘아붙였다. 사회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조금 뒤 뒤퐁애냥은 이번엔 아파티 쪽을 가리키며 "호주머니에 잔뜩 챙겨넣는 저런 인간들"이라고 질타했다. 필리프 푸투(노동자투쟁)는 <TF1>에 출연해 시청자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부자라면, 여러분도 잘 아는 분이 계시죠. 이 방송사 사장님이신 마르탱 부이그 말이에요. 재산을 25억 유로나 소유한다는 건 용납이 안 됩니다. (중략)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의 소유권을 박탈해야 합니다"라고 말해, 아나운서 클레르 샤잘의 얼굴을 사색으로 만들어놓았다. 모두 공평성 원칙이 없다면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언론 자유, 여론 자유, 방송 자유

표현과 뉘앙스의 자유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언론 귀족들은 이 자유가 다른 이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장뤼크 멜랑숑이 <르누벨 옵세르바퇴르>와 <렉스프레스>가 자신에게 가한 비방에 대해 반격에 나서자, <렉스프레스> 편집장인 르노 르벨은 지난 4월 12일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언제쯤 우리는 이 불합리한 공평성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원칙 때문에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자격 없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내보내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르벨은 멜랑숑이 앞으로 품위를 지키고 고분고분 행동하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경우 자신의 동료들이 그의 무례함에 대해 벌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1차 투표가 끝나고, 우리 중 몇몇이 그의 언행을 기억한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제도적 메커니즘 자체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정치 경향을 제한하는 마당에- 권력 위임을 인정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 성향의 후보는 출마 자격이 없다- 언론인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선거 보도는 편협해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자유와 여론의 자유 사이의 모순 앞에서 법은 대규모 언론사들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다원주의를 다소 확장한다. 흥미로운 패러독스다. 니콜라 사르코지(4월 19일)뿐 아니라 방송위원회 내부에서도 비판하고 있는 공평성 원칙은 과연 차기 대통령 임기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 정치가 광고를 통해 이뤄지는 미국에서 2011년 8월을 기해 공정성 원칙 관련 규정이 공식적으로 삭제됐다. FCC는 공정성 원칙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규정했다. 프랑스 언론이 공평성 규정을 비판하는 시각과 별다르지 않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1) Steve Rendall, 'The Fairness Doctrine', <Extra!>, 뉴욕, 200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