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발작 직전의 NATO

2012-05-14     올리비에 자제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오는 5월 20~21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지역구인 시카고에서 회동한다. 정상회의에선 드물게 열띤 논의가 거듭될 것이다. 탈냉전 이후 새로운  나토는 서구의 가치와 세계 평화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쥐고 ‘세계의 경찰’로 탈바꿈한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나토에 대한 신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세계 30개국 이상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세계 안보기구의 중심."(1) 백악관은 이런 말들로 나토에 대한 칭찬을 고집스럽게 계속하고 있다. 나토는 유럽연합(EU)이 가장 잘하는 분야인 민간 위기관리 분야(2)를 포함한 군사동맹이자 안보동맹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대서양 동맹에 대한 이런 희미한 의미론 저편에서, '글로벌 나토'에 대한 과장되고 자기 중심적인 환상은 아프가니스탄의 산 속에서 깨져나갔다. 엉성한 전략적 논리에 사로잡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비교적 잘 준비된 미군 철수를 통해 전임 부시 행정부의 '민족국가 건설'(Nation Buiding)과 반군과의 전쟁을 뒷정리하게 될 뿐이다.(3)

"승리를 선언하고 도망치다!" 미국의 일부 분석가들이 아프가니스탄 작전의 결과를 요약해 붙인 말인데, 아프가니스탄전의 대차대조표에 대해 많은 것들을 얘기해준다.(4) 사무총장 조지 로버트슨(영국, 1999~2003)과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덴마크, 2009~ )이 나토를 이끄는 동안, 전략 부재를 정당화하려는 두 사람의 노련한 말장난은 유럽 대륙의 이익을 앞세우지 못한 무능력과 공개적인 비판을 막아보려는 노력에 불과했다. 1949년 창설된 나토는 아마 소련 해체 이후 다른 어느 때보다 약화됐다.

2010년 리스본 나토 정상회의에선 뉴질랜드와 일본 등 '원거리 서구국가'를 포함시킨 야심찬 계획의 '협력 안보'가 발표됐다. 반면 점점 더 많은 회원국이 알라딘의 램프에 지니를 다시 집어넣으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 '공통 가치'의 수호라는 이데올로기 논리가 아니라 지리적 논리에 따라 나토를 유럽의 집단안보라는 본래 임무에 한정시키려 한다. 독트린 변화의 저변에서, '국가 이익의 활(영토·국민·근접성)'이라는 개념이 유럽 발칸 지역-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이른바 '활 모양의 위기 지역'(Arc Des Cises)이라는 막연하고 남용되기 쉬운 개념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방어 체제 없이 무기 구매 강요받는 유럽

나토 내부의 도덕적 위기와 함께 오는 11월 치를 미국 대선으로 인한 압박이 시카고 정상회의의 논의에 영향을 미칠 추가적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회의는 30년 만에 미국에서 처음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오바마 미 행정부는 반대당인 공화당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나토 조직을 재편하는 식의 강력한 발표를 통해, 이를 확실한 진전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아프가니스탄전 이후 나토가 전략 계획뿐 아니라, 특히 산업적·기술적 계획에서 미국에 '좋은 거래'로 남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민주당 선거 진영에 가장 쉬운 일일 것이다. 이는 국방예산이 향후 10년간 4천억 달러 삭감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논리가 될 것이다. 연 6천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예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액수지만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제너럴다이나믹스, 레이시온 등의 공장이 들어선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지출 삭감에 강력하게 항의해오고 있다. 그래서 선거 압박을 받는 백악관의 고문들은 시카고 정상회의를 미국 군사장비의 전시장으로 바꾸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1960년 이후 미 국방부는 유럽 국가들의 국방예산이 너무 적다고 불만을 표시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나토 예산을 두고 자주 성깔을 부린다. 동맹국에 군사장비를 확충하는 데 실질적 노력을 기울이라는 많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는 나토라는 집단안보의 '무임 승차국'에 성능 좋은 미국산 군사장비를 구매하도록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국가들 대부분은 자체 방위산업이 없다. 나토가 동유럽 7개국 가입으로 재창설된 2002년 프라하 정상회의에선 이미 '능력별 구매'를 약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각 회원국들은 무인기, 위성, 보급함, 통신 등 특별 분야에서 계획을 입안해 결국 모든 회원국의 상호 작전능력과 효율성에 필수적인 군사장비를 공동구매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리비아 전쟁에서 본 것처럼 실현되지 못했다. 독자적 해공군 능력을 갖춘 프랑스와 여기에 약간 못 미치는 영국 이외에, 어떤 유럽 국가도 2011년 3월 19일 리비아에 대한 공습작전에서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가 달성한 성과에 미치지 못했다. '오디세이의 새벽'이라고 불린 공습작전은 구대륙인 유럽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전 전역에서 유럽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벌인 '첫 출격'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리비아 작전은 미국의 지휘통제센터와 보급함, 정보의 지원을 받았다.

이 작전에서 의도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 있던('뒤에서 조종한')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내일이면 아마 미국이 나토동맹에 대한 개입 수준을 낮추는 것을 볼 것이다.' 지난 1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국방전략보고서'(DSR)에서 암시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보고서는 미군의 아태 지역 재배치를 언급하면서 '유럽에서 나토의 역사적 임무는 이제 달성됐다'는 거침없는 주장을 담았다.(5) 이 보고서는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이 준비하던 것이다. 게이츠 장관은 2011년 6월 퇴임 전날 유럽 대륙의 집단방위를 위해 좀더 확실하게 기여할 것을 유럽 국가에 노골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도덕적·전략적 리더십은 지난 10년 동안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국방전략보고서와 게이츠 장관은 그 결과로 발생한 나토의 위기를 유럽에 대한 미국 개입의 위기로 변형시켰다.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고아의 처지를 면하기 위해 미국의 기술과 운영상의 지원을 받아, 지원 능력과 지휘 능력 향상을 위한 집단적 재정 지출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2011년 2월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이 회원국이 경제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으로 제시한 '스마트 디펜스'(Smart Defense) 개념의 본질이다. 최고 수준으로 구조를 개편한 군사적 능력에 초점을 맞춰 공동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중복 투자를 피하기 위해 방위산업 기술 기반이 있는 국가는 각각의 틈새(Niches) 특성화를 장려할 필요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프랑스 같은 주요 국가는 지금까지 어렵게 유지해온 산업전략의 자율성을 점차 잃게 될 것이다. 합동소유(Mutualisations)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틈새 기술'의 논리는 결국 '틈새 정책으로 복귀'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스마트 디펜스는 유럽연합이 보유한 수단의 조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점이 우려된다. 또 상호작전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즉 기준과 교범이라는 관점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유럽과 미국 사이에 실질적으로 공유해야 할 능력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계획 실현의 시나리오는 알려져 있다. 먼저, 전략적 '민감 기술'의 수출 장벽을 세워 세계 최고의 미국 기술은 엄격하게 미국만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군수산업은 대량생산에 의존하면서 최첨단이 아닌 전쟁 무기들을 선적한다. 대량생산은 이론적으로 미 군수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다. 시나리오의 전체 그림이 완성될 수 있도록, 장비 자체의 구매에 앞서 유럽 동맹국들은 연구기술(R&T) 예산을 쏟아부어 프로그램 개발의 재정을 마련한다. 이로 인해 점진적으로 유럽 동맹국들은 미래에 각국의 독자적 군사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없게 된다. 정치적 독자성과 기술적 능력이 뒤섞인 탄도미사일방어체제는 엄두도 못 낼 것이다. 미시간 호반의 시카고에서 이틀 동안 개최될 '무기 구매 시장'의 최우선 판매 목표는 미사일방어체제가 될 것이다. 거기에서 (나토 동맹국들은) 틈새 전략에 따른 '쇼핑 목록'을 보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나토 회원국들은 '미사일방어체제의 중간 단계 능력'(중간 단계의 작전 운영 능력)에 도달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시카고 정상회의를 이용할 것이다. 미사일방어체제는 2018년 완벽한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유럽 국가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트너 국가에 위협과 임무, 수단에 대한 공통의 정의에 합의하도록 제안할 것이다. 이를 공식화하는 과정의 중심에는 '누가 비상 화면을 통제할 것인가?' '미사일 발사 단추는 누가 누를 것인가?' 등 미사일방어체제의 교리와 계획 입안, 그리고 개입 규칙이 놓여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미사일방어체제와 관련해 나토 회원국에 자국의 접근 방식과 배치 일정 등을 강요해왔다.(6)

2007년 부시 행정부는 폴란드와 체코 이외에 요격미사일을 배치할 '제3기지'를 일방적으로 제안했고,(7)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재배치에 나선 것이 그 사례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지스함에 배치된 대기권 밖 요격미사일과 미군이 지휘하는 독일 람스타인 기지가 책임을 맡고 있는 지휘 통제 능력의 향상을 발판 삼아 단계별 탄력적 접근전략(EPAA·European Phased Adaptive Approach)이라는 새로운 미사일 방어 전략을 유럽에 적용했다. 유럽 회원국 국방장관들은 2007년 6월과 2009년 10월 나토의 미사일방어체제가 이들 제안에 따라 구축될 것에 대체로 동의했다. 이후 나토의 모든 회원국은 자체적으로 명확한 비전이 없는 의제를 단기적으로 추진해오면서 미국에 의해 전적으로 계산된 틈새 특성화를 수용할 태세를 갖추었다(2015년까지 1단계, 2018년까지 2단계, 2020년까지 3단계). 결국 나토의 미래 구조의 '최상층부'에 유럽 국가가 자발적으로 포함되는 것을 겨냥한 다른 제안이 없다. 이런 상황은 미사일 방어망에 대한 결정권과 통제권 없이 미국의 무기 체계를 당장 직접 구매하는 길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방위정책의 발전은 중국·브라질·인도 같은 신흥국가의 방위정책도 마찬가지이지만, 공간의 통제, 즉 세계 각 지역의 교통로와 교역로(해상로, 공로, 우주 공간,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접근 거부'와 정보통신 수단에 기반한다. 신뢰성과 영향력 같은 영역은 점진적으로, 그러나 불가피하게 형성된다. 이는 미국이 유럽 국가의 나토 예산에 더 많이 의존하면서도, 다른 모든 회원국과 틈새 기능까지 종속시킨 최고 기능(공군력과 미사일 방위 능력)의 통제국으로서 자국 중심적 역할을 계속 유지하길 희망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막대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을 감안하면, 미래 유럽의 기술과 투자는 보조적 역량이 아닌 전략적 자율성에 우선순위를 둔 정치적 심사 숙고 과정에서 결정되는 것이라 중요하다.

스마트 디펜스는 '현명한' 방위를 원한다. 시카고 정상회의에서 유럽 회원국 대표들은 일방적 교역조건에 대해 정치적 재협상을 해서 이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 교역조건은 나토의 물질적 구조를 만들지만, 나토를 문화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이번에 재협상하지 못하면, 유럽의 정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게이츠 장관의 특별했던 수사적 발언을 상기하면서 미국의 조종에 진저리를 치며 '미국 친구들'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글•올리비에 자제크 Olivier Zajec 주요 저서로 <미국의 새로운 무능>(Nouvelle Impuissance Américaine·L'Œuvre·Paris·2011) 등이 있다.

번역•류재훈 <한겨레> 온라인 국제판 에디터. 역서로 <코리아 엔드게임>(2003)이 있다.


(1) 소개 자료 ‘미국은 시카고에서 나토 정상회의를 주최할 예정이다’, 백악관 공보비서실, 2012년 3월 21일.
(2) ‘민간 위기관리’라는 개념은 유럽의 안보·방위 정책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나토는 이런 접근 방식의 장점에 주목해, 나토의 정치안보적 행동의 스펙트럼을 확대하기 위해 이 영역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3) 왕조적 제도와 경제적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강화하려던 간섭은 실패했다. ‘국가적 재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3년 12월호 참조.
(4) Gene Healy, ‘빈라덴이 사살된 뒤 승리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그제미너> 2011년 3월 2일.
(5) Michael Klare, ‘펜타곤, 중국해로 눈을 돌리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3월호.
(6)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미묘한 체스게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4월호.
(7) 1단계에서 언급된 두 기지는 미국에 있다. 부시 행정부가 ‘제3기지’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유럽에 설치될) 이 시설은 유럽 대륙 방위를 위한 미군 배치의 본질적 요소로 보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유럽에서 미사일방어체제라고 해서, 당연히 유럽적인 미사일방어체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