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자지라’의 별은 지는가

2012-05-14     이브 곤살레스퀴야노

'아랍의 봄'이라 일컫는 중동의 민주화 혁명 기간에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외교 노선을 추종하면서 신뢰성을 상실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의 자본이 지배하는 민영 위성채널이 속속 개국하고 있다.

비록 소셜네트워크처럼 이름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아랍권 방송사들도 '아랍의 봄'이라 일컫는 중동의 민주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반인의 휴대전화가 전문가의 카메라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휴대전화로 찍은 짧은 동영상은 아랍권의 양대 뉴스채널인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가 중계하는 영상의 호소력을 따라갈 수 없다. 수천만 명의 시청자가 이 방송들이 생중계하는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을 지켜보았다.(1) 이들은 지난해 2월 매주 금요일이면 튀니스, 카이로, 트리폴리, 사나, 마나마 등 중동 각국의 수도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시위 현장을 마치 국제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했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얻는 정보도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는 한동안 아랍 정치를 논할 때면 반드시 떠오를 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이집트 군최고위원회(SCAF)는 1년 전부터 수차례에 걸쳐 TV 방송사 기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고, 심지어 스튜디오에 무력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올해 초 포트사이드에서 한 축구 경기가 끝난 뒤 열혈 축구팬들의 난투극으로 수십 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울트라스'라는 이름의 팬들은 반정부 시위의 선두에 섰던 이들이다. 그런데 이 사건도, 얼마 뒤 민주화 혁명 1주년 기념 소식도 지난해 사태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론 전반의 무기력과 우려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랍권 주요 방송사들이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매체에서 저 매체로 콘텐츠의 이동이 자유로워진 오늘날, 새로운 미디어와 기존 미디어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활자 언론매체도 온라인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TV 방송사들도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인터넷에 올린다. 이 부분에서도 <알자지라>는 혁신적인 인터넷 활용 정책을 전개했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방송 송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도 여기에 일조했을 것이다. 지난해 3월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아랍 민주혁명에 관한 <알자지라>의 보도를 훌륭하다며 칭찬했지만, 여전히 북미 지역 시청자는 위성으로 이 방송을 볼 수 없다. 1998년 개설된 <알자지라> 인터넷 사이트는 2009년 1월 가자지구 사태 때 전세계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뛰어난 방송사 사이트 25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한창이던 가자지구 현장에 들어가 취재한 거의 유일한 방송사인 <알자지라>는 보도 내용을 마음대로 퍼갈 수 있게 허용하는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ce)를 적용했고 이것이 크게 주효했다. 이후 <알자지라>는 네티즌들과 상호작용을 꾸준히 강화했다. 아랍 세계의 봉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해 1월,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싱크탱크 X미디어랩과 제휴관계를 체결한 것도 그 일환이다.

전세계 방송사가 700곳 이상, 블로거가 수십만 명, 페이스북 이용자가 4천만 명에 달하는 오늘날, 아랍 세계의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채널과 검색 수단의 수가 늘어나고 여러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상호 연결된다고 해서, 여론 형성의 주요한 장인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가 제공하는 내용의 다양성까지 보장될까? 2011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여러 국가의 독재정권 붕괴에 기여했고 준공식 참석, 외국 귀빈과의 환담 등 권력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리며 뉴스를 시작하던 어용 TV 방송사 특유의 관행을 일부 쇄신하는 데도 일조했다.

아랍의 봄 이후 우후죽순처럼 미디어 출범

몇 년 전부터 소폭이나마 감지되던 아랍 세계의 다양성 인정 추세가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알제리 당국이 공영방송 부문을 시장에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도 한 예다. 민간 업체들이 방송에 참여하게 되면 이들이 정치세력 앞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도 중요한 시대적 사안이다.

그러나 지난 한 해의 성과를 보면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정권 교체를 신속히 이룩한 국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랍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 정치적 격변의 시발점이 된 튀니지의 경우를 보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한 그룹 미디어셋과 현지 투자자들이 합작해 2009년 설립한 대표적 민영방송 <네스마>는 그간 많은 편의를 봐준 권력과의 관계를 과감하고도 발 빠르게 끊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이슬람주의 지지자들은 <네스마>의 프로그램 편성을 일종의 도발로 간주한다. 지난해 10월 선거 직전 방영한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페르세폴리스>의 경우가 그러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종교권력을 비판하며 신의 모습을 등장시키기도 한 이 작품이 전파를 탄 시기뿐만 아니라, 코란의 언어인 아랍어 사용에 도전하는 튀니지 방언으로 더빙한 점도 못마땅해했다.

각국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한 이 사태는 필요 이상의 주목을 받은 게 사실이다. 아무튼 이는 튀니지 여론의 갈등을 잘 드러낸 사건으로, 권력의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정보 전달 역할을 온전히 수행해야 할 민간 주체들이 지닌 역량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역 내에서 중요한 위상을 누리는 이집트의 경우, 전세계 방송사가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현장을 생중계하는 동안에도 이집트 공영방송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일 강변의 평화로운 모습만 줄기차게 내보냈고, 이를 계기로 신뢰도는 추락하고 말았다.

민주화 혁명 이후 수개월 동안 민간 미디어 10여 곳이 출범을 준비했다. 기존 방송 관계자들이 막대한 재원을 가진 기업의 후원을 받아 추진한 경우도 있고, 방송 분야에 경험이 없는 활동가들이 오로지 열정을 무기로 뛰어든 경우도 있었다. 그러자 이집트 군최고위원회는 당분간 모든 미디어의 신설을 유예하기로 했고, 아울러 검열을 부활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지난해 10월 언론인 요스리 푸다는 정부 당국의 검열을 비난하며 생방송 도중에 사의를 표명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지 1년 이상 지난 지금, 비교적 견고한 입지를 누리는 방송사들은 모두 주요 정치·경제 세력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알하야트>는 와프드당의 현 당수가 소유하고 있고, <미스르25>는 무슬림형제단의 비공식적 대변인이다. 혁명에 마지막 주자로 동참한 <ONTV>는 자유주의 성향의 재벌이자 알마스린 알아흐라르당(자유이집트당)의 후원자인 나기브 사위리스의 투자를 받고 있다. 결국 힘없는 기관들은 경주에서 탈락하거나, 원래 설립 목적을 떠나 다른 분야로 전환됐다. 무바라크 정권 당시 야권 인사로 이름을 떨치던 이브라힘 이사 같은 언론인들이 주축이 된 타흐리르 TV는 기업가 술레이만 아메르의 손에 넘어갔고, 강도 높은 비판을 서슴지 않던 기자들은 즉시 축출됐다. 새로운 정치 구도가 형성되어도 경제모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셈이다. 광고 수입이 충분치 않은 매체가 정권과 가까운 막강한 금융그룹의 지원 없이 생존 방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2011년 아랍 세계의 전역에 몰아친 폭풍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주요 뉴스채널들의 장악력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각각 1996년과 2003년 개국한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는 최신 미디어에 대해 칭송이 자자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으로 쓰인다. 가령 리비아나 시리아의 사태는 불을 지피면서 소왕국 바레인에서 자행되는 심각한 탄압은 거의 완벽하게 은폐할 정도로 좌지우지하는 힘이 있다.

그럼에도 최근 개국 15주년을 기념한 <알자지라>의 앞날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2) '민중의 소원은…'으로 시작되는 각종 구호를 앞세운 2011년 아랍의 혁명은 <알자지라>의 방송 논조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주역들에게 발언권을 주자는 것이다. 물론 이는 민족주의와 종교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 주장이 전제가 된다.

하지만 중동 지역의 모든 언론이 그 보도 내용을 베껴쓸 정도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알자지라>도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신뢰성을 크게 상실했다. <알자지라>도 초창기에는 혁명세력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리비아와 시리아의 사태 개입을 비롯한 각종 사안에서 카타르 정부의 외교적 입장을 전적으로 추종하더니 결국 수많은 공영·준공영 채널과 다를 바 없는 복제품, 즉 투자자들의 정치적 지향을 대변하는 역할로 전락했다.

지난해 9월 (어쩌면 타의로) 사표를 던진 와다 칸다르 전 사장이 재임하던 때만 해도 엄격히 준수하던 전문성 의무를 <알자지라>가 져버렸다고 생각하는 이는 한두 명이 아니다. 사실 여러 언론인이 칸다르와 비슷한 모습으로 물러났다. 이는 아랍 방송계에서 많은 기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보여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리던 <알자지라> 방송에 대한 항의시위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튀니지의 튀니스 등 각지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는 <알자지라>라는 별이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는 징표다. 카타르 정부의 외교에 아랍 지역민의 신임이 필요한 이 시기에 말이다. 더욱이 올해는 아랍권에서 뉴스채널을 중심으로 많은 TV 방송사가 등장하고 있다. 베이루트에는 <알이티하드>가 개국한 데 이어, <알자지라> 레바논 특파원직에서 물러난 가산 빈 지두가 <알마야딘>을 설립했고, 걸프만 지역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의 뜻에 따라 뉴스채널 <알아랍>이 문을 열었다.

중동 최대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그룹인 로타나의 주주이기도 한 빈 탈랄 왕자는 <알아랍>의 출범을 위해 금융·경제 뉴스 전문 미디어인 블룸버그그룹과 제휴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루퍼트 머독과도 사업상 관계를 맺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미디어계 거물인 머독이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지지하고 극단적 보수주의 성향을 지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머독 역시 자체적 아랍권 방송 <스카이 아라비아>의 개국을 별도로 준비하고 있다.

"돈이 되면 머독하고도 손 잡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알아랍>이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 본사를 둔다는 발표였다. 초기에는 베이루트와 카이로가 후보지로 물망에 올랐지만, 카타르 정부의 로비 결과 도하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더니 또 아랍에미리트 쪽으로 결정나려는 찰나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바레인은 뉴스산업 부문에서 경험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이래 각종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를 진압하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만 국가들이 군사개입을 했다.

그간 정치적 야심을 숨기지 않은 빈 탈랄 왕자는 범아랍권 뉴스채널 출범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로타나그룹에는 여러 주주가 있으나, <알아랍> 방송은 빈 탈랄 왕자가 단독으로 소유한다). 그런 그가 미나마를 신생 방송사의 본거지로 삼는다는 것은 친정부 성향의 <알아라비아>와 상대적으로 비판적인 <알자지라> 사이에서 독자적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거침없는 비판으로 수개월 전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에서 퇴출당한 언론인 자말 카쇼기가 맡게 된 <알아랍>의 보도국은 이미 모토를 정했다. 바로 '자유와 발전'이다. '아랍의 봄' 당시 소셜네트워크에 울려퍼지던 구호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지만, 빈 탈랄 왕자가 구상하는 아랍권 정치 프로젝트를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는 다름 아닌 '이슬람식 자본주의'다. 그 인기는 아랍 지역에서 더 신뢰할 만한 선거가 치러지기 시작한 이래 계속 확인되고 있다.

글•이브 곤살레스퀴야노 Yves Gonzalez-Quijano 뤼미에르리옹2대학 전임강사, 프랑스 중동연구소연구원. 블로그 '아랍의 문화와 정치'(cpa.hypotheses.org) 운영.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


(1) Mohammed El-Oifi, ‘<알자지라>, 거침없는 두 얼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5월호 참조.
(2)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의 탄생에 대해서는 데이비드 허스트, ‘불편한 아랍 텔레비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0년 8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