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산층,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Spécial 중산층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실업자와 고위 간부, 상인과 교사. 블라디미르 푸틴에 반대하는 이 시위자들은 동일한 범주로 분류될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 대통령직에 재선되기 며칠 전(2012년 2월 29일),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3개월 전부터 줄곧 길거리를 메우고 있음에도 "가까운 미래에 중산층이 사회의 과반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절대권력을 가진 특권계급과 소외된 무산계급 사이에서 중산층이란 계층은 정치 개혁의 중요한 '고객'임이 드러났다. 1992년부터 이 계층은 옛 소련 이후의 낙원을 지향하는 과도기의 열렬 지지자들이 상상하는 세계 속에서 이미 이중적 모습을 띠었는데, 대립하는 사회집단들 사이의 충돌을 막아주는 안정계층으로 간주됨과 동시에 새로운 정치체제의 중심적 지주로 여기게 되었다. 그로부터 중산층의 존재성과 중요성은 러시아 사회의 화두가 돼왔다. 적어도 잡지와 TV 매체에서는 그랬다. 199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가상의 불확실한 계층으로서 중산층은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푸틴이 2000년 다시 권력의 중심에 돌아오면서 중산층 복원의 희망이 되살아났고, 이후에는 신문과 잡지에서도 중산층에 대한 취재 열기가 가열됐다.
정부에 반대하는 최근의 시위들은 이 중산층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모스크바에서만 수만 명이 결집한 여러 시위 현장에서 '이놈이나 그놈이나 다 비열한 놈이다. 다른 선택이 없어서 투표했다', 또는 '부정행위가 말썽 없이 잘 끝났다' 같은 야유로 가득 찬 구호가 등장했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소개한 시위자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이 중산층이라는 정체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방식이 다양함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월 4일 대규모 시위에서 한 홍보활동 전문가는 "나는 중산층에 속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덧붙여, 한 기자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번역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우리가 중산층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했고, 그에 반해 어떤 기업가는 자신이 "교양 있고 창조적인 중산층에 속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말하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의 폭은 매우 넓어 보인다. 그 속에서 수만 유로의 월급을 받는 은행의 고위 간부, 기자, 임시직 번역가, 매월 300∼600유로의 급여를 받는 초등학교 교사, 또는 가까스로 500유로를 버는 공장 감독 등을 만났다. 어떻게 이렇게 사회적 지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자유주의'라고 통칭하는 정치적 반대 진영이 이 용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주체도 아니고 처음 사용한 것도 아니다. 정부도 결정적 순간에 그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 계층의 '안정적' 역할을 강조하거나 (시위자들이 '밍크코트를 걸친 사람들'로 한정된 2011년 12월 시위 때처럼) 그 계층을 충성스러운 '서민계층'에 대립시키기 위해 사용한 사례가 있다. 그런데 시위자들이 결집 초반부터 그들 자신의 계층적 정체성에 대해 정의 내리기를 주저할 때, 그들이 누구인지 이해시킨 것은 다름 아닌 대중매체다. 2011년 12월 7일자 <자골로프키>는 "중산층이 거리로 나섰다"고 주장했고, 그로부터 3일 뒤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한술 더 떠서 "격노한 사람들이 우리의 새로운 중산층"이라고 언급했다. 2011년 12월 국회의원 선거 이후 3개월 동안 러시아의 신문·잡지에서 이 화제의 '(중산)계층'을 다루는 기사 수가 그 이전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해외 신문들도 뒤지지 않는다. <뉴욕타임스>(2011년 12월 11일치)는 "푸틴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의 중산층이 그를 배반하고 있다"고 썼다. 영국 <인디펜던트>(2011년 12월 12일치)는 "러시아의 중산층 젊은이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 크렘린은 큰 문제를 안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앙케트팀(1)에서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시위의 흐름을 따라 점점 더 빈번하게 자신의 책임하에 나름대로 이 개념을 되풀이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미디어를 통한 작업은 마침내 성공한 셈이다. 민간 부문의 한 직원이 "그들이(미디어에서) 말하기를, 여기에서 중산층이 시위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다"라고 말을 쏟아낸다. 시위자들이 공공연히 입장을 취하는 한 사회집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한 하나의 이념을, 온갖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기자들이 만들어냈다. 때때로 이것의 중요성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나는 중산층의 하위 부분에 속한다"고 말하는 인구통계학을 공부한 전자제품 소매상인은 "나는 매우 소박하게 살고, 직원으로 매일 일한다. 나는 아주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지만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 욕구와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 은행 직원은 "우리가 중산층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공개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표현하기 때문이다"라고 단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동원된 기자들이, 시위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다양성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이 세워놓은 가설적 현실을 시위 속에서 사실적 현실로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중산층은 교육 또는 보건 행정처럼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무거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회피하는 움직임에 편리한, '미리 생각하도록 준비한 것'의 지배를 받는 개념이 된다. 이 개념의 정치적 마력은 동원 잠재력과 근본적인 사회적 격차를 숨기는 능력을 동시에 근거로 한다. 실제 자동 실행되는 예언으로,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아이패드(iPad) 소유자들을 카페에서 나오게 할 수 있고 또 그들을 거리로 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정체성을 구성한다.
글•알렉산드르 빅보프 Alexander Bikbov 러시아 모스크바대학 현대철학 및 사회과학 센터 부원장.
번역•채미서 yarche@hanmail.net
(1) 앙케트팀의 취재 활동은 저자 이외에 알렉산드리나 반케, 알렉산드르 포우디네, 구에오르기 코노발로프, 아나스타시아 칼크에 의해 진행됐다.
두 형제의 서로 다른 꿈
이복형제 사이인 송강과 이광두는 문화혁명을 거친 뒤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갔다. 착하고 바른 성품의 송강은 중국의 사회·경제적 급변에 휩쓸렸지만, 오만하고 비양심적인 이광두는 갑부가 되었다.
"어느 날 이광두는 류진을 떠나 상하이에 갈 일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누더기를 입은 채 터미널에 도착했고, 가방을 든 수행원인 듯한 젊은이가 그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뒤에 가는 젊은이가 누구냐고 묻자 이광두는 자기 기사라고 대답했고,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이광두가 차도 없으면서 기사를 고용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렇게 이광두와 기사는 버스를 타고 상하이로 갔다.
며칠 뒤 이광두가 돌아왔다. 이광두는 버스를 타고 오지 않고, 대신 빨간색 산타나 세단을 타고 나타났다. 전용차를 장만한 것이다. 기사가 모는 차가 류진에 들어서서 백화점 앞에 멈춰 섰고, 산타나 전용차에서 내린 이광두는 검은색 이탈리아제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있었다. 누더기는 상하이의 휴지통에 버리고 말이다. (중략)
류진은 천지개벽을 했다. 거물 이광두와 현장, 도청이 손을 잡고 낡은 류진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류진을 건설하자고 선언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정경유착이라 입을 모았고, 도청이 정책을 내면 이광두가 돈을 내고 일을 성사시켰으니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거리를 완전히 철거해서 예전 류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중략)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비록 예전의 집은 작고 허름했지만 나라에서 준 것이었고, 지금의 아파트는 새것이고 넓지만 이광두에게 돈을 주고 사야 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토끼는 자기 둥지 주변 풀을 뜯어먹지 않는다'는데, 이광두란 불량배는 자기 둥지 주변의 풀을 하나도 남김없이 뜯어먹고, 고향 친지들의 돈을 깡그리 긁어모은다고 불만이었던 것이다."
- 위화 작, 최용만 역, <형제 兄弟>, 휴머니스트, 2007.
중산층이란?
지금까지 모든 사회주의 전략은 프롤레타리아 수가 증가하고 중산층 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했다. 오랫동안 이 가정은 현실에 부합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변화 추이를 보면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수는 줄고 중산층 수는 증가하고 있다. - 앙리 드망, <라 비 소시알리스트>, 1933년 11월 4일.
사려 깊고, 정보에 밝고, 교양 있는, 대부분 봉급생활자로 구성된 매개 집단이 우리 사회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세대 사이에 공유되는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에 기여한다. 그 목표는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자산을 물려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혹은 금융자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이 자산들은 '시장경제'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드러내 보여주는 표식이다. -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불꽃과 재>, 그라세, 파리, 2002.
정치인들은 중산층의 마음에 들어야만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사실, 즉 오늘날 소수가 된 빈곤층에게만 지지를 호소할 경우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략) 따라서 라틴아메리카는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경쟁력이 있으며 세계인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는 다수- 현재는 적지만 증가하고 있는- 와 함께 목표를 이룰 수 있다. - 호르헤 카스타네다(전 멕시코 외교부 장관으로 영향력 있는 지식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011년 12월 12일.
나는 프랑스대혁명이 이룬 것처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태도를 열렬히 지지한다. 그 사회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제1원칙 아래 중산층을 근본 요소로 삼는다. - 프랑수아 기조, <현 시대의 역사에 복무하는 기억>, 제1권, 미셸 레비, 파리, 1858.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다른 계급에 대한 개념보다 더 자주, 현실에 부합하기보다는 특정 정당 혹은 특정 유형의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 같다. - 프랑수아 시미앙, <정치경제학 강의>, 도마, 파리, 1929.
자신이 미국의 상위 1% 부자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 비율은 13%. - <하퍼스 인덱스>, 201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