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과 중산층의 역할
Spécial 중산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010년 12월 17일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자살한 뒤, 튀니지의 시디부지드에서 항의시위로 촉발된 아랍폭동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독재체제에 저항하는 대규모 민중운동이 발생할 때, 사회의 최고 빈민 계층과 상당수 중산계층이 흔히 서로 연합한다는 것이다.
임시직으로 비참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점상인 부아지지는 '아랍의 봄'에 참여한 항의시위대의 전형적인 단면을 보여주었다. 항의시위대는 수백만 명의 젊은이와 청소년으로 구성됐는데, 이들은 일자리를 기다리면서 궁여지책으로 삶을 이어가는 '감춰진 실업자'이거나, 통계에 잡힌 공식적인 실업자 범주에 속한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이런 실업자들 외에 조직화되거나 비조직적 임금노동자층이 민중운동에 합세했다. 두 나라는 아랍의 봄에 직접적 선결 조건으로 드러난 노동운동이 이미 일어난 곳이다.
바레인·이집트·리비아·시리아·튀니지·예멘처럼 대중봉기가 발생한 나라에서는 사회의 빈곤계층과 중산층이 연대했다. 장인이나 소매상인인 전통적 자영업자, 변호사·기술자·의사 같은 자유직업을 가진 현대적 노동자, 그리고 고등교육 종사자, 기자, 화이트칼라 노동자(공무원, 무역·재정 분야 피고용인), 중소기업인 같은 유사 임금 계층이 중산층에 포함된다.
특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체제의 공포 분위기가 강요되지 않아 어떤 시위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던 계층에서, 시위가 벌어지기 전인 2000년대에 이미 정치·사회적 투쟁이 연이어 발생했다. 특히 이집트에서 정치·사회적 투쟁은 노동자 계층에서 일어났는데, 2006∼2009년 이집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노동자 파업이 발생했고, 2011년 1월 25일의 혁명(1)까지 이어졌다. 튀니지의 정치·사회 투쟁은 가프사의 탄광 지역에서 발발한 2008년의 폭동(2)과 더불어 실업과 족벌주의 문제와 더 연관돼 있었다.
또한 두 나라에서는 같은 시기 동안 변호사와 기자들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유효한 여러 행동을 전개했다. 변호사나 기자는 시위의 중요 매개체였고, 그 직업의 구성원들이 정치투쟁에 직접 참여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호스니 무바라크의 선거 조작과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승계시키려는 무바라크의 계획에 반대하는 운동인 이집트 '키파야'('충분하다'는 뜻으로, 무바라크가 오랫동안 충분히 집권했으니 이제 물러가라는 무바라크 퇴진 운동) 운동에 참여했다.
인터넷에 긴밀히 연결된 중산층 출신의 젊은이들 역시 최근 몇 년간의 항의시위에서 최일선에 서 있었다. 이 젊은이들은 여러 아랍 국가들이 탄압하는 인터넷 블로거(3)이거나, 산업도시 마할라 알쿠브라의 직물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2008년 4월 6일 조직된 이집트 청년운동 단체 회원이다.
게다가 모로코에서 이집트·시리아를 거쳐 바레인까지, 중산층들은 '사회 네트워크'와 '정치운동'이라는 두 가지 운동조직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사회 네트워크가 처음 몇 달 동안 봉기가 '서구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실을 과장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빈곤층 상당수가 인터넷 사용자고, 이들은 가정이나 사이버 카페에서 접속하고 있었다. 또한 시위자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소통했다.
시위에 집중한 정치운동 세력은 주로 중산층으로 구성돼 있다. 정치운동 세력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은, 튀니지의 엔나다(Ennahda)처럼, 무슬림형제단에 소속돼 있다. 정치운동 세력의 지도부는 카이라트 알샤테르처럼 강력한 자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부유한 사업가인 알샤테르를 이집트 대통령 선거의 유력 후보로 지명했다.
우리는 여기서 중산층이 수행하는 정치적 역할의 불변성을 다시 보게 된다. 중산층의 성분 때문에, 중산층은 장기적으로 보아 동일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을 것이다. 중산층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두 축(빈곤층과 부유층) 사이에서 나뉘는 경향이 있다. 모로코와 시리아에서 무슬림형제단의 구성원들은 중산층과 사업가 부르주아라는 이질적 블록으로 구성돼 있다. 대중운동은 일단 초기의 민주적 단계를 지나게 되면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처럼 분열될 것이다. 정치조직은 결국 '직종별'로 모인 임금노동자들이 사회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데 반대할 것이다. 반면 이 정치조직들에 가입한 젊은이들을 포함해 중산층 출신의 상당수 젊은이들은 혁명을 계속해갈 것이다.
글•질베르 아슈카르 Gilbert Achcar 영국 런던대학 아시아·아프리카학 교수. 영국 런던대학 아시아·아프리카학 교수. 2012년 말 신바드악트쉬르 출판사에서 '아랍의 봉기'에 관한 책을 낼 예정이다.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주요 역서로 <성의 역사> <방법서설> 등이 있다.
(1) Raphael Kempf, ‘이집트 봉기에서 볼 수 있는 노동운동의 뿌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3월호 참조.
(2) Karine Gantin, Omeyya Seddik, ‘튀니지 광산 노동자들의 폭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7월호 참조.
(3) Smain Laacher, Cedric Terzi, ‘마그레브의 블로거들은 피곤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2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