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민족주의자, '반동적'인가?

Spécial 중산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012-05-14     알랭 그레슈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식민지가 된 지역에서 노동자계급과 '중산계층'의 동맹은 19세기 유럽과 다른 논리에 따라 이루어졌다. 노동자계급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이 지역에서 맹아적 사회주의와 외국 점령자들에 맞선 저항운동은 주로 종교적·전통적 지도자들이 이끌었다. 유럽인들은 (사회주의자를 포함해) 자주 이들을 '진보'와 '문명'에 적대적인 '봉건주의자', '반동'으로 간주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1920년 9월 바쿠에서 열린 제1차 동방인민회의에 아랍·쿠르드·터키·인도·페르시아·중국 등지에서 온 2천여 명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소련 공산당 지도자 그리고리 지노비예프는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참여하는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을 깨닫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중략) 지금까지 자본주의 세계가 한 무리의 가축처럼 간주하던 인민, '열등하다'고 무시하던 인민은 자본가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일해왔다. 자본가들은 이들이 영원히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믿었지만 이들은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슬로건은 이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와 억압받는 인민이여 단결하라!'가 되었다.

그러나 이 슬로건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식민지배를 받는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수적으로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베르사유조약에 이의를 제기하는 터키 지도자 무스타파 케말과 협력해야 하는가?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 협상해야 하는가? 민족 자본가들과 동맹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타협을 비판해야 하는가? 갈수록 모스크바의 전략에 종속되면서 코민테른은 우물쭈물 망설이는 일이 잦아졌다. 때로는 극적으로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중에 '제3세계'로 불리게 될 지역에서는 사회문제보다 반(反)식민 투쟁을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형성됐고, 인구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몇몇 지역에서는-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반도, 중국 등- 공산주의자들이 반식민 투쟁을 선도했다. 이들은 '민족해방'이라는 목표에 빈농을 위한 농업 개혁, 교육과 보건을 기본 내용으로 하는 사회 변혁 계획을 결합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부르주아지가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다. 공산주의 세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고 때로 탄압받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는- 알제리, 이집트 등- 군대(반공적인 성향)의 힘을 등에 업고 혁명을 외치는 민족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뒤 국부 회수, 교육·보건 제도 확대 등 기본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독립을 쟁취하고 반세기가 지난 뒤,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도 있지만 과거 식민지배를 받은 국가에서는 카를 마르크스가 묘사한 19세기 후반의 영국과 같은 '전형적인' 사회구조가 자리잡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고, 인포멀 노동이 지배적이고, 농촌 인구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깝다. 이 국가들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됨으로써 1970년대보다 훨씬 대외 의존적이다. 이 맥락에서 시장 지배에서 벗어나고 좀더 평등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어떤 정치적 동맹이 필요할까? 그 답을 찾는 일이 앞으로 남겨진 과제다.

글•알랭 그레슈 Alain Gresh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주요 저서로 <근동 아시아의 100가지 해법>(Cent Clés du Proche-Orient·Hachette·Paris·2006) 등이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