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공화국에서 파시스트 공화국으로!
극우 경찰노조가 발표한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이며 선동적인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는 ‘공화국’의 의미가 어디까지 변질됐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 그들은 용의자, 정확히는 ‘그들에게 해로운(것으로 간주되는) 인물’을 추격하고자 ‘공화국의 명령’이 필요하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호소했다. 절제와 방조를 혼동하는 평소 습관대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에 대해 “경찰대원들의 분노의 표출”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 기구 특유의 파시즘화를 우려했어야 했다. <르몽드>는 결코 현재진행형인 파시즘화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르몽드>로서는, 작금의 현상이 그 자신이 그토록 오래 예찬하던 권력의 지원 속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르몽드>는 돌발적인 불행한 사고, 두 번 일어날 수 없는 역사적 우연에 의한 결과가 파시즘일 수는 있으나, 결코 ‘우리 내부’에서 파시즘이 탄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파시즘은 위기의 시대에 진화의 형태”
<르몽드>에 있어서 ‘우리 내부’는 바로 공화국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공화국과 민주주의가 자신과 상반되는 원칙을 대변하는 파시즘을 낳을 수 있는가?’ 바로 이것이, 정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악명높은 정치문제연구소에서 훈련받은 이들의 뇌리에서 들끓는 반죽이다. ‘민주주의-공화주의’를 즐겨 반복하는 언론의 이상주의는 이 단어를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일반적인 지적 무능에 역사적 무지를 더한다. 그들은 짧은 역사 속에 사라졌지만, 살로(1)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파시스트 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독일 작가 브레히트의 글을 읽지 않았고,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반의어가 아니라, 위기의 시대에 따른 진화의 형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목격하는 모든 것은 지금 이 생각이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경찰의 치외법권을 요구하는 경찰국의 보도자료가 나온 이후, 내무부 장관의 너그러운 인정 속에서, 파리경찰국장 뉘네즈가 그 생각을 수용하면서, 또 하나의 안전장치가 사라졌다. 이제 그들에게는 공화국이라는 휘장을 두를 필요마저 제거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항상 그것을 원했다. 이제 완곡한 표현을 쓸 필요도 없다. 사회의 다른 단위와는 다른 그들만의 도덕적 체계로 진입하면서, 경찰은 그들의 손에 쥔 거대한 특권을 사용할 권한의 의미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다. 이처럼 거대한 특권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식 없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경찰은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어떤 질책도 받지 않고 누군가를 죽을 때까지 때릴 수 있기를 원한다. 자신들의 폭력적 충동에 전적으로 몰두해 있는 경찰은, 그들이 지닌 특별한 책임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한다. 더 이상의 토론은 없다.”). 그리고 이제 이것은 새로운 공포가 됐다. 위계질서의 상층부까지 같은 생각에 장악돼 있다. 장관도 거기에 포함된다.
몇 개의 가설
여기서부터 여러 해석의 대립이 시작된다. 현재 혹은 미래의.
첫 번째 해석 : 마비.
마치 모든 열정이 사회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대중을 공격하는 것에 집중돼 있어, 어떤 정치적 정당성도 갖고 있지 않고 오직 경찰력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있는 권력이라는 가정이다. 법무부 장관 뒤퐁-모레티에게 인종주의적이고 선동적인 보도자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정부의 심장부에서 추악한 인종주의적 발언이 난무하고 있는데, 헌법과 인권선언의 수호자라는 사람의 대답이 “아무것도 생각할 것이 없다”인 것이다.
두 번째 해석 : 일격.
내무부 장관 다르마낭은 어떨까? 그는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대규모 경찰 파업이 발생하도록 내버려 둔다(강도 높은 가설 : 은밀하게 물밑에서 파업을 조장한다). 이럴 경우에 마크롱의 권력은 완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금 그의 권력은 어떤 사소한 문제에도 흔들릴 수 있다. 이때 경찰력을 마크롱 곁에 배치시키는데 내무부 장관 다르마낭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마크롱은 자신의 (사실상의) ‘보스’가 누군지 알고 있다. 심각한 위기가 다시 발생할 경우, 그를 총리에 임명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 이상도 가능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설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주피터’(2)를 외쳐왔던 신문들에서 주피터가 증발한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주피터가 내무부의 두 신하들에게 조종당할 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 대통령이 헤겔식의 모든 절대 권력을 발탁당한 상황을 감당하려면, 정부의 최고위층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프랑스 5공화국 이후 전례가 없는 모욕적인 일이다. 마크롱이, 그 자신이 임명한 내무부 장관의 조정을 받고 있으며 수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것도 전례가 없는 모욕적인 일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즉각 장관이 해임됐어야 했고, 모든 정치 평론가, 논객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논쟁을 벌였어야 했다.
‘자아의 충돌’, 막후 정치, 책략 외에는 정치에 대해 문외한인 이들이 기대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그럴듯한 이유로 입을 다문 것일까? 하지만 그들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내무부 장관이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벌인 술책은 모든 언론이 1면에서, 계속해서 다뤄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한 언론은 없었다.
세 번째 해석 : 본격적인 전환.
경찰의 권위주의적 일탈을 방관해온 마크롱 정권은 적극적 지원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있다. 마크롱식 표현을 따르면, 그는 현 상황의 주도권을 ‘잡기로’ 한 것이다. 생각은 실시간 조정으로 재구성된다. 마크롱 패거리는 상식도, 원칙도 없기에 이들의 생각을 조정하는 것은 쉽다.
‘질서는 좋은 것이다. 질서는 유일하게 바람직한 것이며, 그 무엇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질서를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국가 제도를 구축하는 논리가 그 속에서 소멸해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 논리의 끝에는 헌법 16조(3)가 있다. “질서, 질서, 질서”: 경찰공화국은 자신의 표어를 찾았다.
공화국이 잃어버린 진정한 영토
공화국을 폐지하려는 맹렬한 탈주의 흐름 속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근본적으로는 장식용인 ‘공화국’이란 단어의 기표를 유지하는 일만 남아있다. 나머지는 참을 수 없는 것을 계속 참아내게 해주는 자본주의적 언론들의 (언제나 똑같은) 무식함과 무기력함, 고분고분함에 기대볼 수 있다. 진실은, 더 이상 부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되는 ‘공화주의자’라는 단어의 용도는 없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혼돈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공화국’은 ‘공공의 것’ 이외의 어떤 다른 의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단어는 그 자체로 그것이 담을 형태에 관해 아무것도 예단할 수 없는 카테고리이고, 정치 철학의 일반적 범주에 따라, 군주제든, 과두정이든 민주주의든, 심지어 살로(사회주의적 파시즘)로도 쉽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프랑스에서 이 단어는 혁명의 의미를 얻게 됐다. 이후에는 그 뜻이 전환됐을지라도, 적어도 ‘공화국’은 민주주의와 평등의 이상으로 온전히 채워져 있었고, 그러기에, 5공화국이 그들에게 완전히 낯선 모습으로 끝나게 됐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개념적 오해나 모순 없이 우리가 경찰공화국에 진입하게 됐다는 반박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우린 공화국이 잃어버린 진정한 영토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경찰서, 경찰차, 도청, 국립경찰감사부, 또한 형벌을 알리는 공문이 나오는 법무부 장관의 사무실, 일정한 도살의 정의를 실현할 형식을 제시하며 법조문의 조항을 집행하는 재판소, 보고서의 결과를 위조하는 의료법률기관(일례로, 아다마 트라오레 사건)(4)이 있었던 기관, 감옥, 물론 행정구치소, 그리고 여기에 인종주의가 편집 라인의 일관성을 취하고 있는 미디어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들이 공화국이 잃어버린 진정한 영토들이다.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지역들과는 정반대의 공간이다. 흔히 제시되는 지역들이야말로 공화국적 가치인 평등에 대한 가장 진정한 공화주의적 요구가 솟아오르는 곳이다. 사회민주주의 공화국에서는, 단 하나의 가치 “평등”만이 진지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경찰 공화국이 파시스트 공화국이 될 가능성
폭력성과 인종차별 속에서, 경찰공화국은 파시스트 공화국을 향한 움직임 속의 과도기적인 형태라는 근거들이 넘쳐난다. 우리는 현대의 파시즘이 어떤 모습으로 올 것인지 상상해 왔다. 그러나, 이제 상상할 필요도 없다. 극우 민병대가 경찰병력의 가호 속에서 공포가 군림하도록 거리를 접수한다. 경찰병력이 극우 민병대를 동반하지 않을 때면, 다른 곳을 감시한다. 더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이런 경찰병력의 2/3 이상이 극우 인종주의 정당에 투표하거나 노골적으로 파시스트, 심지어 네오나치의 상징들을 뿌릴 때,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극우단체의 테러 프로젝트에 경찰이 참여하고 있는 사실이 발견됐을 때, 나치 상징물들이 권력을 약속받은 극우 정당 주변에 붙어 있다. 최악이다. 인종주의적 경찰과 통제하기 힘든 거리의 파시스트 집단. 이들의 결합은 기반이 잘 다져진 경찰공화국이 곧 ‘파시스트 공화국’이 될 가능성을 드러낸다.
“시민을 보호하는 경찰”이라는 환상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우리의 ‘구원자’여야 할 RAID(프랑스 경찰 대테러부대)는 인종주의자의 차별을 받는 이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구원자의 이미지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집권당 르네상스의 의원이 된, 전 RAID 부대장 장 미셸 포베르그가 공격자들을 위한 심리적 위로를 한답시고 “폭력에 대한 변명”을 말했을 때 이 사실이 다시 증명됐다. 이제, 상식적인 사람들의 눈에 경찰은 폭력에 중독된 가학적인 민병대에 불과하다. 경찰이 트라오레의 유가족(5)이나 일부 기자들에 맞서는 개인적 보복에 열을 올리고, 자신을 영웅화하면서 승진을 추구한다. 무질서한 공격자이자 인종주의자인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답하지 않는다.
‘공화국의 경찰’은 가장 씁쓸한 모순어법이 됐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떠날 것입니다”
지금 붕괴 중인 것은, 바로 5공화국이라는 건물 자체다. 경찰의 손에 넘겨진 정부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피를 하려 하고, 경찰의 개입은 공공정책의 첫 번째 요소이자, 모든 정책의 필수요소가 됐다. 경찰의 등록부는 모든 공공생활에 스며들어 포화 상태가 됐다. 이제, 경찰공화국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에 대한 통제는 당연하게도, 자주 국가의 불법적 개입의 형태를 취하게 됐다. 권한의 남용이 명백한 이런저런 금지 명령, 혹은 시행된 이후 뒤늦게 발표되는 행정 명령이 행해지고, 내무부 장관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자행된 한 서점의 매대에 대한 검열(6)같이 완전히 법체계를 벗어난 경찰의 개입들이 발생한다. 사법부의 일부는 여전히 완전한 억압의 전선에 굴복하지 않았다. 총체적인 억압의 전선에 온전히 항복하지 않은 정의의 영역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까? 법적 변화는 불법적인 남용의 뒤를 바로 이을 것이다. 드론의 사용, 안면 인식 시스템 혹은 소셜 네트워크 검열 등. 이런 마크롱의 ‘처리 방식’은 프랑스를 이집트, 파키스탄 또는 중국과 나란히 놓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침묵이 지배하기를 원하는 권력을 우린 뭐라고 부르나? 마크롱은 첫 번째 임기가 막 시작됐을 때, 그 특유의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 비상사태 종료에 대해 연설하던 중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는 법치주의를 떠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꼭 그렇다.
부르주아와 그들의 정당들
지진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건물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모든 제도 정치의 층위들과 국회가 떠받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 누구도 공화당 정치인들이 다른 당 정치인들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말할 수 없다. 사이비 집권다수당 LREM(7)은 중도우파 정당인 LR(Les Républicains, 공화당)과의 동맹을 열망하는 한편, 극우 정당인 RN(Rassemblement National, 국민연합)과도 친하다. 이념의 영역에서는 극우 진영의 준통합 블록이 형성된 셈이다. 사회, 경제적 이데올로기, 인종주의 등 예민한 문제에 대한 침묵은 이들 사이에서는 무언의 동의로 간주된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경찰의 태도, 심지어 자유민주주의의 실질적 원칙에 대한 경찰의 경멸적 태도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야엘 브론피베(Yaël Braun-Pivet) 국회의장은 RN을 향해 호감을 표하고, 부의장인 시첸쉴은 <CNEWS>가 극우 언론은 아니라고 한다. 게리니 장관(8)도 <Europe1>을 극우 채널이라 하지 않으며, 집권당의 페텔 의원은 “어린 나엘(9)” 대신 “어린 불량배”로 칭하자고 한다. 집권당 르네상스 전체가 실질적으로 극우로 이동하고 있고, 그들의 유권자 기반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
평범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FI(La France Insoumise, 불복하는 프랑스)가 ‘극좌’로 분류되는 현상에서 극우를 향한 전반적 흐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언론인들의 공이 지대하다. 이렇게, 정치 지형의 카테고리가 완전히 붕괴되던 중, <프랑스 앵포>(프랑스 국영 뉴스 채널)에서 ‘이탈리아의 중요한 중도 정치 리더’의 부고를 전했는데, 고인이 된 ‘중도 정치 리더’는 베를루스코니(10)였다.
모든 우파들의 극우파적 융합은 ‘공화당 연합’을 근거로, FI를 제도권 내 왕따로 만들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공화당 연합’은 권위주의-파시스트 연합으로 불려 마땅한 집단에 대한 역전된 호칭이다. 하지만 명칭이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 악명높은 무리들로부터 선명하게 구별되는 집단은 FI가 유일하다. 루설이 이끄는 프랑스 공산당은 위성 정당이며, 그들이 경찰공화국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은 역설이라 하기도 우습다. 카즈뇌브, 발스 그리고 그 일당들로 대표되는 사회당의 잔당, 전형적인 극우적 좌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범주와 가치의 전복, 원칙의 폐지, 인본주의의 부정 등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바로 부르주아지 그 자체다. 실제로, 부르주아지는 그들의 대변자로 마크롱보다 적합한 인물을 찾아낸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각별히 <해방된> 인물이 필요했다. 마크롱은 “성공한 자와 아무것도 아닌 자”의 차이라는 그의 생각을 말로 표현한 인물이다. 즉,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범주를 공식적으로 설정한 인물인 것이다. 그런 사고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처리할 ‘텅 빈 지대’로의 이동이 생겼고, 그는 인종주의적 사고의 기본 골격, 소모성 하위 인류라는 하부 구조를 설치한 셈이다.
부르주아적 질서를 방어하기 위해
정치적 수모를 거쳐야만 한다면,
그리될 것이다.
부르주아들이 먼저 거기에 머리를 담글 것이고, 사회적 인종주의가 작동한 후, 인종차별이 발생하고, 유기적 위기가 첨예해지면, 외국인 혐오의 분위기가 나라 안에 확산되고, 모든 정세를 구성하는 요소(경찰 정권, 인종주의 경찰, 인종주의에 대한 환호)들이 똘똘 뭉쳐, 질서 유지를 위한 맹목적인 방어에 나서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닌 구성 논리에 따라, 부르주아적 질서를 방어하기 위해 정치적 수모를 거쳐야만 한다면, 그리될 것이다. 모든 일반적 상황이 제시하는 것은 그 어떤 구별도, 유보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소셜 미디어나 언론, 방송에서 아랍인과 흑인들에 대한 분노와 즐거움을 부르짖는 부르주아들이 있다. 나아가, 아랍인 소년을 살해한 경찰을 두둔하는 수치스러운 후원금에 수백, 수천 유로를 쏟아붓는다.(11)
뉘앙스(12)의 용기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깨어있는 부르주아, 인문주의자이고, 교양을 갖춘 부르주아들, 즉, 좌파 부르주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현실 부정 속에 갇혀있는 그들이 있다. 우리는 최근에 일어났던 한 사건의 순서를 기억한다. 처음으로 마크롱이 이끄는 프랑스에 적합해 보이는 ‘반자유주의(Illibéralisme)’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올해 봄이었다. 이 과정은 ‘배신당한 자들의 무도회’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에 ‘마크롱주의에 실망한 지식인들’에 대해 세상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49.3집회(13)에 대한 잔인한 진압, 냄비 집회에 대한 금지(14), 난데없이 등장하는 금지 명령들, 레드카드들 이후, 그들의 자유주의적 열망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장 비아르(<프랑스 앵포>에 초대되는 사회학자)에서부터, 장 가리그(방송용 역사학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노련한 사상가들은 작금의 현실을 불편해하면서도 레일라 슬리마니, 쟝 비르봄, 그리고 <르몽드>의 언론인들처럼, 우리에게 ‘뉘앙스의 용기’를 가지라고 주문한다. 합리적 미디어들의 단골 손님 마크 라자르는 심지어 <스 수아르>(15)에 출연해 경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자유주의, 다음에는 또 뭐라고 부를 텐가요? 독재자는 어떤가요? 독재자!”
이것이 바로 마크롱을 추종하는 모든 부르주아들이 폭소하는 지점이다. 그들에게는 ‘공식적인 선거’와 ‘민간 언론’이 민주주의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다. 나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북한에나 가보시던가” 마크롱주의는 파시즘으로 가고 있는 경찰공화국일 뿐 아니라, 바보들의 제국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상태와 진화, 지점과 궤적 그리고 한 지점으로부터 출발하는 궤적의 이동 속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은 부르주아들만이 아니다. 파시즘이라는 단어 사용에 따르는 문제점은 그것이 한 시점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질 때만 사용하도록 강요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당도하기 전에는 파시즘의 시절이라 부를 수 없겠지만, 그 지점을 지나고 나면 너무 늦어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뉘앙스(La Nuance)를 읽으면서 우리가 제 시간에 깨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크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뉘앙스에 연재해 오던 프랑수아즈 프레소즈(16)는 폭동으로부터 그녀에게 요구되던 결론을 도출했다. “사건의 심각성과 여론의 강력한 요구는 마크롱에게 우파와 극우파로부터의 분출하는 보안에 대한 강력한 요구에 맞서기 위해 더욱 분발할 것을 요구한다.” 이 얼마나 명료한가, 얼마나 제대로 된 생각인가. 극우의 도발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정치를 더욱 극우로 이끌고 가야 한다니. 우리 모두 함께 극우가 되자. 맹목적이며, 현실 부정에 사로잡힌 마크롱주의자 부르주아의 생각이다.
어떤 것이 부르주아적 사고인가?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성과, 즉 역사가 주는 교훈은 없다는 것이다. 부르주아들에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환기는 대개 무력화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뉘앙스의 위대한 논설가들 중 1930년대를 잊은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는 박물관에 전시된 골동품일 뿐, 그들에게 현재를 위한 교훈을 주지는 못한다. 최악의 미래를 펼치고 있는 공개적 인종주의 부르주아와 최악의 미래를 예견할 수 없는 위선적 부르주아들. 그들 사이에 있는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다.
마크롱주의, 마크로니즘은 사회가 무엇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회에서 무엇이 깨어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마크로니즘이 곧 파시즘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파시즘이라는 괴물에 적합한 환경임은 분명하다. 아마 6년 안에, 마크로니즘은 놀라운 폭력성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며, 파시즘이 강력하게 뿌리내릴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마크롱은 역사에 그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한다고 한다. 안심하시라. 그의 열망은 분명히 실현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비겁자들로 이뤄진 마크롱의 반어적인 친위부대 BRAV(17)의 퍼레이드를 보라. 마크롱의 친위대 BRAV는 그가 구축한 정치 체제의 대표적인 비유가 됐다.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편집고문
번역·정수리
번역위원
(1) Salò: 1943~1945년,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파시스트 공화국의 이름. 나치 독일의 보호 하에, 무솔리니가 살로에 수도를 둔 파시스트 괴뢰 정부를 세웠다.(-역주)
(2) Jupiter: 선거 캠페인에서 마크롱이 “주피터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한 이후, 마크롱의 별명이 된 말. 로마 신화에서 신들 중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에 해당된다.(-역주)
(3) 프랑스 헌법 16조: 위기 상황에서 프랑스 공화국은 대통령에게 “확장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4),(5) Adama Traoré: 2016년 경찰에게 체포돼 발두아즈 헌병대에서 사망한 24세의 청년이다. 그의 사망에 관한 수사와 재판이 7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그의 사망 이후 유가족들은 경찰의 폭력성과 인종주의적 태도를 고발하는 운동가가 됐다.
(6) 2022년 12월, 내무부 장관 다르마낭이 니스를 방문했을 때 장관의 방문지 인근 페미니스트 전문 서점의 진열대와 매장 앞 매대가 검은 천으로 덮인 일이 있었다.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정부에 유죄를 선고하고, 서점 주인에게 1,000유로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역주)
(7) La République En Marche !(전진하는 공화국 !)의 약칭이다. 마크롱이 2016년 설립한 당으로, 2022년 Renaissance로 당명이 바뀌었다. 2023년 현재 하원 577석 중 156석, 상원 348석 중 21석을 보유하고 있다. 집권 다수당이지만 과반수 달성은 요원한 상황이기에 우파 보수정당인 공화당과도, 극우 정당과도 가깝게 지낸다.(-역주)
(8) Stanislas Guérini: 공직전환부 장관
(9),(11) Nahel: 2023년 6월,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프랑스-알제리 국적의 17세 소년. 그의 사망 사건은 경찰과 정부를 향한 격렬한 비판 여론을 일으켰고, 이는 이민자 청년들이 차량, 관공서, 상가 등을 겨냥한 연쇄적 방화와 폭동으로 번졌다. 한편, 해당 경찰이 즉각 구속되자 피해자 가족은 물론, 가해자인 해당 경찰 가족을 위한 후원계좌까지 열렸다.(-역주)
(10) Silvio Berlusconi: 1936.9.29.~2023.6.12. 극심한 부패와 섹스 스캔들로 악명높은 우파 정치인.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했다.
(12) Le courage de la Nuance: <르몽드>의 기자인 쟝 비르봄이 2021년 쓴 정치 에세이.(-역주)
(13)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제49조의 세 번째 조항은 정부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고, 정부가 직접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허용한다. 국회가 48시간 내에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정원의 2/3 찬성)하지 않는 한, 이 법률은 효력을 발휘한다. 마크롱 정부는 이 조항을 너무 남용한 탓에 비난받고 있다.(-역주)
(14)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마크롱 정부의 거짓 선동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뉴스가 시작되는 저녁 8시 거주지역의 구청, 시청 앞에서 냄비를 두드리는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집회는 곧 정부에 의해 금지됐고 경찰의 개입이 이어졌다.(-역주)
(15) Ce Soir: 공영방송 <France5>에서 방영되는 지식인들과의 대담 프로.
(16) Françoise Fressoz: <르몽드>의 정치 전문 기자이자 논설의원.
(17) 정확한 명칭은 ‘BRAV-M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파리의 특수 경찰부대’다. 노란조끼의 봉기가 시작됐을 때(2018.11), 시위 진압용으로 파리 경찰청이 이 부대를 창설(2019)했다. 이들의 폭력적인 시위 진압 방식은 많은 수사 대상이 됐으며, 끝없는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Brave’는 ‘용감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이기에, 무장하지 않은 시위 참가자에게 무기를 동원해 폭력을 가하는 그들의 태도에 비춰 이 부대에 붙은 이 반어적인 이름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