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체제를 개편하는 개도국의 존재감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G20 정상회담까지
21세기 세계의 지배자는 누구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특히 미국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개도국들 중에서도 중국과 인도가 선두에 서서 국제 체제의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브릭스의 확대는 세계의 균형회복에 있어서 중요한 스텝이다. 그러나 원대한 꿈을 향한 길은 너무나 멀다.
여름의 끝자락, 여느 때와는 다른 외교적 열풍이 불어왔다. 대규모 군사훈련 주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는 서구에 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약자) 정상회담이 8월 24일 종료되자, 브릭스 5개국은 9월 10일 뉴델리에서 열린 한층 서구적인 G20 정상회담에 참가했다.(1) 비슷한 날짜에 정상회담이 잡힌 건 우연이지만, 그 우연은 두 기구의 차이점을 더욱 극명히 드러냈다. 그들이 움직이는 세상의 축소판처럼 말이다.
브릭스 정상회담은 개최 전 인도와 중국의 갈등이 불거지며 위태로워 보였지만, 6개의 신규 회원국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활력을 보여줬다.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고, 단순한 신규 회원국 발표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번 브릭스 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열광적인 찬사도, 근시안적인 평가도 내릴 필요가 없다. 확실한 것은 브릭스가 20개 이상의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일 예정이며, 심의 중이라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침략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인가?
그러나, 개도국들이 점점 서구에 반기를 드는 만큼 브릭스는 G20 정상회담에서 신경을 써야만 했다.(2) 작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했었다. 결국 서구는 그들의 견해를 수용시키는 데 실패했다. 이번 G20 정상회담 공동 선언문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만 표기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미국과 동맹국들이라는 공식표현은 폐기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표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동일한 책임을 부여한다. (...) 작년에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도록 개도국을 설득하려던 서구로서는 날벼락이었다”(3)라고 지적했다. 개도국들은 전쟁을 규탄했지만, 서구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G20은 아프리카연합을 EU와 같은 레벨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개방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력 관계가 바뀔 일은 없다. 뉴델리 G20 정상회담의 실망스러운 결과를 잊게 만들기 위해서 미국의 대통령실과 언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쳐 인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경제회랑 건설에 모두가 찬성했다는 사실만을 부각시켰다. 이 경제회랑에는 철로, 광대역 해저 케이블, 수소 가스관이 건설될 것이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는 단순한 철로나 케이블이 아니라, 대륙과 문명을 잇는 녹색 디지털 대교”라며 찬사를 보냈다.(4)
현재로서는 노선도 불확실하고, 재원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작년 G20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은 글로벌 인프라 및 투자 파트너쉽(PGII)을 제안했었다. 중국이 추진하는 신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흘러넘칠 듯한 달러도 결국 몇 방울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기도 전에 이미 다른 곳에서 다른 경제회랑이 구상되고 설립됐다. 러시아, 이란, 인도를 연결하는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은 조만간 터키, 카자흐스탄, 오만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5) 서구의 개발 약속은 빈곤국이나 신흥국을 끌어들이기에 충분치 않다. 이 점이 브릭스 정상회담의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가늠해보려면, BRICs가 무엇의 약자인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인 경제학자 짐 오넬은 2001년 골드만 삭스 투자은행을 위해 이 약자를 만들었다. 그가 이 약자를 만들었을 때 회원국은 4개국이었고, 마지막 소문자 s는 복수형을 뜻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약자는 브릭스의 빠른 발전을 가리킨다. 그와 두 명의 경제학자들이 “만약 모든 일이 원활히 지속된다면, 40년 안에 브릭스의 경제 규모는 G6(가장 부유한 6개 국가)를 능가하게 될 것”(6)이라고 말했듯 말이다.
모든 분야에서 무역의 자유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서구 국가들과 협상을 벌이던 중에, 4국은 약자를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2009년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다음 해에는 브라질에서 열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 중국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브릭스에 가입했다. 다른 회원국들과 같은 레벨의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BRICS의 S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임이 공식화됐다.
브릭스 회원국의 자격 기준은?
지난 8월 정상회담은 15번째 정상회담이었다. 브릭스는 총장과 의장이 있는 전통적인 국제기구들과 조직도가 다르다. 정상회담 주최국이 일 년 동안 주재하고, 주최국 정상이 회담을 준비하고, 만장일치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를테면 들리던 얘기와는 달리 브릭스는 2024년 1월, 6개 국가를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새 회원국은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에티오피아, 이란이다.
브릭스 회원국의 자격 기준은 무엇인가? 일례로 러시아의 강력한 동맹국인 알제리는 브릭스의 신규 회원국이 되리라 추측됐지만, 유감스럽게도 회원국이 되지 못했다. 아마도 경제적인 상태보다는 모로코와의 뿌리 깊은 분쟁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제적인 이권이 브릭스 확대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집트는 전 세계 에너지 분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Brics+’로 불리는 11개 국가가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54%를 차지한다. 확실히 막강한 비중이다. 현대 사회에서 희귀금속은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지구에서 가장 큰 희귀금속 탄광은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으며, 중국은 이미 전 세계 희토류의 2/3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밀, 콩, 소고기 최대 생산국이다. 러시아의 곡물, 이란의 사프란, 피스타치오, 에티오피아의 커피와 깨, 이집트의 오렌지와 양파. 이것으로 “Brics+가 전 세계 농산물 판매량의 23%를 차지한다. 21세기 초에는 16%였다”라고 세바스티앙 아비 연구원이 밝혔다.(7) 이들 국가는 시장에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빈곤국에 식량을 원조하며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사실 브릭스에서도 지정학적 고려가 있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그의 형제국인 아르헨티나가 브릭스에 가입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8) 룰라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을 돕고자 브릭스 가입을 권유했다. 중국, EU, 미국에 이은 브라질의 네 번째 경제협력국인 아르헨티나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양국에 이득이 되는 개발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두 야당 후보는 그들이 당선될 경우에도 이 약속이 유효한지 물었다. 유력한 극우 대선후보 하비에르 밀레이는 단언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공산주의자(중국, 브라질)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2021년에 이미 상하이협력기구에 가입)의 가입은 놀랍지 않다.(9) 올해 초 두 국가는 중국의 중재로 7년 전부터 단절됐던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이 두 국가의 가입을 염원했으리라 추측된다. 작년, 이란 외무부 장관을 맞이했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또한 이란의 가입을 찬성했을 것이다. 중국의 독점을 좌시하지 않는 인도는 이란과 중요한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회랑을 통해 두 국가의 외교와 무역이 연결됐다. 미국의 압력 속에서도 양국의 교역액은 작년에 총 25억 달러로, 44%p 상승했다.
이집트의 브릭스 가입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랍 연맹의 본부가 이집트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말이다. 시진핑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특히나 아랍연맹에 공을 들이고 있다. 더구나 이집트는 국제 무역 운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수에즈 운하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집트는 중요한 지정학적 플랫폼인 것이다. 중국은 에티오피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신 실크로드의 중요한 아프리카의 경유지다. 중국은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기여하면서 새로운 외교적 성과를 원하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나일 강에 르네상스댐을 건설하면서 양국 간 분쟁이 불거졌다.(10)
브릭스의 두 거인과 구세계
그렇다면 확대된 브릭스가 반(反)자유, 반(反)서구의 정치 블록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5개국의 공동성명서에는 어떤 모호한 표현도 없다. 어떤 대안 경제 모델도 꾀하지 않는다. 다른 서구의 기구들처럼 브릭스는 (그들이 확대하려는)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민관합작투자사업(PPP)의 힘을 찬양한다. 그러나 지불은 관이 하고, 수확은 민이 한다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많은 사례들 중 두 가지만 들어본다.
중국과 인도는 지정학적인 면에서 반서구의 선두도 아니고, 연합전선도 아니다. 브릭스의 양대 거인인 두 국가는 히말라야 국경에서 주기적으로 충돌한다.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천연자원부 장관은 분쟁 지역을 중국의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공개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국제법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인도는 중국의 약진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 4자회담에 참여했다. 또한 근동의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미군 부대가 주둔 중이며, 이스라엘 다음으로 미국의 수혜를 많이 받은 이집트는 미국과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했다. 다시 말해 누구도 국제 질서를 뒤엎을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변화시키기로 합의했다.
“현 국제기구의 구조는 과거의 세계를 투영한다. (...) 현시대의 힘의 법칙과 경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바꿔야만 한다.”(11)라고 안토니오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말했다. 브릭스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브릭스 국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국제기구와 다국적 포럼에서 개도국과 신흥 시장을 더 잘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테흐스 UN사무총장은 직면한 주요 과제들을 나열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출자할당액(12)과 UN 및 안보리 개혁에 있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인도를 포함한 각국의 비중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은 국제기구 개혁에 대해서는 계속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중심의 구세계는 귀를 닫으려 한다. 서구는 내려다보던 국가들과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것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의 그래엄 앨리슨 교수는 현 상황을 완벽하게 요약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중국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13) 오랫동안 그 국제질서를 따랐던 중국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그 질서의 불공정성을 깨달았다.(14) 이런 깨달음을 얻은 나라들 중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일 경제적, 재정적 힘을 가진 것은 중국이다. 이는 브릭스 정상회담의 성공 요인들 중 하나다.
또한 브릭스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브릭스 회원국들과 경제 파트너 국가들 사이에서의 국제 무역과 금융거래를 할 때, 달러 대신에 각국의 화폐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전히 달러가 우세하지만, 이미 각국의 화폐 사용이 시작됐고 잘 작동하고 있다. 이런 첫걸음과 더불어, 경제 위기가 일어날 경우 상부상조하는 브릭스 긴급외환보유기금(Contingent Reserve Arrangement)을 강화하고, 신개발은행의 회원국을 확대했다. 신개발은행은 브릭스가 운영하는 국제개발은행으로서, 아랍에미리트 같은 신규 회원국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Brics+는 재정적으로 무장됐다.
따라서, 요하네스버그 정상회담을 과거의 눈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외교적 과시도 없고, 나토를 모방해서 만든 동맹도 아니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조약을 체결하는 신흥국들의 역량이 반영된 것이 Brics+다. 그리고 이들은 냉전시대처럼 이데올로기 진영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엄 엘리슨 교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의 안보에 필요한 미국과, 자국의 번영에 필요한 중국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하기를 거부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 간의 견해 차이는, 새로운 세계지형을 함께 그릴 의지를 없앨 만큼 크지는 않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대기자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G20 국가 리스트 : 독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우디 아라비아,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중국, 한국, 미국, 프랑스, 인도,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멕시코, 영국, 러시아, 튀르키예, EU.
(2) Alain Gresh, ‘Quand le Sud refuse de s’aligner sur l’Occident en Ukraine(한국어판 제목: 남반구가 우크라이나에서 북반구의 손을 놓을 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2년 5월호.
(3) Henry Foy, James Politi, Joe Leahy, John Reed, ‘G20 statement drops reference to Russia aggression “against” Ukraine’, <Financial Times>, 2023년 9월 9일.
(4) Fabrice Nodé-Langlois, ‘Au G20, l’Europe, l’Inde et les États-Unis veulent contrer la Chine avec leurs propres routes de la soie’, <Le Figaro>, Paris, 2023년 9월 9일.
(5) ‘Un vent s’est levé, le signe des BRIC 바람이 불어온다. 브릭스의 조짐 S’, <La Lettre de Léosthène>, n˚1761, 2023년 9월.
(6) Jim O'Neill, <Building better global enconomic BRICs>, Global Economics, paper n˚66, Goldman Sachs, 2001년 11월 30일 ; Dominic Wilson, Roopa Purushothaman, <Dreaming with BRICs : The path to 2050>, Global Economics, paper n˚ 99, Goldman Sachs, 2003년 10월
(7) Sébastien Abis, ‘Brics : l’appétit agricole vient en marchant 브릭스 : 농업의 욕구가 일다’, <L’Opinion>, Paris, 2023년 9월 4일.
(8) ‘Le brésil fait entrer son principal partenaire latino-américain, l’Argentine, dans les Brics 브라질은 주요 남미 협력국인 아르헨티나를 브릭스에 가입시켰다’, <Le grand continent>, Paris, 2023년 8월 26일.
(9) 상하이협력기구 회원국 리스트: 중국, 인도,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러시아.
(10) Habib Ayeb, ‘Qui captera les eaux du Nil?(한국어판 제목: 누가 나일강의 물을 차지할 것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7월호.
(11)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연설문은 Brics 사이트에 기재됨.
(12) Renaud Lambert, ‘FMI, les trois lettres les plus détestées du monde (한국어판 제목: IMF,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 글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2년 7월호, 한국어판 2022년 8월호.
(13) Graham Allison, ‘US-China : More decoupling ahead’, <Goldman Sachs/Global Macro Research>, n˚118, 2023년 5월 1일.
(14) Martine Bulard, ‘Finance, puissances...le monde bascule 금융권력, 세계가 뒤집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11월호.